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1.1 디지털 보존 시대의 폐해
현대 디지털 사회의 디지털 데이터는 정보를 영구보존하며, 보관 가능한 데이터의 용량 또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첨단 스마트 기기들이 출현하고 모든 데이터를 기록하게 되면서 인간의 본성인 망각(oblivion)의 기능은 더 이상 보장 받기 힘들게 되었다. 이러한 디지털 데이터의 특성들은 디지털 사회의 혁신적인 발전에 기여를 해온 반면, 최근 소위 ‘잊힐 권리’를 보장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정보 주체(data subject)가 자신의 정보에 대한 통제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 양날의 검이 되어버렸다.
방송인 김모씨는 무명 시절이던 지난 2002년, 한 인터넷 방송에서 유흥업소 여성 종업원에 대한 비하발언을 하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함께 언급했었는데, 10년 뒤인 2012년, 해당 음성파일이 인터넷에 확산되면서 거센 비난이 일었고, 이후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였다 1). 오프라인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잊힐 수 있었던 일이지만, 온라인상에서는 한 순간의 잘못이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지워지지 않고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계속적인 고통을 야기한 것이다. 이 밖에도 회사 신입 지원자가 자신이 SNS에 예전에 써놓은 욕설이나 부적절한 언행 때문에 회사 면접에서 곤욕을 치루는 경우나, 실수로 올린 글이 인터넷 전역에 공유되어 실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사생활 피해를 입는 등의 경우를 본다면 디지털 세계에서도 무조건적인 ‘보존’과 ‘기억’이 아닌 ‘망각’의 기능이 도입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1.2 잊힐 권리의 대두
한국인터넷진흥원이 2012년 실시한 설문 조사(대학생 191명)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81%가 ‘잊힐 권리’ 입법에 찬성하였다. 아울러 이젠 한국에서도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대답에도 약 75%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Fig. 1. Results of the survey of 191 University students about “The right to be forgotten” (Korea Internet & Security Agency)
또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의하면 2008년 9만 건에 불과했던 포털 사이트의 ‘임시조치’ 건수가 2014년 상반기에만 20만 건에 달하는 등 계속해서 증가 추세이다. 이처럼 정보가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디지털 사회의 잊힐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론이 증가하고 있고,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2014년 8월 구글이 인터넷 사용자의 ‘잊힐 권리’를 인정한 유럽사법재판소(ECJ)의 결정에 따라 1억 1000만 페이지에 달하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로의 링크를 제한하기로 한 판결이 있었다2). 더군다나 ‘잊힐 권리’의 인정 이후 구글이 유럽에서 받은 검색정보 삭제 요구만 17만 5000건이라고 하니3) 앞으로의 디지털 사회에서 더욱 많은 잊힐 권리 보장 요구와 글로벌 기업들의 태도 변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II. 잊힐 권리 논의
2.1 잊힐 권리의 도출
잊힐 권리는 프라이버시권으로부터 시작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으로부터 파생된 권리로써 주로 연구되고 있기 때문에 잊힐 권리의 본질적 어원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프라이버시권의 발생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라이버시권은 1888년 ‘홀로 있을 권리(The right of the individual to be let alone)’라는 용어로 Thomas Cooley 판사에 의해 처음 언급되고 개념화되었고[1], 1890년에 워렌(Samuel Warren)과 브랜다이스(Louis Brandeis)가 공동으로 작성한 논문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privacy)[2]’에 의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인터넷이 처음 개발되고 정보화 시대로의 급격한 전환을 맞이하게 되면서 개인정보의 수집과 처리가 훨씬 손쉽게 되었고,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광범위한 유통으로 프라이버시 침해가 새롭게 문제가 되면서, 프라이버시권의 개념이 ‘홀로 있을 권리’라는 소극적 개념에서 ‘개인이 자신의 정보 이용범위와 정보내용 통제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의미하는 정보 프라이버시(information privacy)권이라는 적극적 개념으로까지 더욱 확장되게 되었다[3]. 정보의 주체들이 자신에 대한 정보의 확산으로부터 받는 피해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그 피해 정도가 커짐에 따라 보호받고자하는 권리 영역도 확대된 것이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발전해가던 프라이버시권의 주요 초점이 정보화 사회, 디지털 사회 내로 맞춰짐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 세상 속에서 순식간에 퍼지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4).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프라이버시권 내 하나의 권리로 인정받아왔던 일명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정보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4].
