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고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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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동부 경주시 수제리-수렴리의 해안단구와 제4기 환경변화 (Marine terrace and its implications to paleoenvironment during the Quaternary at Suje-ri - Suryum-ri of the East coast of Gyeongju, SE Korea)

  • 황상일;신재열;윤순옥
    • 한국지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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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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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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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지난 수 십 년간 해안지형 연구분야의 축적된 지식은 해안단구의 분포 특징으로부터 지반 운동에 관한 양질의 기록과 증거들을 생산할 수 있게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한반도 남동부 경주시 양북면과 양남면 소재의 수제리-수렴리 일대의 해안단구 분포와 지형발달을 논의하였다. 연구지역 일대에는 고고위읍천면을 포함하여 해발고도 160m까지 8단의 해안단구가 체계적이고 연속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특히 최근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는 해안단구 고고위면의 존재는 동해안 일대의 해안단구 형성시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본 연구를 통해 확인되는 해안단구 고고위면의 구정선고도와 그 추정 시기에 의하면, 플라이스토세 중기 (약 70만년) 이후 한반도 동해안의 평균 지반운동 속도는 0.23mm/year로 확인된다. 이와 같이, 해안단구 연구 결과로부터 도출되는 지반 융기 운동의 속성과 시, 공간 특성은 복잡한 한반도 신생대 제4기 지반 운동의 본질을 이해하는 기초적 자료가 될 것이다.

선사시대 사적의 지정·보존·관리 현황과 활용 방안 (Designation, Preservation, Management, and Utilization of National Prehistoric Sites)

  • 황재훈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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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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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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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글은 우리나라 선사시대 사적의 지정·보존·관리의 전반적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선사시대 사적의 활용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한국의 선사시대 사적에 대한 전반적인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시대 및 유구 성격에 따른 선사시대 사적의 지정 현황을 비롯하여 선사시대 사적의 지정 면적, 지역별 분포 양상 등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울러 현 선사시대 사적의 보존·정비·관리 현황에 대한 전반적 상황을 파악하였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선사시대 사적의 보존·관리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현지답사를 통해 울주 검단리 유적, 부여 송국리 유적, 홍성 석택리 유적 등 몇몇 유적의 현황을 점검하고 선사시대 사적의 보존·정비·관리 방안에 대한 몇 가지 의견을 개진하였다. 울주 검단리 유적은 유적의 성격을 고려하여 유구 관련 시설물을 설치할 필요가 있는데, 복토현장보존 뿐만 아니라 노출현장보존이나 이전보존을 병행하는 방안이 요구된다. 부여 송국리 유적은 유적의 전체적인 범위와 유구 분포를 파악하기 위한 정밀지표조사와 시굴조사가 선결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뚜렷한 목적을 가진 학술발굴이 계획적이고 지속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홍성 석택리 유적과 같이 획기적이고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고고 자료가 확인되고 역사적 가치와 고고학적 중요성이 인정되는 보존조치 유적의 경우, 보존 현황과 관리 상태를 우선 점검하여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 국가사적의 문화유산 보호보전 및 운영관리 체계, 학술조사연구 프로젝트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 선사시대 사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문화유산의 교육·연구적 측면과 사회·경제적 측면 모두를 고려한 활용 방향성이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문화유산의 적극적 활용이 유적의 지속적인 보존·관리로 이어지는 방안이 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선사시대 사적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김해 양동리 고분군 출토 철제유물의 현미경조직 관찰 (Micro-structure of iron artifacts excavated from Yangdong-ri)

  • 김동원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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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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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7-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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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이 연구는 김해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2800 여점의 철제유물 중 6점에 대한 금속학적인 검토를 통해 고고학과 문화재보존과학의 기초자료로서 활용하고자 하였다. 1 김해 양동리 고분군 출토 철제유물은 원로로서 적철광을 사용하였고, 연료는 목탄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주조유물 중 철복은 C함량이 $4.6\%$의 과공정백주철이고 주조철부는 C함량이 $3.58\%$의 아공정백주철 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 유물이 백주철인 것으로 보아 주조 후 바로 급랭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3. 단조유물은 C함량이 $0.08\%,\;0.11\%$의 아공석강으로 대부분의 기지조직이 pearlite와 ferrite이며, 제작시 괴련철을 단조한 후 공랭하여 철기를 제작한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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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문헌에 보이는 『논어(論語)』 고찰 - 정주(定州) 한묘(漢墓)와 돈황(敦煌)에서 발견된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을 중심으로 -

