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만(秋巒) 정지운(鄭之雲)(1509-1561)은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의 사칠논변(四七論辨)의 단초가 된 "천명도설(天命圖說)"를 그린 당사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추만 정지운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해서 학계는 물론 일반대중들도 깊이 있는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정지운에 대한 선행연구도 "천명도설(天命圖說)"의 내용 분석을 위주로 하는 미시적 방식을 취하는 데 머물러 있다. 정지운의 삶과 학문이 그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맥락에서의 검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지운은 "천명도설(天命圖說)"를 지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논리적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밝혀 기묘사림(己卯士林)을 신원하고, 그들의 유지를 정연하게 체계화함으로써 조선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성숙시키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사림파의 성리학설이 정국을 주도하는 정치사상으로 자리 잡는다는 점을 볼 때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를 두고 이황과 기대승 간에 벌어진 논변은 조선 성리학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요컨대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는 "소학(小學)"과 "근사록(近思錄)"의 이해 수준에 머물러 있던 당시 상황에서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을 본격화함으로써 조선 전기 성리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황과 기대승은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를 중심으로 논변함으로써 조선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심화시키는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이때 정착된 사림파의 심학화(心學化) 경향은 명종과 선조대를 거치면서, 완전히 조선 정치사상사를 주도하는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는 그러한 정치사상사의 흐름을 견인한 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지운의 "천명도설(天命圖說)"가 지니고 있는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확인하게 된다.
본고는 "입학도설"과 "천명도설"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사칠논쟁의 연원을 밝힘으로써 조선유학이 오늘의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재확인하려는 것이다. 사칠논쟁은 조선 성리학의 대표적인 이론논쟁으로, 이로부터 파생되는 인심도심논쟁, 인물성동이논쟁, 미발심체논쟁 등 심성설 중심의 이론탐구는 조선유학의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접근은 대체로 이러한 이론논쟁을 현실을 도외시한 조선성리학의 공리공론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치부하거나, 아니면 현실을 도외시한 이론논쟁이긴 하지만 한국인이 지닌 철학적인 사고능력을 보여주는 철학논쟁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양촌의 "입학도설"에서부터 나타나는 성리학에 대한 기본이해는 성리학이란 수기치인지학으로서 결코 현실과 유리될 수 없는 것이며, 이상사회는 통치계층의 도덕성실현위에 모든 사람들의 도덕성이 실현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도덕성의 근거를 밝히고, 수양의 목표를 제시하며, 선악의 유래를 명확히 함으로써 현실적인 악을 극복하고 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 된다. 이런 문제의식은 추만의 "천명도설"에서도 그대로 계승된다. 추만의 "천명도설"은 우리의 도덕성은 천명으로서 주어져 있으며 이를 근거로 천인합일이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본격적인 심성논쟁이 의리실천을 학문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도학의 전통이 세워진 이후 도학자임을 자부하던 학자들 사이에서 계속되었다는 것은 이것이 결코 현실과 유리된 공리공론이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즉, 조선유학이 가진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신뢰와 도덕성의 실현을 통해 인간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인간에 대한 가치론적 이해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큰 철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논문은 주돈이가 "태극도설"에서 제시한 천인합일사상과 권근이 "입학도설"에서 제시한 천인심성합일사상을 비교하여 그 차이를 규명하고자 한 시도이다. 수양론 중심의 실천적인 사상으로 발전해 온 천인합일사상은 송대 주돈이가 "태극도설"에서 형이상학적 우주론과 인성론으로 정리하면서 철학적 깊이와 논리적 체계를 갖추게 된다. 그는 천(天)에 상응하는 무극(無極)의 개념을 세워 무극-태극-음양-오행-인간-만물의 일원적 우주론을 제시한다. 그의 우주론은 만물의 창조자인 천(天)은 피조자인 인간과 명(命)과 성(性)을 매개로하여 결부되는 합일의 관계라는 인식이다. 따라서 본성을 회복하여 자기의 본성이 천명(天命)임을 알면 곧 천인합일이 실현되고 성인도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주돈이의 사상은 약 120년 뒤 주희에게 와서 이기론 으로 융합된 주자학으로 집대성 된다. 이에 따라 주돈이는 주자학의 시조로 후대에 평가된다. 고려 말 권근은 그의 "입학도설"에서 천인심성합일사상을 제시한다. 권근의 천인심성합일사상은 그의 스승인 이색의 천인무간사상에 주자학적 요소를 가미하여 내 마음의 작용과 리(理)가 일체라고 정리함으로써 논리적 정합성을 이룬다. 주돈이가 주로 우주와 만물의 생성원리에 대해 관심을 기진 것에 반해 권근은 주로 심성론적 관점에서 천(天), 인(人), 심(心), 성(性)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또한 경(敬)중심의 수양으로 천인심성합일을 이룰 수 있다고 제시한다. 권근의 이런 사상은 조선조 주자학이 심성론 중심으로 발전하는 단초가 되었다. 그의 사상은 약 150년후 퇴계 이황에게 와서 사단칠정론과 경(敬)사상으로 집대성 된다. 그러나 주돈이와 달리 권근은 그의 학문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의 "경의기문록(經義記聞錄)"이 가진 철학사적 입장을 개괄하고, 권6의 부록으로 수록된 "이기심성도설(理氣心性圖說)"의 성립 연대와 개략적인 내용을 검토한 것이다. 총 17개의 도설(圖說)들은 리기론(理氣論), 심성론(心性論), 수양론(修養論) 등의 분야에 걸쳐 있다. 이 도설들은 남당이 호학(湖學)으로 불리는 황강(黃江)학파의 일원이 되면서부터 강학(講學)을 통해 습득한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쉽게 이해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남당의 철학적 입론은 이이(李珥), 송시열(宋時烈), 권상하(權尙夏)로 이어져 온 기호성리학(畿湖性理學)의 정통적 흐름을 계승한 것이다. 리기론에 해당하는 "이기원류도(理氣源流圖)", "이기동정도(理氣動靜圖)", "일원분수도(一原分殊圖)"(4개) 등은 기호성리학의 본체론(本體論)에 해당하는 것을 도해한 것이다. 기호성리학의 심성론을 도해한 것으로는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를 중심으로 한, "성정횡간도(性情橫看圖)", "성정수간도(性情竪看圖)", "성정총회도(性情總會圖)", "오성호주도(五性互主圖)", "오성추본도(五性推本圖)", "심성묘합도(心性妙合圖)", "심성이기도(心性二岐圖)", "중용천명도(中庸天命圖)",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 등이 있으며, 마지막 "위학지방도(爲學之方圖)"는 율곡과 송시열에 의해서 기초가 마련된 수양론에 대한 도식을 개작한 것이다. "경의기문록"의 철학사적 의의는 황강학파의 강학 내용을 집대성한 것으로서, 남당이 호학의 주도적인 이론가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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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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