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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궁실건축에 사용된 격식기법의 유형과 변천

The Architectural Crafts as a Code of Manners and Their Historical Changes in Palatial Buildings and Royal Residenc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 투고 : 2019.10.11
  • 심사 : 2019.12.13
  • 발행 : 2019.12.31

초록

The grade of East Asian architecture is generally classified by the size, the shape of the roof, and the type of bracket set. The craftsmanship of columns, beam, purlin, stylobate, column base stone and paintwork is also a contributing factor for such classifications. These classifications can be found not only in historical documents such as 「Oksajo(屋舍條)」 of 『Samguksagi(三國史記)』 but also in 「house details regulations of residential architecture(家舍規制)」 of Joseon Dynasty. However, there are differences in detailed designs among the same grade of architecture regardless of the classification. In this research, the Palace, the Royal Residence(宮家), and the Jaesil(齋室) are considered as the Palatial Buildings and Royal Residences. And the advanced architectural o details which appear only in the Royal Architectures are defined as the 'The Architectural Crafts as a Code of Manners'. The Architectural Crafts as a Code of Manners is detailed design, which can be seen as fabrication of materials and supplementary factors. The Architectural Crafts as a Code of Manners used in the Palatial Buildings and Royal Residences reveal the types and their historical changes. This research will present a basis for the repair and restoration of cultural heritages to be carried out in the future, and also prevent them from further damages, thus help to preserve the cultural heritages.

키워드

1. 서론

동아시아 건축에서 건물의 등급은 대개 규모, 지붕의 형태, 공포 형식을 기본으로 구분하고, 이에 더해서 기둥, 보, 도리, 기단, 초석 등의 가공 형태, 단청의 채색 여부로 판단해왔다. 이와 같은 구분은 통일신라  [삼국사기(三國史記)] ,  [옥사조(屋舍條)]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가사규제(家舍規制)] 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의 모범이 되었던 [당률(唐律)] , [대명률(大明律)] , 송대의  [영조법식(營造法式)] , 청대의  [공정주법칙례(工程做法則例)] 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하지만 위의 규제 기준으로는 같은 등급의 건축이라도, 구분에 소속되지 않는 세부기법의 차이가 존재한다.

세부기법은 그동안 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졌다. 선행연구들은 건물의 외관을 크게 구분할 수 있는 요소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이제 건물의 격을 좌우하는 세부기법에 대해서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이 논문에서는 궁궐과 궁집, 재실 등 궁실건축(宮室建築)1)에서만 특별하게 보이는 고급의 건축 기법을 각 부분별로 찾아내 정리하고, 그 종류와 성격, 기능을 고찰한 후, 그 기법들의 위계와 변천을 밝히고자 하였다. 또한, 연구의 진행과 향후 전개를 위해 위계 적인 고급의 건축기법을 ‘격식기법’이라 명명하였다.

연구의 대상으로 원형이 잘 남아있으면서도 공통적인 격식기법이 발견되는 25동의 건물을 선정하였으며, 그 목록은 <표 1>과 같다.

표 1. 연구대상 궁실건축

먼저 격식기법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시대 양반주택과 궁실건축을 비교 분석하여 각 건물에 사용된 기법의 종류를 파악하고, 현장조사를 통해 이들을 확인하였다. 또한, 문화재 정밀 실측조사 보고서와 해체 수리 보고서, 기법과 장인에 관한 연구자료들을 참고하고,  [영건도감의궤] ,  [산릉도감의궤] ,  [조선왕조실록] 등 관련 문헌을 조사하여 기법의 용어와 사용 시기를 파악하였다. 20세기 초 근대 시기 사진 자료인 [조선고적도보] 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궁·능 관련 유리원판 도록] , 국가기록원 자료 등을 현황과 비교하여 세부기법의 수리 후 변형을 확인하였다.

2. 궁실건축의 격식기법 고찰

2-1. 격식기법의 정의

건축물의 등급은 전통시대에도 기본적으로 존재하였다. 동아시아 목조건축은 궁궐에서부터 민가에 이르기까지 목가구조의 원리를 공용해왔지만, 신분에 따라 그 등급을 구분하였다.

통일신라는 [옥사조]를 제정하고, 계급별 주거 규모, 형식, 건축재료, 실내치장 등을 제한하여 신분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2) 여기에 더해 [옥사조]에서는 느릅나무, 산돌, 석회의 사용과 기단석과 댓돌, 섬 돌의 가공을 금지하였다. 또, 부연, 막새기와, 장식기 와, 현어, 우물천장, 계단의 개수나 기단의 단수, 출목 공포와 같은 부가적 요소의 사용을 제한하였다. 즉, 신분계급에 따른 재료의 가공 정도와 부가적 요소를 제한함으로써 주거 형태를 구분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가사규제]로 집터의 크기, 집의 규모, 장식을 신분 계급에 따라 제한하였다.3) 진채 단청과 초석 이외에 다듬은 돌의 사용, 화공과 초공 같은 공 포를 장식으로 보아 부재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송대 의 [영조법식] , 청대의 [공정주법칙례]에서도 등급에 따라 사용하는 재료의 크기 단위가 다르고, 지을 수 있는 규모가 달랐다.