  • 박재복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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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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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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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논어"는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크게 손실되었다가 한대(漢代)에 이르러 크게 "노론(魯論)", "제론(齊論)", "고론(古論)" 등 3개의 다른 판본이 출현하였다. "노론(魯論)"과 "제론(齊論)"은 각기 다른 사승관계에 의해 전수되어 오다 장우(張禹)에 의해 두 본이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고, 이후 세상에서 널리 읽혀지게 되었다. 20세기(世紀) 말, 돈황(敦煌)과 토노번(吐魯番)에서 수많은 당사본(唐寫本)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 정현(鄭玄)의 "논어주(論語注)"와 하안(何晏)의 "논어집해(論語集解)"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1973년 서한(西漢) 중산(中山) 회왕(懷王) 유수(劉修)의 무덤에서도 죽간(竹簡)에 쓰여진 "논어(論語)"가 출토되었다. 본고에서는 현재 "논어" 판본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이들 3개의 출토문헌 자료와 전래본인 주자(朱子)의 "논어집주(論語集注)"의 비교를 통하여 한위(漢魏)시기 이래로 여러 "논어"본들이 정리되어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파생된 제반 문제들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하여 여러 판본들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살펴볼 수 있었고, 또한 한나라 이후 꾸준히 논란이 되어 왔던 내용과 이를 바탕으로 전래본에서 수정 보완된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존 한국의 "논어" 연구는 후대의 전래본을 중심으로 그 철학적인 사상을 분석하는데 편중되어 왔다. 이들 연구는 상당부분 후대에 가미된 글자와 내용을 논어의 원문으로 오인하고, 이를 통해 추론해 낸 결론들도 원래의 사실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20세기 이래로,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힘입어 지하에서 출토되는 새로운 자료들에 대해 주위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에 출토되는 간독(簡牘)자료에 수많은 경전관련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일차 자료들을 정리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경학, 철학, 역사적인 의미 등을 추론해 낸다면 좀 더 근본적으로 고대사회의 정신문명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본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방향에서 "논어" 연구의 올바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기초적 작업으로서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신라왕릉 관계기사 검토(2) - 사료의 성격규명을 중심으로 - (Examination of Records related with Silla(新羅) Dynasty's Royal Tombs(2))

  • 이근직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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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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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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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본고는 $\ulcorner$삼국사기$\lrcorner$ 신라본기와 $\ulcorner$삼국유사$\lrcorner$ 왕력 및 기이편에 전하는 신라 능묘관련 기사들의 사료적 성격을 살펴 본 것이다. 그 결과 $\ulcorner$삼국사기$\lrcorner$ 신라본기의 표기방법은 당대의 장례절차를 외식하면서 기록한 것으로서 1차 자료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삼국유사 기이편은 왕릉이 조영된 후 일정기간이 지난 뒤 왕릉을 답사한 자에 의한 기록으로 2차 자료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왕력은 두 가지 방법을 혼용하고 있었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는 신라본기의 관련기사가 $\ulcorner$삼국유사$\lrcorner$의 왕력과 기이편의 경우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을 것으로 생각되나 그렇지 않았다. 또한 신라본기와 왕력 그리고 기이편은 편찬과 정에서 서로 다른 계통의 사료들을 저본으로 한 결과 같은 왕릉에 대해서도 일견 동일한 기록으로 생각되나 결과적으로는 다른 기사를 남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경명왕릉을 예로 하여, 왕력과 신라본기를 구체적으로 비교 검토한 결과 신라본기보다는 오히려 왕력의 사료적 가치가 높음을 증명하였다. 따라서 어느 특정 자료를 선택하고 나머지 관련자료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일방적인 판단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과 능묘관련 기사들은 현장조사를 통한 엄정한 사료비판을 거쳐야 함을 알 수 있었다. 즉, 능묘 발달과정 및 능묘주변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이해와 더불어 $\ulcorner$삼국사기$\lrcorner$$\ulcorner$삼국유사$\lrcorner$의 편찬과정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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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실험을 통한 중원지역 고대 제련-단야기술의 공정별 특성 연구 (Study on the Restoration of Ancient Smelting and Smithing Technologies in the Jungwon Area)

