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복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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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실로 본 나주 복암리 세력과 주변 지역의 동향 (The Character of Bogamni group and trends in the surrounding area seen through the stone chamber)

  • 김낙중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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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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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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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글에서는 최근에 영산강유역권 및 서남해 도서에서 발굴조사된 횡혈식석실을 나주 복암리 고분군의 석실과 비교하여 영산강유역 중핵지역의 유력세력인 복암리 집단의 성격과 영산강유역권의 동향을 살펴보았다. 복암리 고분군에 처음 축조된 석실은 북부규슈계(北部九州系)의 영산강유형 석실이다. 그런데 최근 조사가 진전되면서 그러한 석실의 조영에 이어지는 흐름이 이미 서남해안의 연앙항로를 따라 5세기 전 중엽에 축조된 왜계 고분에서부터 보이고 있다. 즉, 백제와 왜의 통교 이후 서남해안을 통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연안항로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섬이나 해안가에 왜계 수혈식 고분이 축조되었다. 처음에는 부장품도 왜계 일색이었으나 점차 그런 고분이 축조된 지역 내에 현지의 묘 장제 요소가 가미된 고총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당시 내해에 해당하는 영산강 하구의 바닷가에 위치한 영암 옥야리 장동 1호분이다. 그런데 이와 흡사한 매장시설을 사용한 고분이 5세기 중엽경에 나주 복암리 고분군과 인접한 곳에 축조되었다. 나주 가흥리 신흥 고분이 그것인데 이 고분의 축조에 복암리 집단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였는지는 밝히기 어려우나 지리적인 인접성이나 동일한 원통형토기편이 발견된 점으로 보아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신흥 고분은 영산강 본류 가까운 저평구릉의 말단이나 섬에 위치하여 5세기 전 중엽 서남해안 일대에 축조된 왜계 고분과 유사한 배경, 즉 해로 혹은 수로의 이용이나 장악과 관련하여 입지가 선정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다음 단계에는 복암리 고분군과 동일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생각되는 정촌 고분에서 영산강유형 석실이 매장시설로 사용되어 이러한 내륙수로 이용의 주도권이 복암리 집단으로 넘어갔을 것으로 여겨진다. 정촌 고분의 축조는 복암리 집단의 급격한 성장의 배경을 보여준다. 이후 복암리 집단은 복암리 3호분 '96석실을 시작으로 7세기까지 고분군을 지속적으로 조영하여 영산강유역에서 주도적인 세력으로 번성하였다. 사비기에 백제의 직접적인 지배 아래 들어간 이후에도 왜와의 밀접한 관계를 지속하며 영산강유역은 물론 서남해 항로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신안의 여러 섬들에서 발견된 복암리유형 석실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나주 복암리 목간 출토의 고고학적 의의 (Archaeological Meanings of Wooden Tablets from Bogam-ri in Naju)

  • 김혜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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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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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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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2008년 나주 복암리유적에서 백제지방 최초로 목간이 출토되었다. 이 글에서는 목간을 묵서가 있는 목제품으로 정의하고 복암리 유적 발굴보고서에 수록된 목간 65점 중 묵서가 확인된 13점을 대상으로 백제 목간 출토현황과 비교하여 복암리 목간의 의미를 살펴 보았다. 복암리 출토 목간은 모두 대형의 1호수혈에서 일괄 출토되었다. 수혈 내부 토층은 모두 43개의 층으로 세분되나 출토된 목간을 비롯한 다수의 목제품, 토기, 기와 등 유물의 시기적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목간은 다른 유구에서는 출토되지 않았으며 수혈에 일부러 폐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목간의 형태적 특징을 통해 2차 폐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복암리 목간은 간지명 묵서 '경오년(庚午年)'이 확인된 목간과 $C^{14}$ 연대측정 결과 등을 토대로 610년을 중심연대로 7세기 초반으로 편년된다. 출토된 13점의 목간을 묵서 내용과 형태적 특징을 토대로 기능적으로 분류하면 문서목간 6점, 부찰목간 6점, 기타목간 1점으로 나뉜다. 현재까지 출토된 백제 목간은 총 89점으로 출토 지역은 나주와 금산을 제외하면 모두 부여에서 출토되었고, 사비도성 안팎의 왕궁지, 궁원지, 사찰 등으로 다양하다. 복암리 목간과 비교되는 주요 백제 목간으로는 관북리 목간, 궁남지 목간, 쌍북리 280-5번지 목간 등이다. 이들 목간과의 비교를 통해 웅진도독부 시절의 지명에 대한 검토, 지명+관등+인명 순으로 정형화된 신분표시 방식, 백제에서 군제가 실시되었고 복암리는 군이 설치된 지역이었다는 단서, 정중제 실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복암리 목간은 작성시기(610년), 작성지(군이 설치된 두힐성), 작성주체(군좌, 지방관 등)가 확실하며 기록된 내용은 백제 목간의 표준화된 신분표시 방식, 서사방식, 정중제와 양전제의 실시 등 백제 지방사회의 지배에 대한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자료라 할 수 있다.

