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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만화의 전개와 내용적 특질: 『매일신보』 게재 만화를 중심으로 (Development and Content Characteristics of Cartoons in the 1910s: focusing on cartoons published in Maeilsinbo)

  • 서은영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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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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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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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고는 1910년대 "매일신보"에 게재되었던 만화를 수집 발굴하여, 기존 만화사에서 간과되었던 이 시기 만화의 의미와 가치를 해명하고자 했다. "매일신보"에 실렸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기존 연구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다소 유연한 태도로 접근하여 1910년대 만화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고자 했다. 1910년대 전체적으로는 신문관 간행 잡지에 게재된 '다음엇지'와 "매일신보"가 모두 아우러져서 서술되어야 하겠지만, 본고에서는 "1910년대 만화사 재고"라는 목표로 "매일신보"만을 우선 대상으로 삼았다. 1910년대는 한국 만화의 시초라 일컬어지는 1909년의 "대한민보"'삽화'의 등장과, 신문 만평이 본격화되고 최초로 코믹스가 실렸던 1920년대를 이어주는 교량적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총독부 기관지라는 "매일신보"의 특수성과 대중문화의 주체가 태동한다는 시기적 특수성이 중층적으로 존재하는 시기이다. 본고에서는 강점 직후의 특수성 안에서 만화가 "매일신보"지면에 배치되게 된 배경과 전개 상황을 서술했다. 초기에는 근대적 만화양식이 모호한 상태였지만 후기로 갈수록 양식상의 정립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만화는 하나의 란(欄)으로 고착되어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기사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재현해 가장 극적인 부분을 만화로 시각화하는 방법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등 다양한 만화가 시도되었다. 본고에서는 게재된 만화 가운데 대표성을 띠는 것을 분류하여 "매일신보"만화의 성격을 대략 세 가지로 구분했다. 조선의 일상 풍경과 풍속을 통해 '가장 조선적인 것'을 재현하는 동시에 반문명의 조선의 모습을 배치하는 제국의 이중적 시선을 담지한 것, 조선인의 부의 축적을 공익의 관점에서만 타당한 것으로 재현한 것, "경성"이라는 공간에서도 생활고를 겪는 조선인과 호화로운 연말을 보내는 진고개의 일본인을 대별함으로써 공간을 차별적으로 구분하는 시선을 담지한 것으로 분류했다. 이처럼 "매일신보"는 만화를 통해 피식민지인을 규율하고 식민지 권력의 담론을 자연스럽게 노출하기도 했다.

영화광고로 본 1930년대 영화연구 -『매일신보』와 『동아일보』 영화광고의 비교- (A Study on characteristics of movies in the 1930s)

  • 어일선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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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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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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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이 연구는 1930년대 상영영화에 대한 "매일신보"와 "동아일보"에 실린 영화광고를 비교, 분석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형식적인 면에서의 분석보다는 게재내용상의 비교, 분석에 중점을 두고 연구가 진행되었다. 두 신문의 광고는 게재면수나 단수에서는 그 형태상 다소 차이를 보였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매일신보"와 "동아일보"가 대부분 일치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볼 때, 총독부 기관지의 성격을 띤 "매일신보", 민간신문의 대표격인 "동아일보"를 비교 조사한 결과는 광고의 반복을 고려한다면 1930년대 상영작품에 대한 대부분의 광고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1930년대 상영영화 광고 특징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보다 확장된 1930년대 한국영화의 특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덕혜옹주 유년기 사진의 내포적 메시지에 관한 연구: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적 사진 분석 방법론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Connoted Messages of Princess Deokhye's Childhood Photography: Focusing on Roland Barthes' Semiological Methodology for Analysis of Photography)

  • 한상훈;이상은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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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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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8-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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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덕혜옹주의 소학교 입학 전 사진들이 신문에서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적 사진 분석 방법론을 도입하여 분석한 것이다. 1920년대 초, 일제는 자신들의 교육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소학교 입학을 앞둔 덕혜옹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매일신보는 덕혜옹주의 사진과 기사를 보도하면서 그들의 정책에 협조했다. 본 논문에서는 매일신보에 게재된 2장의 사진과 기사를 분석했다. 그 결과 다양한 사진의 수사적 기법과 텍스트를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해 일본화 교육을 정당화시키는 메시지를 생산하면서, 독자들이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기사들은 단순히 정책의 홍보에 그치지 않고 조선의 전통적 가치의 소멸을 부추기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

개화기 계몽담론에 나타난 ′가족′에 대한 단상 - 대한매일신보를 중심으로 - (A Study of the Use of the Family in Enlightenment Discourses: an analysis of Taehan Maeil Sinbo)

  • 전미경
    • 가정과삶의질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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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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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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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This is a study of discourses on the family used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in Korea. To this end, 1 have conducted a qualitative analysis of the editorials taken from the Taehan Maeil Sinbo of that period. The major findings are as follows: First, these Enlightenment period discourses claimed that civilized nations evolved from a family in primitive society. This concept of family is different from the concept of family in a Confucian society. Civilized societies believed the family is less important than the nation. At that time, Korean Press used the term bumoguk (Parental nation) to refer to the nation in an attempt to equate national loyalty to filial piety. Second, the Enlightenment period claimed that the nation belonged in the Public sphere while the family belonged in the private sphere. However, it was stated that it was the duty of the family to discipline the members and make them into good citizens. Finally, Enlightenment discourses used familyism as the basis of their arguments.

