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영화가 하나의 근대의 예술로 부상하는 과정 속에서 소설 작품은 영화의 제재가 되는 참조 대상으로 꾸준히 자리 잡았다. <해리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판타지 장르는 물론이며 <양들의 침묵>과 같은 호러 장르와 <레미제라블>, <폭풍의 언덕>과 같이 명소설들도 영화화 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오발탄>, <성춘향>등 과거부터 소설들의 영화화가 진행된 바 있다.
바야흐로 다매체 시대가 열리게 되며 미디어를 중심으로 정보의 전달 매개체가 변화하며 서사와 관련된 장르의 주도권이 영상 매체로 변화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최근에 영화사 혹은 미디어기업들이 소설에 대한 원작 판권을 사들이고 있으며 제작사와 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하여 출판사나 저작권자들이 직접 피칭(pitching)을 하는 북 투 필름(Book to Film)과 같은 필름마켓 속에 중국 주요 콘텐츠기업들이 엔터테인먼트의 지식재산권(E-IP)을 사들이기 위해서 대거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며, 실제로 또한 소설의 영화화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1]. 대중영화 속에서 서사구조의 완결성에 대한 니즈는 시대를 구분하지 않는 요구이며, 새로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욕구의 증가 역시 필연적이라는 점에 비견해 보건대 이런 요청에 대해 부응할 수 있고 비교적 안정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 소설의 효용성은 영화기획에 있어 그 흐름이 지속적인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2].
특히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매체변용의 큰 장점은 이미 출간되어서 독자들의 일반적 평가를 받은 작품을 대상으로 하기에 영화기획단계에 있어 분석요소와 평가 요소들을 적용하고 사전 검토하는 것에 대한 시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으로 영화 제작에 있어 경제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흥행 결과를 예측하는 데 있어 적용가능한 필요한 조건일 뿐 이는 곧 성공을 담보해 주지는 못한다. 각색과정 속에서 수반될 수밖에 없는 매체변용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존재하고, 이는 곧 소설의 영화화 속에서 흥행을 결정지을 가장 강력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설의 세계가 영화 각색의 과정 속에서 지나치게 크게 변형이 가해지거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생략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면 오히려 앞선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례로 오손 웰즈의 <맥베스(1948)>는 현 시점에서는 당대의 촬영 기술과 기법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과거 당시에는 혹평을 피해가지 못했으며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스(1971)>와 아키라 구로사와의 <거미의 성(1957)>은 각기 동일 소설인 <맥베스>를 다루고 있으나 각기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소설의 영화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의 핵심 가치를 영화라는 매체적 특성을 통해 어떤 방식과 방향으로 제시하는지에 따라 관객의 호응과 질타를 받을 수 있다. 이에, 소설을 영화화하려는 제작자는 근간이 되는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한편, 한국인 최초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2007)>도 지난 2010년 임우성 작가에 의해 <채식주의자(2009)>로 각색된 바 있다. 국내 인터넷 서점 중 가장 규모가 큰 yes24의 스테디 셀러의 목록 중 11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 <채식주의자(2007)>은 유일하게 2010년 이전에 출간된 소설이며, 우리나라는 물론 영국과 아시아, 유럽, 북아프리카의 이집트까지 27개 나라에 판권 수출 계약이 완료된 상황이고 계약을 희망하는 나라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1)이다.
이처럼 21세기를 대표하는 한국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채식주의자를 영화함에 있어, 영화 <채식주의자 (2009)>는 아쉽게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KOBIS(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2020년 5월 기준 영화 <채식주의자(2009)>는 누적 관객 수 3천 4백 명에 그쳤으며 영화의 순제작비는 3억 5천 만 원이 소요되었으나 앞선 공식 통계에 의하면 누적매출액은 2천 5백만 원에 그쳤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위 <채식주의자>의 원작 소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영화 <채식주의자(2009)>가 소설의 영화화에 있어 놓친 부분에 대한 단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연구자의 주관적 시야를 배제하고 소설 작품의 분석과 영화 속에 드러나는 메시지가 어떠한 방식으로 변형되어 왜곡되었는지 탐색해보기로 한다. 이를 통해, 향후 명작 소설의 영화화에 있어 보다 발전적인 모습을 갖추는 한국의 영화 제작배경을 만드는 것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라 할 것이다.
