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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시대 소품 석공예에 관한 연구 (A study on small stone crafts in the Cho Sun Dynasty)

  • 유해철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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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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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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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조선조시대의 석재는 공예품 재료로 쓰이기도 하였으나 건축재로서도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의장재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석재 특유의 재질감과 미적 관점으로서 수반, 주자, 화로, 베겟모, 필통 등 실용적인 생활용품과 장식품의 용도로 널리 사용되었다. 석재는 다양한 재료와 선택에 따라서 크기, 수량, 운반, 가공방법의 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제문제를 고려하여 제작되어 온 조선조시대의 소품 석공예에 대한 연구를 하는데 그치지 않고 형태와 문양, 재료의 선택 및 가공방법 등 전과정에 걸쳐 연구하고자 하였다. 조선조시대의 석공예품은 생활도구로서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또한 중요한 일면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이들 석공예품의 민예품은 제작목적이나 제작기술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었으나 그 당시의 사회적 요구와 사용자의 기호, 취미가 형태와 문양에 반영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없었음을 수집된 관련 작품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석공예품을 일상생활용품, 문방용품, 도구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여 본 결과 일상용품의 대부분이 실용성을 강조하여 제작되었으며, 사용상의 특성을 살리어 불에 강한 납석재로 제작되었다. 더욱이 부엌에서 사용되었던 주방용품은 무문으로서 기능성을 고려하였고, 안방에서 사용되었던 생활용품은 다양한 형식의 장식적 표현을 음각, 양각, 투각, 상감기법 등으로 조각하여 사용된 점이 특징이었다. 문방용품에 있어서는 장식적 효과와 용도에 따른 재료의 선정 등 심미성을 강조하여 표현된 것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작사용 된 재료는 납석, 황옥, 청옥, 백석 등 다양한 재료의 선정으로 고루 분포되었다. 문양과 조각의 표현에 있어서도 장식적인 화려함을 엿볼 수 있었다. 도구에서는 섬세함을 요하지 않기 때문에 오석, 화강석 등이 널리 쓰여서 용도상의 특성을 살리어 제작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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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전식(全湜, 1563~1642)의 조복 유물 고찰 (A Study on Jeon Sik(1563~1642)'s Jobok Relics from the 17th Century of the Joseon Dynasty)

  • 이은주;김미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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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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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6-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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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이 연구는 2021년 경북 유형문화재 <상주 전식 조복 및 공예품 일괄>로 지정된 유물 중 전식(全湜, 1563~1642)의 조복 구성물인 3점(의·상·대대)의 유물을 17~18세기 5건(신경유, 권우, 화산군 이연, 밀창군 이직, 이익정)의 출토 조복 구성물과 문헌자료를 비교하면서 유물의 조형적 특징과 제도와의 차이점을 밝히고자 함에 목적을 두었다. 전식의 조복 구성물 3점은 색상을 확인할 수 있는 최고(最古)의 조복 유물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붉은 색 능직물로 제작한 상의(上衣)는 아쉽게도 가선이 소실된 상태이지만 흔적이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해 기록이나 초상화 등의 자료에 근거하여 흑색 가선[黑緣]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흑선과 바탕 옷감 사이에 끼우는 흰 장식선은 아직 사용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하상(下裳)은 전3폭 후4폭 중 전3폭과 후1폭만 남은 상태이다. 그러나 후4폭의 형태를 유추할 수는 있었다. 주름 흔적으로 볼 때 허리 부분에만 주름을 잡았음을 알 수 있었다. 18세기의 밀창군, 이익정 묘 조복 상은 허리말기에 간격을 두고 연결되어 있으나 신경유, 권우, 화산군 이연 묘 조복 상 등 17세기 조복 상은 전상 아래로 후상이 겹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전식의 조복 상 역시 전상 아래에 5cm 전후로 후상을 겹쳐 연결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화산군 이연(李渷, 1647~1702) 이후 흑선과 바탕과의 사이에 백색 장식선을 끼운 뒤 허리부분에서 밑단까지 주름을 잡은 형태였다. 대대는(大帶)는 '경(冂)' 모양인데 소색(素色)의 주(紬)에 녹색 문사(紋紗) 선을 둘러 긴 띠를 만든 후 모서리를 접어 요(腰)와 신(紳)을 만들었다. 18세기 밀창군과 이익정, 정휘량의 조복본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대대의 색상과 일치하였다. 18세기 초 화산군 이연 묘 대대 이후는 요와 신 부분을 따로 재단하여 이은 형태였으나 전식의 대대를 포함한 17세기 신경유 묘, 권우 묘의 대대는 긴 띠를 접어 요와 신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 매기 위해 양 끝에 가는 끈을 달았다. 전식의 조복 유물은 색상이나 형태면에서 17세기 조복제도를 구체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국조오례의 서례』·『경국대전』조복제도의간략하거나부정확한기록을보완해주는사료로서의중요한가치를지니고있다고하겠다.