한국 근대신문 기사제목의 형성과 발전: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Article Titles in the Beginning Period of Korean Newspapers: Focused on The Independent, The Korea Daily News and The Dong-A Ilbo)

  • 최창식;채백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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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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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9-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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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본 연구는 한국 근대신문의 기사제목이 형성, 정착되는 과정을 고찰함으로써 그 변화의 양상과 의미를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1890년대의 "독립신문", 1900년대의 "대한매일신보",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동아일보"를 대상으로 이들 신문 기사제목 체제의 변화와 그 표현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독립신문"은 창간 초기 "한성순보"와 마찬가지로 제목 없이 유목만으로 지면을 구분하다가 1898년 7월에 처음으로 제목을 사용하였다. "대한매일신보"의 경우 1910년부터 제목을 별행 처리하여 본문과 확연히 구분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보"는 본문의 서체와 제목의 서체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제목 크기는 1단만 사용하여 기사의 중요도를 가늠하는 기능은 찾아볼 수 없었다. 1920년대의 "동아일보"는 다단과 다행, 본문과 확연히 구별되는 크기의 제목활자 등을 사용하며, 지면 레이아웃을 도입하는 등 오늘날의 신문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에 오면 제목의 크기가 더욱 커지면서 지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전에 비해 확연하게 늘어났다. 이는 1930년대 민간지의 선정주의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신문에서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중대해진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서는 편집진의 시각이 개입된 주관형 제목이 각각 44.4%, 28.3% 정도 나타나고 있는 데 반해 1920년대의 "동아일보"는 주관형이 4.2%로 크게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당시 신문들에서도 객관 저널리즘이 정착되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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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조선미술전람회" 관련 신문보도에 나타난 일본의 오리엔탈리즘 (Discourse Analysis of News Coverage about Chosun Art Exhibition in the Japanese Occupational Era)

  • 유진환;이창현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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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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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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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이 논문은 1922년부터 1944년까지 열렸던 조선미술전람회에 대한 신문보도의 내용을 분석하여 그 특성을 파악한 것이다. 조선미술전람회는 일본의 식민지배하에 있는 조선 미술의 낙후성과 미개함을 강조하고, '지방색'만을 강조함으로써 식민지 조선의 '열등한 정체성'과 일본의 '우월한 정체성'을 차별적으로 확인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었다. 아울러 서양은 발전된 현재이고 동양은 과거에는 발전했으나 현재는 정체된 것으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기본 시각이 재현되어 조선의 미술문화를 쇠락(衰落)한 지방문화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일제하 총독부 신문이었던, 매일신보에 대한 담론 분석결과 한편으로는 식민지 조선을 중앙(일본)의 연장선상에 있는 '지방(내지)'으로 편입하는 '동화주의적' 측면을 가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화된 일본과는 구분되는 미개한 일개의 '지방(외지)'으로 차별화하는 '배제주의적' 측면을 갖고 있었다. 동아일보의 경우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조선 미술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방식으로 기사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혼종적인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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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한국가정생활: 매일신보 사설을 중심으로 (Korean Family life in Early 20th Century: Editorial of Maeil-Shinbo, 1910~1945)

  • 임정빈
    • 가족자원경영과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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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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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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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This study aims to review the family life and its changing process in the early twenty’s century. It is explored through the editorial of the Maeil-Shinho during 1910∼1945. It is valuable work to explore of family life in the Maeil-Shinbo newspapers because it was continuously published from 1910 to 1945. The author attempted to study family life in five major such as food and nutrition, clothing, resource management, family, and child care. And of the articles food and nutrition parts ranks the highest order and clothing care was the second highest. In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many of articles were about to family life but decreased its amount by 1940. Of the editorials, most articles had dealt with the educational context in order to improve the quality of famil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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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군폐합(1914) 전후 군청사 건축행정의 절차와 방침 (The Administrative Procedure and the Policy for the Construction of the Goon Office Buildings around the Goon-Rearrangement in 1914)

