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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Theistic Evolution: between Creationism and Evolutionism

  • 투고 : 2021.02.19
  • 심사 : 2021.03.19
  • 발행 : 2021.06.28

초록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으로 인간 탐구의 중심 주제 중 하나였다. 기원에 관한 문제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문제가 아닌 인간 정체성에 관한 것이자 인간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다. 인간의 기원과 관련하여 제시된 전통적인 모델은 크게 만물이 창조주에게서 기인하였다는 기독교의 창조론과 모든 것이 우연히 발생하여 하등에서 점점 고등동물로 진화하였다는 진화론, 그리고 기원에 관하여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이 있다. 본 연구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결합인 유신진화론을 다루고 있다. 유신진화론이란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기원하긴 했지만 즉각적 창조가 아닌, 오랜 세월 진화의 과정을 통한 창조를 통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기원에 관한 두 상충하는 이론을 기독교적으로 결합하여 제시한 것이 유신진화론인데, 이는 여러 가지 본질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본 연구에서는 두 가지를 지적하였다. 첫째, 성경의 하나님이 전능한 창조주가 아닌 자연의 법칙에 국한된 모습으로 축소된다. 둘째, 성경의 사건을 상징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역사성을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유신진화론보다는 오히려 진화론이나 창조론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Interest in the origin of the universe and man has historically been one of the central themes of human inquiry. The question of origin is not just a matter of intellectual curiosity, but a matter of human identity and an important matter of human destiny. The traditional model presented in relation to the origin of man is largely the Christian creationism that all things originated from the Creator, the evolutionary theory that everything happened by chance and evolved from lower to higher animals, and the agnosticism that we cannot know anything about the origin. This study deals with the theory of theistic evolution, a combination of creationism and evolutionism. It is argued that the theory of the evolutionary origin was not an immediate creation, although all things originated from God, but through creation through a long evolutionary process. The theory of theistic evolution was proposed by combining two conflicting theories of origin in a Christian way, which has several essential problems, but this study pointed out two. First, the God of the Bible is reduced to the image of being confined to the laws of nature, not the Almighty Creator. Second, by interpreting the events of the Bible symbolically, it results in rejection of historicity. Therefore, it is more rational to choose either evolutionism or creationism rather than the theory of theistic evolution.

키워드

I. 들어가는 말

우주는 과연 그 시작이 있을까? 아니면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일까? 20세기에 와서 천체물리학의 발달로 우주가 영원한 것이라기보다는, 시작점이 있다는 여러 증거들이 제시되고 있다. 빅뱅을 통해 우주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1]. 빅뱅을 통해 우주가 출현했다는 가설은, 그것이 아무리 방대하고 그 나이가 오래되었다 할지라도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라, 분명 시작된 시점이 있고 앞으로도 영원하지 않은 제한적 실체일 것이라는 사실에 더 힘을 실어준다. 우주의 출현과 더불어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문제는 인간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인간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출현하게 된 것일까? 인간은 과연 우연히 출연하게 된 진화의 존재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창조의 결과물인가? 우주의 기원과 인간의 출현에 관한 문제는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관한 이해는 인간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인간이 우주적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그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인식을 갖는 것과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믿는 것은 인간 삶에 확연히 다른 영향을 끼친다. 전자의 경우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존귀하며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인 반면, 후자의 경우 인간은 우연의 결과물로서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의 법칙에 지배받는 존재로 전락한다. 세상이 무엇이며 그 가운데 있는 나는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사는 것은 그렇지 않고 사는 삶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생명이 어떻게 출현하였는지를 다루는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론들은 세 가지가 존재한다. 첫째, 창조론은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 그리고 생명체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의 결과라는 입장을 취한다. 둘째, 진화론은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1849년)을 출간한 이래 과학계에서 마치 진리인양 받아들여져 온 이론으로서, 우주의 시작과 생명의 출현을 우연의 결과로 보는 입장을 취한다[2]. 끝으로 불가지론이 있는데, 이것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다고 하는 입장으로서 대개 진지한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찰스 다윈의 무신론적 진화론이 소개된 이래 그것은 유신론적 창조론과 대척점을 이루면서 둘은 끊임없이 경쟁 관계에 있어왔다. 기원에 관한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의 논쟁은 과학과 종교의 대립으로 간주되면서 상당 부분 오해된 면이 있다. 즉, 진화론은 과학적 진실이지만, 창조론은 종교적 신념으로서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둘 사이의 논쟁을 대하는 대다수의 선입견이었다. 사실상 창조론과 진화론은 둘 다 과학적으로 한계가 있는 이론들인데, 그 이유는 기원에 관한 한 누구도 완벽하게 입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중 누구도 오래 전에 일어난 우주 시작과 생명의 출현을 목격한 사람도 없을뿐더러, 또 이들이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 문제는 실험과 관찰 등을 통해 반복적 확인이 불가능한 것이므로 과학적 이론으로 정립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오늘날 현대인들은 대개 교회에서는 창조론을 배우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배우고 또 그것이 훨씬 더 과학적이 라인 정하게 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은 과학, 창조론은 신앙이라는 이분법적 이해를 갖게 되었다. 인간의 기원에 관한 이분법적 이해를 통해 창조론을 진화론적 기반에서 설명하려는 시도인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3]이 탄생하였다.

