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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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관광지의 서비스 품질이 관광객 만족에 미치는 영향 -고궁(경복궁)의 전문성과 수정 HISTOQUAL을 중심으로- (Influence of Service Quality on Tourist Satisfaction in Cultural Heritage Tourist Destination -Focused on Expertise of Old Palace(Kyeongbokgung) and Revised HISTOQUAL-)

  • 양해윤;전인오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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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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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9-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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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의 목적은 고궁관광지의 만족도를 측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요인을 개발하는데 있다. Frochot & Hughes는 2000년 처음으로 문화유산관광지의 만족도 측정방법인 HISTOQUAL을 개발하였다. 본 연구는 발전된 HISTOQUAL에 전문성 요소를 추가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실증연구를 위한 모집단은 서울 경복궁에서 이루어졌으며 504부를 표본으로 하였다.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한 결과 관광지 서비스의 품질이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은 유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만족도는 재방문 및 추천의도에 미치는 영향도 모두 유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CAVE 환경에서의 문화재 가상협업 환경 구축 - 가상 경복궁 1868 (Implementation of Virtual Collaboratory on CAVE Environments - Virtual KyungBok Palace 1868)

  • 허영주;이중연;조민수
    • 한국정보처리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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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정보처리학회 2004년도 춘계학술발표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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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2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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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몰입형 가상현실 시스템의 발전은 더욱 현실감 있는 가상 현실의 구현을 가능케 했으며, 이런 몰입형 가상 현실의 현실감으로 인해 자동차 설계나 시뮬레이션 실험 등의 공학 분야에서부터 의료 분야에 이르기까지, 가상 현실은 그 실용 범위를 꾸준히 넓힐 수 있었다. 최근에는 문화재 복원 분야에 몰입형 가상현실 시스템을 사용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가상현실과 네트워크 환경을 접목해서 원거리에 있는 시스템 사용자들 간에 컨텐츠를 공유하고 상호작용을 교류하는 가상 협업 시스템도 실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본 논문에서는 가상협업환경에 가상 문화재 복원이라는 컨텐츠를 접목시킨 소프트웨어의 설계와 구현에 관해 논한다. 복원에 사용된 컨텐츠는 1868 년 흥선대원군이 중건했을 당시의 경복궁이며, 경복궁의 3D 모델링 데이터를 몰입형 가상 현실 시스템인 CAVE 환경에서 가시화하고 협업 환경을 구축하는데 구현의 초점을 맞추었다. 몰입형 가상 현실을 사용한 협업 시스템은 협업환경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응용 분야를 확장해서 사용자의 이해도와 체험도를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으므로, 향수 다양한 분야로 그 범위를 확장해서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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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 존덕정 일원 지당의 변형과 조영경위에 관한 고찰 (Study on the Transformation of Ponds and the Account of Reconstruction at Jondeokjeong Area in the Rear Garden of Changdeok Palace)

  • 정우진;송석호;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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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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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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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고종 연간 변형된 창덕궁 존덕정 일원의 지당을 대상으로 변모된 내용과 경위를 구명하고 조선시대 궁원 조영의 통시적 차원에서 이의 내적 맥락을 고찰한 것이다. 도출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존덕정 일원의 지당이 변형되기 시작한 시점은 19세기 후반에 촬영된 사진과 "고종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고종 21년(1884년)으로 판단하였다. 둘째, 개축 존덕정 일원의 지당은 향원지와 유사한 공간구성을 갖도록 정비되어 갔던 바, 고종이 창덕궁 환어 후 착수한 존덕정 일원 지당의 개조는 경복궁 건청궁과 향원지의 정감을 재현한 결과물로 판단된다. 셋째, 개축 존덕정 일원 지당의 교량은 연경당과 존덕정 영역을 통합하는 후원 기능 확장의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이것은 경복궁에서 건청궁이 향원정을 잇는 취향교를 통해 일대의 공간을 점유했던 방법과 같았다. 넷째, 고종때에 조성된 존덕정 일원 지당과 향원지는 연경당과 건청궁의 이용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며, 나아가 두 일곽의 위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다섯째, 개축 존덕정 일원의 지당은 단순히 고종의 경관을 감상하는 취향에 따라 필요한 공간을 조성한 것이 아니라, 선대부터 전승되어온 후원정당의 맥락상에 있는 조영체로 판단된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경복궁배치도"의 제작시기와 사료가치(史料價値)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Making Period and Historic Values of the "Kyeongbokgung-Baechido" held by the Korea University Museum)

