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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tion and Construction Characteristics of Imdaejeong Wonlim based on Documentation (기문(記文)을 중심으로 고찰한 임대정원림(臨對亭園林)의 입지 및 조영 특성)

  • Rho, Jae-Hyun;Park, Tae-Hee;Shin, Sang-Sup;Kim, Hyoun-Wuk
    • Journal of the Korean Institute of Traditional Landscape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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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29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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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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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Imdaejeong Wonlim is located on the verge of Sangsa Village in Sapyeong-ri, Daepyeong-myeon, Hwasun-gun Gyeongsangnam-do toward Northwest. It was planned by Sa-ae, Minjuhyeon in 1862 on the basis of Gobanwon built by Nam Eongi in 16th century against the backdrop of Mt. Bongjeong and facing Sapyeong Stream. As water flows from west to east in the shape of crane, this area is a propitious site standing for prosperity and happiness. This area shows a distinct feature of Wonlim surrounding the Imdaejeong with multi layers as consisting of 5 districts - front yard where landmark stone with engraved letters of 'Janggujiso of Master Sa-ea' and junipers are harmoniously arranged, internal garden of upper pavilion ranging from a pavilion to square pond with a little island in the middle, Sugyeongwon of under pavilionu consisting of 2 ponds with a painting of three taoist hermits, forest of Mt. Bonggeong and external garden including Sapyeong Stream and farmland. According to documentation and the results of on-site investigation, it is certainly proved that Imdaejeong Wonlim was motivated by Byeoseo Wonlim which realized the idea of 'going back to hometown after resignation' following the motives of Janggujiso, a hideout aimed to accomplish the ideology, 'training mind and fostering innate nature,' on the peaceful site surrounded by water and mountain, as well as motives of Sesimcheo(洗心處) to be unified with morality of Mother Nature, etc. In addition, it implies various imaginary landscapes such as Pihangji, Eupcheongdang, square pond with an island and painting of three Taoist hermits based on a notion that 'the further scent flies away, the fresher it becomes,' which is originated from Aelyeonseol(愛蓮說). In terms of technique of natural landscape treatment, divers techniques are found in Imdaejeong Wonlim such as distant view of Mt. Bongjeong, pulling view with an intention of transparent beauty of moonlight, circle view of natural and cultural sceneries on every side, borrowed scenary of pastoral rural life adopted as an opposite view, looked view of Sulyundaero, over looked view of pond, static view in pavilion and paths, close view of water space such as stream and pond, mushroom-and-umbrella like view of Imdaejeong, vista of pond surrounded by willows, imaginary view of engraved letters meaning 'widen knowledge by studying objectives' and selected view to comprise sunrise and sunset at the same time. In the beginning of construction, various plants seemed to be planted, albeit different from now, such as Ginkgo biloba, Phyllostachys spp., Salix spp., Pinus densiflora, Abies holophylla, Morus bombycis, Juglans mandschurica, Paulownia coreana, Prunus mume, Nelumbo nucifera, etc. Generally, it reflected dignity of Confucianism or beared aspect of semantic landscape implying Taoist taste and idea of Phoenix wishing a prosperity in the future. Furthermore, a diversity of planting methods were pursued for such as liner planting for the periphery of pond, bosquet planting and circle planting adopted around the pavilion, spot planting using green trees, solitary planting of monumentally planted Paulownia coreana and opposite planting presenting the Abies holophylla into yin and yang.

과학자(科學者)의 정보생산(情報生産) 계속성(繼續性)과 정보유통(情報流通)(2)

  • Garvey, W.D.
