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朱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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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수인(王守仁)의 『대학(大學)』관(觀) 연구(硏究) - 「대학문(大學問)」을 중심으로 - (The study in Wangshouren's viewpoint of 「Daxue」- with 「Daxuewen」 as the focus)

  • 임홍태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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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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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9-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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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왕수인 철학의 개념과 구조는 "대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왕수인 심학의 체계성은 "대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심 의 지 물이라는 네 가지 개념의 관계상에서 구축된 것으로, "대학문"은 사구교와 마찬가지로 "대학"의 8조목 가운데 특히 심 의 지 물이라는 네 개의 개념을 체계로 하는 일련의 공부과정이다. "대학" 공부론에 대한 왕수인의 사고를 더듬어보면, 초기의 격물 중심에서 성의에로, 다시 성의에서 치지로 그 공부방법이 바뀌어 감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사상의 심화과정이자 교학사상의 변화과정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는 또한 왕수인 공부론의 내재화 과정이기도 하다. 왕수인은 초기에 주희의 격물론에 심취하여 내 마음 밖에서 이치를 구하는 방법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외향적인 공부방법은 이후 용장오도를 통해 '심즉리'를 주창하면서 점차 내향적인 방법으로 전환하기에 이른다. 왕수인은 "대학문"에서 "대학"의 정심 성의 치지 격물에 대한 해석을 통해 심 의 지 물을 일물일물一物로, 정 성 치 격을 일사一事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이전의 격물 중심의 공부에서 성의 중심의 공부로, 다시 성의 중심의 공부에서 치지 중심의 공부로의 변화과정을 총괄하여 모든 공부의 합일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대학문(大學問)" 이전과 "대학문(大學問)" 이후의 자료를 비교 분석하여 왕수인의 대학관이 시기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있고, 각 과정에서의 공부의 중점은 어디에 있으며, 이는 왕수인사상의 변화과정 가운데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이를 통해 왕수인의 "대학"관에 대한 전반적인 조명이 가능할 것이다.

주자 격물치지를 통한 인성교육적 요소와 원리 고찰 (An Implication of Moral Education in Zhu-zi's doctrines- Focused on the 'gaining knowledge by the study of things(格物致知)')

  • 이연정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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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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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5-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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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본질적으로 당면한 과제는 실상 인간의 자질, 인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현 교육의 실상과 현행법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인성'에 대한 동양철학에서의 연구는 양명학의 입장에서 이루어져 왔으나, 사실 주자학에서 그 실제적인 교육원리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바로 육왕이 비판하는 주자의 '격물치지' 공부이다. 본 연구는 지(知)공부로 알려져 있는 격물치지가 인성교육에 있어 적용되는 실제적인 원리를 모색할 수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본 연구는 주자학의 수양공부특성인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의 관계를 고찰하고, 도문학의 주요 방법인 격물과 치지를 검토함으로써 주희공부의 특성을 살펴보도록 한다. 그리고는 격물과 치지의 과정과 원리를 통해 인성 교육적 요소와 교육현장에서 적용될 수 있는 원리를 탐색함으로써 이 시대에 적합한 인성 교육적 측면에서 격물치지 공부의 의의를 드러내고자 한다.

『역학계몽』에 나타난 주자역학의 특징 - 소강절 역학의 수용과 변용을 중심으로 - (The Characteristics of Zhu Xi's Theory of I-Qing in Yi Xue Qi Meng(易學啓蒙))