  • 이혜원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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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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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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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Kyeongbokgung succeeded in regaining its status as a royal palace after the reconstruction that began in the second year of King Gojong(1865) only to have most of its buildings taken down in the early 20th century. Fortunately, however, there is the Pukkwoldohyong(Map of North Palace), which drew out each of the buildings of Kyeongbokgung and their arrangement in details in 1907 when the royal palace lost its original appearance. And there is another plot plan of the royal palace at the Korea University Museum, which labeled it Kyeongbokgung-Baechido(Planning Map of Kyeongbokgung Palace). The map presents almost the same plan as Pukkwoldohyong in terms of making and expressive methods, being estimated to have been made in 1888 since its building arrangement doesn't show the changes made after 1890. The map also offers more information about the uses of each building than Pukkwoldohyong and matches the excavation results of the relics. Kyeongbokgung-Jeondo(Map of Kyeongbokgung Palace), which is recorded to be made during the reconstruction of the palace in the early years of King Gojong in historical materials, describes the shapes and arrangements of the buildings in a concrete and realistic fashion. The Kyeongbokgung-Baechido seems to be one of the plans made in the process of restoring and repairing buildings that were lost or destroyed in fire. The Kyeongbokgung-Baschido has the following historic values; 1) it provides dues to estimate the early state of the palace after the reconstruction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In fact the Sujeongjeon and Heungbokjeon show the early state of the reconstruction; 2) it contains data with which to understand the changes to the palace after 1890, around which they added Hamhwadang and Jibokjae; and 3) it offers information about the uses of the palace's buildings from 1885 to 1880 with its descriptions of the building purposes and relationships regarding the life in the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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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경관의 시지각적 특성에 관한 연구 - 경복궁 내부의 조망점을 중심으로 - (Study on Characteristics of the Visual Perception of Historic Cultural Landscape - A Case of Gyeongbok Palace -)

  • 서주환;김수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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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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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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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오늘날의 도시는 도시가 지니는 역사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특징 있는 도시의 정체성을 찾기 힘들다. 이에 따라 도시의 정체성 및 역사성을 찾기 위한 역사문화경관의 보전이 중요해짐에 따라 서울 도심의 대표적인 역사문화경관인 경복궁을 대상으로 현대적 요소가 역사문화경관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구명하고자 한다. 분석결과, 경복궁의 역사문화경관은 조화성 개방감 역사성 등의 인자군이 도출되었고, 경관시뮬레이션의 선호도 분석결과, 현대적 경관의 유무에 따라 이들 사이에는 0.4 이상의 평균값의 차이를 확인하였다. 또한 사진별로 현대적 경관의 물리적 점유율 산출결과, 경복궁의 역사문화경관 이미지의 물리적 요소는 크게 전통적 요소 자연적 요소 현대적 요소 기타적 요소 등으로 구분되었으며, 이들과 선호도와의 관계성 분석 실시결과, 현대적 요소가 증가할수록 선호도는 감소하며, 자연적 요소가 증가할수록 선호는 증가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도출된 인자3가지와 선호도와의 관계성 분석결과, 조화성이 역사문화경관의 선호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침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는 현대적 요소의 물리량이 역사문화경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추후에는 현대적 경관의 비율에 따라 선호도에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한 후속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토대로 도시 내의 역사문화경관을 계획 재정립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경복궁 인수형(鱗獸形) 서수상(瑞獸像)의 제작시기와 별간역(別看役) 연구 (A Study on the Special Technician Byeolganyeok(別看役) and the Statues of Auspicious Animals(Seosusang, 瑞獸像) : the Scale-covered animal form(鱗獸形) in Gyeongbokgung Palace(景福宮))