    • Journal of Information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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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6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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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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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
  • 본고(本稿)시리이즈의 제1보(第一報)에서 우리는 물리(物理), 사회과학(社會科學) 및 공학분야(工學分野)의 12,442명(名)의 과학자(科學者)와 기술자(技術者)에 대한 정보교환활동(情報交換活動)의 78례(例)에 있어서 일반과정(一般過程)과 몇 가지 결과(結果)를 기술(記述)한 바 있다. 4년반(年半) 이상(以上)의 기간(其間)($1966{\sim}1971$)에서 수행(遂行)된 이 연구(硏究)는 현재(現在)의 과학지식(科學知識)의 집성체(集成體)로 과학자(科學者)들이 연구(硏究)를 시작(始作)한 때부터 기록상(記錄上)으로 연구결과(硏究結果)가 취합(聚合)될 때까지 각종(各種) 정형(定形), 비정형(非定形) 매체(媒體)를 통한 유통정보(流通情報)의 전파(傳播)와 동화(同化)에 대한 포괄적(包括的)인 도식(圖式)으로 표시(表示)할 수 있도록 설정(設定)하고 또 시행(施行)되었다. 2보(二報), 3보(三報), 4보(四報)에서는 데이터 뱅크에 수집(蒐集) 및 축적(蓄積)된 데이터의 일반적(一般的)인 기술(記述)을 적시(摘示)하였다. (1) 과학(科學)과 기술(技術)의 정보유통(情報流通)에 있어서 국가적(國家的) 회합(會合)의 역할(役割)(Garvey; 4보(報)) 국가적(國家的) 회합(會合)은 투고(投稿)와 이로 인한 잡지중(雜誌中) 게재간(揭載間)의 상대적(相對的)인 오랜 기간(期間)동안 이러한 연구(硏究)가 공개매체(公開媒體)로 인하여 일시적(一時的)이나마 게재여부(揭載如否)의 불명료성(不明瞭性)을 초래(招來)하기 전(前)에 과학연구(科學硏究)의 초기전파(初期傳播)를 위하여 먼저 행한 주요(主要) 사례(事例)와 마지막의 비정형매체(非定形媒體)의 양자(兩者)를 항상 조직화(組織化)하여 주는 전체적(全體的)인 유통과정(流通過程)에 있어서 명확(明確)하고도 중요(重要)한 기능(機能)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 잡지(雜誌)에 게재(揭載)된 정보(情報)의 생산(生産)과 관련(關聯)되는 정보(情報)의 전파과정(傳播過程)(Garvey; 1보(報)). 이 연구(硏究)를 위해서 우리는 정보유통과정(情報流通過程)을 따라 많은 노력(努力)을 하였는데, 여기서 유통과정(流通過程)의 인상적(印象的)인 면목(面目)은 특별(特別)히 연구(硏究)로부터의 정보(情報)는 잡지(雜誌)에 게재(揭載)되기까지 진정으로는 공개적(公開的)이 못된다는 것과 이러한 사실(事實)은 선진연구(先進硏究)가 자주 시대(時代)에 뒤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험(經驗)이 많은 정보(情報)의 수요자(需要者)는 이러한 폐물화(廢物化)에 매우 민감(敏感)하며 자기(自己) 연구(硏究)에 당면한, 진행중(進行中)이거나 최근(最近) 완성(完成)된 연구(硏究)에 대하여 정보(情報)를 얻기 위한 모든 수단(手段)을 발견(發見)코자 하였다. 예를 들어, 이들은 잡지(雜誌)에 보문(報文)을 발표(發表)하기 전(前)에 발생(發生)하는 정보전파과정(情報傳播過程)을 통하여 유루(遺漏)될지도 모르는 정보(情報)를 얻기 위하여 한 잡지(雜誌)나 2차자료(二次資料) 또는 전형적(典型的)으로 이용(利用)되는 다른 잡지류중(雜誌類中)에서 당해정보(當該情報)가 발견(發見)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3) "정보생산 과학자(情報生産 科學者)"에 의한 정보전파(情報傳播)의 계속성(繼續性)(이 연구(硏究) 시리이즈의 결과(結果)는 본고(本稿)의 주내용(主內容)으로 되어 있다.) 1968/1969년(年)부터 1970/1971년(年)의 이년기간(二年期間)동안 보문(報文)을 낸 과학자(科學者)(1968/1969년(年) 잡지중(雜誌中)에 "질이 높은" 보문(報文)을 발표(發表)한)의 약 2/3는 1968/1969의 보문(報文)과 동일(同一)한 대상영역(對象領域)의 연구(硏究)를 계속(繼續) 수행(遂行)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본연구(本硏究)에 오른 대부분(大部分)의 저자(著者)가 정상적(正常的)인 과학(科學), 즉 연구수행중(硏究遂行中) 의문(疑問)에 대한 완전(完全)한 해답(解答)을 얻게 되는 가장 중요(重要)한 추구(追求)로서 Kuhn(제5보(第5報))에 의하여 기술(技術)된 방법(방법)으로 과학(연구)(科學(硏究))을 실행(實行)하였음을 알았다. 최근(最近)에 연구(硏究)를 마치고 그 결과(結果)를 보문(報文)으로서 발표(發表)한 이들 과학자(科學者)들은 다음 단계(段階)로 해야 할 사항(事項)에 대하여 선행(先行)된 동일견해(同一見解)를 가진 다른 연구자(硏究자)들의 연구(硏究)와 대상(對象)에 밀접(密接)하게 관련(關聯)되고 있다. 