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문화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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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담장 형태의 변화양상 (Changing Aspects of the Wall Types of Hahoe Village)

  • 김동현;이원호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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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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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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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는 안동 하회마을을 대상으로 197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담장의 형태적 변화양상을 파악하고자 소재 및 형태, 분포 중심의 변화과정을 4시기로 구분하고, 이에 따른 특성을 살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안동 하회마을이 문화재로 지정되기 이전인 1970년대는 마을 중심부의 토담에 기와를 얹은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었으며, 마을 외곽부에서는 토담에 볏짚이나 솔잎 등을 올리거나 담장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 싸리담을 두르기도 하였다. 둘째, 1980년대 문화재 지정 이후에는 초기단계의 문화재 정비가 이루어졌으나, 대부분 퇴락가옥 보수나 기반시설 정비에 중점을 두고 있어 담장에 대해서는 문화재 지정 이전의 분포와 큰 변화가 확인되지 않았다. 셋째, 과거 하회마을의 입지 특성상 담장에 돌을 사용하기 어려운 실정이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토석담으로의 대거 교체가 확인되었으며, 이전시기에 비해 머리부에 기와를 사용한 사례가 증가되었다. 이전시기 주를 이루던 토담의 비중은 감소하였으며, 이러한 양상은 2000년대까지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넷째, 현장조사를 통해 오늘날 하회마을의 담장을 살펴본 결과, 마사토에 시멘트, 강회, 자갈 등을 섞은 몸체가 마을 대부분의 담장을 이루고 있었으며 이엉을 얹은 담장과 싸리담의 범위는 마을 외곽부의 일부로 축소되었다. 다섯째,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하회마을 담장의 변화특성으로 새로운 소재의 사용빈도 증가와 기존 가옥의 담장교체에 따라 머리부에 기와를 얹은 가옥 범위의 확대 등이 도출되었으며, 그 요인은 풍수적 가치 퇴조, 원형 기록에 대한 부족, 건축물 외 시설에 대한 인식 및 전문성 결여, 기타 담장 정비에 대한 마을 주민간의 관계 등으로 확인되었다.

무형문화재 '원형규범'의 이행과 의미 고찰 (The Application of the Principle of "Preserving the Original Form" to Intangible Heritage and Its Meaning)

  • 이재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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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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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6-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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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제도가 도입되면서 '원형규범'이 채택되었다. 규범으로 채택되기 이전에도 '원형'은 문화재 보존의 방향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법규상 원형의 개념은 형태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구전 및 실연에 의해 전승되어온 무형문화재의 특성상 과거 어느 시점에 누구에 의해 실연되는 것을 원형의 형태로 확인하거나 특정할 수 없으므로, 지정 인정행위의 시점에서 현존인이 실연하는 기 예능을 중심으로 원형을 설정하고 보유자를 인정하였다. 따라서 근원적 실체로서 '원형' 이 아닌 지정 인정 당시의 보유 기 예능이 '잠정적 원형'으로 설정되면서 '원형보존' 정책이 시행되었다. 원형보존 정책은 '원형'을 보유한 보유자의 전수교육과 전승자 양성을 통하여 시행되었으며, 보유자(보유단체)를 중심으로 한 배타적인 전승환경이 조성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원형보존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정 당시의 기 예능은 사회적 환경과 수요에 맞게끔 변화가 진행되어 보존하고자 했던 형태적 의미의 '원형'은 보존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형규범은 근대화, 서구화 등 외부환경으로부터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의 지침 내지는 지향점을 지닌 시대적 담론이었으며, 무형문화재 보존정책의 당위적 지침으로 정책적 실효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6년 3월 시행될 예정인 무형법은 무형문화재의 변화적 속성을 고려하여 '원형' 대신 '전형'을 도입하였다. '전형'은 무형문화재 주변부의 변화를 인정하여 원형의 경직성을 탈피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법규상 '전형'에 해당하는 고유한 가치, 지식, 기법이 문화재 보존의 지침 또는 원칙에 따라 유지되어야 하므로 전형은 원형과의 단절보다는 관련성과 연장선에서 볼 수도 있다.