조선 초기 조운선(마도4호선)에서 출수된 숫돌의 비파괴 재질 분석 연구 (Non-Destructive Material Analysis of Whetstones Discovered in Grain Transport Ship of the Early Joseon Period)

  • 공달용;김재환;박은영;조용철;양기홍
    • 자원환경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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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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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1-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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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충남 태안 해역에서는 2014년 국내 수중발굴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시대 선박이 발견되어 마도4호선으로 명명되었다. 마도4호선은 발굴된 유물을 통해 1417~1425년(태종~세종) 사이 나주에서 공물을 싣고 한양으로 가다 침몰한 조운선임이 밝혀졌다. 마도4호선의 선체에서는 공물로 적재된 총 27점의 미사용 숫돌이 발견되었다. 27점 숫돌은 모두 폭이 좁고 긴 막대기 형태이며. 길이, 폭, 두께 및 무게의 평균값은 각각 161.5mm, 36.1mm, 22.7mm 및 253.2g 이다. X-선 회절 분석 결과, 구성광물은 석영, 알칼리장석, 사장석으로 고해상도 디지털 실체현미경 분석 결과와 유사하다. 마도-2672와 2673의 평균 공극률은 각각 2.69%와 1.78%, 평균 표면 경도는 각각 807.2HLD와 834.5HLD로 공극률이 일정 이상 증가하면 표면 경도 감소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은 모두 장석질 사암(Arkose)이며 SiO2의 함량은 평균 74.51%로 숫돌로서 적합함이 확인되었다. 27점의 숫돌은 SiO2의 함량을 기준으로 구분할 때, 중간 숫돌에 해당한다. 이들 숫돌은 크기와 무게가 작고 휴대하기 편리한 특징을 갖고 있어 비고정식 숫돌의 한 종류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무기 연마와 공예품 제작 등 특수분야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국외소재 한국문화재 현황파악을 통한 자료 활용 방안 - 주요 해외 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 (Use of Information Gained from Survey of Korean Cultural Properties Overseas -Based on Collections of Overseas Museums)

  • 이난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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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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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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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최근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그 연구는 종래의 관련연구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참여가 높으며 그 범위도 국내에 한정치 않고, 국외 한국문화재에 대한 환수와 그 활용에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 모두가 환수대상이라는 종래의 개념 이외에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활용방안을 모색할 단계로 보고 이를 위해서는 유출경위 등 체계적인 현지조사를 통한 명확한 현황파악이 선생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논문의 출발이자 기본요지이다. 또한 국외소재 한국문화재를 좀 더 확장하여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우리의 인식 전환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견지에서 한국문화재는 원래 생산국인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하고 활용할 인류의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있는 세계유산이라는 접근을 통해 그 활용의 폭도 넓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견해에 입각하여 미국 보스톤박물관 등 3개국의 대표적인 주요소장처의 한국문화재에 대하여 그 가치와 성격, 그리고 유출배경의 유형을 살펴 정리하였다. 본 논문은 위와 같은 인식의 바탕에서 향후에도 국외 한국문화재의 현지조사를 통해 유출배경의 명확성을 확보함으로써 학문적 연구는 물론 환수대상 혹은 홍보대상 들을 구분하여 정책기초 자료로 응용될 수 있도록 국외소재문화재 자료를 규명하자는 데 그 뜻이 있다.

