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양은석은 "비트겐슈타인과 초일관성: 비트겐슈타인의 반실재론"에서 모순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에 대해 매우 주목할 만한 주장을 하였다. 그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약한 의미의 초일관주의자로 간주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양은석의 주장이 설득력 없는 것임을 보이고자 한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이 논리학과 수학, 그리고 모순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가능한 한 공정하게 조명하고자 한다. 여러 학자들은 모순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이 대단히 특이한 것이라고 간주하였고, 더 나아가 마치 어떤 중대한 오류를 포함하는 것처럼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평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모순과 관련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더 이상 특이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은 옳기 때문이다.
힐베르트의 프로그램에 관한 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의 발전 과정에는 뭔가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29년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빈 학파의 슐리크와 바이즈만을 만나 함께 토론한 내용을 정리한 "비트겐슈타인과 빈 학파", 또 그 과정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쓴 "철학적 고찰"과 "철학적 문법"에서의 비트겐슈타인의 주요주장은 1939년에 행한 "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 또 이 강의를 전후해서 비트겐슈타인이 쓴 "수학의 기초에 관한 고찰"에서의 비트겐슈타인의 생각과 중요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보이기 위해서 먼저 힐베르트의 프로그램과 형식주의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나는 비트겐슈타인이 힐베르트의 형식주의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또 그것을 어떻게 비판했는지를 조명할 것이다. 또한 나는 힐베르트의 프로그램에 대해서 중기 비트겐슈타인이 어떻게 비판했는지를 조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중기 비트겐슈타인이 힐베르트 프로그램에 대해서 칸토어의 집합론에 대해 했던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주장만큼이나 과격한 주장을 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더 이상 그러한 과격한 주장을 하지 않는데, 나는 중기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직접 비판함으로써, 또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스스로 어떤 비판을 했을지를 논의하면서,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왜 더 이상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조명하고자 한다.
유아론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투쟁을 조명하는 것은 그의 전체 철학의 핵심을 조명하는 것에 상당한다. 요컨대 유아론의 문제는 언어놀이, 놀이와 언어의 유사성, 가족 유사성, 규칙 따르기, 규칙 따르기의 역설, 사적 언어 논변, 뜻함, 봄과 -로서 봄, 모순, 논리적 필연성, 함 또는 실천과 같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핵심 개념이나 주제와 얽혀 있다. 이를 보이기 위해서 이 글에서는 유아론의 개념, 유아론에 대한 청년 비트겐슈타인의 생각,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진단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이 유아론(넓게는 데카르트주의, 영국경험론, 현상학)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가 진행되면 우리는 유아론에 대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비판과 '사적 언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자연스럽게 문제 삼게 된다.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사적 언어가 불가능하다고 간주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주장은 비트겐슈타인이 처한 패러다임의 전환 상황을 간과하는 처사로서 설득력 없는 것임을 보이고자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규칙따르기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그의 후기 철학의 궤적을 살피는데 있어서 중요하다. 비트겐슈타인의 규칙따르기 문제에 대해 회의적 해석으로 유명한 크립키는 "탐구"의 201절을 문제 삼으며 '역설'의 문제를 새로운 형식의 철학적 회의주의로 간주했다. 본 논문은 규칙의 역설에 대한 크립키의 논증이 비트겐슈타인의 관점과 무엇 때문에 충돌하는지를 밝히면서 그와 함께 비트겐슈타인이 '규칙의 역설'을 제시한 궁극적 이유를 규명하는데 있다. 규칙의 역설에 대한 크립키 논증의 의의와 한계를 비판적으로 다룸으로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점을 주장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서 규칙은 우리들의 행동을 이끄는 지침의 역할을 하며, 규칙의 문제를 추론과 연관시켜 수학이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인간의 지적 활동이며, 규칙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은 귀납적 회의주의와 무관하다. 이런 맥락에서 비트겐슈타인을 회의주의자 혹은 상대주의자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오히려 어떤 이론이나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봄의 방식을 강조한 철학자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
