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논리철학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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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철학 (The Early Wittgenstein's Philosophy of Mathematics)

  • 박정일
    • 논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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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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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7-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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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에서 논리철학과 수학철학은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주제들에 속한다. 그렇다면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논리학과 수학에 관해 어떤 철학적 견해를 보였는가? 가령 그는 프레게와 러셀의 논리주의를 받아들였는가 아니면 거부했는가? 그는 수학과 논리학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했는가? 가령 "수학은 논리학의 한 방법이다."(6.234)와 "논리학의 명제들이 동어반복들 속에서 보여 주는 세계의 논리를 수학은 등식들 속에서 보여 준다."(6.22)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동어반복과 등식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했는가? 나는 이 글에서 『논고』를 중심으로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대답하고자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왜 "논고"를 포기했는가?

  • 박정일
    • 논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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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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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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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비트겐슈타인이 왜 "논고"를 포기했느냐 하는 주제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조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 글의 일차적인 관심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한 개인의 실제 철학적 사유 과정보다는, 오히려 "논고"가 포기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과 경로를 생각하고 추적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논고"의 여러 근본 전제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직접적 논박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서, 여기에는 "논고"에서 정의에 해당되는 것, 모호한 개념인 "완전한 분석"과 관련된 것, 그리고 유아론과 관련된 것 등이 있다. 다른한 부류는 전자에 비해 어떤 직접적인 논박 가능성의 여지가 있는 근본 전제로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요소 명제들의 상호 독립성을 들 수 있다. "논고"는 소위 "색깔배제 문제"부터 후자에 속하는 근본전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와해되기 시작했으며, "논고"와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에 서게 됨으로써 비로소 포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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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철학 논고』의 연산 이론에 관하여 (On the Operation Theory of the Tractatus)

  • 박정일
    • 논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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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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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7-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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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에서 "연산 이론"은 "논고"의 수학 철학의 핵심적 토대다. 비트겐슈타인은 연산 이론을 바탕으로 6.02에서 기수의 정의를 제시하고 있고, 6.241에서 연산 이론을 이용하여 "$2{\times}2=4$"의 증명을 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논고"의 수학 철학을 정확하게 해명하기 위해서는 "논고"의 연산 이론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요구된다. 그리하여 나는 이글에서 "논고"의 수학 철학을 해명하기 위한 예비적인 작업으로서 "논고"의 연산 이론을 해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6.241에 대한 프래스콜라의 재구성과 해석에서 그의 중요한 기여와 오류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우리는 6.241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실수를 하게 된 배경과 그가 6.241에서 연산이론의 덧셈 연산을 다루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6.241을 올바르게 재구성할 수 있다.

『논리-철학 논고』의 '논리적 공간'에 관하여 (On 'Logical Space' of the Tractatus)

  • 박정일
    • 논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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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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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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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에서 '논리적 공간'은 중요한 여러 의문들을 불러일으킨다. 논리적 공간, 논리적 좌표들, 그리고 논리적 장소란 무엇인가? 그러한 비유의 요점은 무엇이며, 또 그것들이 정확하게 "논고"에서 가리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논리적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실들, 명제, 명제 기호, 상황, 모순인가 아니면 이와 관련된 "논고"의 언급들은 그저 화해할 수 없을 뿐인가? 논리적 공간을 둘러싼 논고의 수수께끼 같은 언급들은 정확하게 해명 가능한가? 게다가 "논고"에서 왜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적 공간이라는 개념을 필요로 했는가? 이를 통하여 그는 어떤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는가? 나는 이 글에서 이 물음들에 대해 대답하고자 한다. "논고"에서 논리적 공간은 뜻 있는 명제들의 체계이다. 또한 그것은 헤르츠의 배위 공간을 모델로 삼아 비트겐슈타인이 끌어들인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근본 좌표들은 기하학적 좌표들과 어떤 점에서는 유사하다. 반면에 논리적 좌표들은 기하학적 좌표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하여 논리적 공간을 일종의 기하학적 공간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모두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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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비트겐슈타인과 유형 이론 (The Early Wittgenstein on the Theory of Types)

  • 박정일
    • 논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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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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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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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잘 알려져 있듯이,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러셀의 유형 이론을 명시적으로 비판한다. 그렇다면 러셀의 유형 이론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비판의 요점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하여 나는 철학적인 측면과 논리학적인 측면에서 유형 이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논리-철학 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적 구문론은 말하자면 러셀의 유형 이론에 대한 대안이다. 논리적 구문론은 "논리-철학 논고"의 표기법의 기호 규칙들이며 특히 형성 규칙들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하기-보이기 구분은 논리적 구문론의 가장 근본적인 근거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의 유형 이론에 대한 비판과 함께 논리적 문법의 임의성(자의성)과 선험성으로 나아간다. 유형 이론에 대한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비판은 결국 프레게와 러셀의 논리학관에 대한 도전이다. 논리학은 세계에 속하는 일반적인 진리나 특성들을 다루지 않으며, 논리학을 이루는 동어반복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소여, 현상학, 모순