본 연구는 기독교의 창조를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신앙과 종교의 통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유신진화론의 시도가 과연 합리적인지에 대해 평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유신진화론 자체가 기독교 내에서 발생했고, 또 창조론에 기반한 이론이기 때문에 본 연구는 진화론 자체에 대한 깊은 연구보다는 기독교의 창조론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다.

II. 유신진화론

1. 용어의 정의

‘유신론적 진화론’ 혹은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 은 창조론자들이 창조주를 전제하면서도 진화라는 수단을 수용한 입장으로서 “신앙과 과학의 통합”[4]을 꾀하는 시도이다. 유신진화론은 다른 말로 “진화적 창조”(evolutionary creation)[3]라고 칭하기도 한다. 자연주의적 진화론은 신의 존재자체를 거부하는 반면 유신 진화론은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차별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은 창조론자들이 믿는 것처럼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6일 동안 직접적 창조가 아니라, 철저하게 진화의 과정을 통한 오랜 세월의 창조이다. 당연히 인간도 이런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출현한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이다.

유신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스펙트럼에서 어떤 식으로 위치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유신 진화론은 단순히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중간입장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한 여러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우선 ‘진화’란단어만 해도 그 이해의 폭이 상당히 넓은데, 마이클 하빈(Michael A. Harbin)은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4]. 첫째, 많은 경우 변화나 일련의 변화를 가리킬 때 진화란 단어를 사용한다. 둘째, 진화란 종(species) 내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변화나 변이를 가리킬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 셋째, 종의 변천을 의미하는 대진화 대신 소진화(micro-evolution)를 가리킬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 소진화는 종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이로서 오늘날 관찰이 가능하다[5]. 넷째, 일반 진화(general evolution)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로서,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무기물로부터 나온 하나의 근원에서부터 출현했다는 통상적 의미의 진화론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섯째, 진화는 우주적 진화(cosmological evolution) 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네 번째 사용된 무생물로부터 기원한 단일 생명체로부터 모든 생명체가 출현했다는 진화 사상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기원에 관한 문제는 전통적으로 기독교와 세속 문화사 이의 전쟁은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의 전쟁”[6] 으로인식돼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둘 사이의 전쟁은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진화론 도두 종류로 나뉘는데, 전통적인 무신진화론과 새롭게 제기된 유신진화론이다. 유신진화론은 진화론이 곧 무신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진화론적인 방식으로 창조를 설명하는 새로운 시도이다. 무신론적 진화론은 통상적으로 학교의 과학 교과서에서 제시되는 이론으로서, 신을 전제로 하지 않은 채 순수한 진화의 결과로 생명체가 출현하였고, 인간도 그 진화의 결과라는 입장이다. 이런 무신론적 진화론은 일반 공립학교와 학계에서 과학적 정설로 인정되는 기원에 관한 이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유신진화론은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이 6일이라는 짧은 시간이 아닌 오랜 세월 동안 진화의 방식으로 우주와 만물, 그리고 인간을 창조했다는 주장이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무신론자들이 아닌 창조자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주로 믿는 것은 틀림없지만, 하나님이 진화의 방식을 통해 세상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역사적으로 기독교 신자들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이 6일 동안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특별 창조(special creation)”를 믿어왔다[7].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면서도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을 둔 현대 과학의 주장을 수용한 입장이 유신 진화론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전통적으로 진화론은 어떤 초자연적 존재도 배제한 채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론은 철저하게 자연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이다. 사회적으로도 고등교육을 받는지 성인들에게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하나의 사실처럼 인식되는 반면, 창조론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확신으로 인식된다. 이런 배경 하에서 출현하게 된 것이 유신진화론인데, 이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진화론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둘의 입장을 다 수용하여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들의 주장의 요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다윈의 진화론을 과학이론으로 받아들이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8]. 문제는 이것이 과학과 신앙의 통합을 이루어내려는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창조론자나 진화론자 모두에게 외면당한다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은, 본 논문에서 밝히게 될 바와 같이, 미국 의 복음주의 계열의 창조론자들(C. S. Lewis, Benjamin Warfield 등) 사이에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지만, 다른 복음주의 신학자들(Louis Berkhof, Millard Erickson, Wayne Grudem 등)로부터는 거부당하고 있다[5]. 비록 이 용어가 진화론(evolutionism) 을 천명하지만 유신진화론이 진화론자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입장인데, 이는 진화론은 기원의 문제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신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물질세계 이외에는 다른 실재가 없다고 믿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6]. 이것이 초자연적 실재를 부정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연의 법칙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2. 유신진화론의 두 유형