  • 이선경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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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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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7-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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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 논문은 향후 조선유학자들의 『역학계몽』의 수용양상을 연구하기 위한 선행연구로서 『역학계몽』에 나타난 주자역학의 특징을 고찰한 것이다. 주로 『역학계몽』 원전을 분석하여 주자가 『역학계몽』을 지은 문제의식은 무엇이며, 그러한 문제를 풀어가는 논리와 사유의 특색은 무엇인가를 논의한 것이다. 주자의 문제의식은 당시 한대역학, 도교역학, 의리역학 등을 망라하여 새로이 계통이 있는 유가역학을 건립하려는데 있었다. 주자(朱子)는 문제해결을 위한 이론모델로 소강절(邵康節)의 선천학을 수용하고, 그의 선천개념을 변용하여 하락상수론을 제시한다. 하락을 자연의 이치가 담긴 역의 근원이자 성인의 심법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상수가 단순히 술수가 아니라, 자연의 이치와 성인의 심법을 드러내는 매체임을 밝힌다. 또한 십익의 내용들을 『역학계몽』의 주요탐구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그가 추구하는 상수가 이미 공자가 승인한 내용임을 정당화한다. 그리하여 하도의 중(中,태극), 소강절 선천학의 태극, 주렴계 태극도설의 태극을 하나로 회통시킴으로써 상·수·리가 일체가 되며, 우주론과 존재론, 수양론을 포괄하는 체계를 세우고자 하였다고 본다. 마치 리(理)와 기(氣)가 불리부잡(不雜不離)의 관계에 있듯, 상수와 리의 관계 역시 상호 밀착된 것이다. 이와 같이 상수를 이치를 드러내는 매개로 보는 주자의 하락상수론은 당대의 번쇄한 상수론을 대체하여 「계사전」에 입각한 새로운 점법을 정비하고, 그에 의거하여 춘추전국시대의 점친 사례를 고증함으로써, 그의 상수론이 추상적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점법으로 적용가능함을 보여준다. 주자이후 중국학계에서 직접 『역학계몽』자체를 연구한 경우는 많지 않아, 조선에서 『역학계몽』관련 저작이 30편을 상회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향후 조선유학자들의 『역학계몽』연구를 탐색하는 것은 조선역학의 특색을 밝히는 하나의 통로가 될 것이다.

유교(儒敎)와 도교(道敎)에 있어서 수행(修行)과 그 전통 (The Practice of tradition in Confucianism and Taoism)

  • 양은용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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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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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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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The third teachings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have been coexisted and had effect on the oriental spirits for long times. The doctrines of the Confucianism, the Buddhism, and the Taoism are represented as 'moral culture', 'practice', and "training" respectively. The practices of three teachings had individual ways. But in the late Han-dynasty, they had coexisted and effects on one another, then finally had been united since the Song-dynasty. The Confucianism, which advocated "xiū-jǐ-zhì-rén(修己治人: Practising oneself and controlling others)" and "nèi-shèng-wài-wáng(內聖外王: Establishing natural law in oneself and presenting it to others)", put an emphasis on the practice for personality by "Kŏgzĭ(孔子)" and "Mèngzĭ(孟子)". For example, the practices of "Yăng qi(養氣)", "Jìn Xīn(盡心)", and "Cún Xīn(存心)" reflect this doctrines. In the Song-dynasty, "Zhū-xī(朱熹)" established the 'New Confucianism', the study of "Jū-Jìng-qióng-lĭ'", which put an equality with "human nature" and natural law. It is so-called as "Seong-li-hark" in Korea. Therefore, it came to life again by emphasizing 'jīng-shì: Ruling the world' and "moral culture". The Taoism, which pursued "yán-mìng-cháng-shòu(延命長壽: Maintenance of a Scanty existence long life)" and "dào-tōng-shén-xian"(道通神仙: Spiritual awakening Shén-Xian), originally put an emphasis on the practice of body and mind. For example, "Lăozi(老子)" and "Zhuāngzĭ(莊子)" suggested "bāoyī(包一)", "Shŏuyī(守一)", and "Zuòwàng(坐忘)". After the religious body of the Taoism had been established, "Gè-hóng(葛洪)" accomplished the "Nèidān(內丹)" and "Wàidān(外丹)" as practice methods. As times went over, the "Nèidān(內丹)" of "Yăng-Shēng-Wŭ-Dà-Yāo(養生五大要)" including "bì-gŭ(辟穀)", "fú-qì(服氣)", "dăo-yĭn(導引)", "fáng-zhōng(房中)", and "fú-ěr(服餌)", has been the mainstreams for practice. Since the Song dynasty, "sān-jiào-hé-yī-sī-xiǎng(三敎合一思想: Three Teachings are the each other same thoughts)" had been put on emphasis and the three teachings were effected one another, and all of them attached importance to practical training. Therefore, the practice ways in civil societies have been mixed, the origins of them are difficult to divide definitely. The Korean society also has the vague origins of them and reflects the theses historic trad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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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논집』의 논문 분류 및 두 학자의 논문 분석 - 제1집에서 제55집까지 - (Classification of Articles in the "Korean Philosophy Journal" and Analysis of the Articles of Two Scholars - From 1st to 55th edit)

