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남명학의 특징을 경의(敬義)사상의 실천유학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적 인물로서의 남명을, 그의 당대에서나 그의 사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남명답게 규정짓는 요소는 무엇인가? 경과 의로 정립된 그의 철학인가? 이 점에 있어 필자는 다소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당대나 후세에 남명을 평가한 모든 글들에서는 한결같이 출처(出處)에 있어 처사(處士)로서의 지조를 끝까지 지킨 남명의 출처사상을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고는 그의 출처관을 그 자신의 인물평(人物評)을 통하여 살펴보고, 나아가 그러한 인물평의 저변에 깔려 있는 출처사상의 바탕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그는 역사적 인물들과 당대의 인물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서 그들의 출처를 논하였다. 남명은 그 출처가 합당한가 아닌가에 대한 기준으로서 기미를 파악하는 선견지명을 꼽았는데, 이때의 '기(幾)'는 바로 선과 악으로 나뉘는 분기점인 것이다. 기미의 순간에 인욕을 배제하고 천리를 잘 보존하게 된다면 바로 길인(吉人)이 되고, 인욕이 천리에 포함되게 되면 바로 악인(惡人)이 되는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벼슬길에 나아감에 있어서도 일을 '할 수 없는 시기'에 나아가는 것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인욕이 개입된 것으로 보았으니, 곧 그 출처가 잘못된 것이라는 관점이다.
본 연구는 과거 안의삼동을 유람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던 인물들의 공간인식을 살펴보고자 관련 문헌에서 확인되는 인물들의 학파별 관계와 경관요소들을 분석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안의삼동 관련 기록을 저작한 인물들은 영남 유학계보와 함께 안의삼동 일대 거주하는 지역사림을 중심으로 관계가 확인되었다. 15세기 정여창을 시원으로 16세기 남명학파 중심의 관계가 나타났으나 당시에는 학맥과 관계없이 안의삼동을 유람했었다. 17세기에는 남명학파와 퇴계학파의 대립으로 퇴계학파의 영향은 확인되지 않으며, 18세기 영남학파로 발전되면서 남명학파, 퇴계학파, 기호학파의 비중이 유사하게 나타났다. 19세기 이후에는 학맥보다는 일제 항거운동에 참여했던 애국지사의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둘째, 안의삼동 관련 문헌에서 주로 이용되는 장소는 원학동, 화림동, 심진동 순으로 확인되었다. 관련문헌의 대상으로 이용된 주요 요소는 총 21개소로, 이 중 수승대, 모리재, 농월정, 사선대, 척수암이 주를 이루었다. 원학동의 요소들은 수승대를 중심으로 16세기 이후 주요지점으로 각광받았다. 화림동의 요소는 18세기 이후 점차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심진동의 경우 원학동이나 화림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보이고 있었다. 셋째, 안의삼동을 방문했던 인물들의 관계와 문헌 분석 결과 안의삼동에 대한 공간인식 양상은 경관 묘사, 안의삼동에서의 감회, 문헌에 내재된 상징성으로 구분되었다. 안의삼동의 경관인식은 수경관과 지형경관 중심의 묘사가 주로 확인되는데, 당시 인물들이 안의삼동을 계곡경관 중심의 명승지로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16·17세기 남명학파와 퇴계학파의 상호영향관계는 각 학파의 주요 인물들이 안의삼동의 유람을 수련문화로 인식하던 양상이, 18세기 유람문화의 성행과 19세기 혼란스런 정세를 거치면서 과거 선조들의 자취를 그리워하는 정서로 이어졌다. 이외에 주로 나타나는 상징적 표현은 신선세계로의 장소성이 확인됨에 따라 탈속의 장소로 인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남명의 경(敬) 의(義)철학은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데 가장 먼저 실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시해 주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유학에서 지향하는 자신에서부터 출발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상통한다.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 또한 스스로를 먼저 바로 보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수양은 곧 사회 전체의 수양, 사회의 개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맥락이 전제되는 것은, 유학에서 말하는 '수신(修身)'에서 출발해 '평천하(平天下)'로 가는 길, '수기(修己)'이후에 '안인(安人)'이 되고, '극기(克己)'이후에 '부례(復禮)'가 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개인과 사회를 분별하지 않고, 개개인의 모습이 모여 사회가 이루어지고, 개인이 바로 설 수 있을 때 사회도 바로 설 수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유학의 사회체계의 원리는 상호적, 또는 층차적 분화와 통합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를 개인 혹은 국가와 대립시키지 않으며, 같이 이루어나가는 도덕 공동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남명에 있어서 경(敬) 의(義)철학이 가지는 실천성은 그것이 적용되는 사회의 실천성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실천성이 남명의 경(敬) 의(義)철학에서 '행의(行義)'의 개념으로 나타난다. '행의(行義)'는 후에 그의 문도들이 국가적 위기에 보인 행동으로 입증된다. 이 점에서 그는 퇴계나 율곡과는 다른 또 하나의 조선조 성리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행의(行義)의 사회적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어느 성리학자나 실천성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남명은 특히 현실의 당면 문제에 구체적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관념적, 내면 지향적 사유가 갖는 기만성을 경고한다. 