유신진화론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하나님 이진화의 방식을 통해 창조하되, 특정 단계에서만 특별한 초자연적 개입을 한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오로지 진화의 방식으로만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입장이다[9]. 둘의 공통점은 창조주 하나님을 전제로 한다는 점과 창조의 일반적인 방식이 진화라는 점인데, 구별되는 것은 그의 창조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이다. 전자는 초자연적 개입을 허용하고, 후자는 철저히 자연적 방식에 의존한다. 전자의 입장을 초자연적 유신 진화론(supernatural theistic evolution. STE) 이라부르고, 후자를 자연적 유신진화론(natural theistic evolution, NTE)이라 한다[3]. 유신진화론의 전통적인 형태가 초자연적 유신진화론(STE)이었는데,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A. A. 하지, A. H. 스트롱, 벤자민워필드, 제임스 오르와 같은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이입 장을 견지했다. 초자연적 유신진화론은 우주의 창조, 생명체의 출현 등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을 허용하는 입장이다. 예컨대, 초자연적 유신 진화론은 인간의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 뿐만 아니라 자연적 과정을 통해서도 유인원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일”[10]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자연적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던 전통적 입장을 철회하고 순수한 진화의 방식에 의존한 창조를 주장한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신적 행위 전체를 거부한다.”[3]최근 들어 하나 님의 초자연적 개입이 전혀 없이 “오로지 자연적인진 화의 방식으로만 이 세상의 생명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유신진화론을 대표하는 견해로 개진”되고 있다[9]. 자연적 유신진화론을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로는 반틸 (Howard J. Van Till)과 데니스 라무르(Denis O. Lamoureux)를 들 수 있는데, 반틸은 “진화적 창조”(evolutionary creation)[11]라는 용어를 통해 유신 진화론을 설명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창조할 때 애당초에 창조물 속에 완전한 능력이 갖추어진 상태로 창조함으로써, 어떤 기적적 개입이 없이도 스스로 자연법칙에 의하여 생명을 창조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를 “완전한 능력을 갖춘 창조”(fully gifted creation) 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9]. 하나님의 창조물 속에 모든 재창조의 조건이 이미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창조 가운데 하나님의 초자연적이며 기적적인 개입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라무르의 유신진화론은 현재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 “우주가 시작된 기원과 같은 과거에도 동일하게 작용을 하였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고 밝힌다[6]. 생명이 나타나기 이전의 세상에서 작동하던 원리가 생명이 나타난 지금의 세상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탐구함에 있어서 자연 법칙 이외의 어떤 초자연적 개입도 불필요하다고 보는데, 이는 자연이 자아 충족적인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 유형이 어떠하든 유신진화론자들은 공통적으로하나님을 우주의 창조주로 인정함과 동시에 진화론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원리로 받아들인다. 그들의 주장의 요지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우리가 “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창조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8]. 그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진화론을 믿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서 이들은 하나님께서 하는 일들이 자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유독 창조에서만 자연적인 방식이 아닌 “오직 기적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를 제한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는 과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연의 원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함을 강조했다[9].

그렇다면 기원에 대해 과학과 성경의 묘사가 충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할까? 유신 진화론의 신학적 뿌리라 할 수 있는 자유주의신학의 기본 전제는 종교와 과학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둘의 의견이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를 6일 동안에 끝낸 것으로 나오는데, 과학은 세계와 생명의 출현이 수십억 년 동안의 진화를 통한 것이라고 본다. 현저한 의견 불일치 앞에서 유신진화론은 과학적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12], 대신 성경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둘의 충돌 상황을 피하는 방법을 택한다. 이런 주장은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일 뿐 아니라, 자연의 저자라는 사실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예컨대,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창조를 설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에서 진화라는 원리를 통해 생명의 창조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동일한 사실에 대해 둘은 다른 측면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를 상보적 모델(complementary model), 즉 “과학과 신학은 세상에 대한 상호보완적이고, 상호 영향을 주며, 상호 경쟁하지 않는 묘사들”이라고 부른다[13]. 레이몬드 그리즐(Raymond Grizzle) 에따르면, 두 분야는 각각 다음과 같이 다른 질문들을 한다: “과학은 방법을 묻고, 신학은 이유는 묻는다.”[14] 둘은 각각 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동일한 척도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둘의 다른 측면들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이 모델의 주장이다.

