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당송 시기 도통 내용의 전환 과정에 관한 소고이다. 본 문은 당송 시기 도통 내용의 변천 과정을 다음의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한유는 인의(仁義)를 도통의 내용으로 삼았다. 둘째, 손복 등 북송 초 유학자들은 보다 광범위한 의미상의 유가적 도를 도통의 내용으로 규정했다. 셋째, 계숭 및 북송 도학가들은 집중(執中)이 도통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송 도학가에 의해 유학의 도통론은 심성론 중심의 철학 논의로 그 성격이 변모되었다.
"소문(素問)" 은 다수의 판본(版本)이 존재하는데, 자구(字句)의 차이가 현저하여 조문(條文)의 훈고(訓詁)나 이해에 곤란한 면이 있다. 판본(版本) 상호간의 관계가 지금까지 해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성서(成書) 이래의 전승과정을 정리하고, 판본(版本)으로 만들어진 북송(北宋) 이래의 변화를 여러 현존(現存) 판본(版本)의 자구대교(字句對校) 및 사서(史書) 목록(目錄)의 기재(記載)를 통해 검토하였다. 그 결과 망일(亡佚)된 송판(宋版)을 포함하여 고본(古本) 13종(種)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그 상호관계를 "소문(素問)" 본편(本篇) 고본계통도(古本系統圖)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이 결과에 의하여 다음 사항들이 밝혀졌다. (1) "소문(素問)"의 자수(字句)는 기본적으로 북송(北宋) 1069년(年)의 희녕본(熙寧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2) 희녕본(熙寧本)(망일(亡佚))의 구태(舊態)를 유일하게 보존하고 있는 것은 1550년(年)에 발간(跋刊)된 명(明)나라 고종덕본(顧從德本)이다. 고본(顧本)을 연구의 제일저본(第一底本)으로 삼아야 함은 향후에도 변치 않을 것이다. (3) 원(元)나라 1283년(年)의 독서당본(讀書堂本)은 북송(北宋) 1078-85년(年)의 원풍본(元豊本)(망일(亡佚)) 계통이다. 일본(日本)의 실정고초본(室町古鈔本)은 북송(北宋) 1121년(年)의 선화본(宣和本_(망일(亡佚)) 계통이다. (4) 따라서 북송판(北宋版) 3종(種)의 옛 모습을 보유한 고종덕본(顧從德本), 독서당본(讀書堂本), 고초본(古鈔本)의 경주문(經注文)을 대교(對校)한다면 희녕본(熙寧本) 혹은 그 저본(底本)에 한층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5) 희녕본(熙寧本) 이전의 양상을 이해하려면 "태소(太素)"나 "갑을경(甲乙經)" 등과 교이(校異)하는 것이 좋겠으나 한계도 있다. (6) 상기(上記)한 것 외에 현존하는 제판(諸版)은 모두 파생본(派生本)이다. 따라서 판본(版本) 연구에는 유용하겠지만 자구(字句)의 훈고(訓詁)나 조문(條文)의 이해에는 적당하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지난 2010년 상하이 세계박람회 중국관(中國館)에서는 1000년 전 중국 북송(北宋)시대의 회화인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 원작(5m)을 20배(110m)로 확대한 <디지털 청명상하도>를 선보였다. 이 그림은 중국 북송(北宋)시대 한림학사(翰林學士) 장택단(張擇端)이 북송의 도성인 변경(卞京 : 현재의 개봉)의 청명절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풍속화로 중국인들이 '국보1호'로 여기는 고서화(古書畵)다. 가로 528.7cm, 세로 24.8cm짜리 두루마리 그림에 수도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작품이다. 이를 디지털 복원한 것이 <디지털 청명상하도>다. 이 콘텐츠에는 다양한 전시 기술이 쓰였고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지난 6년동안 중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디지털콘텐츠 형태로 순회 전시중이다. 2010년 제작당시 어떠한 기술로 <디지털 청명상하도>가 만들어졌으며, 미래 그 어떤 시점에 등장 할 가능성이 있는 "가상현실(VR)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어떤 기술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을지 예측해 보고자 한다.