이 계속성(繼續性)의 효과(效果)에 대한 지표(指標)는 보문(報文)과 동일(同一)한 영역(領域)에서 연구(硏究)를 계속(繼續)한 저자(著者)들의 약 3/4은 선행(先行) 보문(報文)에 기술(技術)된 연구결과(硏究結果)에서 직접적(直接的)으로 새로운 연구(硏究)가 유도(誘導)되었음을 보고(報告)한 사항(事項)에 반영(反映)되어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데이터는 다음 영역(領域)으로 기대(期待)하지 않은 전환(轉換)을 일으킬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일(同一) 대상(對象)에서 연구(硏究)를 속행(續行)하였던 저자(著者)들의 1/5 이상(以上)은 뒤에 새로운 영역(領域)으로 연구(硏究)를 전환(轉換)하였고 또한 이 영역(領域)에서 연구(硏究)를 계속(繼續)하였다. 연구영역(硏究領域)의 이러한 변화(變化)는 연구자(硏究者)의 일반(一般) 정보유통(情報流通) 패턴에 크게 변화(變化)를 보이지는 않는다. 즉 새로운 지적(知的) 문제(問題)에 대한 변화(變化)에서 야기(惹起)되는 패턴에 있어서 저자(著者)들은 오래된 문제(問題)의 방법(方法)과 기술(技術)을 새로운 문제(問題)로 맞추려 한다. 과학사(科學史)의 최근(最近) 해석(解釋)(Hanson: 6보(報))에서 예기(豫期)되었던 바와 같이 정상적(正常的)인 과학(科學)의 계속성(繼續性)은 항상 절대적(絶對的)이 아니며 "과학지식(科學知識)"의 첫발자욱은 예전 연구영역(硏究領域)의 대상(對象)에 관계(關係)없이 나타나는 다른 영역(領域)으로 내딛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연구(硏究)에서 저자(著者)의 1/3은 동일(同一) 영역(領域)의 대상(對象)에서 속계적(續繼的)인 연구(硏究)를 수행(遂行)치 않고 새로운 영역(領域)으로 옮아갔다. 우리는 이와 같은 데이터를 (a) 저자(著者)가 각개과학자(各個科學者)의 활동(活動)을 통하여 집중적(集中的)인 과학적(科學的) 노력(努力)을 시험(試驗)할 때 각자(各自)의 연구(硏究)에 대한 많은 양(量)의 계속성(繼續性)이 어떤 진보중(進步中)의 과학분야(科學分野)에서도 나타난다는 것과 (b) 이 계속성(繼續性)은 과학(科學)에 대한 집중적(集中的) 진보(進步)의 필요적(必要的) 특질(特質)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는 이 계속성(繼續性)과 관련(關聯)되는 유통문제(流通問題)라는 새로운 대상영역(對象領域)으로 전환(轉換)할 때 연구(硏究)의 각단계(各段階)의 진보(進步)와 새로운 목적(目的)으로 전환시(轉換時) 양자(兩者)가 다 필요(必要)로 하는 각개(各個) 과학자(科學者)의 정보수요(情報需要)를 위한 시간(時間) 소비(消費)라는 것을 탐지(探知)할 수 있다. 이러한 관찰(觀察)은 정보(情報)의 선택제공(選擇提供)시스팀이 현재(現在) 필요(必要)로 하는 정보(情報)의 만족(滿足)을 위하여는 효과적(效果的)으로 매우 융통성(融通性)을 띠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暗示)하는 것이다. 본고(本稿)의 시리이즈에 기술(記述)된 전정보유통(全情報流通) 과정(過程)의 재검토(再檢討) 결과(結果)는 과학자(科學者)들이 항상 그들의 요구(要求)를 조화(調和)시키는 신축성(伸縮性)있는 유통체제(流通體制)를 발전(發展)시켜 왔다는 것을 시사(示唆)해 주고 있다. 이 시스팀은 정보전파(情報傳播) 사항(事項)을 중심(中心)으로 이루어 지며 또한 이 사항(事項)의 대부분(大部分)의 참여자(參與者)는 자기자신(自己自身)이 과학정보(科學情報) 전파자(傳播者)라는 기본적(基本的)인 정보전파체제(情報傳播體制)인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過程)의 유통행위(流通行爲)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대부분(大部分)의 정보전파자(情報傳播者)가 역시 정보(情報)의 동화자(同化者)-다시 말해서 과학정보(科學情報)의 생산자(生産者)는 정보(情報)의 이용자(利用者)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연구(硏究)에서 전형적(典型的)인 과학자((科學者)는 과학정보(科學情報)의 생산(生産)이나 전파(傳播)의 양자(兩者)에 연속적(連續的)으로 관계(關係)하고 있음을 보았다. 만일(萬一) 연구자(硏究者)가 한 편(編)의 연구(硏究)를 완료(完了)한다면 이 연구자(硏究者)는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관념(觀念)을 갖게 되고 따라서 "완료(完了)된" 연구(硏究)에 관한 정보(情報)를 이용(利用)하여 동시(同時)에 새로운 일을 시작(始作)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 과학자(科學者)가 동일(同一) 영역(領域)의 다른 동료연구자(同僚硏究者)에게 완전(完全)하며 이의(異議)에 방어(防禦)할 수 있는 보고서(報告書)를 제공(提供)할 수 있는 단계(段階)에 도달(到達)하였다면 우리는 이 과학자(科學者)가 정보유통과정(情報流通過程)에서 많은 역할(役割)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즉 이 과학자(科學者)는 다른 과학자(科學者)들에게 최신(最新)의 과학적(科學的) 결과(結果)를 제공(提供)할 때 하나의 과학정보(科學情報) 전파자(傳播者)가 되며, 이 연구(硏究)의 의의(意義)와 타당성(妥當性)에 관한 논평(論評)이나 비평(批評)을 동료(同僚)로부터 구(求)하는 관점(觀點)에서 보면 이 과학자(科學者)는 하나의 정보탐색자(情報探索者)가 된다. 또한 장래(將來)의 이용(利用)을 위하여 증정(贈呈)이나 동화(同化)한 이 정보(情報)로부터 피이드백을 받아 드렸을 때의 범주(範疇)에서 보면 (잡지(雜誌)에 투고(投稿)하기 위하여 원고(原稿)를 작성(作成)하는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과학자(科學者)는 하나의 정보이용자(情報利用者)가 되고 이러한 모든 가능성(可能性)에서 정보생산자(情報生産者)는 다음 정보생산(情報生産)에 이미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다(저자(著者)들의 2/3는 보문(報文)이 게재(揭載)되기 전(前)에 이미 새로운 연구(硏究)를 시작(始作)하였다). 