Ⅱ. 작품의 분석
1. 선행연구의 검토
소설의 영화화에 대한 선행연구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바 있다. 이를 대표적으로 분류하자면, 상호텍스트성(Intertexturality) 관점의 분류와 미학의 준거적 관점, 상호매체성(Intermediality)의 관점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상호텍스트성의 관점은 텍스트의 개방성을 통해 양 매체간 교류한다는 가정으로 이루어진 연구의 방법으로서 가장 원론적 연구방법론에 의해 수행된 연구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소설에서 영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서사의 흔적을 발견하거나 반대로 영상 서사의 표현들을 소설 속에서 발견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소설로부터 영상 서사의 흔적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는 주로 1930년대의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영상 서사의 표현을 소설에서 발견하는 영화는 대개 1990년대 소설에 집중되어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징의 상호텍스트성은 각색(adaptation)으로 고정되고, 유형화된다고 할 수 있다[3].
이어 미학의 준거적 관점의 연구 흐름은 소설로부터 영상서사로 매체적 변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미학적인 준거를 두고 우열을 가리기 때문에 충돌하는 문제로 인해 발생하게 된다[4]. 대부분의 연구들은 서사변화에 초점을 맞춰, 원작의 서사성에 충실한 재현을 다루었는지 판가름한다.
마지막으로 상호매체성의 연구 관점은 소설과 영화 두 분야를 독립적인 관계로 간주해 문자매체와 영상매체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서로 인정하는 연구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즉, 소설에 대한 종속성을 벗어나고 영상서사가 독립적인 예술의 장르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5]. 이 경우 미쟝셴과 사운드, 편집과 시점 등이 중요한 분석의 준거가 된다.
위와 같이 상호텍스트성, 미학의 준거적 관점, 상호매체성의 세 연구 흐름은 무엇이 옳거나 그른 방법이라 평가할 수 없다. 100명에게 같은 소설은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상호텍스트성과 미학의 준거적 관점이라는 연구의 틀을 적용하고자 한다. 상호텍스트성의 특성 상, 각색으로 고정되고 유형화되는 영화 속에서 원작의 서사를 얼마나 충실하게 다루었는지 미학적인 준거로 평가하기로 한다. 상호매체성에 근거한다면, 소설의 영화화에 대해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으로 인해 연구의 초점이 흐려진다. 즉, 본 연구에서의 작품 분석의 틀은 선행연구의 갈래 중 ‘상호텍스트성’과 ‘미학의 준거’로서 적용하여 작품을 분석하기로 한다. 이에 앞서, 2000년대의 한국 소설의 흐름 속 채식주의자의 주제라 할 수 있는 ‘폭력, 그리고 육체’와 관련된 서사적 특징을 살펴본다.
2. 2000년대의 한국 소설
한강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0년대의 한국 소설에서의 폭력과 육체에 대한 표현의 흐름을 먼저 고찰해 볼 필요성이 있다. 현실의 시대적 흐름과 영화의 시대적 흐름은 비슷하게 흘러가지만 그 패러다임이 다르듯, 소설의 패러다임 또한 다르며 일정한 권역 속에서 움직인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한국 소설 속에서 육체와 폭력과 관련된 주제는 대개 도시적 삶과 폭력의 양상에 대한 조명의 관점에서 그려지고 있다. 2000년대 이전의 문학 영역 속에서의 폭력은 사회의 구조적 병리에 대한 거부와 일상적인 현실 질서의 억압적 성격을 드러낸 것에서 변화한 것이다. 육체는 폭력으로부터 일탈하고자 하는 ‘욕망의 형상화’ 과정을 통해서 사회 비판을 하기 위한 도구로서 작용했었다[6].
