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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조선신사(朝鮮神社)의 장소(場所)와 권력(權力): 전주신사(全州神社)를 사례(事例)로 (The Relationship between Power and Place of the Jeonju Shrine in the Period of Japanese Imperialism)

  • 최진성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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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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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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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본 연구의 목적은 일제강점기의 신사(神社)와 관련해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장소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는데 있다. 조선신사는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달성키 위한 식민지배 전략 중 하나로서 공간적으로는 중일전쟁(1937년) 이전까지 개항장을 비롯한 전국의 중요 도시들에 51개의 신사들이 세워졌으며, 당시의 철도체계와 연계해서 해안과 내륙의 주요 도시들을 연결한 일종의 "신사 네트워크"였다. 또한 시각적으로 이 신사들은 도시의 조망이 탁월한 구릉에 대부분 입지하였으며, 일본인 거류지를 포함한 식민지 경관들과 인접하였다. 이 신사들에 안치된 천조대신(天照大神)과 명치천황(明治天皇)은 응시의 주체로서 지배자를, 그리고 피식민지인들은 응시의 대상으로 전락하였음을 상징하였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신사는 식민지 지배를 위한 감시 장치였다고 할 수 있다. 사례지역인 전주는 공간적으로 호남평야의 중심도시로서 전라선 철도와 연계되었다. 또한 전주신사는 전주읍성의 서문 밖에 위치한 다가산(多佳山)(65m) 구릉의 정상에 세워져 전망이 탁월하였으며, 일본인 거류지를 비롯한 식민지 경관들과 인접하였다. 그런데 광복이 되자 전주신사가 시민들에 의해 해체되었다. 이것은 훼손된 민족 정체성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한 시민들의 저항 담론의 결과였다. 그 장소에는 대신 충혼탑과 가람 시비가 세워짐으로써 다가산은 일제의 신사가 세워졌던 장소에서 국가 및 민족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소로 탈바꿈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경관을 통해 장소에 재현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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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정치생태학: 생태관광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생산과 보존 (The Political Ecology of Salmon: Production and Conservation of 'Nature' in Ecotourism)

  • 장한별;지상현
    • 한국경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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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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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9-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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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양양연어축제를 통해 생태관광에서 '자연'이 '생산'되고 보존되며 이용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관광지리 논의에서는 관광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신자유주의화와 이에 대한 정치생태학적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양양군을 중심으로 연어보존이 이루어져왔고, 연어축제 역시 연어보존이 나타내는 자연의 복원이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연어축제는 연어의 상품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남대천은 연어의 생태계가 복원된 장소로 인식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연어회귀가 증가하지 않고, 축제의 외연적 확대가 어려워지면서 연어와 남대천 보존에 대한 지역의 관심은 예전과 같지 않다. 즉, 자연의 보존과 복원의 상징성을 강조하는 축제의 주장과는 달리 생태계를 위협하는 부정적인 요인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로 인해 연어와 남대천의 보존과 관련한 행위자들 사이의 갈등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지역 주민들에서부터 지자체, 국가, 국제기구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다. 생태관광에서 이용되는 자연은 다양한 층위의 행위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정의되고, 이용되며, 강조된다. 이는 정치생태학 연구에서 강조되는 '생산되는 자연'의 개념이 본원적인 자연개념보다 축제의 주제로 전용되고 상품화되는 자연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조선후기의 기녀 복식이 사회에 미친 영향 (The Impact of Clothings of Kisaengs in the later Choson)