  • 이은우;곽병문;김은지;한영우;박종력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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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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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9-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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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고대 제철기술에 대한 연구는 고고학적 조사와 자연과학적 분석 자료를 기본으로 하며 복원실험 결과와의 비교분석을 통해 기술체계를 연구하게 된다.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조사를 통한 고대 중원지역의 제철기술은 직접제련법을 통한 탄소량이 낮은 1차 철소재를 생산하고 이를 단타가공하여 철기를 제작하는 체계로 확인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제련에서 단야로 이어지는 철 생산기술의 연구를 목적으로 20여회의 제련실험과 4회의 단야실험을 실시하였으며 생산한 철괴 및 부산물의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해 제철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비교하고자 하였다. 실험 및 분석의 종합적 연구결과 제련 및 단야공정에서 나타나는 물리화학적 성질의 변화 및 각 공정별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련의 경우 적절한 노 내 환원분위기 조성과 원활한 슬래그 분리를 통해 철의 회수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양질의 1차 철소재의 생산은 다음 공정의 효율성을 위해 중요한 것으로 확인된다. 직접제련을 통해 만들어진 철괴는 내부에 불순물이 존재할 수밖에 없어 정련단야를 통해 추가적으로 불순물을 제거하는 공정이 불가피하며 실험을 통해 단야 공정별 효과적인 노의 구조와 온도를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본 실험을 통해 제작된 철정의 자연과학적 분석 결과는 성분조성보다 1차적으로는 비금속개재물이나 기공 등 물리적 결함요인의 감소를 통한 품질의 개선이 더 중요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제철공정 부산물들의 비교연구 자료를 확보하였으며 추후 제철유적 출토유물 연구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유기잔존물 분석을 활용한 천연 수지 특성 분석 - 의정부 신곡동 유적 출토 목관 부착 유기물을 중심으로 - (Analysis of characteristics of natural resins using organic residue analysis organic materials attached on wooden coffins from Singok-dong Site, Uijeongbu)

  • 윤은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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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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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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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유기잔존물 분석(organic residues analysis)은 동식물의 종에 따라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 성분이 다르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유기물 시료의 종류를 밝혀내는 분석 방법이다. 본 연구에서는 의정부 신곡동 유적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회묘 내 목관 부착 유기잔존물과 현대 재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적용하여 유기잔존물의 주성분을 확인하고 유기물의 용도를 추정하여 과거 생활 모습을 밝힐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목관 부착 유기물과 현대 재료는 적외선 분광 분석(FT-IR)과 기체 크로마토그래피-질량 분석(GC-MS)을 수행하였다. 목관 내부에 부착된 유기물의 FT-IR 분석 결과 식물성 천연 수지 물질로 확인되었다. 또한 천연 수지의 특성 인자를 확인하기 위해 GC-MS 분석 결과 디하이드로아비트산(dehydroabietic acid), 피마릭산(pimaric acid) 등 아비탄(abietane)과 피마란(pimarane)의 디터페노이드(diterpenoid) 화합물과 포화·불포화지방산 성분이 함께 검출되었다. 디터페노이드 화합물은 주로 소나무과 수지에서 나타나는 성분이다. 소나무과 수지에서 기인하는 송진은 문헌에 접착제 재료로 사용된 기록이 있으며, 유기물 시료가 목관 이음새 부분에 잔존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목관에 부착되어 있던 유기물은 소나무과 수지로 만들어진 접착 물질로 추정된다. 또한 디터페노이드 화합물과 함께 검출된 지방산은 식물성 기름에서 유래된 성분으로, 문헌의 기록처럼 송진과 기름을 혼합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고고자료에 남아 있는 유기물이 매장 환경에서도 그 특성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당시 사용되었던 천연 수지의 종류와 용도를 밝힘으로써 과거 생활 모습 복원에 중요한 정보를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백제 제철로 및 제철기술의 복원을 위한 실험 고고학적 연구 (An experimental archaeological study on the Baekjae iron smelting furnace and its production process)