조선후기 백동의 재료 구성과 변화 (Material composition and change of baekdong alloy in the late Joseon period)

  • 공상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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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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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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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백동(白銅)은 구리에 다른 금속을 섞어 녹여 만든 합금으로, 현재 구리와 니켈의 합금으로 정의되고 있다. 그러나 학자들의 연구 대상과 시기에 따라 백동은 구리에 일정 비율 이상의 주석을 더한 금속으로 정의되기도 하고, 구리에 주석과 아연과 납을 합금한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백동은 그 정의에 차이가 있어 용어의 해석과 표기에 혼란이 있어 왔다. 본 연구는 문헌 기록을 토대로 시론적으로나마 백동의 구성 재료를 정리하고 그 흐름을 살피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먼저 백동 합금의 바탕 재료가 되는 구리의 이용과 구리 합금의 종류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문헌의 백동 기록을 통해 그 사용과 인식을 정리해 보았다. 삼국시대 문헌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 백동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기까지 꾸준히 보이는데 관직의 상징물부터 교역품, 생활기물, 화폐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쓰였다.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백동의 합금 재료는 현재 합금의 재료로 정의되고 있는 구리와 니켈뿐이 아닌데, 시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구리를 합금의 바탕 금속으로 이용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구리 외의 합금 재료로는 주석, 비석 및 비상, 아연, 납 등이 등장하며, 그 과정에서 합금을 의미하는 백동과, 백색의 금속을 의미하는 백동이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정의되고 있는 백동의 합금 재료인 니켈은 비교적 발견 시기가 정확한 금속으로 현대 공업과 산업 분야의 소재로 폭넓게 쓰이고 있다. 니켈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조선 말기에서 근대기로 추정되고 있으나 그 이용과 사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근대기 신문기사와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니켈의 수용과 그 이용을 함께 살피고, 장인들의 증험을 토대로 니켈을 이용한 백동 합금이 공예품에 사용된 시기를 추정해 보았다. 재료는 기술의 발전과 퇴보에 직접적인 요인이 되며, 기술의 발달은 문명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토대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시론적으로나마 합금의 재료를 중심으로 백동을 살펴보고자 하였으며 니켈이라는 재료의 이용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궁중 의례용 일월오봉도 병풍의 장황에 관한 고찰 - 초록색 회장 비단과 금박 장식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Methods of Mounting the Five Peaks Screen - With the focus on green bordering silk and gilt ornamentation)

  • 박윤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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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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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3-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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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조선 왕실에서는 영원불멸한 왕의 존재와 권위를 나타내고자 일월오봉도로 병풍을 만들어 왕의 공간마다 설치하였다. 일월오봉도는 궁궐의 가장 대표적인 의장물로 알려져 있지만, 다양한 형태로 제작했던 병풍의 실체에 대해서는 제대로 연구된 바가 없다. 이것은 현재 전하는 유물이 기록과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의궤를 중심으로, 왕실 의례에 사용했던 일월오봉도 병풍의 다양한 생김새와 장황 재료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일월오봉도 병풍의 원형과 변형 과정까지 함께 고찰하였다. 의례용으로 제작한 왕실의 병풍들은 예식과 법도에 따라 엄격하게 제작되었고, 각각이 갖는 위상에 따라 장황에 사용하는 재료 또한 차등을 두었다. 궁궐의 정전(正殿)과 빈전(殯殿), 혼전(魂殿), 진전(眞殿)에 설치했던 오봉병과 궁중연향을 위해 제작했던 오봉병은 생김새와 크기는 모두 다르지만, 병풍을 꾸미는 비단 회장(回粧)은 일치하였다. 대체로 초록색 비단으로 가장자리를 두르고, 그 위에 꽃문양의 금박을 장식하였다. 쪽풀로 염색한 초록색 비단은 원료를 수입해야 하는 값비싼 붉은 색 비단을 대신하였으며, 영조22년 '문단(紋緞) 금지 조치' 이후에는 무늬없는 초록색 평직 비단을 사용했다. 그나마 비단에 올린 금박 첩금으로 인해 사대부가의 병풍과 차별되는 궁중 의례용 병풍의 장식미를 더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안 방치되었던 조선왕실의 병풍들은 1960년대부터 유물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보존처리가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장황이 개장(改粧)되었고, 원형의 모습을 많이 잃게 되었다. 이것은 전통의 장황 문화가 단절된 것이 가장 주된 원인이었다. 과거에는 고증의 부족으로 문화재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면, 지금부터는 각 분야에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고증을 철저히 하고, 문화재의 수리 이력에 대한 정보까지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고체상미세추출법(SPME)을 이용한 피혁 재질로부터 발생된 휘발성 유기화합물 분석기술 연구 (The Analysis on VOCs That Occurs in Leather Cultural Heritage with SPME)