  • 김혜영
    • 자연과학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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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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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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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조선 후기는 임진.병자 양난을 계기로 사회전반에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근대 사회로의 전환기를 맞는다. 즉 전쟁으로 인한 국가제도의 문란과 혼란해진 사회구조 속에서 신분제도가 해이해졌고, 상업경제체제와 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한 부유한 중인 계층이 대두되었고, 사상적으로는 유교가 공리공론에 빠지면서 유교윤리의 약화현상이 나타나면서 현실치중 의식을 보이는 실학사상이 등장 하였다. 또한 서민문예의 대두로 서민의식을 가진 서민계층(서민의식을 가진 양반계층 포함)이 등장하게 되었다.이 서민 계층의 등장은 복식에 있어서의 대중복식문화를 부각시키면서 유행현상이 출현되었다. 그리고 대중은 이 전환기 사회에서 변화된 그들의 역할과 가치관은 이제 더 이상 지배층에게서 영향력 행사할 충분한 권력이나 매력을 찾지 못했다. 따라서 이들은 새로운 상징적 선도자(Symbolic leaders) 즉, 모범을 보여주는 새로운 대상을 찾았고, 그들의 상징적 선도자는 바로 '자유분방하고, 사회활동을 하는 독립된 여성, 그리고 시와 가무를 즐기는 풍류가이고 또한 신체적으로 매력을 지닌 멋장이인' 기녀들 이었다. 선도자 그룹인 기녀계층에 의해 제시된 새로운 Fashion과 Style인 Erotic Mode와 사치 Mode는 그 시대 사조를 반영하면서 대중이 의식과 기호에 크게 맞아 떨어지자 큰 호응을 얻고 수용되었다. 즉 이들대중은 선도자 그룹을 모방 함으로써 그들과 자신들의 동일시를 성취하고 선도자의 Prestige를 나누어 가지고자 했던 것이다.이러한 이유로 해서 기녀들은 하류계층임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 시대의 "패션의식적인"사회집단으로서 대중으로부터 주목받고 대중의 기호를 장악하며, 그들의 복식행동은 대중으로부터 강한 수용을 받게 되면서 대중의 의복 행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유행선도자(Fashion leader)였음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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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기념공간에 나타난 기념적 표현 (A Study on Monumental Expression of Korean War Memorials in Korea)

  • 이상석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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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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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8-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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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에 있는 6 25전쟁 기념공간에 나타난 기념적 표현을 분석하는 것으로 기념공간에서 구현되는 기념의 내용, 공간적 특성, 도입요소, 조각 및 건축물의 특성에 대하여 분석하고, 이러한 분석결과를 토대로 하여 6 25전쟁 기념공간에 나타난 기념문화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본 연구를 위해 한국에 있는 6 25전쟁과 관련된 현충시설 659개를 1차 검색하여 부지가 전적지이거나 전쟁과 관련된 장소성이 있으며, 외부공간이 조성된 17개소를 선정하고 현장조사를 시행하였으며, 설계도면, 사진, 기사 등 관련자료를 수집하여 분석에 활용하였다.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기념내용에 있어서는 희생자를 추모하고 전공을 기리며, 6 25전쟁의 경험 및 교육을 통하여 호국정신을 고양하는데 초점이 두어졌으며, 특히 전적지에 위치한 기념공간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2. 부지의 입지여건과 전통적 공간인식에 따른 공간적 위계를 고려하였으며, 기념공간에서 요구되는 엄숙함을 얻기 위해 축적인 구성을 하고, 추모감과 전승감을 얻기 위해 중심축 상단에 기념탑이나 전시관과 같은 상징적 요소를 위치시켜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3. 희생자를 추모하고 전공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와 기념탑, 전쟁의 경험 및 교육을 통해 호국정신을 고양하기 위한 기념전시관 및 야외무기전시장, 그리고 참전국가의 명예를 고양하기 위한 국기가 주요한 요소로 도입되었다. 4. 영웅적인 전투장면을 묘사한 근대적 조각이 많았으나 양구전쟁기념관 및 유엔기념공원의 '추모명비'에서는 상징적이거나 추상적인 표현을 시도하는 현대적 기념공간의 경향을 보여주었다. 5. 기념문화에 있어서도 애국주의 및 이데올로기가 강조되고, 기념공간에 대한 관습적인 인식이 강하게 드러났으며, 일부의 조각가 및 설계가만 기념공간의 설계에 참여하였다. 향후 6 25전쟁 기념공간에 관한 미니멀리즘, 해체주의, 탈근대주의 등의 설계양식론 관점과 다른 전쟁메모리얼과 비교를 통한 통시적 관점(通時的 觀點)의 연구가 필요하다.

직업적 역할은 정신장애인이 지각한 편견을 감소시키는가? (Effects of vocational roles on the perceived prejudice of people with psychiatric disabilities)

  • 김문근
    • 사회복지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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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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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9-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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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는 정신장애인이 지각하는 사회의 편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이며 이러한 요인의 영향은 어떠한 이론적 근거에서 설명될 수 있는지 규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상징적 상호작용주의이론에 근거하여 직업적 역할, 직업재활서비스욕구, 가족의 편견인식이 정신장애인이 지각하는 편견에 미치는 영향을 검정하였다. 본 연구의 분석에 활용된 자료는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전국 정신질환자 및 가족 생활실태조사'자료 중 충실히 응답된 229사례였고, 자료분석은 위계적 회귀분석을 활용하였다. 자료분석결과 정신장애인의 증상이 높을수록 편견인식이 높았고, 직업적 역할이 있으면 편견인식이 유의하게 감소하였다. 직업을 통해 재활을 도모하는 상태에 있으면 편견인식이 유의하게 증가하였고, 가족의 편견인식이 높으면 정신장애인의 편견인식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족의 편견인식은 직업적 역할이 정신장애인의 편견인식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상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이론적, 실천적 함의를 논의하였다.

