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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방 별서의 경관적 특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Landscape Characteristics of Byeolseo in Gyeongnam Province)

  • 안계복;오태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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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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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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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별서(別墅)란 '본채와 나누어져 있는 별도의 장소에 거처할 곳'을 만든 것을 의미한다. 경상남도의 별서 건축물인 정자의 평면형태를 조사한 결과, 다른 지방과 달리 모든 형태(중심형, 편심형, 분리형, 무실형)들이 모두 고르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별서의 가장 대표적인 입지유형은 "강변에 절벽이 있는 언덕 위"라고 할 수 있다. 경남지방의 별서는 수경(水景)과 더불어 바위경관(암경 巖景)이 중요한 특징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별서의 수경관 구조는 하천이나 계류와 연계된 "폭포+소+급류"의 구조가 가장 대표적이다. 별서의 바위경관은 인위적으로 석가산을 쌓거나 돌을 배치하기보다 자연에 있는 암반과 바위, 대(臺)를 이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경남지방의 별서는 주로 원경(遠景)과 다경(多景)을 경관처리기법으로 사용하였으며, 별서의 평균조망거리는 5.6km이다.

역사문화도시 공주의 고도담장정비 사례 연구 (Case Study of Ancient City Wall Renewal in Gongju, a Historic Cultural City)

  • 온형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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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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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4-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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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 중 가로경관개선 사업의 하나인 담장에 대한 이론과 담장 디자인 선행 연구를 통하여 고도에서의 담장에 어울리는 담장 정비 방향을 제언하고자 한다. 연구방법은 선행 연구를 유목화하고, 담장 디자인 이론을 고찰한 후, 고도 지정 지구의 의의와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의 현황을 분석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사례 대상지를 선정하여 고도담장정비 사례 현황과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여러 특성을 비교하여 분석하였다. 담장의 선행 연구는 담장의 성격 분석, 담장 디자인 원리 응용, 담장 구조·색채와 형태 및 응용, 현대적 재해석, 궁궐 담장, 주택·사찰·마을의 담장 등 6개 항목으로 유목화되었다. 담장은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 중 가로경관개선 사업에 해당하며 시지각적 인지도가 내부 건축물보다 선경험으로 제공되는 특성이 있다. 고도담장정비 사례 대상지는 고도별 특별보존지구와 보존육성지구의 구성 분포 비율을 기준으로 무령왕릉과 인접한 공주시 송산리길 주변 마을을 선정하였다. 공주시 송산리길 주변 마을의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은 한옥 신축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담장 정비는 한옥 신축과 동시에 시행된 게 아니었다. 가로변 건축물 외관 정비 사업으로 추후에 지원과 정비가 이루어진 것이다. 한옥과 담장이 동시에 설계되어 심의 후 신축되었다면 한옥의 규모 및 디자인과 조화를 이루는 담장이 되었을 것이지만 서로 기간을 두고 신청, 설계, 시공되었기에 한옥의 처마와 담장이 대지 경계선에 거의 맞닿아 있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공간적으로 가깝고 높은 한옥 본채와 담장의 배치는 답답하게 닫혀 있는 구조물로 인식된다. 송산리길의 담장 디자인은 고도의 특성을 나타낼 수 있는 형태와 색상과 재료로 차분하고 은은하며 안온한 분위기를 자아내야 하는데, 날카롭고 옹색하여 난처한 지경에 놓여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담장 설계 디자인을 먼저 고려한 후, 한옥 본채 설계 디자인을 후순위로 진행하는 방안의 도입도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사례 대상지인 공주시 송산리길 담장 지원 사업의 문제 요인은 전통 담장이 가져야 할 미적 요건에 상당히 부족하다. 첫째, 담장의 자연 재료 선정 및 활용에서 미적 의식이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디자인 완성도와 조화의 부재이다. 조사 대상지인 공주시 송산리길 고도담장정비의 문제 요인을 분석한 개선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옥 설계와 담장·대문 시공 설계 도면을 함께 심의해야 한다. 둘째, 한옥 담장 디자인의 자연석 돌담 일변도를 재검토 진단하여야 한다. 셋째, 계획·설계 과정에 주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조정하는 상시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넷째, 한옥의 개별성을 집단화하여 지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 자산으로 가치를 높여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적의본과 폐슬본 채색 안료 및 염료 분석 (Analysis on the Pigments and Dyes of the Patterns for Jeogui and Pyeseul of National Museum of Korea)