  • 황광욱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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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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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7-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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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논문은 '한국철학사연구회'의 발족 30주년을 맞이하여, 그 학술지인 "한국철학논집"의 논문 분류와 연구회의 대표적인 학자 두 명의 논문 주제와 특징을 분석한 것이다. "한국철학논집"은 1991년 제1집을 부터 2017년 11월 현재까지 총 제55집까지 발간했고, 총 582편의 논문을 소개했다. 582편 가운데 297편의 논문이 한국철학을, 174편의 논문이 중국철학을 다루었다. 한국철학 논문 가운데 198편, 중국철학 논문 가운데 125편이 성리학을 주제로 한 연구이다. 한국철학자 가운데는 정약용이, 중철학자 가운데는 주희에 대한 연구가 가장 많았다. "한국철학논집"에 참여한 필자는 모두 203명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이상익이 28편, 최영성이 23편을 게재하였다. 이상익의 논문 28편에 기초해보면 이상익은 철두철미한 성리학자이다. 그의 연구는 성리학의 성리설과 경세론을 두 축으로 한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성리설을 정립하고 여타 성리설을 비평하고 있으며, 또 자신의 경세이론을 정립하고 여타 경세 이론을 비평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한 이론적 제안을 하고 있다. 최영성의 논문 23편에 기초해보면 최영성은 한국유학사상사 분야의 최고 연구자이다. 그의 연구는 그간의 한국유학사상사에 있어 잘못된 인식이나 서술을 바로 잡고, 미진하게 개진된 부분을 계발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또한 사상사의 연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상사를 접근하는 철학적 토대 정립을 위해 최치원의 철학 사상을 깊이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철학논집"과 게재된 논문은 명실상부하며 양적, 질적인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한국철학논집"과 '한국철학사연구회'의 지속적인 발전과 훌륭한 학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의 소생이 반드시 필요하다.

돈암서원의 강학 활동 (The educational activities of Donam Seowon)

  • 김문준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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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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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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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한국 서원의 교육 내용과 방식은 주자가 제시한 교육 내용 및 방식과 대부분 유사하지만, 학파에 따라 다소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돈암서원의 초기 원장으로 재임한 이들은 모두 김장생의 문인이었던 김집 송준길 송시열 등이다. 돈암서원은 같은 노론계 서원이었던 화양서원 석실서원이 기호 지역의 중심 서원으로 성장하면서 서원의 위상과 강학 활동도 약화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돈암서원 설립 초기의 학규는 전하지 않는다. 돈암서원의 운영 방식은 돈암서원 운영 전반에 관하여 17세기 후반 원장으로 재임하던 송준길에게 문의한 윤증의 서신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 서신을 통해 볼 때, 돈암서원의 학규는 이이의 <은병정사학규>와 유사하였다고 추정된다. 18세기 이후 돈암서원의 역대 원장은 노론의 낙론계 학자들로서 권상하 계열보다 김창협 계열의 원장이 많았다. 돈암서원 원장은 화양서원, 석실서원의 원장이 겸임하거나 전후로 재임했을 가능성이 많다. 돈암서원에서 행한 강학 활동은 서원 설립 초기에는 김장생-송시열의 교학체계에 따라 소학${\rightarrow}$가례${\rightarrow}$심경${\rightarrow}$근사록 등 성리서를 우선하고 다음에 사서 오경을 가르쳤다. 점차 노론계 낙론 서원인 석실서원 출신의 학자들이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소학${\rightarrow}$사서${\rightarrow}$오경을 먼저 가르치고 다음에 성리서를 가르치는 이이의 교학체계를 시행하였으리라 추정된다. 이러한 강학 순서는 김창협 계열의 학자들이 설립하고 운영했던 석실서원의 강학 내용과 순서이다. 돈암서원의 입학 자격은 신분은 중시하지 않았으며, 학문과 인품을 중시했다. 서원에서 과거 공부는 허용되지 않았다. 원생들은 서원에서 거재(居齋)하면서 강학에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점차 서원의 재정이나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자기 집에 거가(居家)하면서 삭망에 행하는 강회에 참여하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박세당의 『남화경주해산보(南華經註解刪補)』 저술 의의 구명(究明) - 주자와 박세당의 장자 인식 비교를 통해서 - (A Study on the Significance of Park Se-dang's Composition of the Namhwagyeong Joohaesanbo(南華經註解刪補))