  • 김명선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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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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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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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연구는 일제강점기 군의 갯수를 317개에서 218개로 축소시키고 군의 명칭, 관할구역 및 경계, 그뿐 아니라 군청소재지와 군청사 건축에 큰 변화를 가져온 1914년 군폐합 과정에 주목한다. 연구의 목적은 군폐합 단행 과정에서 조선총독부와 각 도 사이에 오고간 문서를 통해 조선총독부가 취한 군청사 건축방침과 각 도 및 군의 대응, 행정절차, 1910년대 군청사의 건축상태와 업무환경은 어떠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문헌연구방법을 사용한다. 기본자료는 국가기록원이 소장하는 조선총독부 문서들 중 군폐합관계서류(국가기록원 정리번호 CJA002545; CJA002546; CJA002547; CJA002548; CJA002550)와 면폐합관계서류 2개 철(CJA002549; CJA002565) 안에 산재하는 군폐합 관련 서류들이다. 그밖에 1910년대 당시 발간된 신문인 매일신보와 기존 연구들도 주요한 자료로 사용한다. 화재나 군청소재지 이전 등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군청사의 신축에 매우 소극적이었고 신축을 위한 예산 배정에도 소극적이었던 조선총독부의 입장과 건축방침이 1910년대 군청사로 기존건물을 전용하거나 신축, 증개축, 개수 등 건축하는데 어떤 작용을 했는지와 당시 군청사의 건축상태 및 업무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건축적 특징에만 촛점을 맞춰왔던 기존의 연구시각과는 다른 각도에서 일제강점기 군청사 연구성과를 보완한다.

일제하 언론이 김동성의 언론활동에 관한 연구 (A Study on Kim Dong-Seong's Activities as Journalist in 1920-30's)

  • 김욱영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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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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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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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한국 신문의 보도 및 편집 관행을 역사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연구는 대체로 언론학자나 국어학자들이 신문기사 문장과 기사형식에 관해 관심을 기지고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 분석이나 자료검증보다는 대체로 현장 언론인들의 기억이나 연구자의 느낌 등에 의지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미국 유학 후 <매일신보>에서 근무하다가 1920년 창간 <동아일보> 일선기자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일제하 대표적 민간신문이었던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등을 거친 김동성 기자의 취재활동을 분석하여 1930년대의 보도 및 편집 관행을 유추하고 역사적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연구를 위한 참고로 한국 최초의 기자실무지침서이자 언론관련 서적인 김동성의 "신문학(新文學)"도 함께 분석하였다. 김동성이 활동하던 시기의 기사는 대부분 무기명 기사였다. 이로 인해 각 기자별 취재보도 활동을 뚜렷하게 구별하는 놀은 쉽지 않다. 하지만, 김동성의 경우는 비록 만화나 삽화, 연재소설 등 직접적인 취재활동을 통한 기사와 관련된 것은 적을지라도 기명기사를 상당히 실었다. 그러한 김동성의 활동을 통해 당시 취재보도 측면에 있어서는 현장주의 원칙의 실천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또한 "신문학"의 분석을 통해 사실보도 원칙의 주장, 또 기사작성에 있어서 역피라미드 원칙과 정확성, 신속성, 시의성 등이 강조되었던 점을 보면 당시의 취재보도 관행이 무척 세련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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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적 공공설'과 8.15 해방 공간 ('Colonial Public-ness'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Forced Occupation)

  • 원용진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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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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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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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전통적으로 한국 언론사 논의는 언론을 수동적 존재로 파악하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특히 해방 전후 언론 연구에서 그런 경향은 더욱 짙다. 언론을 수동적으로 대한다 함은 언론을 수단 혹은 도구로 보는 태도를 말한다. 언론사 논의는 그 같은 경향 내에서 언론을 민족 해방, 민족국가수립에 기여했는지 혹은 아닌지로 분류하고 평가하려 했다. 민족언론, 친일언론 등과 같은 친근한 구분법은 그로부터 나왔다. 최근 들어 그 같은 경향을 벗어난 연구들이 등장하고는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그 같은 민족주의적 시각으로부터 자유스럽지 않다. 덕택에 언론의 독자적문화, 민중들의 언론 습관, 일상 속의 언론 논의는 소홀히 다루어졌다. 이 글은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언론현상을 논의할 경우 해방당시를 섬세하게 설명할 방도가 없어진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민족주의적 관점을 넘어선 국면 분석을 통해 새로운 언론사 분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1945년 8월 15일이라는 해방 국면에서의 언론 상황을 점검하고 그를 통해 새롭게 대안적으로 포착해야 할 언론 단면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 점검을 통해 해방 국면에서 제한된 형태이긴 하지만 언론이 해방의 의미를 나누었고 민중들은 그 같은 의미를 언론을 통해 받아들이는 습관을 나름으로 형성한 식민지적 공공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밝히고자 했다. 그 공공성은 왜곡되고 식민지적인 것일 수밖게 없었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당시 민중들에게는 감정적 구조를 전달해주고 있었으며 삶의 지침이 되기도 하는 영역이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제에 의해 선사된 근대성의 공간도 아니고 민족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식민화된 공간만도 아닌 그 둘이 혼효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은 이후 한국 언론 문화, 관습, 언론을 받아들이는 습관 등 언론규율로 연장되었을 것이다. 혹은 새롭게 등장하는 서구적 근대성과 조우하면서 전혀 새로운 형태로 변해갔을 수도 있다. 지금의 언론 문화를 정리해내는 데 있어 식민지적 공공성에 대한 관심은 더 늦출 수 없는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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