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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비대증의 진료지침 개발을 위한 한국문헌의 메타분석 (Meta-analysis of the Korean Literatures for Developing Clinical Practice Guidelines of Benign Prostatic Hyperplasia)

  • 유승흠;김춘배;강명근;송재만
    •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 and Public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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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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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43-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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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This study is to provide evidence-based recommendations for the most-effective treatments of benign prostatic hyperplasia based on patient preference or clinical need, and to meta-analyze the Korean literatures for the development of BPH treatment guidelines. For these analyses, extensive literature searches (208 articles), with priority given to the Korean Journal of Urology, were conducted from 1960 to August, 1996. Meta-analysis, like all statistical analysis, has two main functions: data summarization (qualitative meta-analysis) and smoothing o. pattern recognition (quantitative meta-analysis). As well, critical reviews and syntheses with the mean and 90-percent confidence intervals for the likelihood were used to evaluate empirical evidence and significant outcomes of the BPH treatment literatures (106 articles). For this task, the Methodologic Panel for BPH Guidelines was composed of multidisciplinary experts in the field. The results of the study were summarized as follows: For all that watchful waiting is an appropriate treatment strategy for the majority of patients with prostatism, we couldn't find the Korean literatures which carried this article. The literatures on alpha-1-adrenergic receptor blockers provide no evidence to suggest that any one alpha blocker is more effective than another. The finasteride reduces the size of the prostate, on average, and leads to a small yet perceptible reduction in sysptoms. Of all treatment options, prostate surgery with transurethral resection of the prostate (TURP), transurethral incision of the prostate (TUIP), and so on, offers the best chance for symptom improvement. However, surgery also has the highest rates of significant complications. Therefore, surgery need not always be a treatment of last resort. Balloon dilation of the prostatic urethra is clearly less effective than surgery in relieving symptoms, but it is associated with fewer complications. Emerging technologies for treating BPH include lasers, coils, stents, thermal therapy and hyperthermia. Established technologies will also be reanalyzed as results of new trials are reported. Although this study has some limitations due to lacking for good quality literatures, ' it provides a cornerstone for our medical research. It represents the most current scientific knowledge regarding the clinical epidemiology including treatment of BPH. It will be revised and updated as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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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원림에 도입된 매화(Prunus mume)의 이용과 배식 특성 (Features in Using and Planting of Japanese Apricot(Prunus mume) Adopted to Traditional Gardens)

  • 임의제;소현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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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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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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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전통원림에 도입된 수종 중에서 특별한 상징성으로 높은 위치를 점하였던 매화의 이용 특성에 대하여 조경적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매화가 전통원림에 도입되었던 구체적 양상은 다음의 결과와 같다. 첫째, 현대조경에 비해서 전통적 매화의 이용 방식은 탐매(探梅)정매(庭梅) 분매(盆梅) 병매(甁梅) 조매(造梅) 묵매(墨梅)의 여섯 가지 유형으로 다양하였다. 둘째, 정원에 심겨지는 매화[庭梅]가 사랑채를 중심으로 한 전정에 주로 식재된 것은 매화의 상징성과 관상 가치가 선비가 지향하는 바와 어울렸기 때문이다. 당시 선호되었던 정매의 식재지는 건물 남쪽 사랑마당 창문 앞 담장 옆 물가의 경우로 정리할 수 있다. 셋째, 전통원림에서 매화는 단식(單植) 대식(對植) 군식(群植) 열식(列植) 혼식(混植)되었다. 단식이 가장 보편적인 매화의 배식 기법이었으며, 대식은 공간의 정연함과 상징성을 고양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시선이 트인 곳에서 감상하는 매화의 식재 양상은 군식이 일반적이었으며, 특별한 상징성이 있는 수종과는 혼식되기도 하였다. 본 연구는 매화의 문화적 측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표적 전통수종인 매화를 조명함으로써 전통 배식 기법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연구 결과는 매화가 새롭게 이해되어야 함을 인식하게 하고, 추후 전통적 방식으로 매화를 식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다.

전립선비대증 변증도구의 신뢰도 평가 및 IPSS, 요속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탐색적 연구 (A Pilot Study to Evaluate the Reliability of a Pattern Identification Tool for Benign Prostatic Hyperplasia and to Analyze Correlations between Pattern Identification Tools and International Prostate Symptom Score (IPSS) and Uroflowmetry)