이와 같이 신분이 높을수록 낮은 신분에 비해 좋은 방식으로 건축할 수 있었고, 이때 건축 방식의 우열은 세부적인 기법을 구분 지음으로써 구체화하였다. 전통시대에 등급을 제한한 것들은 고급의 기준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외 고급기법들은 건물의 전체적인 구조나 인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섬세한 차이이며, 장인의 기교나 건축주의 안목 같은 개별적인 사안으로 여겨져 무시되어왔다.

연구자는 이러한 세부적인 고급기법들을 모아 정리 하고자 선행연구에서 사용되고 있는 ‘세부기법’, ‘고급기법’, ‘의장요소’, ‘세부의장’ 등의 용례와 그 의미를 검토하였다. ‘세부기법’은 가구 부재의 형태, 규격, 결구를 분석하거나 창호 구성 기법, 내부 미장 기법, 열손실 방지 기법 등 특정 기법의 상세한 연구에 사용되었다.4) ‘의장(意匠)’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구상, 고안의 의미로 사용되었지만,5) 일본이 ‘design’의 번역어로 기존 한자어인 ‘의장’을 사용한 이후 한국에 도입되어 만들어진 대상의 형태, 색채, 문양까지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6) 현재 한국건축에서 의장은 후자의 뜻으로 주로 부재의 형태, 문양의 외관상 미감을 논할 때 사용 하고 있다. ‘장식’은 주로 공포나 기와, 합각부, 굴뚝, 담장, 난간의 문양에 이용되었다. ‘의장’이나 ‘장식’은 기단부의 기법이나 토소란과 같은 미장 기법을 포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의장적, 장식적으로 더 화려 하다고 위계가 높은 것이 아닌 궁궐에서 사용하는 문양의 상징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여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고급기법’은 용어 자체에 등급의 의미가 내포되었지만, 높고 낮음을 구분하기 모호한 점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 논문에서는 위계의 의미가 잘 나타나는 세부 고급기법을 격식기법으로 정의하였다. 흔히, 건물의 위계를 ‘格’으로 구분하여 격이 높다, 낮다로 표현한다. 건물의 등급을 구분 짓는 방식을 ‘격식’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격식을 구현하는 기법을 ‘격식기법’이라 할 수 있다.

등급을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닌 격식기법은 가사규제에서 등급으로 제한한 것들에 비해 더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하위개념으로 볼 수 있지만, 돌의 사용방법 등과 같이 경우에 따라 위계가 일치하기도 한다. 한편, 격식기법은 궁실 이외의 고급건축에서 사 용되기도 하고, 특정 장인이 사용하는 개별적 기법일 가능성도 있다. 또, 궁실건축에 참여했던 장인 집단이 궁 밖의 다른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격식기법이라고 하여 반드시 궁실건축에 한정할 순 없지만, 대개 집중적으로 등장하였기에 이 논문에서는 궁실건축에 사용된 격식기법을 보고자 하 였다.

2-2. 궁실건축의 용례와 차별성

조선시대 궁궐은 의례영역과 생활영역이 구분되는데, 생활공간의 건축물이 공식적인 의례를 위한 공간에 비해 격이 낮은 건축양식을 채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 다. 이렇게 궁궐의 주거건축이 정전과 같은 의례건축에 비해 격식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대부집과는 구분 되었다. 궁궐은 높은 기술 수준을 가진 장인들이 동원되어 엄격한 규범에 맞추어 지어지기 때문에 여러의 장적 기법들이 확인된다. 또, 궐외 왕족의 주택도 타 계층과의 격식 구분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궁궐보다 더 넓은 범위인 궁실의 용례를 살펴보았다.

궁실(宮室)은 궁궐에 준하는 것으로서, 왕족이 거주하는 곳을 일컫는다.7) 또, 지배자의 집인 궁궐, 권위있는 집, 즉 궁궐급의 건축물을 의미하기도 한다.8) 조은주는 “궁실은 왕가일족과 관계된 왕실에 소속된 시설물”이라고 정의했다.9) 『동국여지승람』서문에서 궁실은 “위아래의 구분을 엄하게 하여 위엄과 무거움을 보이는 곳”이라 하고, 공해를 제외한 건축물들을 수록하 였다.10) 신영훈은 “궁실은 왕권이 경영하는 모든 건축물을 통틀어 일컫는다. 아주 넓은 의미의 단어로, 궁궐과 함께 객관과 공해까지도 망라된다.”라고 하였다.11) 이와 같이 궁실건축은 궁궐에 준하는것, 왕족이 거주하는 곳, 위엄이 있는 곳이다. 이 연구에서는 궁실건축을 궁궐과 왕실에 의한 건축으로 정의하고, 그중에 서 연구대상을 궁궐의 내전과 궁가로 제한하였다.