하지만 이는 최근에 육체의 도구성이 사회의 비판을 넘어서 사회와 개인의 철저한 파괴, 소멸을 위해 사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염승숙의 소설인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서는 자신이 사는 공간과 관계 속에서 점진적으로 소멸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작중 주인공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끔찍한 상황으로 인해서 불안과 공포를 거치며 무력감을 느끼는 서사로 나아가게 된다. 작품의 결말은 주인공이 벽돌로 환생하며 ‘이제야 제대로 숨을 쉬며 살고 있다[7]’며 폭력으로부터 해방되게 된다.
더불어 황정은 작가의 소설인 <야만적인 앨리스씨>에서는 작중 드러나는 폭력에 있어 환상에 기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음에 현실에 서서 환상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의 육체를 그려낸다. 폭력을 해소하려는 시도 자체가 다시 폭력의 재생산을 이끌어내기에 어떻게 이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탐색 자체가 인간의 본연한 모습이라 설명하고 있다[8].
이 외에도 다양한 2000년대의 한국소설들은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서 신체적 연속성2)이 점차 파괴되고 있기에 육체와 폭력 의미 양상이 변화함에 따라 그 성격도 일관성 있게 해방할 수 없는 대상임과 동시에 이를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서사로 나타나고 있다[9]. 마치 장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과 같이 소설 속 인물들도 실재 같은 가상현실 속에 존재하며 이에 대한 해결의 방법을 찾지만 이 또한 다시 폭력으로 다가오는 고통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3. 소설 <채식주의자>
3.1 소설 <채식주의자>의 폭력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10].
영혜는 꿈을 꾼다. 그 꿈은 전 날의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시작되게 된다. 영혜는 꿈을 꾸기 전 날, 얼어붙은 고기를 썰고 있었으나 남편이 ‘제기랄, 그렇게 꾸물대고 있을 거야?’라 영혜를 재촉했고 급기야 요리 속에서 칼 조각이 나와 남편으로부터 나무람을 받게 된다. 영혜는 누군가가 도마에 칼질을 하는 행위를 무서워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에서 영혜에게 무언가를 써는 행위는 지독한 죽음에 대한 꿈을 꾸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영혜의 과거 속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구체화된다. 자신이 아홉 살 때 다리를 물은 개를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매달아 죽을 때 까지 달린 사건이 영혜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된 것이다. 더불어 영혜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종종 맞았으며, 이에 대해 영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폭력에 의해 무감각해진 것처럼 보이는 영혜는 자신에 대해 가해지는 폭력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작중 영혜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가부장적 폭력’으로 통칭할 수 있다. 영혜에 대한 아버지의 지난 폭력과 채식을 함에 따른 남편의 폭력,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이용하려는 형부의 폭력은 모두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영혜는 자신의 시뮬라시옹적 세계를 벗어나고자 자신의 가슴을 노출하거나, 채식을 하거나, 나무-되기에 이르게 된다. 육식으로 대변되는 가부장적인 폭력[11]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과 채식으로 대변되는 가슴, 채식, 나무로 이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영혜의 처절한 몸부림은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했다. 앞서 폭력에 대해 결국 무력감을 느끼고, 죽음을 통해 해방되게 된다. 작중 마지막 어구에 나오듯 ‘무엇인가를 항의하듯 어둡고 끈질기게’ 항의의 눈빛을 보낸다는 말은 이러한 해석의 근거를 제시한다.