미국 성공회에서 출판된 『창조교리문답』에서는 “과학과 기독교 신학은 진리와 이해를 탐구하는 데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8]. 상보적 유신 진화론의 요지는 “성경의 자연에 대한 계시가 객관적이며, 그런 만큼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는 객관적 사실”임을 강조한다[9]. 상보적 유신진화론은 성경과 과학을 각각 주관적 영역과 객관적 영역으로 구분하여 대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진화의 원리 자체가 창조의 결과라고 생각하기에 창조를 객관적 사실로 강조한다. 그것은 성경의 저자도 하나님이고 자연의 창조자도 하나님이기 때문에 과학이 창조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성경이 창조에 대해 말하는 것의 진정한 해석으로 보아야 한다고 여긴다. 과학적 지식을 통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다 분명하고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델이 가진 문제점은 하빈이 지적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창조주로서 과연 필요한가”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4]. 거대한 자연의 법칙 앞에서 하나님이 설 자리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성경과 과학에 대하여 상보적 유신진화론과 다르면서도 유사한 면을 동시에 가진 입장이 있는데, 이는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가 제시한 것으로서, 흔히 ‘노마’(NOMA, Non-overlapping Magisteria: 중첩되지 않는 교도권)로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15]. 이것의 핵심 논점은 종교와 과학이 별개의 교도권에 속한 것이므로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질문들을 다루며, 둘을 별개로 취급해야 양자가 조화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보적 유신진화론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점은 과학과 종교를 완전히 별개로 본다는 것이다. 둘을 완전히 별개의 영역으로 본다는 것은, 과학은 실재의 세계를 다루는 것인 반면, 종교는 천사, 하나님 등과 같은 비 실재의 세계를 다룬다는 의미이다. 바꾸어 말하면, 과학은 현실적 세계를 다루고, 성경은 가상적 세계를 다룬다며 둘을 분리하여 생각한다는 것인데, 이는 기독교 입장에서 수용하기 곤란하다. 물론 오늘날의 유신진화론이 굴드의 노마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굴드의 방법론은 상보적 유신진화론과 유사한 면을 지녔다. 결국은 둘 다 성경과 과학 사이에 존재하는 현저한 견해 차이를 극복하려는 시도이지만 여전히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다.

3. 유신진화론의 기본 전제들

유신진화론을 평가하기에 앞서, 우선 오늘날 대다수의 자연적 유신진화론이 공통적으로 전제로 하고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유신 진화론은 우주와 생명의 출현에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즉, 그것은 무에서부터 유를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실존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우주와 생명의 출현을 생각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신진화론은 기원 문제에 있어서 전통적 진화론이 취하는 “방법론적 자연주의 (methodological naturalism)” 혹은 “형이상학적 자연주의(metaphysical naturalism)”[3]가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거부한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란 자연과 관련된 연구에 있어서 “방법론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거부하는 연구 방법론이다. 즉, 본래 자연이 자연 스스로 있었다는 전제, 곧 자연주의의 전제에 따라서 연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9] 우주와 생명의 출현에 있어서 무신론적 진화론이 지닌 한계를 자각한 유신진화론은 자연주의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실마리를 하나님에게서 찾는다. 이런 입장을 일컬어 ‘틈새의 신’(God of the gaps)이라는 용어로써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16]. 자연에서 설명할 수 없을 때, 초자연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진화의 과정으로 설명이 안 되는 곳에 하나님을 초청하여 그 빈 곳을 채우기에 그것을 ‘틈새의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론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유신진화론은 그 용어의 수식어인 ‘유신론적’(theistic)이란 말 자체가 방법론적 자연주의 혹은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무신론을 기초로 한 진화론과는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둘째,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행위가 자연법칙하에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 법칙이 과거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했다는 전제 하에서 이런 주장을 펼친다. 이는 자연 자체의 기능적 완결성 때문에 생명은 태초에 하나님이 수립한 법칙에 따라 추가적인 신적 개입 없이도 물질에 부여된 잠재적 가능성이 발현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모든 생명체의 출현에 하나님이 일일이 직접 개입한 것이 아니라, 자연 자체에 부여된 기능적 완결성에 의해 추가적으로 생명들이 출현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자손 번식의 과정에서는 이 모델의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생명의 발생에까지 적용시키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프란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는 유신 진화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공간과 시간에 제한되지 않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이를 규율하는 자연 법칙을 확립하셨다. 내버려 두었더라면 불모의 공간이 되고 말았을 우주에 생명들을 번성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진화라는 우아한 방법을 선택하셔서 모든 종류의 미생물, 식물 및 동물들을 창조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이와 동일한 방법을 선택하셔서 지성, 옳고 그름에 대한 지식,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할 자유의지 및 욕구를 지니게 될 특별한 생명체가 생겨나게 하셨다.”[10]

