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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긍의 고려항로와 고려 봉수의 항로표지 기능에 관한 연구 (Study on the Goryeo Sea Route by Seogeung and Aids to Navigation Facility of Goryeo Fire Signal)

  • 문범식
    • 한국항해항만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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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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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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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중국 송나라 서긍이 작성한 선화봉사 고려도경은 고려의 서해상을 항해한 가장 생생한 기록이다. 선박을 이용하여 고려를 방문한 서긍은 도서지역의 봉수를 이용하여 흑산도에서 벽란도까지 항해하였다. 고려가 도서지역에 설치한 봉수는 당시의 통항로에 인접한 곳에 위치하였고, 항해자가 24시간 식별할 수 있도록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위치를 표시하였다. 또한 산 정상에 설치하여 항해자가 원거리에서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고려 봉수는 현대 항로표지 기본요건을 만족하며, 광달거리(시인성)는 약 29-39mile로 추정되고, 봉수의 광도는 약 9,105-168,610cd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려의 봉수는 현대의 항로표지와 같이 항해자에게 쉽게 이용되고, 국가가 운영한 만큼 신뢰성이 높아 안전항해에 필수적인 항로표지 기능을 수행하였다.

고려시대 사람들의 삶과 전통의상에 대한 고찰 (A Study of People's Lives and Traditional Costumes in Goryeo Dynasty)

  • 최규성
    • 복식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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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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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60-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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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We can study and judge the costumes of the Three Kingdom period through an ancient tomb murals and various burial mound(clay) figures, however, it is quite difficult to search for costumes of the Goryeo period ($960{\sim}1392$), because dresses from this era were rarely found, related antiquities are limited and hard to survive. This is the reason why people say that the Goryeo Dynasty is the period of undiscovered era for its history of costumes in Korea. Fortunately, these days, there are various kinds of buddhist statues discovered with its burial accessories such as costumes and dyed fabrics of the Goryeo era. Through these, we can glimpse through the Goryeo cloths and develop our researches on this field. In addition, a man called Seo Geung(서긍, the Chinese scholar Xu Jing) wrote a book in the 12th century about peoples lives in Goryeo and in this book, there are few documents about the people's costumes which help us to understand the period's traditional dresses. In this paper, we will look for the traditional costumes which were formed and developed through people's lives in Goryeo, using remains from various burial accessories in buddhist statues as well as the documents related to the costumes written in ${\ll}$Goryeosa 고려사${\gg}$. Moreover, costumes of a period usually developed and influenced by the atmosphere of people's lives both economically and mentally, therefore, in this study, we will especially focus on the dresses of the bureaucratic officials and their wives, who led comfortable lives and latitude of mind. Through the records, like Silla, Goryeo exported Sehjeo(세저) and Sehjoongmapo(세중마포) to China. And we found out that Silla's skillful weaving techniques of hemp and ramie cloths were succeeded to Goryeo. According to above facts, Goryeo people made clothes with various kinds of fabrics such as, different sorts of silks, ramie, hemp cloths and cottons. They also have very skillful manufacturing techniques for certain textiles. Their official robes were generally influenced by Tang and Song Dynasty, but, like ordinary people, we found out that the government officials also wore baji(pants) and a jeogor(jacket), which were traditional costumes since the Unified Silla Kingdom with various coats. Especially, women's costumes such as jeoksam(unlined summer jacket) and hansam(한삼), which are sort of jeogori(jacket), baji(pants) and chima(skirts) were made of various kinds of silks and ramie cloths, that were generated from the Goguryeo Kingdom, with jikryeongpo(a long jacket and striped sk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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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화곡리출토 고려도기 제작방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Koryo Earthenware Production method through excavated from Hwakok-ri, Ansung)

  • 서재인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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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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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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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고려도기가마가 위치한 안성시일죽면 화곡리 산 1번리는 고려시대 초에 죽주였다가 11세기 초반인 현종18년(1018)에 광주목에 속하여 고려말기까지 이어졌다. 고려의 지방제도를 살펴보면 도자기와 관련된 곳으로 소(所)를 들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와소(瓦所)와 자기소(瓷器所)가 있었다고 한다. 송나라사람 서긍의 $\ulcorner$선화봉사고려도경$\lrcorner$의 기명(器皿)조에는 와(瓦)와 도(陶)가 나오는데 와는 기와와 도기를, 도는 청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화곡리가마터도 와소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발굴조사된 도기가마 1구는 동남향의 산언덕에 위치한 지하식 단실 가마로 총길이 7m이며 좌측에 도기폐적물이 있다. 출토되는 도기는 그릇의 단단함의 차이에 따라 경질도기와 연질도기로 구분된다. 한 가마 안에서 경질도 기와 연질도기가 출토되는 것은 각각 소성온도를 달리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연질도기와 경질도기는 단실 요에서 환원염소성으로 굽다가 아궁이와 연도를 인위적으로 폐쇄하여 산소의 공급을 일시적으로 차단한 상태에서 솔가지 등을 데워 불완전연소에서 생기는 연기(탄소)를 표면에 흡착시키는 꺼먹이소성법으로 제작되었다고 보여진다. 도기의 기종은 경질도기의 경우 구경 10cm$\~$20cm의 호와 구경 20cm$\~$30cm의 호, 병, 반구병, 매병등이 출토되며 연질도기는 구경 10cm$\~$20cm의 소호, 자배기, 시루등이 출토된다. 도기의 제작시기는 출토되는 매병편과 반구병편으로 고려시대임을 알 수 있다. 제작방법은 옹기성형방식인 타날법과 썰질법으로 제작되었다고 보여진다. 유는 경질도기에서만 보이고 연질도기에는 유가 없다. 경질도기의 경우 유가 없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가 있는 경우는 (1)병이나 호의 구연부에 녹색발색이 나는 유층이 두꺼운 것이 있으며 인공시유로 보여진다. (2)회청색 기외면에 회녹색, 회갈색 유가 일부 얇게 퍼져있는 경우가 있다. (3)기벽이 얇은 호등의 어깨부위에 얇게 퍼져있는 경우로 자연유로 보인다. (4)회녹색, 회흑색 유면위에 검녹색, 진녹색 유가 덧씌워져 있거나 회청색 기면위에 검녹색, 진녹색유가 흘러내리는 경우가 있다. 연질도기는 꺼먹이 소성법에 의한 검댕이 입혀진 경우와 안 입혀진 경우가 있다. 검댕이 입혀진 경우에는 (1)기외면이나 기내$\cdot$외면에 입혀진 경우가 있고 (2) 일반적으로 출토되는 연질도기보다 경도가 강한 형태로 검댕을 입힌후 물레회전방향으로 마연한 경우가 있다. 안성 화곡리가마는 고려도기의 제작방식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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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내 중국 관련 역사문화자원 연구: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A Study of Historical and Cultural Resources Related to China in the Region : Focusing on Jeonbuk area)