  • 이은우;한지선;채미희;김은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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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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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8-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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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한국 고대 제철기술의 규명을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백제 4세기대 유적인 진천 석장리 B-23호 원형 제철로를 모델로 제철로를 복원하고 전통 방법에 의한 고대 철생산 실험을 실시하였다. 2014년도부터 예비실험을 포함하여 수차례의 실험을 실시하였으며 본 고에서는 1차 및 2차 실험 결과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원료와 연료는 각각 철광석(자철석)과 목탄(참나무숯)을 사용하였으며 송풍은 4인용 발풀무를 사용하였다. 제련 생성물은 대부분 노하부에 철괴, 슬래그, 목탄이 뒤섞인 상태로 되어 있었는데 배재부와 송풍관을 기준으로 절단하여 위치별 철괴의 양을 측정한 결과 주로 송풍관측에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철이 형성되었다. 철괴는 생성 위치에 따라 다른 형태의 미세조직과 함탄량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전체적으로는 바닥부에 형성된 철의 함탄량이 상부에 형성된 철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한 조업에서도 직접 단야 조업에 활용할 수 있는 철소재와 함탄량이 높아 탈탄 처리하거나 주조에 사용할 수 있는 상태의 다양한 철이 생성된 것을 확인하였다. 2차 실험 유출 슬래그를 제외하면 대부분 철함량이 낮은 유리질 슬래그가 형성된 것으로 보아 철과의 분리가 잘 된 것으로 여겨진다. 고고학적 자료를 기본으로 하여 고대 제철로를 복원하고 전통 방법에 의한 조업을 실시함으로써 고대의 철생산 공정에 대한 연구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향후 지속적인 실험을 실시하여 백제 제철기술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집모양토기를 통한 가야 건축 연구 (A Study about Gaya Architecture with House-Shaped Earthenware)

  • 한욱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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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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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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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가야 건축과 관련한 건축적 증거는 그 어떤 지역보다도 미미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야 건축을 연구하는 데에는 가형토기라고도 불리는 집모양토기가 특히 도움이 된다. 집모양토기는 사용 목적이 건축적이지는 않지만 그 모습이 건축물을 모방하였기 때문에 당시 건축의 모습을 보다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그러나 집모양토기가 건축물을 모방하였다고는 하지만 본래 건축과는 상관없는 특별한 기능을 갖는 기물이므로 건축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보다는 본래의 기능에 맞는 형태로 변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그 형태를 살펴 건축적인 부분과 아닌 부분을 구분해내고 건축적인 부분을 통해 건축물의 모습을 규명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존하는 집모양토기의 건축적 고찰을 통하여 가야의 건축적 특성을 추정하는 것을 시도해보았다. 여기에는 역사기록과 함께 특히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고고학적 결과를 기초자료로 활용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집모양토기는 그 형태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각 유형은 각각 구별되는 건축 구조적 특성을 갖고 있다. 둘째, 한국을 비롯한 동양 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지붕면을 정면으로 하는 것과 비교할 때, 집모양토기에 나타나는 맞배지붕의 박공면을 정면으로 하는 건축 의장적 특성은 가야 건축이 갖는 매우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일부 고고학적 증거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가야 건축에서는 기능에 따른 다양한 유형의 건축물이 존재하였으며, 집모양토기는 이들 가운데 풍요의 상징성을 갖는 고상 창고, 축사, 주택의 형태를 모방하여 제작된 것이다.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 안사국(安邪國) (A Study of Dohang-Ri wooden coffin and Anya-Kuk)