2017년 5월 필자는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고려 동경에 새겨진 배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고려의 배가 아닐 가능성이 있음을 입증하였다.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고려 동경의 원 도안은 북송대에 유래하여 금대에 크게 유행한 뒤 무역을 통해 고려에 유입되어 크게 유행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고려 동경은 중국에서 유래한 원도안을 모방하여 재주조, 변형, 재창조한 것이므로 뒷면에 새겨진 배는 고려의 배라기 보다는 중국의 배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된 삼족오문 고려 동경(덕수 4927; 덕3194)에 새겨진 배는 평면형 저판 및 선수미, 중첩된 삼판, 최상부 삼판에 보이는 가룡목의 흔적 등 여러 면에서 원양항해용 평저선형 고려선박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동경이 기원지인 중국에 비해 고려에서 널리 모방, 변형, 재창조되어 활발하게 주조 및 유통되었다는 점이다. 유리판(于力凡)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동경은 북송의 휘종(徽宗)(재위 1100-1125) 황제의 성덕(聖德)을 찬양(讚揚)할 목적으로 주조되었다. 그러나 이배근의 견해를 원용하면, 고려에서는 항해도문안을 태조 왕건의 조부인 작제건(作帝建)의 설화로 해석하여 태조 왕건을 룡손(龍孫)으로 지체를 높이기 위한 상징물로 활용했을 개연성이 있다. 이것이 황비창천명 항해도문 동경이, 북송과 금을 통해 유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려에서 이를 모방 및 변형하고 독창적으로 재창조하여 널리 유통되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이 되었을 수 있다. 이는 차후의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과제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characteristics of Zen Buddhist temple's building composition of the Northern Song dynasty, through the analysis of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 such as Seonwon chenggyu(禪苑淸規), Cham cheontae odaesan gi(參天台五臺山記) and so on. The building composition method of Zen Buddhist temple in Northern Song dynasty, which grasped from the Seonwon chenggyu, reflects the actual situation of the temples in that time. And it was ascertained that, the Zen Buddhist temple's building composition of the Northern Song dynasty was basically same to that of Southern Song dynasty. And the comparative analysis was attempted between Zen Buddhist temples and that of other Buddhism sect described in Cham cheontae odaesan gi. From this analysis, the common features as Buddhism temple and the characteristics of building composition as Zen Buddhist temple was clarified.
송대는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를 통틀어 중국 역사상의 중요한 전환기이며, 정치제도와 경제체제, 사상의식과 문화특징 등 모든 면에서 중요한 변혁이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대부분 당대(唐代) 후기에 시작되어 북송시기에 완성되었다. 물론 그 발전이 비교적 긴 과정을 거쳤지만, 그 변화는 거대하고도 본질적인 것이었다. 때문에 각 분야의 제도에 비교적 강력하게 나타났으며, 그 가운데 도성의 조직체계와 특징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송대 정치제도 변화의 핵심은 동한(東漢) 이래 형성된 사족문벌제도(士族門閥制度)가 철저하게 붕괴되고 황제를 중심으로 긴밀하고 완벽한 관료체제가 형성되었다는 것으로, 송대는 고도로 집중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었다. 이는 대략 재상(宰相)집단의 형성, 중앙정권의 권력분화, 황제의 지방통제 강화, 관리선출과 과거제도의 개선 등의 내용을 포괄한다. 이로부터 황제는 전 분야에 뻗치는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되었으며, 각종 제도의 제정은 황제의 권력과 지위 강화라는 목적으로 직결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동시에 송대는 경제가 고도로 발전한 시기로, 농촌에서는 조전제(租田制)를 핵심으로 하는 생산구조가 형성되어 농업발전이 극대화되었고, 만당(晩唐) 시기부터 농업과 수공업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상품경제의 발전이 가속화되기 시작하여, 송대에 이르러서는 상업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크게 향상되고 나아가 도시경제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정치제도의 변화와 경제적 발전이 각종 도시제도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 글에서는 1980년대 초기 이후로 북송 동경 변량성(東京 지금의 河南省 開封市)에 대해 진행된 고고학적 작업을 정리하고, 또한 그 성과에 근거하여 북송 동경 변량성의 특징을 간략하게 종합해 보고자 한다.
This paper aims at studying on the medium of cultural interchange regarding who did and how to introduced the new trend of architecture during the period of Koryo Dynasty. Before the era of Koryo Dynasty, Kyungjang(Sutra Pitaka, 經藏) was mainly centered in Kyeongnu with a substantial function of storage. In the early Koryo Dynasty, however, Daejangjeon(大藏殿), which was spatialized for worship, began to appear. Normally, fixed walls were installed and the Sutras were enshrined inside Daejangjeon, while Jeonryunjang (revolving wheel sutras), a type of rational bookshelf, was introduced, and a new trend became developed in Kyungjang construction. Jeonryunjang(revolving wheel sutras, 轉輪藏) is a dharma instrument with a rotational function so that one revolution gives an effect of reading the enshrined Sutra one time, and began to be created actively in the period of the Northern Song. It is considered that the introduction of Jeonryunjang(revolving wheel sutras) to Daejangjeon was resulted from Haejokuksa(慧照國師) Damjin(曇眞) who visited the Kangnam areas in the Northern Song at that time. The Kangjeol areas in the Northern Song, where Damjin concentratively itinerated three times, were the place in which Jeonryunjang was created in many temples. Since Damjin, historical materials and excavated data regarding constructing Jeonryunjang have been discovered in the Buddhist temples, which are related to his pupils and dharma lineage. The only existing Jeonryunjang of Yongmusa Temple in Korea is the one that Joeung Daesunsa, who succeeded to the dharma lineage of Haesokuksa, promoted, and supports strongly such introduction of Jeonryunjang by Haesokuksa.