콜린스의 유신진화론은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들을 지닌다. 우선 이것은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자임을 인정한다. 이점은 무신론적 진화론이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지만 유신진화론의 중요한 전제가 되는 것이다.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은 자연계에 물리학의 법칙들과 정교하게 만들어진 초기 조건들을 설정한 존재이다. 그 하나님은 최초의 우주와 생명의 창조 뿐 아니라, 그 우주를 존재하도록 유지하는 일을 한다. 여기까지는 대다수의 유신 진화론자들이 이견 없이 동의한다. 하지만 인간의 창조에 대한 그의 견해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점이 발생한다. 다양한 생명체들을 창조함에 있어서 추가적인 초자연적 개입 없이 계속 진행하는데, 인간의 출현에 있어서는 예외적으로 특별한 조치가 이루어진다. 점진적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이미 출현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특별한 형상을 부여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원초적 창조와 생명의 창조, 그리고 인간의 창조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특별하고 초자연적 개입을 했다. 데이비드 레인(David H. Lane)은 “물질의 기원, 무생물로부터 생명의 기원, 인간 속의 영적 특성”을 포함하는 여러 시점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12].

사실 이런 입장은 일관성의 결여로 간주될 수 있다. 여기까지 와서 단지 아직 생명의 기원에 대한 완전한 설명이 없다는 이유로 틈새의 신을 도입한다는 것은 일관성을 잃은 처사이다. 생명의 기원과 발전이 생명이 발생하기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일관성이 있다. 물질의 기원, 무생물로부터의 생명의 기원, 인간의 출현 등에서만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개입을 한다는 사실은 불합리해 보인다. 이입 장은 근본적으로 자연적 유신진화론의 입장을 취하지만, 인간의 창조에 있어서만 초자연적 개입을 하락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두 유신진화론 사이의 중간 입장을 취한다. 그런데 이 입장이 여전히 진화론적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은 이미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출현한 사람, 즉 유인원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한 것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유신진화론은 화학적 진화나 진화 메커니즘 등과 같이 신뢰할 만한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46억년에 달하는 지구의 나이가 더 과학적이라 생각한다. 40억년 전에 무기물로부터 간단한 유기물이 출현하고, 여기서부터 더 복잡한 유기물이 나오고, 또 세포가 탄생하여 결국 생명의 기원이 되는 세포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유신 진화론자들은 생명의 진화에 대한 다양하고 광범위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화석 기록과 지층 내의 화석의 복잡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연선택과 돌연변이가 진화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종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상동성을 공통 설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공통 조상의 증거라고 주장한다[9]. 진화의 과정을 설명함에 있어서 딜레마 중의 하나인 중간종의 부재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주요한 변화가 없는 안정기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급속한 종분화가 이루어지는 분화기로 나뉜다는 ‘단속평형설’[17] 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통해 비켜가고자 한다.

하지만 오늘날 학계에서조차 전통적 형태의 진화론이 근본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우주의 출현에 대한 설명은 고사하고, 무기물로부터의 생명의 출현, 종에서 종으로의 진화 등 어느 것 하나 만족할만한 과학적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과학적으로 관찰 가능한 것은 기껏해야 종 내에서의 변이 같은 소진화(micro-evolution)[18] 정도이지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종의 분화를 의미하는대진화는 아니다.