나주 정촌 고분군 출토 유리구슬의 화학 조성과 특징 (Compositions and Characteristics on the Glass Beads Excavated from Ancient Tombs of Jeongchon in Naju, Korea)

  • 윤지현;한우림;한민수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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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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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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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나주 정촌 고분군 1호 석실묘에서 출토된 유리구슬 편 19점에 대하여 형태적 특성 관찰과 화학 조성 분석을 통해 재질 및 특성을 밝히고, 이를 기초로 나주 복암리 3호분에서 출토된 유리구슬과 비교함으로써 마한 백제권에서 나타나는 고대 유리의 특성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정촌 고분군의 유리구슬은 감청색, 옅은 감청색, 벽색, 녹색, 감청색과 자색의 혼합색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늘인 기법과 주조 기법을 사용하여 제작되었다. 복암리 3호분도 청색계 위주로 두 고분군에서는 모두 적색계 유리가 출토되지 않았다. 화학 조성에 따른 분류에서 정촌 고분군과 복암리 고분군에서는 공통적으로 소다유리군과 포타쉬유리군이 확인되었으며, 그 밖에 정촌 고분군에서는 알칼리혼합유리군, 복암리 고분군에서는 납바륨유리군이 확인되었다. 두 고분군의 유리 문화를 살펴보면 나주 정촌 고분군에 비하여 복암리 3호분이 색상별로 다양한 유형의 특성을 지녔다.

나주 복암리 정촌고분 금동관의 원형과 의미 (The Original Form and Meaning of the Gilt Bronzed Crown in Naju Bogam-ri Jeongchon Tombs (NBJ))

  • 이건용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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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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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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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고는 나주 복암리 정촌고분 1호 석실 목관3의 동쪽에서 출토된 금동장식 편의 원형을 찾는 것이다. 금동장식 편은 모두 작은 편으로, 크기 3cm 이내, 두께 0.2cm 내외로 19개 이상의 소량만 확인되었다. 각 금동장식 편에서는 원형의 투공과 원형의 타출[볼록 장식], 잎사귀 모양의 영락, 영락을 달기 위한 2개의 작은 구멍과 금동실, 용도 미상 2개의 작은 구멍, 0.05cm 정도 크기의 연속되는 점열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금동장식 편의 특징을 분류한 결과 3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금동장식 편을 대관, 모관과 비교 분석하였다. 그 결과, 나주 복암리 정촌고분 1호 석실에서 출토된 금동장식 편은 대관의 일부분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므로 금동장식 편의 1유형과 3유형은 대관의 관테, 2유형은 대관 세움장식의 일부로 판별하였다. 앞의 결과를 바탕으로 나주 복암리 1호 석실 금동제 대관에 대해 2가지 복원 형태를 제안하였다. 첫째 복원 안은 관테 위아래 장식으로 파도 모양의 점열, 가운데 장식은 영락, 원형 타출과 영락, 원형 투조가 있는 것이다. 둘째 복원 안은 첫째 안의 가운데 장식 중에 원형 타출이 1열 추가된 것이다. 동일한 형태의 세움장식은 소창(小倉)collection 대관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었으나, 관 전체의 구성이나 형태는 전혀 달랐다. 한편, 관테에서 보이는 용도 미상의 작은 구멍의 용도에 대해서는 유기물 모자를 관테에 고정하기 위한 구멍으로 추정하였다. 복원된 나주 복암리 정촌고분 1호 석실의 금동관은 원형 투공 등의 특징으로 보아 다른 삼국시대의 대관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기존의 가야, 마한·백제권 대관은 신라권의 균일한 형태의 대관과 다르게 각 지역마다 독특한 형태와 장식이 특징이다. 나주 복암리 정촌고분 1호 석실에서 출토된 금동관도 이러한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나주 복암리 고분군 출토 소뼈의 수습 및 보존처리 (On-site Treatments and Conservation of Ox Bones Excavated from Bogam - ri tumulus, Naju)