기법의 분석 요소는 타 계층과의 비교를 통하여 궁실건축에서만 사용되는 요소들을 추출하였다.12) 비교대상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시대 양반주택을 대상으로 하였다. 먼저 격식기법은 사대부집과 궁실건축의 비교로 위계가 크게 구분되고, 궁실건축에서 사용된 고급기법 안에서도 다른 층위로 위계가 존재하였 다. 격식기법은 기능상의 차이보다는 의장적 차이가 크고, 그것은 재료의 가공정도와 부가적 요소의 형식으로 드러난다.

궁실건축은 재료의 가공 정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재료는 목재와 석재로 분류되고, 가공의 방식은 규격, 형 태, 결구로 나눌 수 있다. 석재는 다듬는 정도, 물림 턱결구 등 가공 정도에 따라 분류되었다. 목재는 부재의 형태, 규격, 종류, 결구에 따라 가공의 방식이 달라진다.

궁실건축은 부가적 요소를 추가적으로 사용하였다. 부가적 요소는 꼭 필요하진 않지만, 기능적, 구조적, 장식적으로 보강을 위해 첨가한 부재를 말한다. 여모판, 초엽, 사벽첩, 토소란, 알추녀 등의 부재를 사용하여 위계를 높이기도 한다. 합각부, 굴뚝, 담장 등에 건강과 길상의 상징인 수(壽), 복(福), 희(喜), 박쥐, 포도 문양, 호리병 문양을 넣기도 한다. 또, 궁궐건축의 지붕마루에는 양성을 하고, 장식기와인 용두, 취두, 잡상, 토수를 설치하여 위계를 구분하였다.

표 2. 궁실건축에 사용된 기법의 위계 기준

3. 부분별 격식기법의 종류

3-1. 기단부 : 기단, 초석, 고막이, 동바리기둥

조선시대는 [가사규제]로 주초석 외에 숙석(熟石)의 사용을 제한하였지만, 궁실건축은 기단과 고막이, 동바리에 다듬은 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궁실건축의 기단은 다듬은 기단석을 사용하고,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한옥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재료의 가공에 차이를 두었다. 가공석의 경우 건물의 위계에 따라 단수를 다르게 하고, 단수가 높아질수록 쌓기 방식에도 차이를 두었다. 상부돌을 안쪽으로 들여쌓는 방식에서 상부갑석을 내밀어 쌓고 월대를 두는 방식으로 차이를 둔다. 갑석의 상부 모서리는 빗모로 가공하고, 하부 모서리에는 물끊기 홈을 둔다. 또한, 초석과 기단의 고정을 위해 물림턱을 두기도 하고, 모서리돌을 빗모로 가공하여 세부적인 부분까지 공력이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초석은 궁실건축에서 잘 다듬어진 방형형태로 평균 높이 330㎜, 흘림이 1치 이내로 거의 없는 것을 사용한다. 보통 사대부집에서 자연석초석이나 높이 150㎜ 정도의 흘림이 강한 사다리형 초석을 사용한 것과는 형태와 가공 정도에서 차이가 있다. 고막이도 궁실건축은 고막이석이나 전돌을 사용하고 통풍구는 주로 철물을 이용하였다. 특이하게도, 창경궁 침전들에서는 주로 통풍구가 있는 목재로 된 고막이판을 사용하였다.

그림 1. (左) 유릉 재실 초석 물림턱 (右) 유릉 재실 기단 모서리돌

동바리 기둥은 다듬은 돌기둥을 사용하기도 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대부집에서 동바리로 보통 방주를 사용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팔모석주는 창덕궁 낙선재 일곽에서 보이고, 사모석주는 운현궁, 덕수궁 함녕전과 즉조당에서 확인된다. 동바리기둥으로 팔모초석과 팔모기둥을 사용한 사례로는 창덕궁 성정각, 농수정, 낙선재 일곽, 연경당, 운현궁이 있다. 창덕궁 폄우사와 희우정, 남양주 궁집에서는 사다리꼴의 동바 리가 확인되는데, 그중 남양주 궁집의 동바리기둥은 턱빗모로 모접기를하여 세심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가공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동바리기둥은 채의 위계와 위치에 따라 형태를 구분한 사례도 있었다.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에서는 팔모초석에 원형기둥을 사용하였고, 안채 정면은 팔모초석에 팔모기둥을 이용하고, 안채 배면과 행랑채에서는 방형초석에 사다리형 기둥을 사용하여 구분하였다. 동바리기둥은 부식이 잦은 부재로 돌을 사용함으로써 내구성을 강화하고, 사다리꼴이 나팔모형태를 이용하여 사대부집과는 격을 달리한 것 으로 볼 수 있다.