  • 정용재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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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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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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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문화재는 화학적 요인, 생물학적 요인 등 각종 열화 인자에 의해 재질이 열화되면서 각각 특유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방출해내며 이러한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대기 중에 존재하고 다른 재질로 이루어진 유물의 열화 인자로 작용한다. 하지만 다수의 분석법 중에 비파괴적인 분석법은 흔치 않으며 기기 사용의 어려움으로 현장적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 연구는 피혁에서 발생하는 유해가스를 비파괴적이고 조작이 간편한 고체상미세추출법과 기체크로마토그래피를 통해 분석을 실시하였다. 또한 고체상미세추출법 중 이동형 홀더(field holder)의 효율성을 입증하였다. 국가기록원에 보관 중인 행정박물 중 피혁으로 이루어진 유물을 선정하여 고체상미세추출법의 현장적용을 실시, 비교 분석함으로써 피혁재질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하여 주변 공기에 방출시키는 (E)-2-nonenal, butyl hydroxy toluene 등의 화합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충무공 종가 관련 고문서의 지질 특성 조사 (Investigation of Paper Characteristics on Old Documents Related to the Head Family of Admiral Yi Sun-sin)

  • 안지윤;배수빈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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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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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7-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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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충무공 종가 관련 고문서는 덕수이씨 후손가에서 보관해오던 것으로 다양한 종류의 문서가 전해지고 있다. 연구대상인 고신교지, 증직교지, 교첩, 교서, 유서, 홍패, 칙명의 국왕문서 7종은 그 제작시기가 명확하고 고문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보존처리 과정에서 과학적 조사 분석을 통해 당시 고문서 제작에 사용되었던 종이 특성을 확인하고 문헌 기록의 내용과 실제 문화재를 일부 비교해 볼 수 있었다. 표면 섬유 형태에서 '외발뜨기(흘림뜨기)' 초지방식으로 제작된 형태 특성이 확인되었으며, 밀도 측정과 종이 표면 분석에서는 대부분의 고문서에서 도침 가공된 종이특성이 관찰되었다. 섬유 분석에서는 모두 닥섬유를 원료로 제작하였으며, 주로 성숙한 닥나무 인피섬유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원상도(元上都)의 조사와 건축유적의 고고학 연구 (Survey and Archaeological Research on the Shàngdu(上都) Site in Yuán(元) Ruins)

  • 위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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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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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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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원(元) 상도(上都) 유적은 유목생활의 특색을 지닌 초원의 도성(都城)으로 역대로 많은 여행가와 역사학자, 고고학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원조(元朝)부터 몇몇 유럽의 저명한 여행가들은 원 상도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고, 근대에는 수많은 외국 여행가와 역사학자들이 원 상도를 현지답사하고 여행기와 연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주로 중국, 일본의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원 상도에 대해 비교적 전면적인 역사 고증과 고고학 조사를 진행하였고 아울러 논저와 고고학 조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보다 더 전면적이고 과학적인 고고학 조사와 실측 및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다. 본문은 상술한 여행가, 지리학자, 고고학자들의 원상도에 대한 조사와 기록을 회고하면서 20세기 말에 이루어진 원상도의 조사와 발굴 자료를 통해 원상도의 건축유적에 대한 기초적인 토론을 진행하고자 한다.

