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I QR코드

DOI QR Code

Aftereffects of The Military Coup of 1961 in Korea - The Transformation of the Asia Foundation's Projects in the early 1960s -

5.16 군사정변과 아시아재단 사업방향의 전환 - 1961년 박정희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을 중심으로 -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programs and practices of the Asia Foundation during the politically tumultuous period of the early 1960s. Since its opening of branch office in Korea, the Asia Foundation expanded the scope of its activities that catered to the "local" needs of the country. Yet, the military coup in 1961 led by Park Chung Hee created a serious challenge to the organization, forcing it to look for a breakthrough. An opportunity presented itself in late 1961 when Park planned a visit to the US to hold a summit meeting with the US president Kennedy. The Asia Foundation seized an opportunity, by hosting a banquet reception for Park who made a stopover in San Francisco. The entire process of preparation enabled the foundation to develop close rapport with the key players in the military junta. Furthermore, it gained an invaluable insight into the junta's policy agendas, member dynamics as well as what the despot Park disfavors. The successful hosting turned the foundation into the most formidable philanthropic organizations in Korea. Concurrently, its program designs increasingly catered toward creating and serving the new administrative policies and programs of the military junta government. This "top-down" style of localization marks a new modus operadi, indicating a deeper collaboration between the foundation and South Korean government in the 1960s. Two programs stand out. They are : the diplomat training and law education. Both ended up strengthening the governing power of the Park administration.

이 논문은 1960년대 초 한국의 정치적 격변기에 한국에서 활동한 미국의 비정부단체 아시아재단의 활동을 고찰한다. 1954년에 한국에 지부를 설립한 아시아재단은 이후 1950년대 동안 지원사업의 현지화를 표방하며 활동의 영역을 넓혀왔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의 군정이 출현하면서 위기를 겪게 되었고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한다. 같은해 박정희의 미국방문은 재단에게는 기회로 다가왔는데, 특히 그의 샌프란시스코 방문과 연설을 유도하면서 전기를 마련한다. 이 과정에서 재단은 자연스럽게 권력의 핵심부와 교류를트게 되고 아울러 군사정권의 국정목표와 구성원의 성향 그리고 권력자의 역린까지 파악하게된다. 이후 재단은 군정의 이해에 부합하는 정책적 협조를 제공함으로서 큰 신뢰를 얻게 되었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과정을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후버연구소에 소장된 아시아재단의기록자료 중에서 "박정희 폴더(1961~1963)"로 명명된 서류철에 포함된 문서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였다. 박정희의 방미 이후 재단의 사업은 군사정권에게 필요한 새로운 정책들을 지원하는 모습을 띠는데, 이런 양상은 1950년대의 사업 방식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시민사회의 리더십을 육성하고자 하는 아래로부터의 현지화가 정부와 협력을 중심으로 한 위로부터의 현지화로 바뀐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업으로 외무공무원교육원 설립 프로그램과사법교육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는데, 이 두 사업은 결과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통치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Key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