그림 2. (左) 창덕궁 석복헌 동바리기둥 (中) 창덕궁 낙선 재 동바리기둥 (右) 남양주 궁집 동바리기둥

3-2. 몸체부:기둥 가공, 여모판, 초엽, 사벽첩, 토소란

몸체부 격식기법은 입면상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부분으로 대부분 부가적 요소를 사용한 기법으로 나타 났다. 방주는 모서리가 날카로워 손상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좋지 못하여 모서리를 쇠시리 가공으로 모를 접어 처리한다.13) 기둥은 모든 사례에서 모서리 가공을 하고, 그 쇠시리 형태는 총 25건 사례 전부에서 둥근턱빗모를 형태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기둥 면의 쇠시리 가공은 단순한 기둥에 변화를 주고 면 중앙에 수직선을 장식하여 기둥이 반듯하게 서 있음을 표시한다.14) 창덕궁 성정각, 남양주 궁집, 창덕궁 폄우사, 서향각, 의두합, 농수정, 덕수궁 즉조당, 낙 선재 일곽 사각당에서 기둥 면 가공이 확인된다. 기둥 면 가공의 형태는 모두 쌍사로 사용되었고, 쌍사 폭은 12-20㎜까지 나타난다.

표 3. 기둥의 가공

이런 기둥 면 가공은 목재뿐만 아니라 석재에도 사용이 되었는데, 화성 방화수류정 기단의 쌍사연석, 창덕궁 금천교, 존덕정 입구 돌다리, 창경궁 통명전 앞 돌다리 등 궁궐 안 석교 난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가공이 어려운 석재에도 사용할 만큼 기둥 면 가공을 격식기법으로 인식하고 격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기법으로 보인다. 여모판은 장식재처럼 보이지만 마루 귀틀 하부에 설치되는 부재로, 디딤석에 신발을 벗고 마루 통행 시 신발이 마루 하부에 떨어지는 것에 불편함을 느껴 기능적인 이유에 의해 생겨난 부재로 추정된다.15) 창덕궁 석복헌, 운현궁 노안당과 이로당, 덕수궁 함녕전, 덕수궁 즉조당, 홍릉 재실, 유릉 재실 25개 중 6개의 사례에서 여모판이 확인된다. 추가적으로 여모판은 경복궁 향원정, 창덕궁 낙선재일곽 사각당에서도 발견된다. 여모판은 침전과 같은 전각에서 전면 마루 하부에 고막이석을 설치하여 주로 배면 가퇴에 사용되었다. 정자나 재실에서 여모판은 대청 전면 부분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여모판의 형태는 연덩굴무늬나 구름무늬로 나타났다.

표 4. 여모판의 종류

초엽은 부재 처짐을 방지하기 위해 도리나 창방, 목 기연, 반침, 선반 하부에 설치한다.17) 총 25개 중 7개의 사례에서 초엽이 발견되는데, 창덕궁 성정각과 같이 궁궐에서는 주로 누마루 하부나 중층건물 하부에서 주심 밖으로 내민 귀틀을 보강하고 있다.18) 또한, 남양주 궁집, 창덕궁 희우정, 운현궁에서는 초엽을 반침 하부에 사용하고, 창덕궁 서향각은 선반 하부에서 확인된다. 연경당 선향재에서는 창방 뺄목을, 창덕궁 석복 헌 동행각에서는 도리를 보강한다. 초엽은 사대부집에서 보기 힘들고, 사용되더라도 합천 묵와고가에서처럼 가새의 형태로 나타난다. 한편, 궁실건축에서 초엽은 누마루, 반침, 선반 하부에 사용하여 잘 보이지 않음에도, 넝쿨무늬로 초각하여 사용한다.

그림 3. (左) 남양주 궁집 초엽 (中) 창덕궁 석복헌 동행랑 초 엽 (右) 창덕궁 서향각 초엽

사벽첩은 미장 면 테두리에 솔대를 둘러 벽체 두께를 수장 폭보다 두껍게하고, 목재 수축으로 이질 재료인 벽과 생긴 틈을 막아주어 단열기법으로 사용한다.19) 그뿐만 아니라 인방과 벽선에 미장 시 정벌마감을 깔끔하게 할 수 있다. 사벽첩의 사례는 창덕궁 연경당, 선향재, 성정각, 관물헌, 의두합, 홍릉 재실, 유릉 재실로, 총 25개 중 7개가 있다. 사벽첩은 폭 10-20mm 각재에 쇠시리가 들어가 있고, 사벽의 내외부 인방과 벽 선에 사벽첩박이로 고정한다. 추가적으로 창덕궁 대조전 영역 양심합에서도 찾을 수 있었고, 덕수궁 석어당과 홍릉 재실에서는 내부 사벽첩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벽지로 도배하여 전체를 감싸기도 하였다.

그림 4. (左) 창덕궁 성정각 사벽첩 (右) 사벽첩 상세

토소란은 당골벽이 탈락하는 것을 방지하고, 깔끔한 마감을 위해 사용하는 미장기법으로, 손이 많이 가서 격식 높은 집에 사용된다. 궁실건축에서는 당골막이골에 힘살을 설치하고, 도리 상부와 미장벽체가 만나는 부위에 재료분리대로 토소란을 설치한다. 토소란의 사례로는 창덕궁 서향각과 폄우사, 연경당, 낙선재, 취규정, 덕수궁 함녕전, 즉조당, 운현궁, 유릉 재실로, 총 25개 사례 중 15개 사례에서 발견된다.