과학자(科學者)가 자기연구(自己硏究)를 마치고 예비보고서(豫備報告書)를 만든 후(後) 자기연구(自己硏究)에 관한 정보(情報)의 전파(傳播)를 계속하게 되는데 이와 관계(關係)되는 일반적(一般的)인 패턴을 보면 소수(少數)의 동료(同僚)그룹에 출석(出席)하는 경우 (예로 지역집담회)(地域集談會))와 대중(大衆) 앞에서 행(行)하는 경우(예로 국가적 회합(國家的 會合)) 등이 있다. 그러는 동안에 다양성(多樣性) 있는 성문보고서(成文報告書)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과학자(科學者)들이 자기연구(自己硏究)를 위한 주정보전파목표(主情報傳播目標)는 과학잡지중(科學雜誌中)에 게재(揭載)되는 보문(報文)이라는 것이 명확(明確)한 사실(事實)인 것이다. 이러한 목표(目標)에 도달(到達)할 때까지의 각(各) 정보전파단계(情報傳播段階)에서 과학자(科學者)들은 목표달성(目標達成)을 위하여 청중(聽衆), 자기동화(自己同化)된 정보(情報) 및 이미 이용(利用)된 정보(情報)로부터 피이드백을 탐색(探索)하게 된다. 우리가 본고(本稿)의 시리이즈중(中)에 표현(表現)하려 했던 바와 같이 이러한 활동(活動)은 조사수임자(調査受任者)의 의견(意見)이 원고(原稿)에 반영(反映)되고 또 그 원고(原稿)가 잡지게재(雜誌揭載)를 위해 수리(受理)될 때까지 계속적(繼續的)으로 정보(情報)를 탐색(探索)하는 과학자(科學者)나 기타(其他)사람들에게 효과적(效果的)이었다. 원고(原稿)가 수리(受理)되면 그 원고(原稿)의 저자(著者)들은 그 보문(報文)의 주내용(主內容)에 대하여 적극적(積極的)인 정보전파자(情報傳播者)로서의 역할(役割)을 종종 중지(中止)하는 일이 있는데 이때에는 저자(著者)들의 역할(役割)이 변화(變化)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이 저자(著者)들은 일시적(一時的)이긴 하나 새로운 일을 착수(着手)하기 위하여 정보(情報)의 동화자(同化者)를 찾게 된다. 또한 전(前)에 행한 일에 대한 의견(意見)이나 비평(批評)이 새로운 일에 영향(影響)을 끼치게 된다. 동시(同時)에 새로운 과학정보생산(科學情報生産) 과정(過程)에 들어가게 되고 현재(現在) 진행중(進行中)이거나 최근(最近) 완료(完了)한 연구(硏究)에 대한 정보(情報)를 항상 찾게 된다. 활발(活潑)한 연구(硏究)를 하는 과학자(科學者)들에게는, 동화자(同化者)로서의 역할(役割)과 전파자(傳播者)로서의 역할(役割)을 분리(分離)시킨다는 것은 실제적(實際的)은 못된다. 즉 후자(後者)를 완성(完成)하기 위해서는 전자(前者)를 이용(利用)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자(科學者)들은 한 단계(段階)에서 한 전파자(傳播者)로서의 역할(役割)이 뚜렷하나 다른 단계(段階)에서는 정보교환(情報交換)이 기본적(基本的)으로 정보동화(情報同化)에 직결(直結)되고 있는 것이다. 정보전파자(情報傳播者)와 정보동화자간(情報同化者間)의 상호관계(相互關係)(또는 정보생산자(情報生産者)와 정보이용자간(情報利用者間))는 과학(科學)에 있어서 하나의 필수양상(必修樣相)이다. 과학(科學)의 유통구조(流通構造)가 전파자(傳播者)(이용자(利用者)로서의 역할(役割)보다는)의 필요성(必要性)에서 볼 때 복잡(複雜)하고 다이나믹한 시스팀으로 구성(構成)된다는 사실(事實)은 과학(科學)의 발전과정(發展過程)에서 필연적(必然的)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사실(事實)은 과학정보(科學情報)의 전파요원(傳播要員)이 국가적 회합(國家的 會合)에서 자기연구(自己硏究)에 대한 정보(情報)의 전파기회(傳播機會)를 거절(拒絶)하고 따라서 전파정보(電波情報)를 판단(判斷)하고 선별(選別)하는 것을 감소(減少)시키며 결과적(結果的)으로 잡지(雜誌)나 단행본(單行本)에서 비평(批評)을 하고 추고(推敲)하는 것이 배제(排除)될 때는 유형적(有形的) 과학(科學)은 급속(急速)히 비과학성(非科學性)을 띠게 된다는 것을 Lysenko의 생애(生涯)에 대한 Medvedev의 기술중(記述中)[7]에 지적(指摘)한 것과 관계(關係)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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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Eung-hwan's Official Excursion for Drawing Scenic Spots in 1788 and his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1788년 김응환의 봉명사경과 《해악전도첩(海嶽全圖帖)》)

  • Oh, Dayun
    • MISULJARYO - National Museum of Korea Ar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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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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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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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The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comprises sixty real scenery landscape paintings depicting Geumgangsan Mountain, the Haegeumgang