  • 정지나
    • 지역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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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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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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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전북지역의 중국관련 역사문화자원을 중심으로 그것의 문화콘텐츠 활용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라시대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 항일운동시대까지 형성된 역사문화자원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분석의 관점은 교류, 귀화 그리고 신앙의 시각에서 이루어졌으며 분석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먼저 교류적 관점에서 최치원과 서긍 그리고 송영구의 활동은 지역에 많은 유적이나 지리적 스토리를 남기고, 아름다운 인적교류의 유산 등 지역역사문화콘텐츠의 형성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귀화의 관점에서 볼 때 두경령, 천만리, 그리고 정율성은 귀화하여 지역에 한중역사문화를 뿌리내리고, 특히 항일운동, 국가형성에 기여하는 등 귀화를 통한 한중의 역사문화 스토리 및 유산형성에 역시 이바지했다는 점이다. 신앙적인 관점에서는 관우신앙을 들 수 있으며, 그것은 용감한 장수로서, 그리고 전쟁승리의 상징으로서 관과 민이 믿는 신앙이 되었고 그와 관련된 상징물, 회화 등은 숭배의 대상으로서, 예술적 가치로서 귀중한 지역중국문화자원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석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지역 내 중국관련 역사문화자원과 관련된 스토리 정리 및 지역축제로의 발전, 도서문화브랜드화, 국제적인 음악제 추진, 중국인 탐방 코스 등의 다양한 문화콘텐츠의 개발과 이를 통한 한중문화교류 확대, 중국인 관광객 유치 등에 대한 지자체 및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인삼의 유래 및 효능의 서지학적 고찰 (Bibliographic consideration on the efficacy and the origin of Korean ginseng)

  • 곽이성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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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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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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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고려인삼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특산물로서 가장 인기있는 건강식품중의 하나로 한반도(북위 33~48도)가 원산지이다. 인삼은 중국 전한 시대 '사유'에 의해 쓰여진 "급취장" (BC 48~BC 33)에 최초로 언급되어 있으며, 1145년 고려시대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의약적 치료용으로 중국에 인삼을 수출하기 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인삼의 인공재배에 대한 기록은 1596년 중국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이후 야생삼이 감소하는 시기와 맞물려 숙종 13년(1687년) "승정원일기"에 '묘삼'의 기록이 나타난다. 묘삼은 벼의 이앙법을 활용한 독창적인 발명으로 1600년대 초반에 인삼의 인공재배법이 확립되었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한편 홍삼에 관해서는 1123년 중국 송나라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 '숙삼'(인삼을 쪄서 건조한 삼)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며 이것이 홍삼에 대한 최초 기록이다. 조선 중종 17년(1552년) "조선왕조실록"에 '판삼'(삼을 찌고 압착하여 얇은 판처럼 만든 후 풀로 붙인 삼)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선조 35년(1602년)에는 '파삼'(삼을 찌고 압착하여 얇은 판처럼 만든 후 실로 꿰어 붙인 삼)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종(1506~1545) 시기부터 선조(1567~1608) 시기에 홍삼의 제조방법이 개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홍삼의 제조법은 그 전부터 이루어졌다고 추정되지만 조선 중종~선조 시기에 더욱 발전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홍삼'이란 용어는 정조 21년(1797) "조선왕조실록(정조실록)"에 처음 등장하며, 고종 36년(1899) "조선왕조실록(고종실록)"에는 대한제국 궁내부 내장원 삼정과에서 홍삼을 제조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아울러 순조 10년(1810년)에는 증포소를 개성으로 이전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시기에 대규모 홍삼제조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요약하면 조선 숙종시대에 확립된 인삼 인공재배기술과 정조시대의 홍삼제조법, 그리고 순조시대의 증포기술 등이 결합하여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후 1916년 '김택영'이 지은 "소호당집"에는 홍삼의 제조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전통적 한국홍삼 제조법의 모태가 되는 것이다. 한편 인삼의 효능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BC 83-96년 중국에서 저술된 "신농본초경"으로 이 효능은 그 이후 여러 의학서에서 지속적으로 계승되어 오고 있다. 앞으로 고려인삼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은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보존되어야 하며 이러한 서지학적 노력은 과학적 연구결과와 더불어 세계속에 고려인삼의 독창성을 알리고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