그림 5. (左) 창덕궁 폄우사 토소란 (右) 창덕궁 낙선재 토소란

그림 6. 토소란 상세도

3-3. 지붕부 : 알추녀, 막새기와의 부분적 사용

[옥사조]에서 겹처마와 막새기와는 왕족인 성골에만 허락된 가장 높은 위계의 지붕 형식으로 기록되어있 다. 이처럼 지붕부는 처마와 기와의 마감으로 위계를 구분할 수 있다. 보통 처마는 홑처마와 겹처마 두단계로, 기와는 와구토와 막새기와, 막새기와에 장식기와로 마감한 것 세단계로 분류하지만, 알추녀와 막새기와의 부분적 사용으로 추가적 위계가 존재한다.

알추녀는 건물의 규모가 큰 경우에 거대한 곡재를 구하기 어려울 시 추녀 하부에 덧대어 추녀의 곡선을 만드는 부재이다.20) 하지만 연구대상의 궁실건축 사례 들은 규모가 작고 추녀 길이가 짧아 목재수급에 문제가 없는 곳에도 알추녀를 사용하였다. 이는 알추녀가 조로 곡선을 위해서가 아닌 홑처마보다 위계를 높이기 위해 사용한 기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21) 알추녀의 사례로는 창덕궁 의두합, 운경거, 연경당, 낙선재 일곽 석복헌, 수강재, 남양주 궁집, 장위동 김진흥가옥 총 25개 중 7개에서 확인된다.

림 7. 창덕궁 의두합 알추녀

기와 마구리의 마감은 일반적으로 와구토로 마감하고, 그보다 격이 높은 건물은 막새로 마감하고, 궁궐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격은 토수와 용두, 잡상으로 장식한다. 하지만, 와구토와 막새 마감 사이에 한가지 위계가 더 존재한다. 막새기와의 부분적 사용으로, 팔작지붕이면 추녀부와 합각부 주변 일부를 막새로 마감하고, 맞배지붕이면 내림마루 너새기와를 막새로 마감한다. 이는 창덕궁 연경당, 창덕궁 선향재, 홍릉과 유릉 재실에서 확인된다.

그림 8. (左) 창덕궁 연경당 안채 추녀부 및 합각부 막새기 와 (右) 창덕궁 선향재 내림마루 너새기와 ((左) 문화재청, 문화재원형기록정보시스템, 1992, 도면_보물 제1770호_창덕 궁 연경당_안채 정면도 재편집 (右) 문화재청, 문화재원형 기록정보시스템, 2001, 도면_사적 제122호_창덕궁_연경당 실측 원도 선향재 정면도2 재편집)

4. 격식기법의 위계와 변천

4-1. 격식기법의 위계 분류

격식기법 안에서 위계가 존재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가공과 마감의 정도, 부재의 규격과 종류, 문양의 가공 난이도에 따라 위계를 <표 5> 로 분류하였다. 그 위계는 재료 가공의 어려움, 비용, 노동력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다.

표 5. 격식기법 위계 분류

재료의 가공 기법은 기단석, 초석, 동바리, 고막이, 기둥 쇠시리 가공이 있었다. 기단석은 종류에 따라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였는지, 가공하여 다듬석으로 사용하였는지, 모서리 처리 방식에 따라 위계를 분류하 였다. 기단면의 마감은 궁궐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전을 사용하였는지, 강회나 흙으로 마감하였는지에 따라 나누었다. 궁실 건축의 초석은 흘림이 1치 이내, 높이가 300㎜이상의 방형초석과 흘림이 강한 높이가 240㎜ 미만 사다리형 초석으로 분류하였다. 동바리기둥은 돌 기둥만을 사용한 것과 초석에 나무기둥을 같이 사용한 것이 있었는데, 돌기둥만을 사용한 것을 더 높은 위계로 보았다. 사각보다는 팔각이 가공을 더한 것이므로 가장 높은 위계로 여겨, 팔모석주, 사모석주, 팔모초석에 팔모기둥, 사다리형기둥, 각주형태로 나누었다. 고막이는 고막이석, 전돌, 토석마감 세단계로 위계를 분류하였다. 기둥은 모접기와 면 가공한 것을 가장 높은 위계로 보고, 모접기만 한 것은 중간 위계, 모접기를 하지 않은 각주 형태를 가장 낮은 위계로 구분했다. 궁실건축이 대상인 만큼 모접기를 하지 않은 건물은 없었다.