'조선나전사(朝鮮之螺鈿社)'와 한국 근대 나전칠기 ("Joseon-Najeon Company" and Korean modern lacquerwares inlaid with mother-of-pearl)

  • 노유니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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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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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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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근대 나전칠기의 특징 중 하나는 실톱을 이용한 주름질 기법의 발달이다. 이에 대해서 전성규가 일본 다카오카의 '조선나전사'에 초빙되어 기술을 가르치러 갔다가 실톱을 가지고 돌아와 나전을 오리는 데에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왔다. 한편 다카오카에서는 기무라 텐코라는 인물이 조선의 나전기술과 직공을 유입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조선나전사를 둘러싼 이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 논문에서는 전성규와 기무라 텐코, '조선나전사'와 관련된 일차자료를 발굴하여 근대 나전칠기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검증하고, 칠기 연구의 공백기를 메우는 한편 앞으로의 연구에 기초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조선의 칠공예가들이 어떤 경위로 다카오카에 건너가게 되었으며, '조선나전사'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활동을 펼쳤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귀국 이후의 활동에 어떻게 이어지는 지에 대해 추적하였다. 전성규의 다카오카 체류 경험은 주름질 기법의 발달이라는 나전칠기의 양식적인 변화를 가져옴과 동시에 근대적 공예가로서의 의식이 형성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내부 미세변위 정밀모니터링을 위한 디지털 기록화 연구 (A Study on Digital Documentation of Precise Monitoring for Microscale Displacements within the Tomb of King Muryeong and the Royal Tombs in Gongju, Korea)

  • 최일규;양혜리;이찬희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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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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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6-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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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웅진백제시대(AD 475~538) 왕족의 고분군이다. 1971년 무령왕릉 발굴 이후 안전한 보존관리 체계 없이 공개됨에 따라 급격한 환경변화를 겪으며 고분 내부에 다양한 손상이 발생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왕릉원의 미시적 변위분석을 위해 각 고분 내부에 취약부를 선정하여 3차원 정밀스캐닝을 바탕으로 디지털 형상정보를 구축하였다. 5호분에서는 진행성 변위를 검출하였으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향후 모니터링을 위한 기초자료를 획득하였다. 특히 5호분 남측 회벽의 편차분석 결과, 공차범위 ±18 mm와 ±2 mm에서 추가 손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인방석은 평균 0.32 mm의 처짐이 발생하였고, 벽체 사이의 거리는 평균 0.36 mm가 증가하였다. 5호분 내부는 직접적인 누수가 있어 탈락과 처짐거동 등 손상을 가중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이 연구에서 획득한 3차원 형상정보는 계속 연구를 위한 자료로 중요한 기준이 되며, 정밀 계측모니터링과 교차검증을 거쳐 왕릉원의 안정적 보존방안을 검토하는 데 활용할 것이다.

1829년 기축진찬의례(己丑進饌儀禮)의 진작(進爵) 기물(器物) 연구 (The Articles Related to the Jinjak Process of Gichuk Jinchan Ceremony)

  • 이아름;이은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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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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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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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의례의 행위에 따라 배치된 물건은 의례적 행동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에 용이한 수단이 된다. 이는 어떤 문화적 관념과 가치가 의례적 행위에서 상징과 패턴으로 표현되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각종 의례에서 사용되는 기물은 정해진 위치에 배치되는데, 이는 문자와 그림 등 다양한 형태로 기록되어 준용된다. 본 연구는 순조 29년(1829) '기축진찬의례(己丑進饌儀禮)'의 2월 행사 중 대표적인 행사라고 할 수 있는 명정전 외진찬과 자경전 내진찬의 진작(進爵) 과정에 사용된 기물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였다. 특히 진작의 개념을 술을 올리는 행위 뿐 아니라 술을 올리는 일련의 절차를 모두 포함하였다. 술잔을 올리는 구체적 행동이 시대적 상황 안에서 의미하는 문화적 관념과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축진찬의례'의 외진찬과 내진찬의 진작과정과 관련된 기물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진작 기물은 신분의 위계에 따라 철저하게 서열화 되었다. 둘째, 진작 기물은 왕실의 권위를 시각화하기 위해 배설되었다. 셋째, 진작 기물은 시대적 가치를 실현하는 상징물이었다. 최근 왕실의 다양한 의례가 재현되고 왕실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시점에서 조선시대 왕실의례에 배설된 기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향후 올바른 왕실의례의 복원을 위한 준비과정이며, 조선시대 왕실문화 연구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