주자 천도론의 상징부호와 철학적 전개 (The symbolic signs in Ontology and its philosophical development)

  • 강진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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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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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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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현대신유학은 5.4운동 이후 중국사상의 근본정신 계승을 토대로 서양사상을 받아들여 중국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하며 형성된 학파이다. 중국의 학술계는 현대신유학을 마르크스주의, 자유주의와 함께 중국근(현)대 3대사상으로 지칭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이후 현대신유학자들은 대부분 홍콩, 대만 등지로 옮겨 활동하면서 그들의 철학과 문화보수주의를 이어갔다. 1978년 이전에는 금기시되었던 이들 사상은 1980년대 중반 현대신유학자들이 중국에서 활발한 강연, 저술 활동을 펼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된다. 그리고 현대신유학에 대한 대규모의 연구가 1987년 국가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다. '전통과 현대화'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던 중국은 현대신유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전통의 고양과 현대적 전화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중국의 현대신유학 연구는 학술적으로는 단절되었던 전통사상을 계승하고 그 현대적 전화를 모색하는 것, 사회적으로는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폐단을 차단하고 통제하는 것,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의 중국화를 강화하는 것 등을 목적으로 한다. 1980년대 현대신유학 연구는 이러한 목적을 위한 초보단계로 주로 현대신유가의 사상을 소개, 정리, 이해하는 것에 집중된다. 그리고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마르크스주의의 입장, 관점, 방법을 견지하며 진행된다.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 수용과 이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1980년대 현대신유학 연구는 현대신유가 사상을 보급하고, 전통의 비판적 계승에 관한 논의를 확대하고, 현대화가 곧 서구화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제고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

스토리텔링을 적용한 화훼디자인에 관한 연구 -장례 화훼디자인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Flower Design Based on Storytelling : Focus on the Funeral Flower Design)

  • 이승범
    • 한국화예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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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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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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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본 논문에서는 장례를 죽음에 관한 문화로 정의하고 가장 중요한 사상적 바탕으로 생물학적 죽음을 이 세상의 끝으로 인식하지 않고 또 다른 삶의 시작을 위한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점으로 규정하였다. 국가, 문화,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장례문화에 대하여 조사하고, 장례 화훼디자인을 사례를 통해 분석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장례 화훼디자인은 제한적인 소재의 사용과 유사한 디자인이 장례 화훼디자인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상호간의 감정과 의견의 교환을 통한 소통적 차원의 개념인 스토리텔링이야 말로 감성적인 소비 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 중의 하나인 히스토리 스토리텔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상 인물을 선정하여 삶을 분석하고 그의 삶에서 시사점을 도출하였다. 이에 따라 장례화훼디자인에 스토리텔링을 적용하여 작품을 제작을 시도하였다. 스토리텔링을 적용한 화훼디자인은 화훼디자인 소재의 상징과 의미, 화훼디자인 색채와 형태는 흰 국화소재 위주의 기하학적 디자인의 근엄한 분위기의 전통적인 장례화훼디자인에서 벗어나 고인을 상징하는 복숭아 색을 주조로 한 파스텔 계열의 색상과 다양한 형태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별의 장례화훼디자인을 표현하였다.

조선시대(朝鮮時代) 철비(鐵碑)의 조영(造營) 연구(硏究) (A Study on The Iron Monument in The era of Joseon Dynasty)