패션문화상품을 위한 텍스타일 디자인 개발 - 한국전통문양을 중심으로 - (Development of Textile Design for Fashion Cultural Products - Focusing on Traditional Korean Patterns -)

  • 현선희;배수정
    •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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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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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85-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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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본 연구의 목적은 한국전통문양의 문헌고찰 및 활용 사례의 분석을 통해 활용되는 문양의 종류와 문양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고, 패션문화상품의 전통문양활용 실태를 토대로 문양의 상징성을 적용하여 텍스타일 디자인을 시도함으로써 패션문화상품 디자인 개발에 발전적 인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였으며, 패션문화상품을 위한 텍스타일 디자인 개발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다. 첫째, 패션문화상품을 광범위한 패션의 일부로 간주하여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최근 3년 동안 S/S 시즌의 패션트렌드를 살펴보고 이를 반영한 컨셉을 설정하였다 둘째, 패션문화상품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 문양을 중심으로 텍스타일 디자인을 위한 문양을 선정하였다. 셋째, 패션문화상품 디자인 개발을 위한 아이템을 선정하고, 전통문양의 상징적 의미에 따라 아이템의 문양을 선정하였다. 넷째, 텍스타일 디자인에 활용할 모티브를 발췌하여 패턴의 배열방법에 따라 전개하였다. 끝으로, 전개된 텍스타일 디자인은 텍스타일 CAD(Tex pro)와 Illustrator 10을 활용하여 아이템별 도식화에 적용하고, 이미지로 제시하였다. 이상과 같은 디자인 프로세스를 통하여 본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전통문양을 이용한 패션문화상품 디자인은 전통 문양 의미적 측면 외에 문양에 내재된 상징적 의미를 적용함으로써 한국의 전통미의식에 대한 이해와 철학적 접근이 이루어 질 수 있다. 둘째, 전통공예품이나 민예품에 사용되어 오면서 소비자에게 진부한 문양으로 인식된 전통문양은 형태를 변형하거나 간결한 형태로 단순화하여 이미지를 강조하고, 트렌드를 반영한 스타일 및 색채의 적용으로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으로 재창조될 수 있다. 셋째, 전통 문양을 응용한 디자인은 표현기법과 제작방법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와 시각적 효과로 표현될 수 있으며, 이에 활용범위가 확대되어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될 수 있다. 넷째, 패션문화상품에서의 전통문양은 우리 고유의 독창적인 디자인 요소로 활용될 수 있어 고부가가치 상품개발을 위한 디자인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될 수 있다. 향후 전통문양을 응용한 문화상품개발을 위해서는 전통문양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다양한 접근과 시도가 이루어져 다양한 상품이 개발되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한국산(韓國産)의 죽류(竹類)에 관(關)한 연구(硏究)(제(第)10보(報)) - Phyllostachys reticulata의 굴곡시험(屈曲侍險)에 대(對)하여 - (Research on the Bamboo in Korea(Part 10) - On the Bending Test of Phyllostachys reticulata)

