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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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를 활용한 고구려 국내성 시기의 관방체계 검토 - 압록강 중상류~요하 중류를 중심으로 - (GIS-based review of Goguryeo's defense system during the Gungnaeseong Period with the focus on the upper and middle reaches of the Amnok River and the mid-stream region of the Liohe River)

  • 홍밝음;강동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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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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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0-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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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고구려는 산성을 중심으로 하는 독특한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그동안의 고구려 관방체계 연구는 이러한 성곽의 배치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대부분의 연구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고구려 관방체계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개별적인 조사 보고나 자료 소개 정도에 그치고 있어 그 중요도에 비해 연구가 미진한 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러한 자료 접근의 한계를 감안하여 고구려 성곽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기존 연구 성과를 기초로 국내성 시기에 압록강 중상류~요하 중류에서 운영되었다고 판단되는 고구려 성곽를 정리해보고 GIS를 이용하여 고구려 국내성 시기의 관방체계를 재구성·재검토하였다. 그 결과 첫째, 고구려 국내성 시기의 주요 교통로는 기존 연구 결과와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즉 중기의 주요 교통로는 소자하-부이강-신개하-집안 일대로 여겨지며, 이는 이곳을 중심으로 거점성과 함께 다수의 성곽이 축조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둘째, 압록강 중상류~요하 중류에서 고구려의 거점성은 총 7개소가 확인되며, 거점성과 주변 성곽의 연계는 1차 방어선이 좀 더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2차와 3차 방어선으로 갈수록 좀 더 느슨하면서 넓은 범위를 방어한다. 셋째, 주요 교통로의 방어체계를 살펴보면 1차 방어선의 거점성은 최진보산성, 고이산성, 철배산성으로, 대체로 반경 20km-20km-20km 내외의 방어선을 구축하며 2차와 3차 방어선은 반경 40km-40km로 방어선이 구축된다. 이후 마지막 방어성 도성은 3차 방어 거점성인 오녀산성과 반경 60km-60km의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는데, 도성 부근에 규모가 있는 성곽을 축조하지 않고 관애로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거점성 간의 연계 관계를 살펴보면 거점성을 중심으로 관방체계가 1차적으로 형성되고 이들은 다시 가장 근접한 거점성과 연계된 방어체계를 구성하면서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군을 방어한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 고구려 국왕 사여복식과 고구려 면류관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Kingdom of KokuRyo, King's Costumes, MyunRyu Kwan Bok)

  • 임명미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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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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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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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The results from the consideration of this are as follows. 1. Kokuryo has been the exchange foreign relationship with the Han dynasty era, from king DaiMuSin 25 years to Bojang 27 years. 2 King of Kokuryo, from The North-Wei-dynasty has been received ceremonial costumes, first-third class of China's official rank. After unification of China, Su, Dang dynasty's envoy and missionary and many commercial men and artist come from China to Kokuryo, therefore, influenced their costume habbits and behabiers from royal families costumes and common peoples costumes, without concern of that one's social position. 3. Kokuryo King's ceremonial costumes are not the same as the China. Kokuryo performed a religious service an emperor's ceremony. And the Kokuryo King's religious mind was the Budism and Daoism. So that mural painting just showing the symbolic of the king's costumes , Myunryukwanbok.

원대자묘 벽화 주인공 복식에 관한 연구 - 고구려 복식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

  • 정완진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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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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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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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the costumes of the master in Yuantaizi(원대자) tumulus murals and to examine the relation to the costumes of Koguryo(고구려). The Master appeared in Yuantaizi Tumulus Murals wear Wuguan(무관), Pingshangze(평상장) and Pao(포) These costumes were used as chaofu(조복) by Han race(한족) at that time. It is believed that Yuantaizi tumulus belongs to a tomb of Qian Yan(전연). So we can conclude that Qian Yan accepted costume systems of Han race. And similar costumes appear in Tumulus Murals of Koguryo built around Pyungyang(평양) and Anak(안악) in 4∼5 century. Especially the master's costumes of Anak Tomb No.3(안악3호분) are nearly the same as Yuantaizi's. Maybe it is closely related to the fact that the master of Anak Tomb No.3 is Dongsu (동수) who defected from Qian 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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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에 나타난 고려시대 피휘와 천문도의 기원