결과적으로 남명의 경의(敬義)를 바탕으로 한 도덕적 수양과 단련은 사회 역사적 장과 상관없는 진공상태에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세적 공효 내지는 사회적 실천의 맥락에서만 평가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남명의 경의(敬義)의 실천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회 개혁론'의 출발점에 서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The education will boil from daily life and as doing desirably, Nammyung emphasized. This fact all people importantly from education, to think. But recognizes this problem the center of life and study of oneself and the case which indicates writes. Nammyung led and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daily life from education. The life of the human being becomes more distant from daily life and when being absorbed in being external makes a valuable territory lose from life. When with the same interest of education becomes more distant from daily life of life, the education makes the meaning lose. When meaning the education is embodied from if human life, must have an educational interest in daily life. And works from the daily life which is repeated, meeting, association, dialogue and relationship, introspection etc. must become the interest territory of education, the education must devise is value from daily life the possibility of experiencing in order to be. Because the work which is ordinary, meeting from ordinary, with human relation and association dialogs, reflective etc. to compose a life. When the education excepts a daily life consequently, will not be able to give the value which is important in life. When saying conclusively, the education must escape from the fact that considers seriously a knowledge acquisition and a compensation. And the education must do to make a value the people experience rather from daily life. The resultant education will be able to accomplish the essential function of the education which loses, daily life will be valuable and there is a possibility which to make feel will do. With being like that, education could be reconciled with the peopl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how the unit objectives and contents associated with environment are reflected on the 6 kinds of chemistry- I textbooks in the 7th curriculum and to present how to deal with the environmental education in chemistry- I.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units associated with environment account for an average of 43.7% on chemistry- I in 7th curriculum. Second, contents of units related to environmental education on chemistry- I in 7th curriculum are environmental pollution(17.8%), environmental preservation and environmental pollution prevention(15.9%), environmental hygiene(12.2%), and any other things, Environmental pollution takes up a considerable part of environmental education. Third, the results for analyzing the objectives of chemistry- I in 7th curriculum show that Information Knowledge Awareness(34.0%) and Skill (29.9%) take up most parts. Fourth, Orientation (I) as analysis standard for objective of the units related to environmental education accounts for 10.2% of the total. It is clear that environmental education is carried out from STS point of view. In conclusion, environmental education in Chemistry- I focuses on fostering students' ability to apply the fundamental notion of chemistry to real life associated with environments. Therefore, it is necessary that environmental education in Chemistry- I should include value, attitude and participation and that improve students' ability to approach the environmental problem comprehensively.
조선중기 북인의 모집단을 형성하는데 주축이 되었던 학파는 남명학파와 화담학파였다. 경의(敬義)의 실천을 강조한 남명의 사상은 임진왜란 때 다수의 의병장을 배출하였고, 광해군대 정인홍이 북인의 영수로 활약하면서 그 사상이 이어졌다. 이외에 성리학을 절충적으로 이해하고 개방적 성향을 보인 화담의 사상이 북인 학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광해군대에 북인이 정국을 운영할 때 실천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성리학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유스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에는 남명이나 화담의 사상적 영향력이 크다고 판단된다. 대북(大北)의 정인홍과 허균, 소북(小北)의 김신국, 남이공 등은 북인의 사상과 현실인식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인물이었다. 1623년의 인조반정이후 사상계가 퇴계학파나 율곡학파가 주축이 된 주자성리학 흐름으로 정착되면서 북인(北人)의 사상은 시대의 주류적 흐름에서 밀려나게 된다. 정치사상에도 자파(自派)만이 군자당(君子黨)이라 확신하고 타 정파에 배타적인 입장을 취한 점 또한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17세기 중반 인조반정과 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사상계가 주자성리학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북인(北人)의 사상은 역사의 전면에서 밀려나 저류적인 흐름으로서 그 역사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북인(北人)의 사상은 17세기 중, 후반 근기남인 학자들이나 18세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면서 그 흐름이 일부 이어졌다. 북인은 조선중기 서인, 남인과 함께 정치, 사상을 이끌어간 대표적인 정파이자 학파였다. 최근 북인의 뿌리가 되는 조식과 서경덕에 대한 연구를 비롯하여, 북인 정치사상의 계승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조선중기 이후 정치사와 사상사 연구의 폭을 보다 확대 줄 것이다.
