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I QR코드

DOI QR Code

Establishment of Buddhist Monks' Pungmul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Its Meanings

조선 후기 절걸립패 풍물의 성립과 그 풍물사적 의의

  • Son, Tae-do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Arts)
  • 손태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 Received : 2016.12.31
  • Accepted : 2017.02.03
  • Published : 2017.03.30

Abstract

Buddhism, which was subject to repression all over the early Joseon Dynasty, received a certain recognition from the state, because Buddhist monks had participated in the war of the Japanese invasion in 1592. On the other hand, however, one of the results was the destruction of many templ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Buddhist monks themselves acted as players of Pungmul(people's percussive band music) for the rebuilding of Buddhist temples. These so-called "the Buddhist monks' Pungmul" is the imitation of former clowns' Pungmul and farmers' one that sometimes request money or rice at houses of villag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activities of the Buddhist monks' Pungmul were held all over the country. Today, there are "Bitnae Nongak(farmers'percussive band music)" in Kyeongsangbuk-do, "Beokku-noli(the drum play) in the areas of Yeosu and Gangjin in Jeollanam-do, the song of the Buddhist monks' Pungmul for the people's house spirits in the Gyeonggi-do, Gangwon-do and Chungcheong-do, and Namsadang-pae(the nomadic entertaining groups composed of only men), as clear pictures of it. In these things related to Nongak or Nongak relevant affairs, the shapes of the Buddhist monks' Pungmul in the late Joseon Dynasty remain clear. On the other hand, today the Namsadang-pae, which was formed as a result of Buddhist monks' Pungmul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left only in the Chungcheong-do and Gyeonggi-do, because the temple construction in the Gyeonggi-do was made especially many in the late Joseon Dynasty.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the Buddhist monks' Pungmul, which had long-lived and had taken place throughout the nation, had a great impact on Pungmul. There are the Buddhist elements, such as Gokkal(the Buddhist monk's peaked hat), paper flowers, the color band, the small drum, and Bara(small cymbals) are often found in the Pungmul of Korea. In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it is obviously important place in the Pungmul history of Korea. Research and studies on this subject should be made more in the future.

조선 전기 줄곧 탄압의 대상이 된 불교는 임진왜란 때 승려들의 승병(僧兵)으로의 참가로 국가로부터 일정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결과의 하나는 많은 사찰들의 소실이란 참화였다. 이에 조선 후기에 들어 사찰의 재건이나 중수를 위해 승려들 스스로가 '${\bigcirc}{\bigcirc}$사(寺) 건립패(建立牌)'란 걸립 풍물패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러한 이른바 '절걸립패 풍물'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광대들이나 일반 농민들의 정초 집돌이농악 같은 걸립풍물을 흉내낸 것이었다. 조선 후기 절걸립패 풍물의 활동은 전국적으로 이뤄져, 오늘날에도 경북의 빗내농악, 전남 여수, 강진 일대의 '버꾸놀이', 경기 강원 충청의 절걸립패 고사소리, 경기 충청지역의 남사당패의 존재 등으로 그 분명한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농악들이나 농악과 관계되는 것들에 조선 후기 절걸립패 풍물의 모습들이 분명한 형태들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한편 조선 후기 절걸립패 풍물의 활동이 전국적으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 절걸립패의 연장에서 생긴 남사당패가 오늘날 경기 충청지역에만 남게 된 것은 조선 후기에 경기도지역의 사찰 건립이 특히 많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 전국적으로 또 오랫동안 이루어진 절걸립패 풍물 활동은 종래의 풍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의 풍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깔, 종이꽃, 색띠, 소고, 바라 등 불교적 요소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조선 후기 절걸립패 풍물은 우리나라 풍물사에서 분명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에 대한 조사 연구들이 앞으로 보다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Keywords