  • 윤은영;강형태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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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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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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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적의본과 폐슬본은 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모두 지본채색되어 있다. 두 본에 사용된 채색 안료 및 염료에 대한 비파괴분석을 통해 채색 재료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채색 안료의 성분분석에는 XRF를 이용하였다. 적의본의 안료 분석결과 백색은 연분, 흑색은 먹, 황색은 석황, 적색은 진사와 연단, 녹색은 구리와 비소화합물 또는 석청과 석황을 혼합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기타색상으로 황동을 사용하였다. 폐슬본에 사용된 백색, 흑색, 황색, 녹색은 적의본에 사용된 안료와 동일하나 적색은 채색 안료에 차이를 보였다. 한편 적의본과 폐슬본에 사용된 청색은 안료의 종류를 확인이 어려우나 연분과 혼합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적의본의 청색 한지에 대한 UV-Vis 분광분석 결과 인디고(쪽)으로 염색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조선 후기 상류주택 사의당(四宜堂)의 공간체계와 조경문화 (Space Organization and Landscape Culture on Upper-class's House('Sauidang') in Late Period of the Joseon)

  • 신상섭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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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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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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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홍경모(1774~1851)가 기술한 '사의당지'를 원전으로 조선시대 후기 경화세족의 저택 '사의당'의 입지와 공간구성 체계 및 조경문화를 추적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사의당은 정명공주(선조의 딸)가 홍주원과 혼인한 후 인조에게 하사받은 대지면적 530여칸 규모(약 $1,750m^2$)의 저택으로 목멱산, 도봉산, 그리고 인왕산과 장원봉이 풍수적 사신사 구조를 이룬 생룡형(生龍形) 길처에 자리했다. 한양 남부방 목멱산 아래 북동향으로 자리하였는데, 동쪽에 본채(정당) 영역을 설정하여 안뜰과 후정을 가꾸었고, 서쪽에 별당 영역(사의당)을 설정하여 원림을 조성했으며, 바깥마당은 채원을 일구어 버드나무가 줄지어 심어진 큰길과 연결되었다. 사의당을 심원(沁園: 공주의 원림)으로 비유하였고, 남쪽으로 화원과 화계가 어우러진 원림을 가꾸었으며, 북쪽으로 한양성 안팎을 부감(俯瞰)할 수 있었다. 뜰에는 정심수와 분경(盆景)을 가꾸었고 괴석과 화목 등으로 불로장생을 염원하거나 신선경의 세계를 상징화 하는 등 정신세계의 풍요를 추구했다. 식재 수종은 38종이 도입되었는데, 직접 나무를 땅에 심는 지종(地種)과 화분에 가꾼 분종(盆種)으로 구분하였고, 1점식, 2점식, 3점식, 4점식, 5점식, 8점식, 9점식 등 다양한 식재가 이루어졌다. 조경시설 요소로 태호석, 괴석, 석대(石臺), 석주(石柱), 옥대(玉臺), 석구(일영대), 담장과 울타리, 석계(石階), 섬돌, 누(樓) 등이 도입되었다. 한편, 왕희지의 난정수계서, 소식의 취옹정기, 조맹부의 적벽부, 안평대군의 비해당첩 등 조경문화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진귀한 명품을 소장하며 즐겼다.

중수기 및 발굴 자료로 본 상주 양진당의 배치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Arrangements of YangjinDang in Sang-ju Foundation by Date on the Excavation and Jungsuki)