III. 유신진화론의 한계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을 전제로 한 생명의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서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만연한 오늘날에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일부 기독교 신자들조차 유신진화론을 창조론보다 훨씬 더 과학적인 입장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유신진화론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또 현대 과학의 주장도 받아들인다는 포용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 분명하지만, 다양하고 복합적인 근본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사실상 이것은 진화론자와 창조론자 모두에게 거부당하는 입장이다. 진화론자들은 당연히 우주와 생명의 기원 문제에 있어서 신을 전제로 하는 유신론적 전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고, 창조론자들 역시 진화를 통한 하나님의 창조의 방식에 대해 분명히 반대한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한 것은 진화론에서 진일보한 것이 분명하지만, 유신진화론은 여러 근본적인 신학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여러 문제들 중 몇 가지만 꼽으라면, 우선이것은 하나님의 전능성에 상처를 입히고, 타락 전 죽음을 전제함으로써 신학적 문제를 야기하고, 성경의 본질적 가르침들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들을 공공연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 사실과 불일치 할 경우 성경을 재해석함으로써 성경을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 신학적 문제

유신진화론은 다양한 신학적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그들 중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유신 진화론은 하나님의 전능성에 심각한 상처를 입힌다. “유신론적 진화 체계에서 하나님은 만물을 주관하는 전능하신 주님이 아니다.”[8] 하나님이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할 능력이 있는데, 왜 굳이 오랜 세월동안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창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대답이 궁색하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을 6일 만에 태양계를 포함한 별들과 지구상의 생명체들을 다 만드신 존재로 언급한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 문제를 취급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세상을 순간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자신이 이미 세워놓은 자연 법칙, 곧 자체적으로 충족된 시스템에 창조의 일을 맡겼을 수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또한 하나님의 전능성에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의 법칙에 갇혀서 활동에 제약을 받는 존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하나님은 성경이 말하는 절대자이자 전능한 존재와는 거리가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전능한 존재라고 한다면, 창조에 있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을 리가 없다. 창세기 1장에서 묘사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기에 말씀으로 일순간에 무수한 생명체들을 만들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신진화론자들처럼 자연 법칙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자신이 제정한 그 법칙 안에 가둔다면, 이는 심각한 모순이다. 자연 법칙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그들이 아무리 기적적인 사실이라 할지라도, 아무도 놀라지 않고 그들을 당연시 하지만 그 법칙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기적들)을 인정하길 거부한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법칙 안에서 뿐 아니라, 그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는 법칙 안에서의 자연적 방식 뿐 아니라, 법칙 밖에서의 초자연적 방식으로도 일할 수 있는 전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둘째, 유신진화론은 죽음이 필연적으로 전제된 진화론을 기초로 한 이론으로서, 죄의 결과로 인간의 운명이 된 죽음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는 타락의 교리인데, 이는 최초의 인류인 아담의 타락으로부터 이 세상에 죽음이 이르러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죽음은 인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결과로서 모든 세계에 임하게 된 비극적 운명이다. 그런데 유신진화론은 “수십억 년에 걸친 동물들의 죽음의 행렬을 통해 인간이 창조되었음을 주장”함으로써[19], 죽음을 타락의 결과로 보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정한다. 진화론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는 자연선택설에 따르면, 약자들은 언제나 강자들의 먹이가 되어 왔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이 자연 선택을 “하나님께서 창조의 활동 가운데 하나로 사용하시는 창조 과정”이라고 주장한다[19]. 이를 통해 개체 수를 조절할 뿐 아니라, 다양한 종이 발생하는 진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신진화론은 “죽음, 파괴, 질병, 고통, 그리고 고난이 아담과 하와의 선조들에게서 수 백 만년 동안 지배”[12]했음을 전제한다. 그런데 창세기 1장 29-30절에 따르면 동물의 세계도 육식이 아닌 채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강한 자가 먹고 약한 자가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는 타락 이후에 이 세상에 들어온 동물계의 먹이사슬 체계였다.

유신진화론자인 게리 엠버거(Gary Emberger)는 타락 전 죽음과 타락 후 죽음의 문제는 다양한 창조론의 유형들 가운데 어느 것이 적절한가를 판단하는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타락 전 죽음을 전제로 하는 유신진화론자들과 달리 창조론자들은 타락 후 죽음이 세상에 왔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죽음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것으로서 사실상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창세기 3장에 따르면, 인류가 타락하기 전에는 죽음이란 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부터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즉, 죽음의 문제는 단순히 죽음의 문제가 아닌 죄의 문제와 직결된 중요한 이슈이다. 만약 죽음이 죄가 들어오기 전부터 오랜 세월 동안 존재했다면 창세기의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창조론을 믿는 자들은 타락 전 죽음을 전제로 하는 진화 사상이 들어간 어떤 것도 용납할 수가 없으며, 유신진화론도 물론 그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유신진화론은 성경 창세기 초반부에 나타난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유신진화론자 앨런 리찰슨(Alan Richardson)은 성경의 첫 몇 장들이 진정한 역사가 아닌 “위대한 신화들”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20]. 아담이란 존재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며, 죽음의 원인인 타락도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상징적인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면, 둘째 아담으로 묘사되는 그리스도 역시 무의미해진다. 바울은 아담의 역사성을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과 결부시키는데, 이를 죽은 자의 부활의 근거로 삼는다(고전 15:12-23). 유신 진화론의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부정은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도 비판하고 부정하기에 이른다[8].

