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ceedings of the Korea Water Resources Association Co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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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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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369-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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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최근 전 세계적 기상이변으로 홍수 가뭄 폭설 혹서 혹한 등의 재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해는 과거에도 존재하였으며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하였다. 온고이지신가 이위사의(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는 논어의 위정편(爲政編)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다. '옛 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라는 뜻으로 재난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새겨둘 구절이다. 역사 속에서 자연재해는 군주(君主)의 부덕(不德)이나 실정(失政)의 소치(所致)로 여겨지고 나아가서는 왕조나 국운의 쇠퇴와도 관련이 이어지기까지 했다. 이미 과거 자연기록에 있었던 일들이며 이러한 사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조선시대의 자연재해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경술년 현종 11년(1670년 5월 2일) "가없는 우리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아, 허물은 나에게 있는데, 어째서 재앙은 백성에게 내린단 말인가." 1671년 말 경신대기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00만 명에 이른다고 기록도 있다. 기양의례'란 가뭄, 홍수, 전염병 같은 자연재해만이 아니라 개인의 질병과 불행 등 일상적인 삶의 조건을 위협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이를 소멸하고자 거행하는 대표적인 재난문화의 종류이며 비정기적 의례를 의미한다. 조선시대에 기양의례는 재난대응의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의 우리나라로 보면 재난안전대책 본부와 비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기양의례"를 통해 임금을 포함한 조정이 적극적 해결의지를 천명하고 각 고을의 관리와 지방군을 동원하여 수습 복구에 최선을 다했다. 부세를 견감하고 구제곡을 지급하는 등의 진휼정책이 뒤따랐다. 백성들도 오가작통제와 향약을 통해 환난상휼을 실천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비록 기술적인 부분은 미약했지만 재난대응의 체계만큼은 상당히 앞서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의 강원도 영동지방 자연재난사례를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조사하고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재난문화를 조사하고자 한다.
The custom of the flag sticked in a military cap involves the symbolic mark. That is, it makes the procession of an army clear and makes the convenience of activity possible. This custom was uniquely practiced at several countries. At Il dynasty($1258{\sim}1411$), Timurid dynasty($1369{\sim}1508$), Mughal dynasty($1526{\sim}1858$) was succeeded this custom by based on blood relationship for $13th{\sim}16th$ century on the diachronic viewpoint. And these countries have cultural correlation by regional paradigm, namely Islamic cultural area. Meanwhile, this custom of Ming dynasty and joseon dynasty appeared in $15th{\sim}17th$ century as official system. Expecially, one of joseon dynasty maintained for a short time than other countries because of jangpyo[章標] system which was more efficient than the sticked flag. On the synchronic viewpoint, this custom was the common and necessary status quo for the efficient expansion of territory and military management.
1898년 창설된 경사대학당이 전신인 북경대학은 청왕조가 멸망한 1921년 북경대학으로 개편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북경대학의 교수와 연구원은 모두 2천5백51명이며 대학본과, 대학원, 성인교육원에 재학중인 학생은 2만여명에 이른다. 창립 때부터 민주화와 과학의 전통을 이어온 북경대학은 항상 중국의 새 역사를 이끌어 중국 근대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해오고 있다.
To establish a foundation to objectively interpret Chosun history, we construct people network of the Chosun dynasty. The network shows scale free network properties as if most social networks do. The people network is composed of 1,379 nodes and 3,874 links and its diameter is 14. To analysis of the network dynamics, whole network that is composed of 27 king networks were constructed by adding the first king, Taejo network to the second king, Jeongjong network and then continuously adding the next king networks. Interestingly, betweenness and closeness centralities were gradually decreased but stress centrality was drastically increased. These results indicate that information flow is gradually slowing and hub node position is more centrally oriented as growing the network. To elucidate key persons from the network, k-core and MCODE algorithms that can extract core or module structures from whole network were employed. It is a possible to obtain new insight and hidden information by analyzing network dynamics. Due to lack of the dynamic interacting data, there is a limit for network dynamic research. In spite of using concise data, this research provides us a possibility that annals of the Chosun dynasty are very useful historical data for analyzing network dynamics.
Park, Hae-Chul;Han, Man-Jong;Lee, Young-Bo;Lee, Gwan-Seok;Kang, Tae-Hwa;Han, Tae-Man;Hwang, Seok-Jo;Kim, Tae-Woo
Korean journal of applied entom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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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49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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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375-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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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We tried to establish the history of outbreaks and control methods of 'hwangchung' in Joseon Dynasty, uncovering the biological reality of the 'hwangchung' (called hwang or bihwang) analyzed through the Database program o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Emollment of Haegoeje', two of the finest examples of classical historical records. The total number of articles on the outbreak of the hwangchung is 261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and 65 in the Emollment of Haegoeje. There were four peaks by hwangchung throughout the Joseon Era. Among them, the periods of King Taejo to King Sejong had the highest incidence. By comparing the number of records of the hwangchung from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with that in the Emollment of Haegoeje during the same period, results show the former was less than the latter, 35 vs 65. However, both records were relatively inconsistent with each other. Insect pests in forests as well as in agriculture were included in the biological identities of the hwangchung in the Joseon Dynasty periods, which is in accordance with those of Saigo's. The taxonomic identity could be confirmed in only 25 cases (9.5%) among the articles on hwangchung. It largely coincided with Paik's opinion: II in armyworm, nine in moth larva, one in rice stem borer, two in migratory locust, one in planthopper and one in rice-plant weevil. Therefore, it is not reasonable to regard hwangchung as a migratory locust or grasshopper only. The number of reports on the occurrence of hwangchung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was 173 (66% of the total) and 47% of them were just simple reports, which means the report itself on the appearance of hwangchung was very significant. The reports on controlling insect pests were of low frequency, in 20% (34 cases) of the total reports, capturing insect pests or holding traditional ceremony called 'Poje'. Among them, only one case related to the treatment of seeds to prevent the damage by hwangchung was published in the King Sejong period. There were 37 discussions about changes and management of government policies due to disasters by hwangchung. They were mostly about relief or tax cut to the people who suffered damage and about cancellation of recruiting people to military training, constructing castles, and so on. It seems that not only the people but also the king was influenced by the hwangchung. In the case of King Seongjong, he referred to the stress of the prevention measure of locusts in 10 articles. The damage also had an effect on abdication in the reign of King Jeongjong.
