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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Character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Sanskrit Roof Tiles in the Hoeamsa Temple of Yangju City

양주 회암사지 출토 범자 진언명(眞言銘) 기와의 특징과 의의

  • Eom, Gi-Pyo (School of General Education, DanKook University)
  • 엄기표 (단국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교양학부)
  • Received : 2017.01.05
  • Accepted : 2017.05.12
  • Published : 2017.06.30

Abstract

The Hoeamsa Temple of Yangju City was established at least during the late Korea Dynasty. This temple was rebuilt several times with the support of the royal family from the late Korea Dynasty to the early Joseon Dynasty. It was continually rebuilt in association with JiGong monk, HyeKeun monk, and MuHak monk. Hoeamsa temple was leading the Buddhist culture as a Buddhist center of the Joseon Dynasty . It was destroyed in the late Joseon Period. This site has been excavated several times since 1997. Various roofing tiles were unearthed. Of these tiles the edge of eaves are the artifacts showing the best features of this era. In this temple site has been excavated a variety of Sanskrit roof tiles. These tiles were made using superior technique. On the roof tiles are engraved Sanskrit mantras with a variety of 1 to 9 words. The jeongbeopkkye mantra(oṃ raṃ) and six-word mantra(oṃ ma ṇi pa dme hūṃ) were discovered the most. These mantras were believe to expel several evils from the Buddhist temple. It must have been that the six-word mantra culture became prevalent and provided a turning point in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m. We can clearly know when some of the Sanskrit roof tiles were first manufactured. These roof tiles are the absolute standard of the other Sanskrit roof tiles excavated from different Buddhist temples. The master craftsmen must have been very skilled, understood the mantra very well, and had deep faith in the Sanskrit mantra. Hoeamsa Temple is a milestone in studying the Sanskrit roof tiles. More studies on various aspects are expected to be followed.

양주 회암사는 고려말기부터 조선초기까지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크게 중창되어 대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특히 당대의 고승이었던 지공선사, 선각왕사 혜근, 무학대사 등과 인연을 맺으면서 여러 번 지속적으로 중창되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회암사는 조선전기 불교계의 중심으로서 불교문화를 선도하는 사찰이 되었다. 이러한 회암사는 조선후기에 소실된 이후 1997년부터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회암사지에서는 막새기와, 평기와, 특수기와 등 다양한 유형의 기와들이 출토되었는데, 이중에서 막새기와는 시대적인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그리고 다양한 범자 진언명 기와들이 출토되었다. 양주 회암사지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수막새와 암막새가 출토되었는데, 이 중에서 우수한 제작기법으로 범자 진언이 새겨진 막새가 상당량 출토되었다. 범자 진언은 1자에서 9자까지 다양한 유형의 범자 진언이 새겨졌는데, 그중에서 정법계진언과 육자진언이 새겨진 기와가 가장 많이 출토되었다. 이 진언은 도량을 청정케 함과 동시에 조선시대 들어와 육자진언 신앙이 본격화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회암사지에서는 편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범자 기와가 출토되어 다른 사찰 범자 기와의 편년 설정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것은 회암사의 범자 기와를 제작한 와공들이 범자 진언에 대한 신앙과 이해가 높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회암사 이후 대부분의 사찰에서 범자 진언명 기와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회암사가 우리나라 범자 진언명 기와의 제작과 활용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사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회암사지 출토 범자 진언명 기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Keywords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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