  • 김영건
    • 논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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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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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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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이 글은 박병철과 이승종의 저술에 대한 박정일의 서평을 중심으로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몇몇 문제점을 고찰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주장한다. 첫째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현상학적 양상을 추적하고 있는 박병철의 현상학의 개념이 명백하지 않다. 둘째 "논리철학논고"의 유아론은 경험적 유아론이 아니라 선험적 유아론이다. 셋째 "논리철학논고"의 대상은 감각자료가 아니다. 넷째 우리에게 주어진 소여는 논리적인 것이다. 다섯째 박병철은 이 논리적인 것을 경험에 근거지우는 실책을 범하고 있다. 여섯째 모순의 형식적 개념에 대한 이승종의 비판은 성공적이지 않다. 일곱째 이것은 박정일이 지적한 것처럼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범했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여덟째 모순된 규칙에 대한 이승종의 이해는 박정일이 지적하듯이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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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철학 논고』의 그림 이론에 관하여 (On the Picture Theory of the Tractatus)

  • 박정일
    • 논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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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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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3-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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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논리-철학 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이른바 그림 이론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그림 이론의 요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되었는가? 나는 이 글에서 그림의 대상과 그림의 뜻은 상이하다는 것, 모사 관계와 투영 관계가 상이하다는 것, 그림 이론은 요소 명제뿐만 아니라 복합 명제에도 적용된다는 것, 그리고 한편으로 그림 이론이 해결하고자 했던 기본적인 문제는 의미 이론의 문제와 진리 개념의 문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더 중요한 문제는 비트겐슈타인이 "부정의 수수께끼"라고 부른 것이었음을 보이고자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논리-철학 논고"의 그림 이론이 비유에 불과하고 내용이 없다는 해석이 전혀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논리-철학 논고"의 일반성 개념에 관하여 (On the Concept of Generality of the Tractatus)

  • 박정일
    • 논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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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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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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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논리-철학 논고"의 5.52와 5.521은 여러 의문들을 불러일으킨다. 이 글에서 나는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대답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의 일반성 개념을 해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문들과 문제들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 나는 다음을 보이고자 노력할 것이다. "논리-철학 논고"의 일반성 개념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xi}$-조건이다. 램지를 제외하면, 앤스컴, 글록, 케니 등은 ${\xi}$-조건과 관련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실패하고 있으며, 그들의 주장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 또한 논리학사의 관점에서 보면 5.52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즉 그것은 무한 논리학(infinitary logic)의 가능성과 모델 이론에서의 논의 영역(universe of discourse)의 개념을 최초로 예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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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비트겐슈타인과 명제적 태도 진술 (The Early Wittgenstein on Propositional Attitude Statements)

  • 박정일
    • 논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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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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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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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비트겐슈타인은 5.542에서 "A는 p라고 믿는다"가 "'p'는 p라고 말한다"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한 사실과 어떤 한 대상 사이의 짝짓기가 아니라, 사실들의 대상들 사이의 짝짓기를 통한 그 사실들 간의 짝짓기"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p'는 p라고 말한다"는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가? "사실들의 대상들"에서 "사실들"과 "대상들"은 무엇이며, 왜 여기에서는 두 가지 짝짓기가 문제되는가? 또한 "논리-철학 논고"에서 명제적 태도 진술은 뜻 있는 명제인가 아닌가? 더 나아가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의 판단 이론을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가? 이 글에서 나는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해명한 사고의 개념과 또 이와 관련된 램지의 언급을 바탕으로 이 물음들에 대해 대답하고자 한다. 한편 "A는 p라고 믿는다"와 같은 명제적 태도 진술은 어떤 경우에는 뜻 있는 명제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논리-철학 논고"의 유아론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철학 논고"에서 모든 명제적 태도 진술이 뜻 있는 명제라는 주장과 모든 명제적 태도 진술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은 둘 다 옳지 않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현상학적 측면 - 박정일 박사와 김영건 박사의 비판에 대한 반론 -

  • 박병철
    • 논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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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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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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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필자는 이 글에서 박병철의 저서 Phenomenological Aspects of Wittgenstein's Philosophy (Kluwer 1998)에 대한 박정일 박사의 서평과 김영건 박사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현상학과 현상론의 구분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에 대한 반론에서 시작하여, 유아론에 대한 비판을 반박하고 있으며, "논리-철학 논고"에서의 대상의 본성에 대한 견해도 밝히고 있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시도가 여전히 불투명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놓고 벌어지는 다양한 해석의 스펙트럼의 한 부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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