References

  1. 경국대전
  2. 기효신서
  3. 승정원일기
  4. 운곡행록
  5. 조선왕조실록
  6. 강우방.김승희 편, 2010, 감로탱(증보판), 예경, p.232
  7.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역, 1971, 오위형명 만기요람II, 민족문화추진회, pp.33-34
  8. 국립국악원 편, 2004, 조선시대 음악풍속도 II, 민속원, p.108
  9. 국립국악원 편, 2002, 조선시대 음악풍속도 I, 민속원, p.42
  10. 금오문화연구소, 2002, 무을풍물, 무을풍물단, p.68, pp.64-65
  11. 김낙현, 2000, 한국의 토속신앙이 사찰건축의 배치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 산신, 독성, 칠성 신앙을 중심으로 -, 광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p.27
  12. 김무조 엮음, 2006, 화방사지, 보문, p.75
  13. 김용섭, 1987, 조선후기 농업사 연구, 일조각, pp.27-28
  14. 김용태, 2010,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 임제법통과 교학전통 -, 신구문화사, p.47, 55
  15. 김원민, 2008, 남사당풍물의 변화양상 고찰, 한예종 전문사논문
  16. 김정헌, 2009, '농악(農樂)'과 '풍물(風物)'의 타당성 검토와 '농악(農樂)'비판에 대한 반론 문화재 제42권 제4호, 국립문화재연구소, p.103
  17. 김현숙, 2009, 진도의 농악과 북놀이, 국립남도국악원
  18. 김희태.최인선.양기수 역주, 2001, 역주 보림사중창기, 장흥문화원, p.113
  19. 류종목, 1990, 한국 민간의식요 연구, 집문당, p.228
  20. 문명대 외, 2011, 조선시대 기록문화재 자료집 I,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출판부, p.350, 399
  21. 문성렵.박우영, 1990, 조선음악사(2),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p.208
  22. 박혜영, 2007, 감천 유역 마을굿의 전승맥락과 빗내풍물의 변화,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p.14, 138
  23. 박흥주, 2007, 전라남도 서남도서해안지방의 군고 연구를 위한 시론 한국의 민속과 문화, 경희대 민속학연구소, pp.211-212
  24. 뿌리깊은나무 편, 1995, 숨어사는 외톨박이 II, pp.76-77
  25. 성금련 편, 2014, 지영희 민속음악 연구자료집, p.518
  26. 손태도, 2012a, 조선후기 절걸립패와 빗내농악의 관련 양상 풍물굿연구 제2집, 한국풍물굿학회
  27. 손태도, 2012b, 정초 집돌이농악과 지방관아 나례희의 관련 양상 한국음악사학보 제49집, 한국음악사학회, pp.242-243
  28. 손태도, 2003, 광대집단의 문화연구1 광대의 가창 문화, 집문당, p.307, pp.159-160
  29. 송기태, 2006, 전남 남해안지역 절걸립패의 활동 및 성격 고찰 남도민속연구 제13집, 남도민속학회, p.232, 233
  30. 송기태.엄수경, 2003, 전남 강진군 군동면 화산리 화방마을 풍물굿 조사 남도민속연구 제9집, 남도민속학회, pp.322-323
  31. 신용하, 1984, 두레 공동체와 농악의 사회사 한국사회연구2, 한길사, pp.16-17
  32. 심상현, 2003, 영산재, 국립문화재연구소, p.83
  33. 심우성 글.송복화 사진, 2000, 남사당놀이, 화산문화, p.67, 89
  34. 심우성, 1989, 남사당패 연구, 동문선, p.25
  35. 심우성, 1968, 남사당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제6집, 문화재관리국, p.707, 716
  36. 이강근, 1995, 17세기 불전(佛殿)의 재건역(再建役) 미술사학연구208, 한국미술사학회, p.40, 50
  37. 이경엽, 2001, 도서지역의 민속연희와 남사당노래 연구 - 신안 남사당노래의 정착 과정을 중심으로 - 한국민속학 제33집, 한국민속학회
  38. 이능화 저.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역주, 1918:2010, (역주) 조선불교통사6, '화청고무신식폐지(和請鼓舞新式廢止)', 동국대출판부, p.85, pp.455-456