  • 전천후;구지향;강위창;장은수;이은정;정인철;조충식
    • 대한한방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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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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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52-1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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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Objectives: To evaluate the reliability of a pattern identification tool for benign prostatic hyperplasia and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pattern identification tool readings and IPSS and uroflowmetry. Methods: We analyzed 56 patients diagnosed with benign prostatic hyperplasia from December 27th, 2017 to December 26th, 2018 by two different Korean medical doctors and followed with a pattern identification tool and by IPSS and uroflowmetry. One week later, the patients were retested to analyze the reliability of the pattern identification tool, determined with the intraclass correlation coefficient (ICC) using the test-retest method. The correlation between IPSS and uroflowmetry was analyzed with the Pearson coefficient. Result: The reliability of the pattern identification tool for benign prostatic hyperplasia was evaluated as "poor agreement beyond chance" (ICC=0.349). The reliability of each pattern identification score was evaluated as "good" for Yang Deficiency of Kidney, Yin Deficiency of Kidney, Deficiency of Middle Qi, and Dampness-heat of Lower Energizer. The internal consistency was evaluated as "good" for Yang Deficiency of Kidney, Yin Deficiency of Kidney, and Dampness-heat of Lower Energizer, and as "excellent" for Deficiency of Middle Qi. The correlation between pattern identification and IPSS was evaluated as a "moderate positive correlation" for all pattern identifications. The average flow rate and maximum flow rate using uroflowmetry was evaluated with "moderate negative correlation" for Yang Deficiency of Kidney and Dampness-heat of Lower Energizer. Conclusion: The reliability of a pattern identification tool for benign prostatic hyperplasia was evaluated as "poor agreement beyond chance." Further research is needed.

한중일 삼국 지식인 '사(士)'의 이상 - 배상제교·동학·천리교의 종교사상 비교를 중심으로 (The Intellectuals' Ideals in the Traditional East Asian Societies : Focused on the Religious Thoughts of Donghak, Tenrikyo and the Society of God Worshippers)

  • 임태홍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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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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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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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이 글은 근대 동아시아 삼국의 대표적인 신종교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배상제교, 조선의 동학, 그리고 일본의 천리교를 선택하여 각 종교 교리 가운데 내포되어 있는 지식인 '사(士)'의 이상적인 이미지와 사상적인 경향을 살펴본 것이다. 특히 이 글에서는 각 종교교단의 교조 즉 배상제회의 홍수전(洪秀全, 훙시우취엔, 1814-1864), 동학의 최제우(崔濟愚, 1824-1864), 그리고 일본 천리교의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 1798-1887)의 사상을 중심으로 살폈는데, 이들 세 사람이 추구했던 이상은 각자가 어려운 환경에서 겪은 종교체험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홍수전은 하늘이 보낸 관리로서 신으로부터 칼과 도장을 받았으며, 최제우는 주문과 부적을 받아 그것으로 사람들을 가르쳐 신을 위하도록 하였다. 미키는 자기 자신이 하늘의 '쇼군(將軍)'이 되기도 하고, 또 그러한 쇼군을 섬기는 자가 되기도 하였다. 쇼군은 무사가운데 가장 높은 무사이다. 그녀는 스스로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실용적이며, 현세이익적인 다양한 징표들을 만들어 제공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분적으로도 이상적으로도 신사 선비 무사였던 세 사람은 각자가 만든 종교에 어떠한 사상을 담았을까? 홍수전은 끊임없이 중국 내부로 관심을 돌리고 거기에 들어가 있는 악마적인 존재를 제거하고 평화를 이루는데 관심을 가졌다. 태평천국의 혁명 논리는 여기에서 나왔다. 최제우는 교인들을 가르치고 수양시키는데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개벽되었다고 선언하였다.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익보다는 추상적인 사상에 집착하였다. 반면에 미키는 '인간'을 위한 구제를 선언하고 현실적인 이익을 제공하고자 하였으나, 그러한 이익은 오직 '우리 편' 혹은 '일본'에만 한정된 것으로 '타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입장을 취했다. 아울러 그녀의 관심은 끊임없이 '외부'로 향했는데 그 외부는 정복하고 극복해야할 대상이었다.

명암(明庵) 정식(鄭栻)의 한시(漢詩) 연구(硏究) (A Study on Chinese poetry of Myeongam Jeong-Sik)

  • 정시열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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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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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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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본고는 18세기 영남 지방의 선비였던 명암(明庵) 정식(鄭?)(1683-1746, 숙종9-영조22)의 시작(詩作)에 나타난 은일지사적(隱逸之士的) 특성에 대한 입체적인 고찰을 목적으로 한다. 그는 지절(志節)에 있어서 대단히 강개한 측면을 지니고 있었는데, 청나라가 들어선지 약 40년 후 출생했으나, '명암(明庵)'이라는 그의 호에서 드러나듯 여전히 명나라를 숭모와 추앙의 대상으로 여기는 데 변함이 없었으며, 평생 동안 벼슬을 거부한 채 초야에서 독야청청(獨也靑靑)의 지사(志士)로 살다 갔다. 당시 명암이 살던 진주(晋州) 권역은 남명 이후 실천적 도학의 분위기가 팽배했던 지역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은거는 명암이 택한 실천적 행동의 한 양상이었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명암의 시에 대해서는 여러 방향에서 논의가 가능한데 본고에서는 다음 두 가지 사항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째, 세상에 대한 그의 자세, 즉 은거라는 측면과 관련해서 작품을 살폈다. 둘째, 시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단순히 은거시를 검토한다는 평면적인 관점에 머물지 않고, 당당하고 거침없는 무애인(無碍人)의 기상, 한거(閑居)에 내재된 자기 연민과 우울의 감정, 그리고 사물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정감(情感)의 표출이라는 세 항목이 서로 유관(有關)함을 밝히고, 이들 각각에 대해 차례로 탐색하는 입체적인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매월당 사유록의 남원(南原) 시문과 만복사저포기의 향토성 (Namwon poetry of Maewol-dang Sayou-rok and the local color of )