3.2 영혜의 폭력성
하지만 가부장적인 폭력을 저항하는 영혜조차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은 소설을 거듭 재독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부분이다. ‘뒤뚱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죽이고 싶어질 때, 오래 지켜보았던 이웃집 고양이를 목조르고 싶을 때...’의 대목이나 병원에 입원한 영혜의 움켜쥔 오른손에서 죽은 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장면은 영혜에게도 폭력성이 내재되었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즉, 폭력으로부터 자신만의 저항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본인 또한 폭력성이 내재된 인간의 한계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점에 기인해 본다면 영혜의 가슴, 채식, 나무-되기는 다른 시각으로 전환되게 된다. 영혜는 단순하게 타자, 즉 가부장적인 폭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자신만의 방법을 수행했던 것이 아닌, 자신의 내재적 폭력성까지 없애는 ‘주체의 파괴’를 통해 극복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는 앞선 염승숙 소설의 주인공이 벽돌로 환생되는 과정을 그려낸 것과 양상이 일치한다. 자신조차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도래해야 비로소 폭력이 멈춘다는 것을 인지한 주체의 행동인 것이다.
더불어, 작중 후반부의 영혜의 물구나무서기도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영혜는 단순히 나무-되기를 위해 물구나무서기를 한 것이 아니라, 작중 단서인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의 대목에서 ‘사고의 전환’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나무-되기에 대한 영혜의 단상이 아닌, 기존 폭력성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가부장적 폭력과 자신에게 내재된 폭력이 당연한 것이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무엇인가로 보는 것이 통념이나 그러한 통념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영혜의 해석이라 볼 수 있다.
3.3 육체의 식물화를 통한 반폭력
영혜는 폭력을 두려워해서 나무-되기를 결심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무자비한 폭력에 있어 자신도 그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반폭력의 휴머니즘적 가치를 제시하는 적극적인 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통한 직접적인 회복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식물이 됨으로써 ‘언니...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형제 같아.’의 대목을 통해 조화와 소통이라는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이는 폭력으로부터의 ‘탈주’의 개념이 아닌 영혜만의 신념 추구 행동이며 폭력을 향한 적극적인 자신의 헌신적 ‘행위’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존재들에게 무해한 것으로서 육체를 변화하게 된 사실 또한 급진적인 변화가 아니다. 자신의 몸의 자연스러움을 비추기 위한 ‘가슴 드러내기’를 통해 무해성을 표현하는 것을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영혜의 손아귀 속에는 동박새가 죽어 있었으며, 이를 더욱 적극적인 실천 방법으로서 나무-되기에 이른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나아가,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태양을 받으며 광합성을 하기에 이른다.
4. 영화 <채식주의자(2009)>
영화 <채식주의자(2009)>는 그 예고편에서 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한다. 다음 [그림 1]과 같이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를 하고 있다.
그림 1. 영화 <채식주의자(2009)>의 인물 소개
영화 속에서의 영혜는 ‘꽃이 되고 싶었던 그녀’로서 함축적으로 표현되며, 민호는 ‘예술을 향한 열망에 사로잡힌’ 인물로 그려진다. 이 둘 외의 인물은 영혜의 언니인 지혜에 대한 설명만 제시한다.
이 부분에서부터 영화는 영혜가 ‘왜 꽃이 되고 싶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꽃을 향한 열망으로 인한 욕구를 민호가 예술과 성적 욕망으로 인해 이용하고 있으며, 언니인 지혜는 평범한 일상을 꿈꾸지만 동생과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고통 받는 한 여성으로만 그려지고 있다.
소설 속 인혜(영혜의 언니)는 영혜와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폭력 속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영혜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 폭력에 시달렸으며, 결혼한 뒤에는 남편의 업무생활로 인해 항상 우선순위에 밀려났으며 집안일을 하며 남편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가련한 여인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유일하게 영혜에게 ‘채식’에 대해 옹호하는 발언을 한 인물로서 그녀 또한 반폭력의 주체로서 바라볼 수 있지만, 영화 속 그녀는 단순한 희생자의 면모만이 부각되고 있다.