Proceedings of the Korea Water Resources Association Co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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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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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20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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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청계천이 복원되었다. 서울시에 의하여 지난 2003년 7월부터 시작된 복원공사가 2005년 10월 준공되었다. 원래부터 청계천은 인공의 하천이었다. 조선왕조 520년의 기틀을 다지면서, 도성에 있는 자연하천을 직강화하고 양안에 석축을 쌓아 개천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하천에 인위적인 요소를 더한 것은 전적으로 홍수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부터 헌종까지 도성에서 발생한 큰 홍수기록이 10건 소개되어 있다. 특히, 순조 32년(1832)과 헌종 12년(1846)의 피해가 컸었다. 순조 32년 6월부터 7월초까지 비가 오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하였으며, 도성내 5부의 민가가 파괴된 것은 3,166호였고 죽은 자는 64명이었다. 헌종 12년 9월에도 큰 피해가 있었는데, 5부에 무너진 민가가 3,900여호나 되었다. 4대문 안의 서울은 북악산과 남산으로부터 가파르게 흐른 물이 고이기 쉬운 저지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침수 피해가 자주 발생하였다. 개국 초기에 여러차례의 홍수피해를 당한 후에, 태종의 본격적인 하천정비 사업은 세종 때에 완성되어 오늘날 청계천의 기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임진왜란이후 개천은 상류에서 쓸려내여온 토사가 쌓여 하천으로서의 구실을 다하지 못하였다. 영조 때에는 매립된 토사로 인하여 하천 바닥이 높아졌고, 양안의 도로와 거의 같은 높이가 되었다고도 한다. 이에 영조는 대대적인 준설 사업을 펼쳤고 조선이 폐망할 때까지 주기적으로 준설을 하였다. 준설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세종은 측우기의 발명과 함께 한강과 개천의 수위를 측정할 수 있도록 수표(水標)를 제작하였고, 역대 왕들은 큰 비가 오면 강우량과 함께 하천의 수위를 점검하였었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자연의 거친 손길에 대응하여 안정된 사회를 만들고자 조선의 왕들과 관리 그리고 백성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 흔적들을 소개하고자 한다.없는 토양들이 있었는데 반해 남계통을 비롯한 학곡통, 회곡통, 백산통, 상주통, 석천통, 예산통 등 7개의 토양은 3kPa에서도 약간의 물의 이동이 있었다. 이는 모암이 화강 편마암인 관계로 토양 내에 물의 이동에 영향을 미치는 자갈의 함량이 높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되고 추후의 연구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내용도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1kPa에서 물의 이동은 삼각통에서 35.21 cm/day로 이동 속도가 가장 컸으며 그 뒤로 예산통, 화봉통, 학곡통, 백산통 등이 토양에서 빠른 속도로 이동하였다. 가천통이나 석천통 및 우곡통은 1kPa에서의 이동 속도가 아주 느린 토양으로 판단되었다. 또한, 포화되지 않은 상태인 1kPa에서 물의 이동 속도를 VGM 모형에 의해 예측된 값과 측정된 값으로 비교하였을 때 불포화 수리 전도도가 예측되지 않은 토양(석천통, 지곡통, 풍천통)이 존재하여 불포화 수리 전도도 특성평가에 대한 VGM 모형의 적용성에 문제를 보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논이라는 영농형태가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토양의 수리적 특성해석을 위한 VGM 모형의 적용성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4일간의 기상변화가 자발성 기흉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추론할 수 있었다. 향후 본 연구에서 추론된 기상변화와 기흉 발생과의 인과관계를 확인하고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초과수익률이 상승하지만, 이후로는 감소하므로, 반전거래전략을 활용하는 경우 주식투자기간은 24개월이하의 중단기가 적합함을 발견하였다. 이상의 행태적 측면과 투자성과측면의 실증결과를 통하여 한국주식시장에 있어서 시장수익률을 평균적으로 초과할 수 있는 거래전략은 존재하므로 이러한 전략을 개발 및 활용할 수 있으며, 특히, 한국주식시장에 적합한 거래전략은 반전거래전략이고, 이 전략의 유용성은 투자자가 설정한 투자기간보다 더욱 긴 분석기간의 주식가격정보에 의하여 최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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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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