크립키는 비트겐슈타인의 회의론적 역설을 다룸에 있어서 규칙 따르기에 대한 어떤 특정한 개념을 처음부터 전제하고 시작한다. 그런데 문제는 크립키가 자신이 이런 전제를 가정한다는 것을 전혀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으며 더 나아가 크립키가 전제하는 규칙따르기에 대한 개념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옹호하고자 하는 규칙 따르기의 개념과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크립키가 전제하는 개념은 전기 비트겐슈타인이 옹호하는 비맥락주의적 의미론에 근거하는 '무한적이고 결정지어진' 규칙 따르기 개념이다. 비트겐슈타인의 회의론적 역설은 바로 이런 전기 비트겐슈타인적인 의미론과 규칙 따르기 개념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크립키가 비트겐슈타인의 역설은 직접적인 해결이 아닌 회의론적 해결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은 그가 여전히 전기 비트겐슈타인적인 의미개념과 규칙 따르기 개념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크립키는 후기 비트겐슈타인과는 달리 여전히 한 발을 트락타투스적 의미론에 담근 채 비트겐슈타인의 역설을 논하고 있기 때문에 회의론적 해결에 머문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를 크립키가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또 하나의 전제인 진리 대응론에 연결시킴으로써 크립키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차이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모순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견해는 매우 특이할 뿐만 아니라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예컨대 그에 따르면 모순이 수학체계에 존재한다 해도 해로울 것이 전혀 없다. 튜링은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에 대해서, 만일 수학체계에 모순이 있다면, "그 적용의 경우에 다리가 붕괴될 수도 있다"고 공격한다. 반면에 비트겐슈타인은 "모순 때문에 다리가 붕괴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옳은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라고 응수한다. 과연 유모순적인 계산체계로 건설된 다리는 무너질 것인가? 이 물음을 "튜링의 물음"이라고 부르고, 유모순적인 계산체계로 건설된 다리를 간단히 "튜링의 다리"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 글에서는 바로 이 튜링의 물음에 직접 대답하기 위해서 4개의 입론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입론을 토대로 해서 튜링의 물음에 대해 대답할 수 있고, 비트겐슈타인과 튜링의 논쟁을 조명할 수 있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의 핵심적인 측면을 살펴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러셀의 유형 이론을 명시적으로 비판한다. 그렇다면 러셀의 유형 이론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비판의 요점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하여 나는 철학적인 측면과 논리학적인 측면에서 유형 이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논리-철학 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적 구문론은 말하자면 러셀의 유형 이론에 대한 대안이다. 논리적 구문론은 "논리-철학 논고"의 표기법의 기호 규칙들이며 특히 형성 규칙들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하기-보이기 구분은 논리적 구문론의 가장 근본적인 근거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의 유형 이론에 대한 비판과 함께 논리적 문법의 임의성(자의성)과 선험성으로 나아간다. 유형 이론에 대한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비판은 결국 프레게와 러셀의 논리학관에 대한 도전이다. 논리학은 세계에 속하는 일반적인 진리나 특성들을 다루지 않으며, 논리학을 이루는 동어반복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이 왜 "논고"를 포기했느냐 하는 주제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조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 글의 일차적인 관심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한 개인의 실제 철학적 사유 과정보다는, 오히려 "논고"가 포기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과 경로를 생각하고 추적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논고"의 여러 근본 전제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직접적 논박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서, 여기에는 "논고"에서 정의에 해당되는 것, 모호한 개념인 "완전한 분석"과 관련된 것, 그리고 유아론과 관련된 것 등이 있다. 다른한 부류는 전자에 비해 어떤 직접적인 논박 가능성의 여지가 있는 근본 전제로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요소 명제들의 상호 독립성을 들 수 있다. "논고"는 소위 "색깔배제 문제"부터 후자에 속하는 근본전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와해되기 시작했으며, "논고"와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에 서게 됨으로써 비로소 포기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에서 '동일성'은 여러 중요한 의문들을 불러일으킨다. 비트겐슈타인의 '등식'이란 무엇인가? '등식'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동일성 진술'과 동일한가? 프레게는 동일성이 기호들 간의 관계가 아니라 대상(들) 간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프레게의 생각을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가? 또한 비트겐슈타인은 동일성에 대한 러셀의 정의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비판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비판의 요점은 무엇인가? 요컨대 동일성의 본성에 대한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무엇인가? 나는 이 글에서 바로 이 물음에 대해 대답하고자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러셀의 유형 이론과 특히, 환원 가능성 공리를 명시적으로 비판한다. 그렇다면 러셀의 유형 이론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비판의 요점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한 예비적인 작업으로서, 비트겐슈타인이 러셀의 환원 가능성 공리를 어떻게 비판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의 환원 가능성 공리가 논리적 명제가 아니고, 그것이 참이라면 그저 "오직 운 좋은 우연에 의해서만" 참일 수 있으며, "환원 가능성 공리가 적용되지 않는 세계가 생각될 수 있다"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1913년 노르웨이 편지에서의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해명함으로써, 그러한 생각이 환원 가능성 공리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램지와 바이스만의 모델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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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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