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relationship in the Translations of the Works of P. A. Kropotkin in East Asian Countries

동아시아와 식민지 조선에서 크로포트킨 번역의 경로들과 상호참조 양상 고찰

  • Received : 2016.05.10
  • Accepted : 2016.06.08
  • Published : 2016.06.30

Abstract

Russian anarchist thinker P. A. Kropotkin had a significant impact on the school of thought, the literary field and the anarchist movement in East Asia in the early 20th century. This paper examines the history of the translation of Kropotkin in terms of the routes and paths of translation in colonial Korea in comparison with those in Japan and China. It is a known fact that the acceptance of Kropotkin in colonial Korea is owed to pioneering translation works in Japan, but it appears that there have been various transformations and magnetizations in the process of translating the texts into the Korean language. Despite a disturbing censorship, the works of Kropotkin, such as "I appeal to the youth ("Aux Jeunes Gens" in French)", were imported, translated and distributed by various routes throughout the 1920s and there were various versions of translated Korean texts. At this point, it is noteworthy that there are works which were translated from Chinese texts about Kropotkin, such as the works of Yu Seo (柳絮), and it can be said that there is a relationship between Korean translations and Chinese original texts. Since the 1930s, the phenomenon of the appropriation of Kropotkin as a litterateur and critic rather than an anarchist thinker is particularly apparent, and this allows us to understand that Kropotkin became a major pathway to interpret Russian literature in East Asia. In colonial Korea, translations of Kropotkin were generally via Japan and China, but the process of translation also showed the struggle to accept and adapt 'the foreign text' into the Korean language.

20세기 초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아나키즘 사상가 크로포트킨은 아나키즘 운동뿐만 아니라 지식 사상계 그리고 문학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본고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이후 한국에서 사회주의 사상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각 방면에서 사상적 지침이 되었던 크로포트킨 저작의 수용사를 번역 양상과 번역 경로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크로포트킨이 적극적으로 수용된 것은 오스기 사카에 등 일본의 선구적인 번역 작업들에 힘입은 바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조선어로 번역되면서 다양한 참조와 변용 그리고 자기화의 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 '청년에게 호소함'과 같은 크로포트킨의 저작은 불온 선전물 팸플릿으로 검열과 단속의 대상이었지만 여러 경로로 수입되고 또 번역되어 20년대 선전문 번역의 존재 양상을 증언하고 있다. 당시에 신문 잡지 미디어에 소개된 크로포트킨에 관한 글들은 초기의 번역들이 그러하듯이 대부분 일본어 중역이거나 초역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국쪽의 자료들이 참조된 경우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중국이라는 번역의 매개와 영향관계를 암시한다. 이후 1930년대에는 사상 운동의 차원에서보다는 문학자와 비평가로서 크로포트킨을 전유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이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러시아 문학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주요한 통로이자 논거로서 크로포트킨이 자리하게 된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선에서 크로포트킨 번역은 대부분 일본과 중국을 매개로 하여 동아시아에서 크로포트킨이 받아들여진 맥락 안에 놓이면서도 조선어로 번역하기라는 과제를 둘러싼 고투의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Keywords

Acknowledgement

Supported by : 한국연구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