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사(天壽寺)와 <대인(待人)> 화운시 연구

A Study on the Cheonsu-Temple天壽寺 and the echo verse poems to 'Waiting'待人

  • 투고 : 2016.09.24
  • 심사 : 2016.10.17
  • 발행 : 2016.10.31

초록

천수사(天壽寺)는 고려조에 개성(開城) 동쪽에 있었던 사찰로 왕조 교체기에 폐사(廢寺)되었다. 천수사가 있던 자리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영송(迎送)하는 사람들이 많아 조선 초 그 터에 역원(驛院) 천수원(天壽院)이 설치되었다. 이후 1476년 개성부 유수 이예(李芮)가 천수원 곁에 천수정(天水亭)을 건립하면서 천수사의 자취를 이었다. 조선 전기까지 오가는 사람들로 번화하던 천수원과 천수정은 17세기경에 사라지고, 이후 그곳은 황량한 들판으로 변했다. 고려 말에 여러 시인들이 천수사에 들러 시를 남겼거니와, 그 가운데 특히 최사립(崔斯立)의 <대인(待人)>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조선조에도 천수사에서 지어진 시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최사립의 <대인(待人)>에 화운한 것들이었다. 천수사는 왕조 교체기에 사라졌지만 19세기까지도 그 이름이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최사립의 시 덕분이었다. 이 시는 벗을 기다리는 이의 설렘과 초조함, 실망감 등 기다림이 내포할 수 있는 다양한 심경을 회화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그려 후세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표현하였다'는 등의 절찬을 받기도 했다. <대인(待人)>에 화운한 시들은 스무 편이 넘는다. 이 화운시들은 대체로 시기별로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조선 초에는 정영위(丁令威)의 요동학(遼東鶴) 고사를 차용한 화운시들이 자주 눈에 띈다. 선술(仙術)을 닦아 학으로 화(化)해 천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정영위가 읊조린 시변(時變)의 무상함을 옮겨와, 천수사의 풍경은 전조(前朝)와 다름이 없는데 그 풍경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바뀌었음을 읊은 것이다. 이후 중종(中宗)이 이곳에 행차하면서 중종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일련의 차운시를 지었는데 이 시들은 대체로 왕조의 흥망을 심상(尋常)한 것으로 읊고 있다. 이는 어제시와 응제시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17세기에 천수원과 천수정이 사라지면서 이곳은 인적 드문 황량한 곳으로 변했다. 그러한 광경을 목도하고 쓴 화운시에는 쓸쓸한 정조가 깃들어 있음을 살폈다. 화운시는 원운(原韻)을 염두에 두고 지은 시로, 형식은 물론 의경(意境)까지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대인(待人)> 화운시들은 화운시 일반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보인다. <대인(待人)>이 이루어진 공간이 '천수사'이고 <대인>에 대한 화운한 시인들은 원운과 특정 공간(천수사)을 모두 염두에 두고 시를 제작해야 했다. 그 결과 형식과 의경 모두 원운을 따른 시작이 산생되기도 하였고 형식은 원운을 따르되 의경은 원운과 달라진 것도 나타나게 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llustrate the history of the Cheonsu-Temple天壽寺 and to describe the echo verse poem trend with regard to 'Waiting'待人 and why it is beautiful. The Cheonsu-Temple was located in the outskirts of Gaesung開城, the capital city during the Corea高麗 Dynasty. However, the temple was destroyed when the dynasty collapsed. Cheonsu-Station天壽院 was built amidst the temple ruins, as the temple was an important traffic point. The Cheonsu-Pavilion天水亭 was built in 1476 by Yi-Ye李芮 in the station's neighborhood. The station and the pavilion were completely ruined during the 17th century. Many poets visited the Cheonsu-Temple and composed poems in the latter part of the Corea Dynasty. 'Waiting'待人, written by Choi-Sarip崔斯立, -is the most famous work. Following this work, many poets composed echo verse poems 'Waiting' work that represented the anxiety of waiting for an old friend in front of the Cheonsu-Temple. The following is a highlighted verse: So many people who look like the old friend come to me, but it turned out no one was the man. This work is very picturesque. Over twenty echo verse poems 'Waiting' are categorized in three periods. They compared the "present" to the past by using the Zhenglingwei丁令威 origin from the former Joseon朝鮮 period. In the middle of Joseon period, Jungjong中宗 visited Cheonsu-Station and composed an echo verse poem 'Waiting'. The official literaries also composed poems there. In their works, they presented the collapse of the Corea Dynasty as inevitable and the construction of Joseon Dynasty as something reasonable. Cheonsu-Station was ruined in 17th century, followed after by the ruin of the Cheonsu-Pavilion. It appears that the echo verse poems to 'Waiting' in the latter Joseon period represented the ruin of the Cheonsu-Temple, the Cheonsu-Station, and the Cheonsu-Pavi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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