본 연구는 명암(明庵) 정식(鄭拭, 1683~1746)이 경남 산청군 구곡산에 설정한 무이구곡의 입지, 시어(詩語), 건립 정사(精舍), 경물 제명(題名) 그리고 바위글씨(각자(刻字)) 등의 구곡경영 사례를 문헌 및 현장조사를 통해 밝힘으로서 주자의 무이산 무이구곡 유거강도(幽居講道) 행적에 대한 모방 등 추존(推尊)과 조선적 변용(變容)이 어떠한 방식으로 펼쳐졌는지를 살피고자 한 것으로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수홍교(1곡)-옥녀봉-농월담-낙화담-대은병-광풍뢰-제월대-고루암-와룡폭(9곡) 등으로 최종 확인된 명암의 무이구곡은 주자의 무이구곡을 오롯이 조선에 모사(模寫)하고 실천한 대표적 사례이다. 구곡 원림문화라는 큰 틀에서 명암의 무이구곡 경영은 주자 추존을 통한 도통계승(道統繼承) 의지로 충일하다. 구곡산의 또 다른 이름이 '무이(구곡)산'이고 구곡의 명칭이 '무이구곡'이며 구곡 경영의 거처가 4~5곡 사이에 존재했을 뿐 아니라 구곡 경영을 위한 정사의 당호(堂號) 또한 '무이정사'였다. 또한 구곡 명칭과 차운시(次韻詩)의 내용 또한 주자의 그것과 흡사함은 명암이 주자 무이구곡을 산청 구곡산에 속속들이 모방하고자 한 명백한 근거이다. 하물며 명암 이전에 설정된 구곡이 구곡산에 있었으며 그 중 확인된 4개 구곡명 모두가 주자의 무이구곡 그것과 일치됨을 볼 때, 주자 추존의 동조행위(同調行動)가 명암 이전 이미 구곡산에 도래(渡來)하였으며 이는 구곡산 무이구곡의 전통과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아닐 수 없다. 덧붙여 제6곡의 광풍호와 제7곡 제월대는 '광풍제월(光風霽月)'을 분화한 명칭으로 주자 시의 차용(借用)은 주자의 행적을 추존하는 조선 선비정신과 맞닿아 있고 이는 무이구곡의 조선적 변용이라 판단된다. 한편 명암의 구곡을 재차 모방한 하범운(河範運, 1792~1858)의 "덕산구곡(德山九曲)" 5곡은 '대은병'에서 '난가암'으로 변용되면서 바위에 새긴 바위글씨(각자(刻字))가 유전(遺傳)되고 있다. 요컨대 "덕산구곡시" 속에서는 주자에 대한 존모심(尊慕心)은 약화되는 반면 자당(自黨)의 상징적 인물인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추존함으로써 당파적 결속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구곡산 무이구곡원림은 명암 사후 주자의 도통 계승공간에서 선현 추모공간으로 변용되었지만, 주자 무이구곡의 모방과 변용을 통해 조선 구곡원림문화의 스펙트럼을 넓힌 전형적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여헌 장현광(1554-1637)은 조선중기를 대표하는 유학자이면서 우주론과 자연학을 가장 체계적으로 저술한 사람이다. 조선조 유학의 지리적인 학맥에서 여헌은 남명 조식과 한강 정구의 학풍을 이어받으면서 풍수와 지지편찬을 계승한 사람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 여헌은 주자학에 영향을 받았지만 역학(易學)의 기틀을 견지하였으며, 사변적인 공리공론에 머무르지 않고 실용적 경세학(經世學)으로서의 지리를 인식하였다. 여헌의 지리인식 방법은 역학(易學)의 체계와 구도 상에서 이루어졌다. 여헌은 자연에 대한 인간 본위(本位)의 인식태도를 드러내며, 따라서 인사의 공능이 지리의 조건보다 우선되는 준칙이었다. 여헌에게 산수와 자연은 비덕(比德)의 공부대상이었고, 자연공부 방법은 대상물의 관찰을 통해 생명의 이치를 자득하고, 무심한 경지를 통해 천지의 마음에 이르는 것이었다. 유학의 가르침을 삶의 지침으로 삼았던 여헌에게 있어서 낙토(樂土)는 안분자족(安分自足)함에서 얻어지는 것이었다. 여헌에게 지리인식의 의의는 생활의 실용적인 이익 됨에 목적을 둔 필수적인 지식정보였다. 여헌은 은거지의 생활현장에 자신이 견지한 유학적 우주관과 세계관을 '우주사업'의 일환으로 구현하였다. 이러한 의식과 태도는 주거지의 장소경관과 자연경물(自然景物)을 북극성과 주위 28수의 별자리로 상징화하여 명명하고 우주적 중심 공간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 경영에서 비롯된 유학자들의 동천구곡(洞天九曲) 전통은 조선시대에 유행되었지만, 여헌의 장소 구성 체계는 여타의 형태와 방식을 뛰어넘은 우주적 구도의 독창성이 있다. 여헌의 장소 명명 의식에는 선현을 본받고자하는 태도, 자연물의 형용과 성정에 대한 비덕(比德), 그리고 은거(隱居) 의식의 반영이 나타난다. 여헌의 국토관 및 국토이해는 지형개관, 산수이해, 도읍입지, 지역이해, 풍토론, 현실인식의 방식으로 체계적으로 드러나고 중국의 지리적 조건과도 비교되어 파악되었다. 그의 국토인식과 이해방식은, 국토의 유기체적인 인식, 주자학의 자연관이 반영된 기적(氣的)인 국토인식, 산천 인식과 도읍 입지의 풍수적 이해, 지역구분을 통한 비교론적 이해, 인물과 풍속에 대한 풍토론적 이해 방식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헌은 역의 포괄적인 사상체계 범주에서 풍수도 수용하였다. 