그림 2. 영화 <채식주의자(2009)>의 예고편
더불어 ‘어느 순간 어긋나버린 그들의 삶’이라 표현하며 이 갈등의 원인 자체를 탐구하는 주제가 아닌, 표면적인 채식과 그로 인한 갈등, 그녀에 대한 성적 욕망에 허덕이는 남성의 불편한 욕구에 집중하고 있다. 더불어, 영혜가 물구나무를 서는 장면은 작중 ‘나무들은 모두 두 팔로 땅을 짚고 있다’의 장면을 반대로 해석하여 작중 영혜는 두 팔로 땅을 짚는 모습을 강조하기보다 두 다리를 벌려 갈라진 줄기를 보여주고 있는 엉뚱한 장면을 제시하고 있다.
영화의 포스터 속에서도 ‘A Human Being, Actually was A Flower'라는 문구를 제시해 인간은 본디 꽃과 같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만 ’왜 꽃인지‘, ’왜 작중 주인공이 꽃이 되려고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재하다.
무엇보다 영화는 영혜를 대변하여 작중 전달하는 메시지의 궁극적 의미를 포착하지 못했다. 영혜 또한 폭력성이 내재된 폭력의 주체임을 깨닫고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방하기 위해 나무-되기에 이르는 과정을 생략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서사의 이해를 불가능에 가깝게 만들었으며 오히려 영혜를 꽃과 같은 예술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한 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인들의 폭력으로 그려내어 개연성 없는 서사를 이끌어 냈다.
이는 이야기가 보편적인 관객들이 관람 영화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요소임에 불구하고 이에 대한 선험적인 적절한 이해의 부족, 내용 선택의 부적절함으로 이끌어진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오히려 관객들이 주목할 것이라고 생각한 요소를 선정적인 요소로 한정지어 표현했는데 이것이 곧 반작용으로 찾아오게 된 것이라 보인다.
이는 김영빈(2012)의 선행연구 속 나타난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의 영화화 <비상구가 없다>속에서 나타난 맥락과 유사하다[2].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에서의 작중 살인자는 그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설정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관객 일반의 대리체험을 견인할 수 있는 동일시 대상으로서 영웅주의적인 환영 주체가 될 수 있었지만 영화 속 나타난 주인공은 이전에 성매매에 종사하곤 했던 자본사회 속 지진아로 그려지며 영업이 끝난 야밤의 업소들을 들락거리는 존재로 표현된다.
이야기가 끝날 때 까지 정체가 전혀 밝혀지지 않는 건장한 청년이라는 익명의 존재가 실체로서가 아닌 부정적 대상에 대한 살의와 파괴 사상을 상징하는 개념이었다면, 영화 속에서는 곤궁하며 피폐한 모습의 실체적인 인물로 바뀌어 등장인물로서의 최소한의 인과성과 당위를 얻지 못한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 <채식주의자(2009)> 또한 영혜를 단순하게 폭력의 희생자로서만 그려지고, 성적인 대상물로만 그려냄으로써 그 인물이 갖고 있는 의미를 퇴색시켰다. 본래의 영혜는 폭력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는 점에서 소설과 영화가 공유하는 부분이지만, 영혜 자체도 폭력성이 내재된 사실을 깨닫고 이를 해결하고자 나무-되기를 결심했고 그녀에게 꽃과 나무는 휴머니즘적 가치의 실현이자 주체의 파괴로 인한 폭력의 해방 추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 영혜의 모습은 단지 맹목적으로 꽃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죽음에 이르는 모습으로만 그려지고 있다.