River, and the eight scenic views of Gwandong regions, as well as fifty-one pieces of writing. It is a rare example in terms of its size and painting style. The paintings in this album, which are densely packed with natural features, follow the painting style of the Southern School yet employ crude and unconventional elements. In them, stones on the mountains are depicted both geometrically and three-dimensionally. Since 1973, parts of this album have been published in some exhibition catalogues. The entire album was opened to the public at the special exhibition "Through the Eyes of Joseon Painters: Real Scenery Landscapes of Korea" held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n 2019. The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was attributed to Kim Eung-hwan (1742-1789) due to the signature on the final leaf of the album and the seal reading "Bokheon(painter's penname)" on the currently missing album leaf of Chilbodae Peaks. However, there is a strong possibility that this signature and seal may have been added later. This paper intends to reexamine the creator of this album based on a variety of related factors. In order to understand the production background of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I investigated the eighteenth-century tradition of drawing scenic spots while travelling in which scenery of was depicted during private travels or official excursions. Jeong Seon(1676-1759), Sim Sa-jeong(1707-1769), Kim Yun-gyeom(1711-1775), Choe Buk(1712-after 1786), and Kang Se-hwang(1713-1791) all went on a journey to Geumgangsan Mountain, the most famous travel destination in the late Joseon period, and created paintings of the mountain, including Album of Pungak Mountain in the Sinmyo Year(1711) by Jeong Seon. These painters presented their versions of the traditional scenic spots of Inner Geumgangsan and newly depicted vistas they discovered for themselves. To commemorate their private visits, they produced paintings for their fellow travelers or sponsors in an album format that could include several scenes. While the production of paintings of private travels to Geumgangsan Mountain increased, King Jeongjo(r. 1776-1800) ordered Kim Eung-hwan and Kim Hong-do, court painters at the Dohwaseo(Royal Bureau of Painting), to paint scenic spots in the nine counties of the Yeongdong region and around Geumgangsan Mountain. King Jeongjo selected these two as the painters for the official excursion taking into account their relationship, their administrative experience as regional officials, and their distinct painting styles. Starting in the reign of King Yeongjo(r. 1724-1776), Kim Eung-hwan and Kim Hong-do served as court painters at the Dohwaseo, maintained a close relationship as a senior and a junior and as colleagues, and served as chalbang(chief in large of post stations) in the Yeongnam region. While Kim Hong-do was proficient at applying soft and delicate brushstrokes, Kim Eung-hwan was skilled at depicting the