그가 풍수를 수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남명과 한강을 계승하는 학풍에서 연유되는 바가 있었다. 여헌은 풍수지식을 활용하여 주거지의 입지를 정하기도 하였고, 고향 연고지의 여러 곳에 대해 풍수적 견지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의 풍수관을 보면, 묘지풍수에서 형세론적 이치는 수긍하고 있지만 장례기일을 미루는 발복 목적의 행위는 비판하였다. 그리고 고을의 풍수에서 숲의 조성을 통한 비보의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풍수관은 문도(門徒)들의 지지편찬에도 일정하게 반영되었다. 여헌 학풍에서 주목할 만한 지리학적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지지(地誌)의 편찬이다. 이것은 남명과 한강의 치용(治用) 정신과 경세적(經世的) 실천을 계승한 학풍이기도 했다. 여헌은 지지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면서 문인들에게 편찬을 독려하였다. 고을의 통치자나 지식인으로서 지역의 역사와 옛 일을 잘 알아야하고, 권면하고 징계하는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헌의 견해는 이후 문인들의 지지편찬 취지와 내용 구성에 지침이 되었다. 이 연구는 여헌의 지리인식에 관한 사실적인 면모의 정리와 지리적 학풍의 계승 맥락에 관한 고찰에 그친 한계가 있다. 다음에는 여헌 전후 유학자들의 지리인식과 지지편찬 전통이 어떻게 전승되면서 전개 발전되었고 질적으로 변천해 나갔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는 학계에서 공백으로 남아있는 조선 초 중기 유교지식인의 지리학사를 정립하는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본고는 18세기 영남 지방의 선비였던 명암(明庵) 정식(鄭?)(1683-1746, 숙종9-영조22)의 시작(詩作)에 나타난 은일지사적(隱逸之士的) 특성에 대한 입체적인 고찰을 목적으로 한다. 그는 지절(志節)에 있어서 대단히 강개한 측면을 지니고 있었는데, 청나라가 들어선지 약 40년 후 출생했으나, '명암(明庵)'이라는 그의 호에서 드러나듯 여전히 명나라를 숭모와 추앙의 대상으로 여기는 데 변함이 없었으며, 평생 동안 벼슬을 거부한 채 초야에서 독야청청(獨也靑靑)의 지사(志士)로 살다 갔다. 당시 명암이 살던 진주(晋州) 권역은 남명 이후 실천적 도학의 분위기가 팽배했던 지역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은거는 명암이 택한 실천적 행동의 한 양상이었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명암의 시에 대해서는 여러 방향에서 논의가 가능한데 본고에서는 다음 두 가지 사항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째, 세상에 대한 그의 자세, 즉 은거라는 측면과 관련해서 작품을 살폈다. 둘째, 시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단순히 은거시를 검토한다는 평면적인 관점에 머물지 않고, 당당하고 거침없는 무애인(無碍人)의 기상, 한거(閑居)에 내재된 자기 연민과 우울의 감정, 그리고 사물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정감(情感)의 표출이라는 세 항목이 서로 유관(有關)함을 밝히고, 이들 각각에 대해 차례로 탐색하는 입체적인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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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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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 조 (손해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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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조 (관할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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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칙]
1. (시행일) 이 약관은 2016년 9월 5일부터 적용되며, 종전 약관은 본 약관으로 대체되며, 개정된 약관의 적용일 이전 가입자도 개정된 약관의 적용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