이 논문은 지난 1978년 서광탑의 수리를 위한 조사과정에서 3층 탑심부의 천궁에서 다량의 불교문화재를 수습하였다. 당시 수습한 문화재에는 당대에서 북송초기에 조성된 귀중한 불교문헌 123점이 포함되어 있다. 소주 서광사는 적조(赤鳥) 4(241)년에 오나라 첫 번째 왕이었던 손권(孫權)이 강거국에서 온 승려 성강(性康)을 맞이하기 위해서 세워진 사찰이며, 창건 당시에는 보제선원(普濟禪院)으로 부르다가 북송 초기 원희 연간에 와서 대대적으로 중창하고 지금의 서광사(瑞光寺)로 개명하였다. 서광탑은 서광사가 완공된 직후인 적조(赤鳥) 10(247)년에 손권이 모친의 극락왕생과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사찰 내에 13층탑을 세웠으며,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이 탑이 크게 파손되어 천희(天禧) 1 (1017)년에 새로 중건하고 이름을 다보탑(多寶塔)이라 하였다. 서광탑에서 출토된 불교문헌은 크게 다라니류 3건 107점과 전적류 5종 16권 등 모두 123점으로 파악되었다. 특히 전적류 가운데 법화경사경은 당대에 감지에 금자로 조성된 것으로 전 7권이 비교적 완전한 상태이며, 동아시아 국가에 현존하는 감지금자사경 가운데 최선본으로 평가할 만하다. 또한 북송초기에 간행된 목판본이 6권이나 완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동안 일본학자 나가자와(長澤)가 이와 동일본인 중촌본(中村本)을 초당본(初唐本)으로 잘 못 소개한 이후 모든 개설서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이 연구를 통해 오류를 수정할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제왕의 정치에서 악(樂)은 중요하다. 북송 시대에도 악은 중요했다. 북송의 태조부터 악에 대한 제정 작업이 이루어진다. 5대 10국이란 혼란기를 겪은 탓인지 몰라도 북송시대에 악에 대한 개정 작업이 6번 이루어진다. 그 당시 인종시기부터 철종시기까지 악에 대한 연구를 했던 인물이 바로 범진이다. 그는 인종 때부터 악에 대한 상서를 올리고, 철종 때는 자신이 만든 악기 및 음악을 올리기까지 한다. 한편 범진과 더불어 악 율에 대해 논쟁했던 인물이 사마광이다. 둘 사이의 논쟁은 30여 년이 지속된다. 논쟁은 끝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범진은 도량형의 기준을 율(律)로 두며, 율의 기준을 황종(黃鍾)으로 본다. 반면에 사마광은 율의 기준을 도량형으로 본다. 범진은 당시에 통용되던 누서법(累黍法)과는 다른 적서법(積黍法)을 주장한다. 사마광은 당시에 통용되던 누서법을 주장하나 그것이 선왕(先王)의 법도는 아니라고 본다. 범진의 적서법은 기존의 도량형 기준을 정하는 방법과 다르다. 하지만, 그의 방법을 통해 얻은 도량형은 당시에 통용되던 제도들과 합치한다. 범진은 자신의 방법이야말로 올바른 방법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통해서 선왕의 악을 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범진은 또한 당시 남아 있던 문물들이 선왕시대의 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적서법을 통해 황종을 구하고, 황종을 통해 율을 구하고, 율을 통해서 악을 만들면, 선왕의 법도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에 사마광은 선왕의 도량형은 모두 없어졌다고 여기며, 선왕의 악 또한 없어졌다고 여긴다. 선왕의 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중화(中和)를 얻는 것 밖에 없다. 그가 보기에 범진의 방법은 이미 틀린 것이다. 사마광은 틀린 방법으로 악을 구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범진의 방법으로는 그 당시의 악도 이룰 수 없는데, 선왕의 악은 더욱 찾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범진은 중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천자이며, 일반 사람들은 할 수 없다고 보는 반면, 사마광은 중화를 모든 사람 및 만물이 해야 하며 또한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논쟁의 핵심은 율과 중화다. 범진은 율을 악의 근본으로 보지만 사마광은 중화를 악의 근본으로 본다. 율은 유형의 법칙이고, 중화는 무형의 법칙이다. 둘 사이의 논쟁은 비록 일치점을 보지 못한 채 끝났지만, 유형과 무형의 법칙만들기의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당시 학자들의 견해차를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이 논쟁을 통해서 북송 시대에 사마광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 논의의 시작점도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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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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