  • 전현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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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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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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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박세당(1629~1703)은 조선시대에 유일하게 "장자" 전편을 주석한 "남화경주해산보"를 저술하고, 말년에는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지탄받던 인물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조선시대에 주류사상이던 주자학의 집대성자인 주자(1130~1200)와 박세당의 장자 인식의 비교를 통해 17세기 조선에서 "남화경주해산보" 저술이 가지는 의의를 구명(究明)하는 데 있다. 조선시대에는 주자학이 정통 교학으로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노장(老莊)을 비롯한 여타의 사상은 주자학과의 관계 속에서 논의되어야만 한다. 박세당의 장자 인식은 주자의 장자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남화경주해산보" 저술은 주자의 장자 인식을 계승하여 적극적으로 심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노론 측에서 사문난적으로 비판할 때에도 "신주도덕경"과 "남화경주해산보"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주자학에서 벗어나려는, 즉 탈주자학적 시도이다. 박세당은 장자가 유가와 대척점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남화경주해산보"를 통해서 첫째, 장자가 세상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였음을 강조하고, 둘째, 부자(父子)와 군신(君臣) 간의 인륜(人倫) 관계를 중시했음을 증명하여 유가사상과 상통점을 찾고, 셋째, 장자의 인성론(人性論)을 새롭게 조명하여 유가 인성론을 재정립하고, 넷째, 장자사상을 응용하여 분당(分黨)과 예송논쟁(禮訟論爭) 등 소모적인 정쟁(政爭)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박세당이 "신주도덕경"과 "남화경주해산보"를 저술하지만, 이는 보유(補儒)의 일환이고 본령은 유학이다. 그가 탈피하고자 한 것은 주자학의 절대화였지 유학 자체는 아니다. 주자학이 정통 교학이자 지배 이념으로 절대화되고 교조화되던 17세기의 조선에서 박세당의 "남화경주해산보" 저술은 매우 혁신적인 시도로서, 박세당이 주자학에서 벗어나 탈주자학의 선구자로서 정통 주자학자들과 지향점을 달리하여 독자적이고 진보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하였음을 보여준다.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춘추정신(春秋精神)과 도학사상(道學思想) (The thought and spirit of Sunbi of Kwon Sang-Ha(1641-1721))

  • 김문준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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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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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5-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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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수암 권상하(1641-1721)는 우암 송시열(1607-1689) 이후 조선 후기의 학계와 정치계를 대표하는 山林이다. 그는 송시열 이후 노론계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우암학파의 학문과 사상 및 사업을 전승하였으며, 그 학문과 사상을 제자들에게 전수했다. 권상하의 사상과 학문은 조광조-송시열로 이어지는 한국정통 도학의 '명천리(明天理) 정인심(正人心)' '벽리단(闢異端)' '양이적(攘夷狄)' '존왕도(尊王道)' '천패술(踐覇術)' '상정학(尙正學)' '척리교(斥異敎)' 정신으로 집약할 수 있다. 권상하의 학문과 사상, 그리고 평생 사업은 위와 같은 정신에 입각하여 송시열의 학문과 사업을 계승하여 직(直)의 심법(心法)과 춘추의리(春秋義理)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는 스승인 송시열이 생존할 당시에는 그를 도와 주자서를 정리하여 오류 없는 의뢰서(義理書)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송시열의 사후에는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화양서원과 만동묘를 짓고 대보단을 쌓는 등 대의를 드러내는 일에 일생의 노력을 기울였다. 권상하는 이러한 사업이 구세(救世)하는 도(道)(세도(世道))를 확립하는 일이라고 자부했다. 그는 존주자(尊朱子)와 명천리(明天理) 정인심(正人心)의 학문정신으로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등 그의 문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인물성동리(人物性同異) 논쟁에서 한원진의 인물성 이론을 찬성하여 엄정한 가치 판별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정치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송시열을 옹호하는 변론에 적극 나섰는데, 그 이유는 스승에 대한 사정(私情) 때문만이 아니라 '세도(世道)'와 '사문(斯文)'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권상하는 직(直)의 심법과 춘추사상(春秋思想)으로 자신의 내적 도덕성을 삼았으며, 현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부조리에 대항했다. 적극적으로 불의(不義)에 항거했던 송시열의 직(直)철학이나 북벌(北伐)의지는 권상하를 통하여 기호학파 노론 계열의 상전(相傳) 심법(心法)과 사업(事業)이 되었다.