부가적 요소기법으로는 여모판, 초엽, 사벽첩, 토소란, 처마, 기와가 있었다. 여모판은 존재 유무에 따라 위계를 나누었고, 초엽은 사용 여부와 초각이 넝쿨무늬로 들어간 것과 간략한 형태를 구분하였다. 단열기법인 사벽첩은 사용 여부에 따라 위계를 나누었고, 토소 란도 존재 여부에 따라 분류하였다. 처마는 가장 높은 위계로 겹처마, 홑처마에 알추녀를 사용한 것을 중간 위계, 홑처마를 낮은 위계로 보아 세 단계로 나누었다. 기와 마감은 막새기와에 장식기와가 있는 것, 전체 막 새기와, 전체는 와구토에 추녀부나 합각부, 내림마루 일부에만 막새기와를 사용한 것, 전체 와구토로 네 단계의 위계로 분류하였다. 지붕부의 변칙적 구성을 추가적 위계로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4-2. 건축유형별 격식기법의 특징

건축유형별로 격식기법을 다르게 적용하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궁궐 침전, 궐내 기타건물, 궁집으로 나누어 <표 6> 으로 분석하였다. 궐내 기타건물은 창덕궁 후원의 서재로 활용된 건물이 주를 이루고, 왕릉 재실은 살림집의 형태로 사례수가 적어 궁집에 포함하여 분류하였다.

침전의 사례로는 덕수궁 함녕전, 즉조당, 경복궁 협길당, 창경궁 통명전, 양화당, 환경전, 경춘전, 영춘헌 총 8개소를 분석하였다. 전체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침전의 격식기법은 동바리기둥으로 석주를 사용하고, 기둥면에 쌍사로 쇠시리 가공을 하였다. 지붕부는 막새기와에 장식기와를 사용하고, 토소란을 설치하였다. 여모판은 덕수궁 함녕전, 즉조당에서 사용되었고, 겹처마가 사용되어 알추녀는 사용되지 않았다.

표 6. 건축유형별 격식기법 사용

궐내 기타건물의 격식기법을 살펴본 결과, 2개의 사례를 제외한 8개의 사례에서 벽체에 사벽첩을 설치하였다. 동바리기둥은 10개의 사례 중 6개의 건물에서 사다리꼴 형태를 적용했고, 지붕 기와는 대부분 전체 막새거나 추녀부, 합각부 막새로 위계를 다르게 하였다. 서재의 사례로는 창덕궁 성정각, 서향각, 선향재, 폄우사, 관물헌, 희우정, 제월광풍관, 운경거, 의두합을 분석하였다. 창덕궁 후원 정자에 사용된 기법으로는 공통적으로 지붕의 막새기와 사용과 동바리 기둥으로 석주가 발견되고, 일부 기둥 면 쇠시리 가공과 여모판이 확인된다.

궁집의 격식기법으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지붕 위계로 추녀 하부에 알추녀를 설치하고, 처마부, 합각부 막새나 전체 막새를 5개의 사례에서 적용한 것이다. 동바리기둥은 주로 팔각석주나 팔각초석에 팔각기둥을 사용하였다. 남양주궁집에서는 사다리꼴 형태를 동바리기둥으로 사용하였는데, 모접기에 면 쇠시리 가공까지 한 것을 확인하였다. 또, 궁집에서 토소란, 사벽첩 이 5개의 사례에서 발견된다. 현존하는 궁집의 사례로는 화길옹주 궁집(남양주 궁집), 운현궁, 창덕궁 낙선재, 연경당, 덕온공주 궁집(장위동 김진흥가옥), 복온공주 궁집(창녕위궁재사), 화순옹주 궁집(김정희선생 고택) 총 6개소를 분석하였다. 왕릉 재실은 추녀부나 내림마루의 막새기와, 사벽첩, 토소란, 여모판의 기법을 적용한 것이 홍릉, 유릉 재실에서 발견된다.

궁궐의 일상 공간 중 가장 위계가 높은 침전은 기법에서도 격식이 높은 유형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궁집과 궐내 기타건물은 격식기법에 따라 사용 비율이 차이가 있어 우위를 정할 수 없었다. 초엽과 사벽첩은 궁궐 침전에서 사용되지 않고, 여모판과 알추녀, 추녀부 막새기와는 주로 궁집과 재실에서 사용 되었다. 격식기법은 건축유형에 따라 다른 기법이 적 용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4-3. 격식기법의 변천

격식기법이 사용된 시기를 확인하기 위해 각 건물의 건립연대로 시기적 분포를 <그림 13> 으로 표현하였 다.23) 시기별로 살펴본 결과, 기둥 면 가공은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사용하였다. 모접기는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기둥 면 쇠시리 가공은 기능적으로 동일하고, 노임이 더 드는 일로 격식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기법으로 볼 수 있다.