  • 김찬영;정명섭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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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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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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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This study estimated the prototype of Yangjindang at the time of its foundation by putting together the literature and discovered data and historical research on family related to Sangju Yangjindang, and looked at its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These ar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Yangjindang is an office building which was completed in three years [1629] after its start of construction when Keomgan Jojeong was at the age of 72 [1626] in his latter days and it was used for performing ancestral rites for Jojeong's forefathers of the head family of Pungyang Jo by family origin. Yangjindang was founded as a base of utopia for putting ancestral rites & commemoration, harmoniousness of a tribe, and educational idea into practice together with Ojakdang. Such a movement can be judged to interpret and apply the circumstances of the times realistically and flexibly where they tried to pursue the promotion of Confucianism & studies of the proprieties as well as the consciousness of practice, and to bring a tribe into harmony after the war through the retirement of Toegye School. Second, it is located at a topographically ideal spot on the edge of the Jangcheon-a tributary of Nakdong with a good physiology and landscape and its location was also the lot for a house of Jojeong's ancestor, which was burned down by war. Behind such a location and planning of Yangjindang, it is presumed, though not certain that it was modelled after Naeap village at Andong- Jojeong's parents-in-low's home. Third, as for its foundation size, it's a head house as much as about more than 100-kan, and its structure is composed of Samyo, Bonche, and Yangjindang. In addition, arrangements of buildings and its composition system and renovation procedures followed Chu-tzu Garyoe. Composition of Samyo can be restored to Yangjindang, Jugo, Woesammun, and Samyo; however, there has been no case of existence in case of Jugo building composition & arrangement takes on an aspect of a compromise between Gamyojido and Sandangjido of Garoe, which seems to be the result from flexibly interpreting and applying the rituals and studies of the proprieties of Toegye School in keeping with locational topography and realistic circumstances while making it a principle for them to observe by Toegye School. There exists a difference between Bonche and its counterpart of the upper class housing at Sangju district in that Bonche[main building] is a squre-shaped 'Ttuljip' typical of Andong setting a family ancestral ritual as a main function. Fourth, there existed a lot of hardships in raising money to cover repairs in time of doing repairs to this structure after 180 years since its establishment. In case of the repair work on Bonche, the level of renovation was limited to the replacement of old materials for rafters, doorpost, roof members and railings with new materials, together with partial alterations in case of window system. It is estimated that Yangjindang was renovated in 1808, and afterwards it was renamed Okryujeong after being re-built at another site. Through the repairs, the floor was expanded for the clan's meeting, and angle rafters and roof members were mended as well. Especially, the plane and structure of Okryujeong which was re-built at another site are expected to give clues to its restoration due to the resemblance to original appearance of Yangjindang at the time of its renovation in 1808.

진주 용호정원(龍虎庭園) 무산십이봉의 경관의미와 축산효과 (A Study on the Meaning and Mount Effect of Twelve Peaks of Musan in Yongho Garden, Jinju)

  • 이현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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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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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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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경남 진주시 용호정원에 조성된 무산십이봉이 전통적 축산(Mount)의 원형이자, 지형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변화와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설계요소라는 전제 아래 시작되었다. 또한 연구 결과가 축산되는 유사공간의 재현 및 현대적 변용에 필요한 자료 및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또한 크다. 무산십이봉 축산을 통해 조영자가 추구하고자 했던 12봉우리의 상징성과 공간구성원리 그리고 시각구성상의 기능 및 효과를 조망경관적 측면에서 분석 또는 해석한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용호정원의 핵심인 용호지는 비보 풍수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인공혈구의 전형적 사례로 풍수형국의 완결을 위한 비보(裨補)의 장치이자 용과 관련한 지명의 연계를 통해 온전함을 강화시키고자 했던 산물이다. 축산의 크기는 높이 2~3.5m, 지름 약 6~12m정도의 오성상 금성산형을 하고 있으며, 봉우리의 높이는 1.9~3.2m, 평균값은 2.5m로 밝혀졌다. 봉우리의 면적은 $35{\sim}138m^2$의 범위에 있고, 면적 평균값은 $73.4m^2$로 나타났으며 이에 비례한 체적은 $30.7{\sim}115.0m^3$, 그 평균값은 $62.5m^3$으로 추산되었다. 용호정과 소선 그리고 본채 터 및 용산재의 일치된 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과 속의 의미 부여를 통해 용호지를 피안의 세계로 상정하였으며, 조영자는 무산십이봉의 형상을 구현시키기 위한 의도로 호두 자리에서 대응되는 지점과 교차되도록 용의 골격을 형상화한 12개의 봉우리를 축산하고, 그 중심에 '여의주를 문 용이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형상'의 무산십이봉과 용호정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무산십이봉 주변 중경권역은 남북으로 금성산형의 산봉으로 둘러싸여, 용호지를 중심으로 동질감을 유지한채 다층의 층위구조를 보이는 바, 이는 유사 형태조화에 기인하며 무산십이봉의 조성 시 기획된 축산의도라 사료된다. 무산십이봉 축산에는 은폐와 노출을 통한 점진적인 경관연출과 전망-은신처이론 그리고 틀에넣기 기법 등의 공간 질서가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데, 이는 무산십이봉 각 봉우리의 노출과 둘러싸임 정도의 다양함, 전망과 시선차단 조합의 다채로움을 통해 경관의 심도와 기대감을 높이고자한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무산십이봉에 의해 '닫힌경관'은 흥미롭고 생기 있으며 매력적인 경관인식을 배태(胚胎)하는데, 특히 축산은 용호지와 용호정 주변에 관한 경관의 심도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지형설계적 차원에서 매우 유용하게 작용하고 있다. 더불어 용호정에서 조망하였을 때 섬을 통해 또 다른 섬이 보이도록 하는 중층적 노출효과를 의도해 특수한 위치를 배려한 경관짜임의 결과인 12개 봉우리의 묶음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