  • 정현배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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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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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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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7
  • 죽류(竹類)는 원래(原來) 죽간(竹幹)이 곧게 자라는 식물(植物)이므로 현재(現在)까지는 이와같이 곧게 자라는 성질(性質)을 이용(利用)하여 다각도(多角度)로 사용(使用)하여 왔으나 근일(近日) 죽공예품제작(竹工藝品製作)의 추세(趨勢)는 굴곡(屈曲)된 죽간(竹幹)의 필요성(必要性)이 증가(增加)됨에 따라 저자(著者)는 한국(韓國) 산죽류(産竹類)의 굴곡생장(屈曲生長)에 관(關)한 시험(試驗)을 행(行)하고저 강원도(江原道) 명주군(溟州郡)부터 옥준면(玉浚面) 현내리(縣內里)의 시험림(試驗林)에서 1960년(年) 시험(試驗)을 시행(施行)하였다. 죽순(竹筍)이 40여일(餘日) 간(間)에 완전성장(完全成長)하는 비밀(秘密)이 주(主)로 지하경(地下莖)에 있다고 하나 죽순(竹筍)의 죽피(竹皮)에도 그 요인(要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生覺)하고 죽피(竹皮)의 탈피(脫皮)와 죽(竹)의 굴곡(屈曲)에 대(對)한 시험(試驗)을 다음과 같이 행(行)하였다. 1. 탈피(脫皮)의 시기(時期) 2. 임의순곡(任意筍曲)을 위(爲)한 죽피(竹皮)의 탈피방향(脫皮方向) 3. 죽순(竹筍)의 크기(생장(生長))에 따르는 굴곡(屈曲)의 정확성(正確性) 이상(以上)과 같은 시험(試驗)으로 다음과 같은 결과(結果)를 얻었다. 1. 본시험지(本試驗地)에서는 죽순(竹筍)의 발순(發筍)이 대개(大槪) 4월경(月頃)부터 시작(始作)되나 시간별(時期別)로의 굴곡(屈曲)의 난역(難易)을 관찰(觀察)한 결과(結果)는 이 굴곡(屈曲)의 효율(效率)이 68%로서 가장 좋은 성적(成積)을 나타 냈다. 2. 출도(出度)를 임의(任意)로 하고져 할 때에는 구부리고져 하는 방향(方向)의 죽피(竹皮)를 탈피(脫皮)하면 그 방향(方向)으로 구부러지며 90도(度)의 각도(角度)까지 굴곡(屈曲)될 수 있음을 알았다. 단(但) 돌레 전체(全體)를 베끼면 자유형(自由形)으로 구부러 진다. 3. 어느 정도(程度) 생장(生長) 죽순(竹筍)이 굴곡도(屈曲度)가 정확(正確)한가를 알기 위(爲)하여 30cm부터 10cm의 간격(間隔)을 두고 150cm까지의 길이에 대(對)하여 죽순(竹筍)을 탈피시험(脫皮試驗)해 본 결과(結果) 110cm 크기의 것이 90%로서 좋은 성적(成積)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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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9~20세기 갓끈 재질 조사: 호박, 대모, 플라스틱, 유리를 중심으로 (Investigation of the 19th~20th century Hat String Materials at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Amber, Tortoise Shell, Plastics, Glass)