  • 홍대한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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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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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5-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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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우리사회에서 철을 자유로이 사용하게 된 것은 채 100년이 안 된다. 중세 이전 우리나라의 철 생산은 원시적인 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태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1407년 전국적으로 대규모 철장[철광산] 증설을 시행하였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이 때 개발된 철장의 수를 전국적으로 78개 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5세기에 편찬된 "농사직설"에 따르면 철재 농기구는 지주 등 일부만이 소유할 수 있는 중요한 재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 이었던 농기구마저 지주 등 일부에게 한정되어 사용되던 시절이었기에 다른 용도로 철을 사용한다는 것은 많은 제약이 따랐다. 이러한 상황은 16세기 말~17세기 전반기에 거듭된 전쟁으로 관영수공업이 파괴되었으며, 국가로부터 제철업경영권을 위임 받은 '별장'이 세금을 내는 조건으로 철소(鐵所)를 사적으로 경영하게 되면서 획기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철비는 크게 현감, 관찰사 등 지방수령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공덕비와 1684년 제작으로 서당을 운영하기 위하여 창립한 전남 진도 학계(學契)비 등의 사적(史蹟)비, 보부상 들이 세운 송덕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철은 과거 부의 상징이자 나무나 돌에 비해 강하고 영원하다는 믿음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중요한 공덕비 건립이나, 맹세의 상징으로 철비를 건립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철은 동양사상에서 악한 것을 물리치고, 지기(地氣)가 강한 곳을 누른다는 비보풍수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철비가 세워진 가문은 최고의 영광이었다고 한다. 철비는 17~18세기 들어 제작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을 보인다. 이것은 선정을 베푼 수령의 증가가 아닌, 역설적으로 원성을 듣던 수령이 직접 세우는 사례가 증가하며, 부를 축적한 중인계층들이 양반으로 신분을 바꾼 후 조상의 정통성을 가공하기 위해 철비를 세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떠한 이유로 철비를 제작하게 되었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으나, 오행(五行)사상과 관련 깊을 것으로 추정된다. 철은 곧 금(金)이다. 오행에 있어 '금'의 기운을 보면 '금'은 대지를 뜻하며, 그 색은 황금이며 황금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찬란한 휘광이다. 또한 금은 모든 쇠, 또는 철이기도 하기 때문에 음의 기운에 속한다. 금은 단단하고 변함없으며, 절대 부서지지 않는 강인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 이승이 양이라면 저승은 음이다. 이러한 오행사상과 철이 지니는 가치 때문에 철로 비를 제작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급격한 생산력의 증대가 이루어진다. 세종대 이후 농업기술의 발달에 기인한 바 크며, 17세기 이후 상업자본의 성숙과 함께 사대부와 견줄만한 재력을 모은 중인계층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사회여건 속에서 자신들의 권위와 부를 상징하기 위해 당시까지만 하여도 귀했던 철을 소재로 비를 건립한 것으로 판단된다.

파빌리온 건축을 통해 본 지역성 표현특성에 대한 연구 -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파빌리온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regional expression through pavilion architecture - focused on the YAP pavilion)

  • 서규덕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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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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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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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의 목적은 동시대 건축의 여러 형식의 건축물들 중에서도 형태적, 재료적, 구조적 실험의 장이 되고 있는 건축형식인 파빌리온 건축 중 한 가지 주제 아래 북미, 남미, 유럽, 아시아의 5개 다른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파빌리온 건축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다양한 문화적 환경적 토양에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 지역성을 고찰하는 데 있다. 근대건축 이후 현대건축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로 분석 및 연구되어지고 있는 지역성 분석 기준의 척도를 설정하기 위해 지역성 표현유형의 개념과 분류에 대한 선행 연구 분석을 통해 상징적, 구축적, 맥락적, 감촉적, 환경적, 이상 5가지 표현방식의 키워드를 도출하였으며 이 5가지 분석의 틀을 이용하여 각기 다른 나라에서 2010년 이후 현재까지 완공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파빌리온 건축에 있어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표현 양상을 입체적으로 분석하였다. 결론적으로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서 같은 주제로 계획되고 지어지고 있는 파빌리온이라는 좁은 범위의 건축형식을 통해서도 각기 다른 나라의 문화가 표현되어 지는 특징적인 지역성의 표현방식을 비교 분석하였다.

중국 기술혁신관리(TIM) 분야의 학술지 속성 결정요인 - 기술경제(技術經濟)지 분석을 중심으로 (Determinants of Journals on the Fields of Technology, Innovation and Management (TIM) in China - An Analysis of Jishu Jingji)

  • 설성수
    • 기술혁신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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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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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3-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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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이 연구는 중국 기술경제학회가 발행하는 '기술경제'지의 분석을 통해 중국의 기술혁신관리 분야 학술지에 관한 세 가설을 검증한 것이다. 첫 가설은 중국의 기술혁신관리 분야 학술지는 이 분야의 속성보다 국가속성이 더 크다는 것인데, 이 가설은 채택되었다. 둘째 가설은 편집진은 학술지를 대표한다는 것이었으나, 이 가설은 기각되었다. 셋째, 편집진 분포는 학술지가 다루는 주제범주를 나타낸다는 가설은 채택되었다. 중국의 이 분야 학술지는 모두 논문길이가 짧고 참고문헌의 갯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작으며 해외 참고문헌을 거의 인용하지 않는 특정이 있다. 또한 거의가 기술-기업-산업을 다룬다는 특징이 있다. 한편 분석대상 '기술경제'지는 다른 중국 학술지와 같은 범주이지만 다루는 기업과 산업의 내용범주가 더 넓고, 편집진은 저자대표라기 보다 상징적인 의미가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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