유신진화론의 근본적 입장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주간의 역사성을 거부하고, 창조주간의 하루를 오늘날과 같은 24시간이 아닌, 긴 세월로 본다. 창조주간의 6일 동안 매일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하나님에 의해 즉각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기나긴 세월 동안 그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김병훈에 따르면, 에덴의 세계는 애초에 현재 우리가 겪는 세계와 다름없이 질병, 죽음, 포식동물들, 폭풍, 지진, 그리고 다양한 사고들이 존재하는 세계였다[19]. 창조주간 6일과 관련된 문제는 성경의 재해석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로서 단순히 역사성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성경에 대한 재해석도 단순히 해석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기독교의 본질적 가르침을 거부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2. 성경의 재해석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유신진화론은 창조주를 전제로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6일간의 창조 대신 오랜 세월을 통한 진화의 과정으로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점진적 창조(progressive creation)의 입장을 견지한다. 여기서 6일간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성경과 오랜 세월 진화의 과정을 통과했다고 보는 과학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이 초래된다. 성경과 과학이 충돌하는 갈등의 상황에서 유신진화론은 언제나 과학 편에 손을 들어주었다. 창조는 이루어졌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성경이 주장하는 6일 창조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상황에서 유신진화론자들이 택한 것은 성경의 주장 전체를 폐기하는 대신, 성경을 재해석함으로써 둘 사이의 충돌을 피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패틀 펀(Pattle Pun)의 주장처럼, 유신진화론자들이 선택한 방식은 “믿는 과학적 근거들을 기초로 성경을 재해석”하는 것이었다[21]. 창세기 초반부의 역사성을 받아들일 경우 발생하는 과학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그것을 재해석함으로써 야기되는 이슈들로는 창조 주간의 하루, 안식일, 아담의 존재 등 다양하다.

첫째, 창세기 1장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오랜 세월이라는 유신진화론의 주장은 불가피하게 하루에 대한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22]. 창조주간의 하루를 문자적 하루가 아닌, 수 백 만년에서 심지어 수억 년에 이르는 오랜 세월로 해석한다면, 과학이 이야기하는 진화론과의 충돌은 해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윤철호는 이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기서 날은 문자적으로 하루 24시간으로 구성된 날이 아니다. 첫 3일 동안은 태양, 달, 별, 하늘도 없는데 무슨 24시간으로서의 날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몇 마디 말씀만으로 창조가 진행된 6일을 실제적인 144시간으로서의 한 주간으로 이해하는 문자적 해석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6] 그런데 문제는 창세기 1장의 하루를 오랜 세월로 볼 해석학적 근거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앞 장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히브리어 ‘욤’이란 단어는 구약에서 언제나 24시간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문법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실제적 하루가 아닌 상징적 하루로 볼 근거가 없다. 전능한 하나님이 창조에 있어서 굳이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상식적이다. 전능한 하나님이 자신이 만든 자연 법칙에 예속되어 오랜 세월 동안 창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오랜 세월에 걸쳐서 창조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만약 창세기 1장의 첫 6일이 상징적 시간으로서 긴 세월이라고 한다면, 특별히 셋째 날과 넷째 날 사이에 일어난 창조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셋째 날에 오랜 세월에 걸쳐서 식물이 창조되고, 다음날인 넷째 날이 오기까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태양이 창조되었다고 한다면, 식물은 출현하는 과정에서 멸종되고 말았을 것이다. 태양이 없는 상태로 그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는 식물은 없기 때문이다. 식물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어떤 생명체도 사실상 존재가 불가능한데, 이는 태양을 통해 식물이 자라고, 동물들은 그 식물 섭취를 통해 영양분 공급을 받게 됨으로써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의 하루가 수백만 년이나 수억 년에 이르는 오랜 세월이라고 할 겨우 이런 결정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둘째, 유신진화론이 창세기 1장의 하루를 상징적 표현으로서 긴 세월을 가리킨다면, 성경의 안식일이란 개념도 그 의미를 상실한다. 만약 창세기의 하루가 오랜 세월이라고 할 경우, 창조의 모든 과정을 마무리하고 난 후 제칠일에 안식하셨다는 성경의 가르침 역시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 제칠일은 문자적인 날이 아닌 상징적 날로서, 성경이 가르치는 제칠일 안식일은 그 의미와 중요성을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제칠일은 실제적 시간이 아닌, 상징적 시간으로서 오늘날의 안식일과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주간 6일을 마치면서 주어진 제칠일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로서 1주일이란 시간 단위의 매듭과도 같은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이 만약 상징수로서 오랜 세월을 의미하는 것으로 재해석된다면, 창세기의 창조주간 이후에 등장하는 제칠일 안식일은 모두 실제적 주일 중 마지막 날을 가리키는 문자적 의미의 안식일로 적용하기에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유신 진화론자들은 성경의 재해석을 통해 과학과의 충돌을 피하는 듯 했지만, 오히려 성경을 거부하는 더 심각한 문제만 야기할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유신진화론의 하나님은 자연 법칙에 두 손과 두 발을 완전히 묶인 채 아무 것도 못 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IV. 나가는 말

