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명유(明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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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마감제인 명유의 방미효력 평가 (Evaluation of Anti-Stain Efficacy of Myoung-oil, Traditional Coating Agent)

  • 윤새민;박용건;전우석;이현미;황원중;남기달;박재관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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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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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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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에서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재현한 전통 명유, 전통 명유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개발한 크린 명유, 그리고 명유의 원료이자 현재 목조문화재를 보수할 때 단청의 마감제로 사용되고 있는 생들기름의 방미효력을 평가하였다. 평가 결과, 생들기름은 방미효력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에, 두 종류의 명유는 모두 높은 성능의 방미효력을 보였다. 하지만, 명유를 천연용제인 테르펜유에 희석하여 사용하면 균주에 노출된 지 4주 만에 방미효력이 현저히 감소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목재에 처리된 약제의 함량이 명유의 방미효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목조건축물을 축조함에 있어서 명유가 들기름보다 곰팡이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마감제로 더 적합하며, 야외 환경에서의 곰팡이 성장 억제를 저해 할 수 있는 최적의 처리량 및 처리 방법에 대한 추가 연구를 통하여 명유의 적용 가능성을 높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가칠장(假漆匠)의 성격과 역할 (The character and role of Gachiljang(假漆匠))

  • 장영주;류성룡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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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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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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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Gachiljang(假漆匠), along with Jinchiljang(眞漆匠), is an important craftsman who cannot be left out during the finishing process of wooden furniture and wooden buildings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current definition of Gachiljang does not properly explain the nature and role of Gachiljang. In many related terminology dictionaries, Gachiljang is defined as "artisan who dose the base paintwork of Dancheong." But an analysis of the Joseon Dynasty's Uigwe(儀軌) shows that Gachiljang appears frequently in works that are not related to Dancheong at all. Therefore the current definition seems to be inaccurate and need to be revised. Gachiljang is a name that contrasts with Jinchiljang, and he makes and paints Myongyu(明油). Just as Jinchiljang uses not only lacquer but also various pigments to paint colorful lacquer, Gachiljang also uses various pigments to decorate buildings or furniture in a fancy way and then finishs with a transparent paint. Even in the Dancheong(丹靑) work of the building, all the base painting and finish coating work will be in charge of Gachiljang, except for the paintings performed by the Whawon(畫員) or the Whasa(畫師).

조선시대 동유(桐油) 사용의 진위 (The Authenticity of the Use of Tung Oil in the Joseon Dynasty)

  • 장영주;류성룡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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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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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7-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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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There are records and claims that tung oil was applied to Korean traditional buildings and furniture as finishing paint. Records of the use of tung oil(桐油) exist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朝鮮王朝實錄) and The Royal Protocols of the Joseon Dynasty(朝鮮王朝儀軌). However, there is also a claim that tung oil was not produced in Korea on its own, and that tung oil was not applied to important buildings such as palaces. Silhak scholar(實學者) Seo Yu-gu says that in Korea, people do not know how to grow tung trees, and boiled perilla oil is called tung oil. If tung oil was used in the Joseon Dynasty, it would be necessary to use tung oil for waterproof coating to preserve current architectural heritage, otherwise, tung oil coating would not be desirable. Analyzing the Yeonggeon Uigwe(營建儀軌) among the Joseon Dynasty's Uigwes shows that tung oil is neither mentioned nor used. In addition,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Uigwes mentioned in tung oil, it was found that perilla oil or Myeongyu(明油), not tung oil, was recorded in the actual material used. Therefore, the records of the use of tung oil during the Joseon Dynasty can be seen as records using Myeongyu(明油) or Beopryeon perilla oil(法煉荏油).