  • 오준석;이새롬;황민영;노수정;이영민;박성희;임성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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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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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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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갓끈은 조선시대 남성용 모자인 갓을 고정하는 실용적인 면과 함께 사용하는 재료의 다양화에 따라 신분을 나타내는 장식적인 구실도 하여, 금, 은, 옥, 마노, 호박, 명박, 산호, 청금석, 수정 등 다양한 고급 재료가 사용되어 왔다. 19세기 말 개항과 함께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갓끈의 재질이 어떻게 변천되었는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품 중 19~20세기 갓끈에 대해 재질을 조사하였다. 갓끈의 재질을 분석한 결과, 전통적인 재질로는 호박, 대모, 나무, 대나무가 사용되었으며, 상아, 유리(소다유리, 납유리, 알칼리혼합유리)와 19세기 이후 발명된 신소재인 플라스틱(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 페놀-포름알데히드, 폴리스티렌, 아크릴)이 갓끈 장식에 새롭게 사용되었다. 갓끈의 중앙 장식, 구슬, 대롱에 사용된 재료는 대모가 가장 많이 차지하며, 대나무, 나무, 호박 순으로 전통 재료의 사용 빈도가 높았다. 대나무는 대롱으로 사용하여 다른 재질의 중앙 장식과 구슬을 조합한 갓끈이 많아, 흥선대원군 집정시 의관과 문물의 간소화시책에 따른 죽영이 유행을 보여주고 있다. 호박은 갓끈의 중앙 장식과 구슬에 사용되었으며, 산지는 한국에서 발견되고 있는 호박 유물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발틱 호박으로 동정되었다. 갓끈에 사용된 유리는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국에서 출토되거나 전승되어온 소다유리나 알칼리혼합유리도 사용되었지만, 납유리에서는 Na2O가 검출되어 한국에서 발견되는 납유리 성분에서 벗어난 특징을 보여주어, 개항 후 해외에서 들어온 새로운 공예용 유리로 추정된다. 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나 페놀-포름알데히드 등과 같은 플라스틱은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전통재료인 대모, 호박, 산호 등을 대체하는 새로운 합성재료로써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셀룰로오스 나이트레이트는 열화에 의해 균열과 미세 균열, 부서짐과 황변이 관찰되고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9~20세기 갓끈 재질에 대한 조사를 통해, 개항이후 전통적인 재료의 사용과 함께, 대모나 호박과 같은 천연재료를 대체하기 위해 유리와 플라스틱과 같은 신소재의 도입이 확인되었다.

고종연간 집경당(緝敬當)의 운용과 궁중(宮中) 서화수장(書畵收藏) (The Collection of Paintiongs and Calligraphy at Jipgyeong-dang Hall during King Gojong's Reign(1897~1907))

  • 황정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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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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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7-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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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본 논문은 경복궁 집경당의 운용과 수장품의 내역을 통해 고종연간 궁중 서화수장의 추이를 살펴본 것이다. 그동안 집경당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채 건립시기는 경복궁 중건공사가 이루어진 1867년 이후이며 주로 내외신 접견처로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이글에서는 집경당과 한 건물로 배치된 함화당의 상향문과 기타 관찬사료의 기록을 통해 집경당이 1890년경에 건립되었으며, 그 운용에 있어서도 국왕의 접견처보다는 주로 고종의 강학(講學) 공간이자 풍부한 서책과 서화를 보관한 궁중 도서관, 서화수장처로서 기능을 하였음을 조명하였다. 서책을 보관한 장서각이 궁궐의 특정 영역과 관계없이 분포했던 반면, 서화작품을 수장한 수장처는 조선후기 이후 연침(燕寢) 영역에 위치하기 시작했다. 고종과 비빈들의 침전 영역에 속한 집경당이 서화수장처로 이용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특히 고종연간에는 건청궁과 집옥재를 중심으로 국가의 문화적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 정책으로 인해 경복궁 연침영역에 궁중 도서관이 밀집해 있었다. 당시에는 헌종에 의해 발전한 19세기 전반의 궁중 서화수장에 힘입어 각 궁궐마다 선왕선후의 초상, 그들의 어필, 조선왕실 서책, 그밖에 국내외 서화가들의 작품이 다량으로 소장되어 있었다. 한편, 고종의 적극적인 외국서적 수입정책과 개항기라는 시대상황과 맞물려 궁중으로 유입된 서화자료의 내역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1800연대를 전후로 간행된 중국 청대 서화, 화보(畵譜), 총서류 및 일본화보, 서양지도가 상당량 유입된 정황이 파악됨에 따라 조선 고유의 작품을 위주로 했던 전통적인 수장 성격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집경당 소장 서화의 외래적인 성격은 19세기 서화단에 있어 김정희 일파를 중심으로 한 청대 첩학(帖學) 비학파(碑學派) 서풍(書風)의 수용, 그리고 장승업 조석진 안중식 등이 청대 산수 인물화풍을 적극 수용하여 중국화풍의 대대적인 유행을 가져온 경향과도 상통한 맥락이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