beauty of robust and luxuriant landscapes. Both painters produced about 100 scenes of original drawings over fifty days of the official excursion. Based on these original drawings, they created around seventy album leaves or handscrolls. Their paintings enriched the tradition of depicting scenic spots, particularly Outer Inner Geumgang and the eight scenic views of Gwandong around Geumgangsan Mountain during private journeys in the eighteenth century. Moreover, they newly discovered places of scenic beauty in the Outer Geungang and Yeongdong regions, establishing them as new painting themes. The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consists of four volumes. The volumes I, II include twenty-nine paintings of Inner Geumgangsan; the volume III, seventeen scenes of Outer Geumgangsan; and the volume IV, fourteen images of Maritime Geumgangsan and the eight scenic views of Gwandong. These paintings produced on silk show crowded compositions, geometrical depictions of the stones and the mountains, and distinct presentation of the rocky peaks of Geumgangsan Mountain using white and grayish-blue pigments. This album reflects the Joseon painting style of the mid- and late eighteenth century, integrating influences from Jeong Seon, Kang Se-hwang, Sim Sa-jeong, Jeong Chung-yeop(1725-after 1800), and Kim Hong-do. In particular, some paintings in the album show similarities to Kim Hong-do's Album of Famous Mountains in Korea in terms of its compositions and painterly motifs. However, "Yeongrangho Lake," "Haesanjeong Pavilion," and "Wolsongjeong Pavilion" in Kim Eung-hwan's album differ from in the version by Kim Hong-do. Thus, Kim Eung-hwan was influenced by Kim Hong-do, but produced his own distinctive album. The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includes scenery of "Jaundam Pool," "Baegundae Peak," "Viewing Birobong Peak at Anmunjeom groove," and "Baekjeongbong Peak," all of which are not depicted in other albums. In his version, Kim Eung-hwan portray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natural features in each scenic spot in a detailed and refreshing manner. Moreover, he illustrated stones on the mountains using geometric shapes and added a sense of three-dimensionality using lines and planes. Based on the painting traditions of the Southern School, he established his own characteristics. He also turned natural features into triangular or rectangular chunks. All sixty paintings in this album appear rough and unconventional, but maintain their internal consistency. Each of the fifty-one writings included in the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is followed by a painting of a scenic spot. It explains the depicted landscape, thus helping viewers to understand and appreciate the painting. Intimately linked to each painting, the related text notes information on traveling from one scenic spot to the next, the origins of the place names, geographic features, and other related information. Such encyclopedic