조선왕실 의궤를 통해 본 옻칠 공예품 제작 방법 및 사용 재료 연구 (Study on Analysis of manufacturing technique and Materials used for Lacquerware artifacts with focus on Joseon Dynasty Records, Uigwe)

  • 김진옥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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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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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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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조선 왕실의 의궤를 기록된 옻칠 공예품에 관한 제작방법 및 사용재료를 연구하여, 칠기 유물의 보존처리 방안 수립 시 응용하고자 한다. 문헌조사는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1759)", "정조국장도감의궤(1800)"를 중심으로 하였다. 의궤에 기록된 옻칠 공예품의 경우, 옻칠은 주홍칠朱紅漆, 흑진칠黑眞漆, 석간주칠石磵朱柒로 나타난다. 왕에게 진상되는 물품에는 밑칠에 주로 콩가루를 사용하였고, 그 외에는 콩가루와 골회를 혼용하였다. 밑칠에 송연을 첨가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왜주홍칠은 전칠을 칠한 후 매칠에 왜주홍을 배합하여 사용한다. 당주홍칠에는 일부 석간주와 주토를 혼용하여 사용하였다. 흑진칠은 전칠과 매칠을 이용하여 칠하는 것을 기본으로 일부 송연을 첨가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석간주칠에는 석간주를 기본으로 주토를 혼용하여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명유를 이용하여 광택을 내어주었다고 사료된다. 문헌을 통해 조사된 옻칠 공예품의 제작방법과 전통재료가 옻칠 공예품의 보존처리 방안 수립 시 응용된다면 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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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연곡면 유등리 '유상대(流觴臺)' 곡수로(曲水路)의 조명(照明) (A Study on the Yousang-Dae Goksuro(Curve-Waterway) in Gangneung, Yungok-Myun, Yoodung Ri)

  • 노재현;신상섭;이정한;허준;박주성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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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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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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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 대상인 강원도 강릉시 연곡동 유등리 뱀골 하류의 너럭바위에 새겨진 '유상대(流觴臺)' 각자와 암각바둑판은 이곳이 유상곡수 놀이와 신선 풍류 행위가 이루어졌던 풍류처임을 확인시켜 준다. 3차에 걸친 정밀답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통일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도운(道雲)에 의해 창건되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 폐허가 되었고, 1954년에 재건된, 백운사 경내에 새겨진 '만월산 백운동천(萬月山白雲洞天)'이란 암각서는 뱀골 계곡에 선도적(仙道的)풍류와 선비문화의 전통이 면면히 스며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단서이다. 최백순이 1934년 편찬한 강릉의 읍지인 동호승람 제2권에 인종원년(1545)을 전후하여 '남전현(籃田縣)의 백운사는 율곡 이이, 성제 최옥 등 명유(名儒)의 강례처(講禮處)'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공간이 유서 깊은 공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동호승람과 완역 증보임영지에 기술된 무오년, 즉 철종9년(1858) 김윤경(金潤卿)이 창건한 백운정(白雲亭)의 존재를 통해 누정 및 동천 경영의 흔적을 추론할 수 있다. 아울러 유상대 각자 바위 계류 건너 입석에 새겨진 '백운정동천(白雲亭洞天)' 암각서는 백운정 건립 3년 뒤인 철종12년(1861)에 조성되었으며, 유상대와 매우 깊은 연관성이 있는 상징적 표식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정황과 입지성을 전제로 유상대 곡수유구 흔적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유상대 주변 계류 및 암반에는 수량과 유속을 조절하기 위한 세분석(細分石)과, 유로와 잔을 가두기 위한 홈인 금배석(擒盃石)과 유배공(留盃孔)의 조탁 흔적 등을 발견하였다. 더불어 하단 암벽에서 '오성(午星)'이란 명기 아래 23인명의 각자를 발견하게 됨에 따라 이곳이 20C중반까지 유상곡수연의 성격을 갖는 풍류 문화경관의 거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공간에서는 적어도 20세기 중반까지 유상대를 중심으로 한 선비 풍류의 문화가 전승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유 불 선(儒 彿 仙)이 습합된 독특한 역사문화공간'이란 측면에서도 심도 있게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23인명의 정체와 유상대 각자 주체 파악 등 유상곡수 등 풍류행위를 기록한 자료 발굴 등을 통해 본 공간의 성격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기록에 전해지는 암각장기판 또한 발굴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 바, 현재 콘크리트포장 도로의 파쇄를 통한 추가 유적의 발굴 및 노선 변경 등 원형경관 회복방안 또한 시급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