성리학(性理學)과 산수화(山水畵)의 발전에 관한 연구 - 송대를 중심으로 - (Research of the Neo-Confucianism and the development of Landscape painting in Song Dynasty)

  • 장완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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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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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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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성리학과 문화예술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데에서 출발하며, 특히 송대에 흥성한 산수화의 발전에 이론적 근거가 되었음을 연구하였다. 성리학은 고대 동양사회의 정치, 경제, 사상, 문화 예술 심지어 생활에 전반에 걸쳐 근간을 이루어 왔던 유학의 새로운 경향이다. 성리학은 중국의 북송(北宋)대 다섯 학자인 주돈이, 소옹, 장재, 정호, 정이가 그 기틀을 새우고 남송(南宋)의 주희가 집대성한 학문이다. 중국의 원(元)나라를 통해 고려후기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조선의 건국의 기틀이 되었고, 퇴계 이황, 율곡 이이를 거쳐 '문화 전반'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성리학과 예술론과 관계하여 격물치지, '리', 우주의식, '생의', '기상', '예'와 '도'의 관계 등이 산수화와 산수화론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연구하였다. 산수화나 화조화에서도 신유학에서 말하는 천지의 '생의'의 미와 '어진 사람은 만물과 더불어 하나'라는 사상을 화폭에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시와 회화의 통일을 주장하였다. 동양에서는 송대 이전부터도 시와 회화의 관계를 중시했지만, 송에 이르러 시와 회화의 통일을 이루게 된다. 예를 들어, 명나라 때 조성된 졸정원(拙政園)과 같은 강남 정원 문화는 송대 산수화로부터 기인했다. 산수에서 등장하는 산속의 작은 정자나 가옥들이 정원에 옮겨진 것이다. 이는 곽희가 "임천고치"에서 말한 "가볼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닐 수 있고, 살 수 있는 곳"을 화폭 속에 그려야 한다는 것이 명 청대에 이르러서는 현실로 옮겨진 것이다. 또한 현대에 있어서는 환경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지속적인 연구는 앞으로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디자인 발전 연구, 더 나아가 문화산업의 기초자료로서 복합학문, 학제간 교류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참동계』와 태극(태일)-음양-오행 체계 (Cantongqi and Its Relation to the System of Taegeuk (Taeil), Yin-yang, and the Five Movements)

  • 이봉호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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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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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3-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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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지금까지는 주돈이의 <태극도>가 『주역참동계』에서 연원한다는 학설이 정설처럼 인식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몇 학자들은 기존의 학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논쟁이 일었다. 이들은 <태극도>의 『주역참동계』 연원설에서 청대 학자들이 근거로 사용한 책들과 도상이 주돈이 이후의 것이거나, <태극도>에 기초해서 후대에 그려진 것임을 주장한다. 반면에 최근 학자들의 주장에서 <태극도>의 『주역참동계』 연원설을 최초로 제기한 남송 시대의 주진(朱震)과 양갑(楊甲)의 학설은 해명하지 못하였다. 이들 남송 시대 학자들은 주돈이와 주희 사이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이러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보았다. 주돈이의 <태극도>는 태극-음양-오행의 체계를 골자로 한다. 따라서 이 체계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주역참동계』가 직접 연관이 있음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태극-음양-오행의 체계 형성 과정은 한대의 종교적 사상적 영향에 의한 것이다. 한무제의 태일신(太一神) 신학체계에서 태일-음양-오행의 체계가 신학적으로 정립된다. 동중서에 의해 유학의 육예(六藝) 해석에 음양오행이 도입되며, 이는 한대 역학자들이 『주역』 해석에 오행을 개입하게 하는 사상적 흐름을 형성한다. 그러나 한대 역학자들은 음양재 이설을 중심으로 하였기에 태일-음양-오행의 체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한시기에 쓰여진 『주역참동계』는 한 대 역학자들이 『주역』을 해석한 다양한 『역위(易緯)』 이론과 연단 이론을 결합하면서, 태일-음양-오행의 체계를 사상적으로 형성한다. 이때 『주역참동계』는 '감리위역설(坎離爲易說)'을 중심으로 한 역학 이론을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역참동계』와 그 주석들에는 <태극도>와 같은 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감리위역설'을 중심으로 한 태일-음양-오행의 체계가 나타날 뿐만 아니라, <태극도>를 구성하는 도상의 부분들을 그려낼 수 있는 내용은 존재한다. 이 체계에서 '태극'이 아니라 '태일'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태일'을 '태극'으로 해석할 사상적 이론은 등장하고 있었다. 한대 역학자들은 역에 원기(元氣) 개념을 적용하였고, 공영달에 의해 태극이 '원기'이자 '태일(太一)'이라고 정의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주역참동계』가 <태극도>와 같은 도상을 담고 있지 않아도 태일(태극)-음양-오행의 체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태극도> 도상의 부분들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음을 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