documentation began in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and was common in painting albums of Geumgangsan Mountain in the mid- nineteenth century. The text following the painting of Baekhwaam Hermitage in the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documents the reconstruction of the Baekhwaam Hermitage in 1845, which provides crucial evidence for dating the text. Therefore, the owner of the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might have written the texts or asked someone else to transcribe them in the mid- or late nineteenth century. In this paper, I have inferred the producer of the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to be Kim Eung-hwan based on the painting style and the tradition of drawing scenic spots during official trips. Moreover, its affinity with the Handscroll of Pungak Mountain created by Kim Ha-jong(1793-after 1878) after 1865 is another decisive factor in attributing the album to Kim Eung-hwan. In contrast to the Album of Famous Mountains in Korea by Kim Hong-do, the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exerted only a minor influence on other painters. The Handscroll of Pungak Mountain by Kim Ha-jong is the sole example that employs the subject matter from the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and follows its painting style. In the Handscroll of Pungak Mountain, Kim Ha-jong demonstrated a painting style completely different from that in the Album of Seas and Mountains that he produced fifty years prior in 1816 for Yi Gwang-mun, the magistrate of Chuncheon. He emphasized the idea of "scholar thoughts" by following the compositions, painterly elements, and depictions of figures in the painting manual style from Kim Eung-hwan's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Kim Ha-jong, a member of the Gaeseong Kim clan and the eldest grandson of Kim Eung-hwan, is presumed to have appreciated the paintings depicted in the nature of Album of Complete Views of Seas and Mountains, which had been passed down within the family, and newly transformed them. Furthermore, the contents and narrative styles of Yi Yu-won's writings attached to the paintings in the Handscroll of Pungak Mountain are similar to those of the fifty-one writings in Kim Eunghwan's album. This suggests a possible influence of the inscriptions in Kim Eung-hwan's album or the original texts from which these inscriptions were quoted upon the writings in Kim Ha-jong's handscroll. However, a closer examination will be needed to determine the order of the transcription of the writings. The Album of Complete View of Seas and Mountains differs from Kim Hong-do's paintings of his official trips and other painting albums he influenced. This album is a siginificant artwork in that it broadens the understanding of the art world of Kim Eung-hwan and illustrates another layer of real scenery landscape paintings in the late eighteenth cent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