여모판은 현존하는 건물로 보면 19세기 중반부터 20 세기 초까지 침전과 궁집, 왕릉 재실에서 사용된 기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1793년 부용정에서도 여모판이 사용되어 18세기 후반부터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창덕궁 후원의 정자 부용정과 농수정, 수강재, 낙선재 일곽의 사각당 일부, 경복궁 협길당과 종묘의 향대청, 운현궁 이로당은 사진으로 여모판이 확인되나 보수 시 누락되거나 변형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그림 9. (左) 창덕궁 부용정 (右) 경복궁 협길당 ((左) 조선총독부, [조선고적도보]10권, 1930, 1432쪽, (右) 열화당, 『한국의 고궁건축』, 1988, 71쪽)

부용정의 여모판은 [조선고적도보]에서 발견되나 현재는 사라지고, 석재 계단이 2단에 3단으로 변경되었다.24)

농수정의 여모판은 정면과 좌측면에 2개가 설치된 것 을  [조선고적도보]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79년 발간 한『한국건축의장』과 1984년  [韓國의 美 14 宮室·民家] 에서 여모판이 발견되고, 1988년 농수정도면에서 여 모판이 확인된다. 2003년 주남철의 『연경당』 농수정도면에 여모판이 표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았을 때, 창덕궁 농수정의 여모판은 1988년 이후 2003년 이전에 사 라진 것으로 추정된다.25)

그림 10. 창덕궁 농수정 (左) 1915-1930년 (右) 2019년 ((左) 조선총독부,『조선고적도보』10권, 1930, 1437쪽)

사라진 여모판의 설치 흔적이 귀틀 하부에 현재 남 아있다. 정면 여모판의 규격은 두께 24mm, 길이 1,930mm, 높이 150mm이고, 좌측면 여모판은 두께 24mm, 길이 1,580mm, 높이 65mm로 확인된다.

그림 11. 창덕궁 농수정 정면 귀틀 하부 여모판 설치 흔적

그림 12. 창덕궁 농수정 정면도 (문화재청, 문화재원형기록정보시스템, 1988.05, 도면_사적 제122호_창덕궁_사모정 입면도 재편집)

창덕궁 수강재는 1992년 낙선재 일곽 복원 전 현황 자료에서 배면 가퇴 부분에 여모판이 확인되나 현재 소멸되어 발견할 수 없다.26) 운현궁 노안당, 이로당 외 부에는 남아있으나 이로당 중정에 있는 여모판은 1996 년 수리 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모판은 연구대 상 외 사례에서도 소멸된 것을 확인하였다. 경복궁 협길당 여모판은 <그림 9>에서 볼 수 있듯이 구름무늬 형태였으나 2005년 보수공사에서 초각이 없는 여모귀틀 형태로 변경되었다. 종묘 향대청 여모판은 2004년 보수공사에서 소멸되고, 왕실일가와 관련된 김좌근고택은 2009년 여모판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된다.27) 여모판은 상류주택인 도편수 이승업가옥, 마포 최사영가옥, 백운장 몽룡정, 아산 윤보선 생가와 필운동 홍건익 가옥에서도 여모판을 확인하여, 20세기 초까지 사용된 기법으로 추정된다.28)

초엽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의 궁집과 창덕궁 후원 서재들에서 발견된다. <그림 13>에서 초엽은 19세기 후반의 창덕궁 선향재에서 사용되고 사라진 기법처럼 보이지만, 20세기 초반 재건하여 연구대상에서 제외한 창덕궁 침전인 대조전 영역에서도 누마루 하부에 초엽이 사용되었다. 초엽은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13. 격식기법의 사용 시기 추정

토소란은  [철종예릉산릉도감의궤](1864)에 토소란(土 小欄), 토소란박이(土小欄朴只)가 표기되었고, 19세기 초 설치하기 시작하여 19세기 중엽 이후 보편적으로 사용한 기법이다.29) 하지만, 18세기 후반인 궁집과 20 세기초반 왕릉 재실에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토소란의 사용 시기를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사벽첩은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창덕궁 후원 서재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궁집과 왕릉재실에도 나타났다.  [산릉의궤] 를 토대로 보면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30) 사벽첩은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창덕궁 폄우사, 제월광 풍관, 희우정, 낙선재, 의두합, 연경당 행랑채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변형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폄우사는 사벽첩의 흔적이 문선과 중인방에 남아있으나 벽체 보수 시 기법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2001년 도면에 사벽첩이 보수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것을 보아 그 이전의 변형으로 추정된다. 운경거는 의두합과 같이 효명세자가 건립한 서재로, 1928년에 촬영된 의두합, 운경거 사진에는 사벽첩이 확인된다.31) 사벽첩은 의두합에 현재 남아있지만, 운경거에서는 사라진 상태이다.

그림 14. 창덕궁 폄우사 사벽첩_2019.05

그림 15. 폄우사 좌측면도 (문화재청, 문화재원형기록정보시스템, 2001, 도면 _사적 제122호_창덕궁_반도지 및 존덕정 주위 정 밀실측설계(2-1) 좌측면도3_폄우사 재편집)