점진적 창조론으로도 표현될 수도 있는 유신 진화론은 우주와 생명의 창조주 하나님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분명 창조론의 한 유형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창조의 방식이 창세기 1장의 묘사와 달리, 오랜 세월 동안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창조론이라기보다는 진화론에 가깝다. 유신 진화론과 그것의 두 구성 요소인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관계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간략하게 도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것이다.

우주와 생명의 발생을 진화론으로 설명하면서 오늘날 점점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유신진화론이 제시하는 주장들은 중요한 신학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첫째,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의 모습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더 나아가서 성경의 가르침들을 거부하게 한다. 이신론(deism)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유신 진화론자들의 하나님은 창조한 다음 뒷짐을 지고 있거나, 혹은 더 나아가서 아예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거 지켜만 보는 존재이다. 자연자체가 스스로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로서 창조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할은 축소되고, 하나님은 사실상 자연의 법칙에 예속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성경의 모든 기적들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성경의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존재로서 자연 법칙을 통해 “만물을 붙”들고(히 1:3) 보존하는 존재이지만, 때로는 필요에 따라 법칙 바깥에서 일하면서 온갖 기적들을 베푸는 존재이다.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자연적 방식이든 초자연적 방식이든, 그들은 모두 초월적 능력이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예컨대, 지구가 정확한 속도로 자전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궤도를 유지하며 공전하는 것은 자연 법칙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붙드는 행위의 결과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적이라 일컫는 사건들보다 결코 덜 초월적인 것이 아니다. 어쩌면 자연 법칙에 의해 일어나는 일들이 오히려 초월적 능력을 더욱 잘 드러낼지도 모른다. 둘 사이의 차이는 전자는 규칙성을 띤다는 것이고,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초월적 능력으로 창조했을 뿐 아니라, 창조한 것을 자신이 제정한 자연 법칙 안에서 초월적 능력으로 유지하는 존재이다.

둘째, 유신진화론은 아담이나 타락, 홍수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재해석을 통해 상징적 사건들로 이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성경을 부정하게 한다. 성경의 역사성을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거부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신학자는 “창세기 1-2장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우주와 인간의 창조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하나님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셨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저자의 관심사도 아니며 성서의 주제도 아니다.”라고 주장한다[6]. 여기서 사용된 언어는 문자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비유 언어”라는 것이다[6]. 이는 단순히 성경에 대한 재해석에서 끝나지 않고 성경 전반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게 된다. 유신진화론이 창세기 초반부의 사건들을 역사가 아닌 상징들로만 본다면, 신약이 인정하고 가르친 아담과 하와의 존재와 인류의 타락, 홍수 등은 상징 내지는 비유 언어에 불과한 허구들이다. 유신진화론이 성경을 옹호하기 위해 제시된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성경을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본 연구자는 근본적으로 상충되는 두 입장인 진화론과 창조론을 결합한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진화론이나 창조론 중 하나를 택하는 편이 오히려 더 일관성 있는 선택임을 지적하며 본 연구를 매듭짓고자 한다. 결국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선택은 어느 것이 더 과학적이냐의 문제가 아닌, 신을 전제하느냐 신을 전제하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유신진화론이 태생적으로 창조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기에, 본 논문은 창조론적 관점에서 유신 진화론을 다룰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진화론적 관점에서 유신진화론을 바라보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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