소설의 영화화에 있어 일정한 요소의 축약은 오히려 영화의 흥행요소로 작용하는 기제로서 발현되기도 한다. 영화 <아가씨>는 원작 소설에서 나타나는 동성애 요소를 주요한 요소로 다루지 않고, 젠더 담론과 사회적 이슈를 더하여 흥행에 성공하는 요인을 창조시켰으며[12], 두 여성 주인공이 진실을 실토하여 의기투합하는 ‘모험’에 초점을 맞추어 스토리를 이끌었다. 이처럼 상호텍스스성과 미학적 준거의 관점을 빗겨 나가 원작과 적절한 미적 거리를 두어 다른 방향으로서 영화를 흥행시키는 방향도 존재하지만[13] 영화 <채식주의자 (2009)>는 원작에서 일부만 가져와 활용하여 오히려 원작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새로운 의미의 관점으로 이를 풀어나가는 상호매체성의 장점도 살리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Ⅲ. 결론
한강은 지난 2016년 맨부커 상의 수상소감에 있어 “‘채식주의자’를 쓸 때 나는 인간에 대해 질문하고자 했다.”, “집필 과정에서 이러한 질문들은 인간의 폭력성에서 인간의 존엄성으로 옮겨갔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그녀의 집필 의도조차 범적인 인간에 대한 폭력성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해 이를 해방시키기 위한 인간의 고뇌를 그리고자 한 것인데, 영화 <채식주의자 (2009)>는 오히려 고민을 그려내기보다는 표상적인 폭력만 그려내고, 이를 오히려 선정적인 요소로 표현하고 있었다.
스테디셀러(steady seller), 혹은 베스트셀러(best seller)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에 대한 장점은 그 소설이 기반으로 다져 놓은 작품성과 대중성이 가장 큰 요소임을 앞서 서론에서 언급했다. 더불어, 상호텍스트성의 관점과 미학적 준거의 관점에서 본다면 원작의 소설이 이미 구축한 미와 의미를 영화라는 매체의 변용을 통해 흐리게 하면 자연스레 관객 또한 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관람평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이런 장점을 최대한도로 살리기 위해서는 각색 과정 속에서 지나친 변형이 있거나 중요한 설정과 장치를 생략하게 되면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된다.
물론 시각적 정보인 문자를 전달하는 소설과 움직이는 영상 및 음향이 동시다발적으로 전달되는 정보의 양은 영화가 더욱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와 소설의 장르적 차이로 인해 영화가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해주지만, 영화의 미디어적 특성상 장면을 다시 보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정보 전달이 보다 명확하며 분명해야 한다. 이런 매체 간의 특성 차이로 존재하는 소설의 영화화의 한계점이 존재하지만, 상호텍스트와 미학적 준거의 관점에서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작 텍스트의 정밀한 이해와 분명하게 제시할 메시지를 집중화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채식주의자(2009)>는 이런 점에서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초점을 영혜의 ‘꽃이 되고 싶은 욕망’에 주안점을 두어 작품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가 들게 한 작품이었으며, 원작의 소설이 큰 명성을 얻은 데 비해 영화는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구체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영화 <채식주의자(2009)>를 단편적으로 조명했으나 이와는 달리 성공한 소설의 영화화 작품들인 <완득이(2011)>, <도가니(2011)> 등의 국내 성공작도 다수 존재한다. 이들이 저예산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채식주의자(2009)>와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상대적인 저예산으로 높은 완성도를 지니기 위해서는 원작 소설의 흥행요소를 파악해 두 시간 남짓의 영상 속에 이러한 감동을 최대한 전달할 수 있는 ‘상호텍스트성’과 ‘미학의 준거’의 측면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영화 제작의 출발 선상부터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원작 소설의 영화화에 있어서는 보다 고심이 필요한 사항이라 보인다. 즉, 소설이 성공적이라면 영화도 성공적이게 제작하려는 인식을 분명하게 심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설이 대중화와 만인의 공감을 이끌었다면, 이를 보다 다양한 정보로 제공할 수 있는 영화는 이를 더욱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작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소설과 영화를 둘러싼 매체의 공존을 이끌 수 있을 것이며 보다 예술에 대한 작품 향유의 깊이를 더 할 수 있는 영화의 새로운 역할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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