알추녀는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중반까지 궁집에서 주로 사용되고, 서재는 의두합, 운경거에서 나타난 다.32) 연구대상 외에 여주 김영구 가옥(1753), 경주 양동 무첨당(조선중기), 안동 하회 옥연정사(1586), 함안 무기연당(18세기 중엽), 영동 김참판 고택(18세기 중엽), 강릉 칠사당, 우정총국 등에서도 발견되어, 16세기 조선 중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추녀부 막새를 사용한 기법은 18세기 중반에서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서재와 궁집에서 주로 나타난다. 기와는 보수공사에서 쉽게 변형될 수 있는 부분으로 그 변형은 여러 방향으로 나타난다. 기와 수키와 끝 마감 방식이 와구토에, 추녀부와 합각부 주변만 막새기와를 사용한 것들이 창덕궁 희우정, 연경당 장락문, 장양문, 동익랑, 낙선재 장락문에서는 전체 와구토로 변형되었고, 운현궁에서는 전체 막새로 변형되었다. 기와 마감은 전체 막새나 와구토로 통일시키려는 경향을 보였다. 폄우사는 와구토에서 막새로 바뀌고, 제월광풍관은 와구토에서 막새로 변형된다. 취한정은 합각부 너새기와 가 없어진 것으로 확인된다.33) 연구대상 외에 추녀부나 내림마루 막새를 사용한 기법은 창덕궁 농산정, 운현궁 영로당, 석파정, 육사당 등에서 확인된다.

그림 16. 창덕궁 연경당 장양문 동익랑 기와 (左) 1928년 (右) 2019 년 ((左) 문화재청,  [궁·능 관련 유리원판 도록] , 2004, 231쪽)

격식기법의 시기별 변천을 살펴보았고, 사진자료를 통해 여모판, 기와, 사벽첩의 소멸을 여러 사례에서 확인하였다. 문화재 보수공사 시 격식기법에 대해 심도있게 다루어지지 않아 보고서에 언급되지 않고, 기법의 소멸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이러한 변형은 건물 사용자 변화로 인한 수리 관점이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궁실건축은 왕실가족이 생활하던 공간에서 관람객이 보는 공간으로 건축물의 용도가 변경되었기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섬세한 기법들은 점점 소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5. 맺음말

이 연구는 조선후기 궁실건축에 사용된 고급건축 기법인 격식기법에 주목했다. 25개의 궁실을 대상으로 격식기법의 종류를 찾아내고, 기법을 위계로 분류하였으며, 건축유형별 격식기법의 특징과 기법의 변천을 추정하였고,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궁실건축에 사용되는 격식기법 총 11가지를 발견하였다. 구체적으로 기단, 초석, 동바리, 고막이, 기둥은 재료 가공의 차이가 있었고, 여모판, 초엽, 사벽첩, 토소란, 처마, 기와는 부가적 요소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가사규제에서 초석으로 제한된 숙석(熟石)은 궁실건축에서 기단과 고막이에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기둥은 면까지 쌍사를 주어 가공하고, 동바리 기둥도 내구성과 형태를 고려하여 팔모석주나 팔모초석에 팔모기둥을 사용하였다.

여모판은 궁집에서 주로 사용하였고, 20세기 초 양반가옥에서도 흔히 사용하였던 기법으로 확인된다. 초엽은 넝쿨문양으로 궁집과 궐내 기타건물에서 도리나 창방, 누마루, 반침, 선반을 보강하였다. 사벽첩은 창덕궁 후원에서 주로 발견되었고, 단열목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토소란은 궁궐 침전 전체 사례에서 확인되고, 궁집에서도 50%의 사례에서 확인된다.

조선후기에 겹처마와 막새는 궁실건축에서도 쉽게 사용하지 않는 높은 위계로 궁궐 침전에서 사용했고, 알추녀와 기와 끝은 와구토에 추녀, 합각부 주변만 막 새를 궁집에서 주로 사용하였다.

궁실건축의 격식기법은 재료 가공과 마감 정도에 따라 위계가 있었다. 궁궐 침전, 궐내 기타 건물, 궁집 건축유형별로 격식기법은 다르게 사용되었다. 침전은 격식기법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궁집과 궐내 기타 건물은 기법별로 차이가 있었다. 침전은 동바리 기둥으로 석주를 사용하고, 기둥을 면까지 가공하고, 막새와 토소란을 사례 전체에서 사용하였다.

격식기법의 시기적 변화를 사례로 확인하였다. 기둥면 가공과 초엽, 사벽첩은 17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사용하였다. 여모판과 토소란, 알추녀, 추녀부 막새는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되었다.

격식기법은 20세기 초의 사진자료와 현재 건물을 비교하여 기법의 소멸을 확인하였다. 여모판이 총 5개의 사례에서 사라졌고, 이는 주로 정자에서 소멸되었다. 기와의 추녀부나 합각부의 막새를 사용한 기법은 한가지의 마감방식으로 통일한 와구토나 막새로 변형되었다. 사벽첩은 주로 창덕궁 후원 서재들에서 소멸하였다. 이러한 변형은 궁실건축이 생활공간에서 관람공간으로 변화되어, 격식기법들의 소멸을 초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격식기법은 더욱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 연구대상을 확장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에서 발견하지 못한 격식기법이 추가로 더 있을 것으로 판단되며, 추가적인 연구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격식기법에 관한 연구는 향후 이루어질 문화재 보수, 복원 작업에 근거를 제공하고, 기법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여 문화재 원형 보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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