  • 김민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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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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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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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경복궁(景福宮)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全燒)된 뒤 폐허로 남아 있다가 고종2년인 1865년 재건이 시작된다. 이때 경복궁 재건에 대한 의궤(儀軌)는 만들어지지 않고 기초 자료인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 1865년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간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내용들을 정리하면 경복궁 재건에 사용된 석재들은 강화(江華), 동대문 밖의 영풍정(映楓亭), 삼청동(三淸洞) 등지에서 채취하기도 했으며, 경복궁 터에 남아 있던 간의대(簡儀臺) 등의 옛 석물을 재사용(再使用)하기도 했다. 또 경희궁(慶熙宮)에 있던 여러 건물 및 석조물을 이전(移轉)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로 경복궁에는 재건기 19세기 뿐만 아니라 17~18세기의 석조물이 공존하고 있다. "경복궁영건일기"에는 경회루(慶會樓) 연못에서 출토된 청동용(靑銅龍)이 별간역(別看役) 김재수(金在洙)가 1865년 궁궐의 화재를 막아달라는 의미를 담아 제작했다는 내용이 있다. 김재수 등 별간역들은 석물의 설계 및 감동(監董)을 했던 인물들로 광화문 해치상을 조각했다고 전해지던 이세옥(李世玉) 역시 화원(畵員) 출신의 별간역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의 설계를 바탕으로 실제 조각을 담당한 석장(石匠)들도 찾을 수 있었는데 근정전(勤政殿)은 장성복(張聖福), 광화문(光化門)은 김진명(金振明)이 참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경복궁의 서수상(瑞獸像) 중 비늘이 있는 인수형(鱗獸形) 서수상의 양식 특징을 찾은 결과 돌출된 입과 큰 코, 형식적인 귀, 등 갈기 등을 꼽을 수 있었다. 이러한 양식 특징을 조선시대 능묘(陵墓) 석물들과 비교한 결과 이 작품들은 고종 재건시인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양식 계승은 별간역, 석장들이 능묘의 석조물을 제작하면서 얻은 결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복궁 아미산의 조영과 조산설(造山說)에 관한 고찰 (Studies on the Construction and the Artificial Mountain Theory of Amisan in the Gyeongbok Palace)

  • 정우진;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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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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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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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사료 및 도상자료의 분석을 통하여 경복궁 교태전 북쪽의 아미산 화계가 인공산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재검토하고 반론을 제기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경회지를 판 흙으로 아미산을 조산했다는 논리는 그간 정설로 여겨졌으며, 의심 없이 대부분의 경복궁 관련 논저와 단행본에서 반복되어 기술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사료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 아미산 조산설에 대해 몇 가지 반론을 제기하였는데, 기존 주장에 내재된 논리적 모순, 경회지 축조시기와 교태전 건립 시점의 불일치, 영조와 고종 연간에 제작된 도형사료에서 나타난 백악산과 아미산을 잇는 산줄기의 존재, 아미산 북쪽에 있는 흥복전에서 동쪽 담장을 경계로 높은 위차를 보이고 통행기능이 없다는 점, 중건 당대에 아미산을 풍수적인 아미사(蛾眉砂)로 인식하고 있는 것과 세종 연간에 경복궁 주산논쟁 결과 조치된 경복궁 내맥의 보존에 관한 주장이 그것이다. 아울러 본 연구에서는 교태전 북쪽의 언덕이 아미산으로 불러지게 된 기원과 잘못된 조산설이 등장하게 된 원인을 규명하였는데, 풍수용어 아미사가 음변되어 아미산이 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중국 사천에 있는 도불(道佛)성지인 아미산을 모방한 의경의 조성과 천연두신을 퇴치하기 위한 벽사적 의미의 아미산 조영관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또한 아미산 조산설은 천지조산(穿池造山)식 조경법식을 경회지와 아미산에 소급시킨 것으로 보이며, 1980년대를 전후로 주장이 등장하게 된 것으로 조사 되었다. 백악산과 아미산을 잇는 용맥은 일제가 1915년 경복궁에 개최한 대규모 박람회를 기점으로 상당부분 절토되었으나, 교태전 동북쪽에 위치한 탐방로를 따라 낮은 둔덕이 약 70m 가량 이어져 있어 일제 강점기에 이 지맥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표고분석 결과 녹산에서 아미산까지 불연속적인 언덕이 일정한 축을 이루는 것이 발견되어 아미산의 용맥을 대략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아미산 용맥에 관한 기초연구를 통해 향후 경복궁 지형복원의 주요한 단서를 제공하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