  • 이주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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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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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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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삼한시대(三韓時代)의 성격과 성립시기(成立時期)에 대하여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어 있는 상황이나 모두 나름대로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헌자료의 기록과 고고자료상에서 서로 공통적으로 관련지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철기문화(鐵器文化)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며, 연(燕)의 철기문화(鐵器文化)를 갖춘 위만조선(衛滿朝鮮)의 성립은 근본적으로 한반도 북부지역 뿐 만 아니라 중 남부지역에 이르기까지 큰 파장을 미쳤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철기문화(鐵器文化)의 도입단계에는 철기(鐵器)의 실용적이고 희소적인 가치에 의해서 매장유구(埋葬遺構)에는 쉽게 부장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나 기원전 2세기 전반경부터는 일부 한정된 철기(鐵器)만이 매장유구(埋葬遺構)에 부장되는 경향이다. 따라서 삼한시대(三韓時代)의 성립시기는 철기의 도입과 보편적인 활용으로 보아야하며 목관(木棺)을 사용한 서북한지방(西北韓地方)의 토광묘문화(土壙墓文化)를 포함하여 중남부지역(中南部地域)에 있어서 목관(木棺)의 흔적이 확인되고 있는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 단계, 즉 기원전 3세기전반대의 어느 시점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한편 함안(咸安) 도항리고분군(道項里古墳群)에서 확인된 목관묘(木棺墓)는 목관(木棺)의 형태에 있어서 판재조립식목관(板材組立式木棺)과 통나무목관(木棺)의 2종류가 확인되며, 판재목관(板材木棺)의 사용 비율이 3배 이상 높은 편이다. 출토유물(出土遺物)은 비교적 단순한 조합상(組合相)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영남지역(嶺南地域)을 중심으로 한 목관묘유적(木棺墓遺蹟)에서도 모두 확인되고 있는 특징이므로 전반적으로 변(弁) 진한사회(辰韓社會)의 매장문화는 동일한 흐름 속에서 전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통나무로 제작한 목관(木棺)은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므로 한국식동검문화(韓國式銅劍文化)와 함께 목관(木棺)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생각되며,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과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에서만 이러한 목관(木棺)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는 것은 변한사회내(弁韓社會內)에서 양지역간(兩地域間)의 유기적인 관계를 살피는데 있어서 주목되어야 한다.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에서 출토되고 있는 철기류((鐵器類)도 거의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의 그것들과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도항리(道項里) 67호묘(號墓) 출토 주조철부(鑄造鐵斧)는 다호리 1호분에서 출토된 주조철부(鑄造鐵斧)와 같은 지금(地金)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소형철부(小形鐵斧)의 구성비율이 다른 철기류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것과 기경구(起耕具)로 이용되는 철제따비의 출토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단계에는 목제농기구(木製農器具)의 제작과 사용이 활발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에 비해 절대적으로 빈약한 철기유물은 안사국(安邪國)의 내적(內的)인 한계(限界)를 보여주는 것이며 소국(小國) 수장(首長)의 신분적(身分的)인 상징(象徵)으로서 사용하였던 동경(銅鏡)과 의기류(儀器類)의 출토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도항리목관묘(道項里木棺墓)를 조영한 집단(集團)은 당시 대외문화교류(對外文化交流)의 중심적인 선진지역(先進地域)에 비해서 사회문화적(社會文化的)인 변동(變動)이 덜한 주변 지역적인 성향이 강한 집단(集團)일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후 2세기 후반경 영남지역의 목관묘(木棺墓)는 목곽묘단계(木槨墓段階)로 변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도항리(道項里)와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에서도 목관묘(木棺墓)는 2세기대를 종점(終點)으로 사라진다. 고고자료상으로도 3세기에서 4세기대에 해당되는 적극적인 유구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석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3세기 전반 이후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일어났던 포상팔국(浦上八國)의 전쟁과 관련지어 합리적으로 추론하고자 한다. 즉 변한사회내(弁韓社會內)에서 도항리(道項里)와 다호리유적(茶戶里遺蹟)의 양집단(兩集團)은 낙동강(洛東江)과 남강수계(南江水系)를 장악한 교역(交易)의 중심지(中心地)로서 서로 경제적(經濟的) 정치적(政治的)인 공조체제(共助體制)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록에 보이는 포상팔국(浦上八國)의 대상국은 가나(加羅)와 아라국(砑羅國)이며, 가나(加羅)는 다호리집단(茶戶里集團)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포상팔국(浦上八國)의 전쟁시기도 기원 3세기 전반대의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이 전쟁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3세기 전반대 이후의 사건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4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양지역(兩地域)에서 뚜렷한 목곽묘(木槨墓)의 축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도 두 집단(集團)이 전쟁(戰爭)의 피해를 직접 받은 당사자였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