  • 강석근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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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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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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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글은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에 나타난 향토성을 해명한 논문이다. <만복사저포기>는 "금오신화"의 다른 작품에 비해 향토성이 매우 진한 작품이다. 남원과 만복사는 이 소설의 주된 배경으로, 주제를 구현하는데 밀도 있게 활용되었다. 또한 저포(樗蒲)와 같은 민속놀이가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었고, 주인공은 남원(南原)의 토성(土姓)인 양씨였다. 양생이 귀녀(鬼女) 하씨(何氏)와 만나 사랑을 나누던 만복사와 하씨의 무덤이 있던 개령동, 양생이 하씨와 영원히 헤어진 뒤 약초를 캐다가 사라진 지리산은 지극히 향토적인 공간이다. <만복사저포기>의 향토성이 두드러질 수 있었던 이유는 김시습이 오랫동안 남원에 체재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시습이 이런 경험을 토대로 이 작품에서 개성적이며 향토적인 배경을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만복사저포기>는 많은 고소설들이 가진 장소적인 전형성(典刑性)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만복사저포기>의 향토성은 <만복사의 양생설화>에서도 확인된다. 남원지방에서 전래되어 오던 <만복사의 양생설화>는 1970년초에 채록되었다. 이 설화는 <만복사저포기>와 매우 비슷하여, 이 설화를 <만복사저포기>의 근원설화로 보는 학자도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만복사저포기>의 아류작으로 판단한다. <만복사저포기>는 아주 어려운 한문 소설이며, 조선시대 선비들도 쉽게 접해 보지 못했던 희귀소설이 <만복사의 양생설화>의 발생과 전승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주된 요소는 바로 <만복사저포기>의 향토성이다. 이런 향토성으로 인해, <만복사저포기>가 남원의 민중에게 쉽게 수용되었고, 이후 민간 설화로 거듭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왕실의 유아교육 (Early Childhood Education of Joseon Royal Family)

  • 육수화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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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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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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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조선시대 왕실문화는 유교문화의 정수였고, 왕실교육은 유교교육의 최고봉이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실현하는 선비이자 내성외왕(內聖外王)을 구현하는 치자로서, 유교의 이상적인 모델이자,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 바로 조선의 왕이다. 때문에 왕위계승자들의 교육은 일반 사대부들보다 더욱 엄격하고 치열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했고, 왕실구성원이었던 왕실자손들의 교육 또한 소홀히 할 수 없었다. 태교는 태아의 건강과 좋은 기질의 형성을 위해 산모가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몸가짐이다. 이는 애초 산모가 보고 느낀 것을 태아도 태내에서 감응한다는 한의학적 학설에 바탕을 둔 것인데, 유교적 수양론과 결부되면서 교육의 시작이요, 성품형성의 근원으로 여겨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원자와 원손의 교육과정은 왕위계승교육의 일환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아주 체계적으로 구축되었다. 대개 3세 이전에는 보양청(輔養廳)을 설치하여 보육을 담당하게 하였고, 이들이 글을 읽기 시작할 무렵이 되면 강학청(講學廳)을 설치하여 조기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이들을 제외한 다른 왕실자손들의 경우, 보양청은 설치되지 않지만 통상 6세가 되면, 종친부 주관으로 대군과 왕자군의 경우에는 강학청(講學廳)을, 왕손의 경우에는 교학청(敎學廳)을 설치하여 조기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조선왕실 유아교육은 왕위계승자와 왕실자손들 모두 "효경(孝經)" "소학(小學)"과 같은 초학단계를 마치면,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의 단계적 학습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교육과정 자체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원자의 사부는 정 2품, 원손의 사부는 종 2품이며, 대군과 왕자군의 사부는 종 9품, 왕손의 교부 또한 종 9품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위상에 있어서는 현격히 차등을 두어 시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상의 형성과 그 시대적 맥락 - 생애자료에 대한 비교변증을 통해 - (The Meaning of Evaluating Ha-Seo in the Historical Context - Through demonstration based on comparison of materials related to lifetime)