  • 안상현
    • 한국우주과학회:학술대회논문집(한국우주과학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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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우주과학회 2009년도 한국우주과학회보 제1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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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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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그 원본이 고구려에서 기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천문도의 원석을 조사한 결과 고려 태조 왕건(王建)에 대한 피휘(避諱)가 적용된 별자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이 고구려가 아닌 고려에서 기원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고구려 기원설에 대한 연구의 역사를 재점검함으로써 그 학설의 근거가 잘못된 단정에 기인함을 알아냈고, 기존 학설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하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조선은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의 다양한 천문도들과 조선의 보천가, 천문류초, 누주통의 등의 문헌, 그리고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의 역사 기록을 전면적으로 조사하여 이러한 피휘(避諱)의 양상을 파악하였다. 그 결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 성도는 고려시대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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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 공포도 형식의 분류체계에 관한 연구 (A Study on Classification System for Gong-Po-Do Style in Tomb Wall Paintings of Koguryo)

  • 황세옥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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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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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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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우리나라 공포양식(?包樣式)의 초시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공포도(?包圖)를 북방 주변 국가와의 문화적 교류와 천도(遷都)에 따른 지역 시기 형상별로 고찰하고 유형별로 체계화 정립을 주 내용으로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묘사된 공포는 지상에서의 묘주가 통치자로서 군사 행정 정치 사회적으로 누렸던 지위나 신분에 따른 옥사(屋舍)의 제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묘주 생전 지상가옥의 공포형태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이며, 지상에서의 실제 공포 출현시기는 고분 축조 편년보다 최소한 1세기 이상 앞선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이는, 고구려 지상에서의 공포출현시기와 관련하여, 공포가 묘사된 중국 동한기(東漢期) 고분(古墳) 내 가형명기(家形明器)와 화상석(?像石) 화상전(畵像塼)의 제작시기와도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에서도 추정을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 결과, 고분벽화에 묘사된 공포도는 비포작계, 준포작계, 포작계로 대별되고, 포작계는 비출목형과 출목형으로 세분하였다. 또한 고구려 공포는 한(漢) 이후 같은 동이족인 북위(北魏)로부터 유입되었으며, 고구려 풍토와 정서에 맞도록 토착화되어 고유한 고구려 형식의 공포체계로 발전 확립되었다. 고구려 멸망(668) 이후 이러한 기법은 문화적 교류 및 망명인들에 의해 주변국에서 그 맥을 이어갔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점문양 복식의 염직 연구

  • 양경애
    • 한국복식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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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복식학회 2003년도 춘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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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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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服飾文化의 일부분으로 染色과 織造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은 크지만 染織 실물이 없는 현 상황에서 고대 한국의 染織文化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고구려 복식문화에 대한 연구는 주로 古墳壁畵에 표현된 극히 한정된 시각자료를 통해 형태적 측면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염색이나 직물에 관한 것은 그림 자료의 한계로 인해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고대 복식에 대한 공백을 메워주는 중요한 자료로서의 역할을 해온 고분벽화 복식은 해석 여하에 따라 오히려 왜곡된 사실을 강화해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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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관모에 관한 고찰

  • 김영숙
    • 대한가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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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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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6-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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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
  • 기원전 37년 부여족의 일족인 고주몽이 건국한 고고려는 약 700년간 만주와 북만주를 무대로 하여 활약한 강대한 나라이며 한민족사상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부여족은 4000년이전에 중국의 동북부에서 만주에 이동한 문화민족이며 한나라에 의하면 그네들은 언제나 자기민족의 고도로 발달된 문화수준을 자랑하였고 주위의 타민족을 남만 북적 서융 동이라고 칭하여 야만인 취급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여족만은 문화수준이 높은 민족이라고 하여 동등의 대우를 아끼지 않았다. 맥(貊)족에 대하여서는 춘추전국시대의 장자를 위시하여 소위 한서 남사 북사 제서 수서 구당서 당서등 고문헌의 어느 것에나 문화를 가진 민족으로써 소분되어 있었다. 과연 부여족은 만주지방에 산재되어 있는 수많은 민족중의 선각자이며 특히 고구려는 만주 및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나라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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