  39. 이병희, 1997, 조선시기 사찰의 수적(數的) 추이(推移) 역사교육 61, 역사교육연구회, p.54, 55, 60
  40. 이보형, 2005, 조선말기 사찰 밖의 불교음악 개관 한국 전통음악학 제6호, 한국전통음악학회, p.491
  41. 이보형, 1997, 이보형채록 '고사소리' 한국음반학 제7호, 한국고음반연구회, p.446
  42. 이보형 외, 1980, 전라남도 국악실태조사, 문화재관리국, p.98
  43. 이상정(李象鼎) 저.국방연구소 역, 1788:1995, 병학지남연의(兵學指南演義) I, '이 책에 대하여'
  44. 이숙희, 2007, 조선후기 군영악대, 태학사, p.270
  45. 이윤선, 2009, 진도의 농악과 북놀이, 국립남도국악원
  46. 이정미, 2006, 조선후기 산성 승영사찰 건축에 관한 연구,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p.25
  47. 이태진, 1989, 17.8세기 향도(香徒)조직의 분화와 두레 발생 진단학보 67, 진단학회, pp.21-22
  48. 이필영, 1993. 2, 조선후기의 무당과 굿 정신문화연구 16권 4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22
  49. 장사훈 편, 1989, 여명의 국악계, 세광음악출판사, p.131
  50. 장주근, 1978, 무속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경기도편-, p.122
  51. 장흥문화동호인회, 1998, 장흥의 버꾸농악, p.35
  52. 정병호, 1986, 농악, 열화당, p.20, 34, 37, 57, 92, pp.76-77
  53. 정영호, 1968, 선산지구 고적조사보고서, 단국대학교 박물관 고적조사보고 제2집, p.270
  54. 조흥윤 글, 2000, 그림으로 본 19세기 한국풍속과 민중의식 '기산풍속도', 완자무늬, p.86, 108, 193, 194
  55. 진옥(眞玉) 편저, 1989, 호국의 성지 흥국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영취산 흥국사, p.86, 193, 194
  56. 최상일, 2002,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2, 돌베개, pp.21-26
  57. 최자운, 2006, 농악대 고사소리의 지역별 특성과 변천 양상, 경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pp.101-119
  58. 최정여, 1976, 사원잡희 "삼회향"(속칭.땅설법) 도남(陶南) 조윤제박사 고희기념 논총, 형설출판사, pp.132-138
  59. 최종성, 2004, 조선시대 왕도(王都)의 신성화와 무속문화의 추이 서울학연구 21, 서울학연구소, p.50
  6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92, 한국 구비문학 대계(전질)
  61. 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1997, 한국의 농악 - 영남편 -, 수서원, p.127, 128, 130, 131
  62. 한만영, 1990, 화청과 고사염불(1977) 한국 불교음악 연구, 서울대출판부, p.125, pp.98-102
  63. 한만영, 1980, 한국불교사연구(증보판), 서울대출판부, p.106
  64. 한상길, 2006, 조선후기 불교와 사찰계, 경인문화사, p.66
  65. 함안문화원, 2003, 경상도 함안군 총쇄록 상, p.818
  66. 홍윤식 글.석선암 사진, 1991, 영산재, 대원사, p.82, 91
  67. 홍윤식, 1991, 영산회상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8. 홍윤식, 1983, 한국 사찰내의 여러 전각의 형성 한국의 미13 - 사원 건축 -, 중앙일보사, p.177
  69. 홍윤식, 1969, 제65호 화청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9집, 문화재관리국, p.70, 120
  70. 황도훈, 1991, 전(傳), 서산대사 진법군고 - 해남 전통민속 발굴보고서 -, 해남문화원, p.21, 36, 43
  71. 황부연, 2012, 조선후기 산성 수축과 운영의 재정구조, 충북대 박사학위논문, p.93
  72. CD, 1999, 조갑용 영남 성주굿, 지구레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