  • 이정민;박영환;윤혜성;함철희;권혁남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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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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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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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나주시 복암리 고분군 발굴현장 저습지에서 소뼈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소뼈는 전체적인 형태는 알아 볼 수 있으나 토압에 의한 하중과 반복적인 동결융해로 인하여 부후 및 균열이 발생하였고, 다수의 편으로 파손 와해되어 가루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파손된 편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하여 유물 주변의 토양과 함께 탈수${\rightarrow}$강화${\rightarrow}$포장 순으로 수습하여 실내에서 일련의 보존처리를 통해 완형을 찾고자 하였다. 유물의 해포 및 보존처리는 바닥면 흙 제거${\rightarrow}$강화처리${\rightarrow}$바닥면 보강${\rightarrow}$출토면 이물질 제거 및 강화처리${\rightarrow}$보관용 박스 제작${\rightarrow}$마무리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나주 복암리 소 뼈의 경우, 머리가 없고 네다리가 묶여 있는 형태로 출토되었다. 이는 매납 당시 제의 의식에 의해 동물이 묶여있었고, 이후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출토 당시의 환경조건으로 인하여 뼈가 심각하게 부후되어 재질이 매우 취약하였으므로, 독립적 해체를 통해서 동물의 원형을 찾기보다는 매장된 이유와 형태가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출토된 형태 그대로 복원하였다. 즉 이번 사례는 유물의 성격이나 상태에 따라 다양하게 보존처리되는 형태를 제시하며,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골각기에 대한 수습에서부터 보존처리 까지의 전 과정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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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고분에서의 3차원 전기비저항 탐사 (3-D Resistivity Imaing of a Large Scale Tumulus)

  • 오현덕;이명종;김정호;신종우
    • 지구물리와물리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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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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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6-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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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대형 고분의 발굴 조사를 위한 전기비저항 탐사법의 적용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나주 복암리 3호분에 대하여 3차원 전기비저항 탐사를 수행하였다. 높은 해상도의 지하구조 영상을 얻기 위해서는 고분의 정확한 지형 구조 및 전극 위치에 대한 정보 획득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문화재 발굴 조사에서 사용하는 방법인 실을 이용한 구획설정법을 응용하여 전극을 설치하였다. 탐사 자료는, 전극 간격은 2 m, 측선 간격은 1 m로 하여 얻었으며, 각 탐사 측선은 상대적으로 1 m 엇갈리게 배열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고분에 대하여 1 m ${\times}$ 1m 크기의 격자망으로 구성하였다. 탐사 자료에 대하여 3차원 전기비저항 영상화를 수행하고 이를 기존의 발굴 조사 결과와 대비하였으며, 이로부터 확인된 매장 유구 분포와 전기비저항 영상이 매우 잘 일치함을 확인하였다. 이 연구를 통하여 대형 고분에서 매장 유구를 조사할 때 3차원 전기비저항 영상화 기술이 매우 유용함을 밝혔다.

나주 복암리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의 제작기술과 복원 (Manufacturing technology and restoration of gilt-bronze shoes from the ancient tombs in Jeongchon Village, Bogam-ri in Naju)

  • 이현상;이혜연;오동선;강민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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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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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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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2013~2016년에 발굴한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정촌고분에서 금동신발이 출토되었다. 이 고분은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백제 중앙과 영산강유역 현지세력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는데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정촌고분 금동신발에 대해 정밀한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복원도면을 만들었으며 제작 당시의 금공기술을 고려하여 복원품을 제작하였다. 우선, 과학적 분석과 육안관찰을 통해 제작기법을 분석하여 금동신발의 구조와 문양, 제작방법 등에 대해 상세히 조사하였다. 이후 실측을 통해 금동신발의 설계도면을 작성하고,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제작기술을 복원하여 외형절단과 투조, 조금, 성형, 도금, 조립공정 등을 거쳐 원형 복원품을 제작하였다. 정촌고분 금동신발 복원과정에서 백제 한성기 후반의 금동신발의 외형적 특징, 제작기술의 이해와 더불어 백제시대 당시의 원형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연구를 통해 복원된 결과물이 백제문화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과품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나주 복암리 고분 출토 금동신발 보존처리 (Conservation of gilted footware excavated from Bokam-ri, Naju Province)