  • 김남이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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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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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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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이 논문은 하서 김인후가 사후에 조선 성리학의 정통 학맥을 계승하는 존재로 위상이 부여되고 추숭되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형상화의 과정을 근거로 과거 인물의 생애를 다룬 다양한 자료가 상호간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거나 배제하면서 인물형상화의 과정을 거치는지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하서의 어린 시절 생애는 김인후와 군주 인종의 굳건한 관계를 부각하기 위해 새로이 배치되었다. 김인후는 당시 사림들에게는 깊은 상처이자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로 인식되고 있던 기묘사림의 복권이라는, 그 당시 가장 중요하고도 첨예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고, 인종은 기묘사림의 복권을 실현한 군주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절개와 충심을 가진 선비로서의 하서의 상을 세우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조선후기에서는 중앙 조정의 서인과 군주 정조의 주도 하에 하서에 대한 추숭이 이루어졌다. 우선 17세기는 서인들이 김인후의 생애를 다룬 자료들을 다방면으로 수정하고, 김인후의 문집을 교정하여 간행했다. 이것은 당시 서인들이 추진하고 있던 서인계열의 학통 수립, 학문의 정통성 확보라는 목표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에 따라 율곡 이이를 비롯한 서인계 학자들에 대한 추숭과 병행되었다. 마지막으로 18세기에 이르러 하서는 문묘에 종향되면서, 조선에서 가장 앞선 성리학자이자 해동정학(海東正學)으로서의 위상을 부여받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조가 군왕으로서 정치적으로 한 국가의 수장일 뿐만 아니라, 한 국가의 정통의 학문에 대한 책임을 자부하는 사표(師表)로서 자기의 위상을 확고히 하려는 욕망을 읽을 수 있다.

퇴계(退溪) 사칠리기호발론(四七理氣互發論)의 연원(淵源)에 대한 일고찰(一考察) - 홍치(洪治)의 『심학장구집주대전(學章句集註大全)』과 관련하여 - (A Study on the Origin of Toigye's SaChilRiGiHoBalRon (四七理氣互發論) - Focusing on Hong Chi's SimHakJangGuJipJuDaeJeon (心學章句集註大全))

  • 최영성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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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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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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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이 글은 퇴계의 사단칠정 리기호발론(四端七情理氣互發論)의 연원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퇴계의 호발론에 미친 선학(先學)들의 영향을 살폈다. 이 과정에서 필자가 근년에 입수한 "심학장구집주대전(心學章句集註大全)"을 주요 자료로 소개하였다. 이 책은 퇴계보다 60년 앞서 태어난 초야(草野)의 이름 없는 선비가 저술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사단리발이기수지(四端理發而氣隨之) 칠정기발이리승지(七情氣發而理乘之)"라고 하여 퇴계와 같은 틀을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일치된 논리가 나온 데 대하여 필자는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위의 책 또는 거기에 실린 호발론이 퇴계에게 전해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어 그 전승 경로를 추론하였다. 또 우연의 일치임을 전제하더라도, 퇴계 이전에 리기호발론이 나올 수 있는 학문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는 점을 논술하였다. 이밖에도 위의 책이 여러 가지 면에서 퇴계 성리학의 선구적 위치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연재 송병선의 놀이방식과 의의 - 그의 유기를 바탕으로 - (The Play Method and Significance of Song Byung-seon(宋秉璿) - Based on His Travel Essay(遊記) -)

  • 유영봉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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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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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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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이다. 생전에 유림(儒林)의 신임을 얻었고 여러 차례 조정에서 불렀으나 공직을 거부하고 재야에서 정진하고 후학 교육에 평생을 바쳤다.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연재는 고종에게 을사조약의 폐지를 간청하였고 그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선비의 양심으로 회덕(懷德)에 있는 고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재는 사림(士林)의 지도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면서 국권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왕과 백성, 유림에게 남기고 왕에게 최후의 호소를 보낸 것이다. 이후 1962년 연재는 건국훈장을 받았다. 송병선의 여행은 일생에 걸쳐 이루어졌다. 22개의 길고 짧은 여행기가 남아있다. 소풍은 주로 육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부분이 말이나 노새를 탔고 때때로 수레나 가마를 사용했다 또한 그는 때때로 수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일부 여행기에는 내륙 수로와 해로를 이용한 기록이 있으며 조상 유물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도 있다. 이 과정에서 가문의 계승이라는 사명을 재확인하고 선조들의 찬란한 위업의 일부가 되겠다는 의지도 확인된다. 또한 견학에는 경전 낭독과 성리학 토론이 추가되었으며 그의 여행은 성리학의 세계관을 널리 알리고 확장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리하여 연재는 선조들이 남긴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정신을 이어받아 마침내 위정척사(衛正斥邪)의 기치를 높이 올렸다. 그리고 그는 과감하게 나라를 위해 죽음의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