  • 유재은;위광철;류인숙;신의경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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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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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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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Bokam-ri site was excavated from July 1996 to September 1998 and archaeologically assumed to be grouped with tombs of Mahan period. Among these groups, Tomb No. 3 had built up with stone chamber and found one pair of gilted footware near the jar coffin. This footware was severely corroded and cracked so transfered it gently with soil. Radiography film of this footware showed spike decorations on the bottom and fish-shapped ornament. Gilted footware was consolidated with soil using Paraloid B72 10%~15%solution and cleaned using small tools and microscope. SV427 and HV427 as epoxy resin and Araldite(rapid type) used for joining and restoring. The fore part of gilted footware was connected with nails and folded “L” shape to introduce the bottom material. Tortoise-shell design and flower ornaments appeared on the surface and fish-shaped ornaments, spikes and spangles on the bottom. It was found that 7 spikes and 5 fish-shaped ornaments remained well. Especially, Fish-shaped ornaments were firstly found in the gilted footware and appraised archaeologically important materi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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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복암리 유적 출토 단조박편의 미세조직을 통한 단야 공정 기술체계 연구 (Forging Process Technology as Observed in the Microstructure of a Hammer Scale Excavated from the Naju Bogam-ri Remains)

  • 송정일;우기도
    • 대한금속재료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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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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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99-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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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The microstructure of a hammer scale excavated from the Bogam-ri was examined in an effort to understand the iron technologies applied in the manufacturing of an iron forging process technology. The microstructures of oxide layer in the hammer scale were found to have crucial information about the ancient iron forging process treatment. The microstructure observed in the hammer scale can be distinguished by the forging process. First, the microstructure of the oxide layer in the hammer scale created by the forging process is Wstite (FeO) in the form of leaves. Latterly, the microstructure of the $W{\ddot{u}}stite$(FeO) in the hammer scale is observed to be in the form of a flat shape formed by a repeating forging process.

나주 복암리 3호분 출토 철제유물의 금속학적 조사 (Microstructure investigation of iron artifacts excavated from No. 3 tomb of Bogam-ri in Naju City, Chollanam-do Province)

  • 유재은;고형순;황진주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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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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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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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No. 3 Tomb of Bogam-ri, in Naju City, Chollanam-do Province, was a site excavated and inspected from 1996 to 1998 and had a various grave forms, including jar-coffins, stone-chambers and stone-cists. Although most of the metal artifacts excavated from it were severely corroded, we could implement microstructure investigation by collecting samples from the iron axes, iron coffin-nails and iron clamps in which the metal parts were remained. The metal structures were inspected by using metallographic microscope and SEM, and fine components analysis was implemented by ICP. To examine the hardness differences in accordance with the structure distribution, we measured the hardness by structures with Vickers hardness testing machine. As a result of the metal structure inspection, most of them were pure iron, ferrite, and also pearlite, cementite and widmannstaten structures were displayed. We could confirm carbonization was formed on the surface of the iron axes-B, iron coffin-nails-B, and iron clamps-A. There was no carbonization in the rest of the artifacts, and it is not certain that whether the carbonized parts were peeled off through extreme corrosion or they were not carbonized when they were made. In the particular part of a blade, the quality of the material was strengthened through processing. Due to the processing re-grain was caused and fine grain particles were formed. As a result of the ICP component analysis, there were no addition atoms because pure irons were used as materials. In the mean time, No. 17 jar-coffin where the iron axes-A are excavated, is chronologically ordered as from the late-fourth century to the mid-fifth century, and No. 1 and No. 2 stone chambers, where the rest of the artifacts were excavated, as the early-sixth century. It was difficult to relate the periodic differences with the manufacture technique artifacts which we inspected because there were no distinct characteristics of the manufacture technique of the metal structures and it is impossible to conclude the artifacts and sites are at the same period although their periods are diffe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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