차츰 프라이버시권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되어 가면서 개인에 대한 정보가 개인의 재산으로 인정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법적으로 보호하려는 법적 논의와 본격적인 법 제정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정보 주체가 타인에게 제공한 개인정보를 열람, 수정, 삭제할 수 있도록 하여 개인정보의 유통과 활용 권리를 부여하는데 의의가 있는데, ’잊힐 권리‘는 이 중에서 개인이 제공한 정보에 대한 삭제 권리에 집중한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잊힐 권리는 정보주체인 개인 자신과 관련된 개인정보의 삭제와 처리의 제한을 그 주된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고 한다[5]. 결론적으로 잊힐 권리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라는 기본적 인권의 파생적 권리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6].
잊힐 권리는 헌법적 권리의 측면에서도 도출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르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헌법 제17조(사생활의 비밀의 자유)와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성) 조항에서 도출되는 일반적 인격권이자 헌법재판소가 명시하지 아니한 독자적 기본권의 하나5)로 이해된다. 고로, 잊힐 권리가 개인정보자기 결정권이라는 기본적 인권의 파생적 권리로 인정될 수 있다면, 헌법 내에서도 부분적으로 보호를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2 잊힐 권리의 정의와 범위 설정
잊힐 권리는 아직 정확한 정의와 범위에 대해 명확히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 연구의 잊힐 권리 보장에 대한 논의에 앞서, 선행 연구 등을 통해 잊힐 권리의 다양한 정의를 살펴보고 이에 따른 잊힐 권리 보장 가능 범위를 분석하여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하는 잊힐 권리의 범위를 확정할 필요가 있다.
근 몇 년간 잊힐 권리의 확대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EU가 2012년에 발표한 유럽 일반정보 보호규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의 규칙 제17조 제1항에서는 잊힐 권리를 “정보의 수집이 그 수집목적을 달성하였거나, 정보주체가 정보의 처리에 대한 동의를 철회하거나, 정보의 저장기간이 만료한 경우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 그 정보에 포함된 개인정보(personal data)의 삭제 및 확산 방지에 관한 권리”라고 정의하였다. 또한 국내 선행연구에 따르면 잊힐 권리는 “정보주체가 개인 정보처리자를 상대로 자신의 개인(신상)정보를 삭제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는 의견도 존재한다[4]. 위 정의들에 따르면, 해당 잊힐 권리의 범위는 자신에 대한 개인정보를 개인정보처리자에게 제공하였을 때, 이를 삭제하도록 요청할 수 있는 권리(이하 A범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해당 범위의 잊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건으로 정보주체의 개인정보에 대한 동의 철회, 개인정보 저장기간의 만료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잊힐 권리의 A범위는 EU 규칙 제17조의 개인정보의 삭제 및 확산방지에 관한 권리, 국내 개인정보보호법 제37조의 개인정보의 삭제요구권 등 최근 국내외에서 법적으로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어, 구체적 실현이 진행되고 있는 범위라고 볼 수 있다.
잊힐 권리는 저널리즘 영역에서도 중요한 권리 영역으로 논의된다. 역사적으로 저널리즘 영역 기술의 발전과 잊힐 권리의 근간이 되는 프라이버시권의 요구 증가는 비례적인 관계 놓여왔고, 주된 언론의 중심이 시간이 지나면 특정 사건이 금방 잊힐 수 있던 종이 신문의 시대에서 한번 기사화된 뉴스는 마음만 먹으면 평생토록 검색하고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신문의 시대로 옮겨가면서 저널리즘 영역에서의 잊힐 권리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저널리즘 영역의 잊힐 권리 범위는 “개인이 자신에 대한 뉴스 및 기사로부터 과도하게 피해와 침해를 받았을 시와 관련한 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구할 권리” (이하 B범위)로 정의할 수 있다. 잊힐 권리의 B범위는 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라는 측면과 상당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에 해당 범위 내 치열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6). 특히, 어떠한 기사 및 뉴스의 삭제를 요청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헌법 제21조의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B범위의 잊힐 권리 주장을 위해서는 더욱 명확한 기준과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이에 관해 국내연구에서는 언론중재법에 과거 기사 내용의 수정과 삭제에 대한 내용을 포함시키는 안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법적, 제도적 체계 수정을 요하는 주장들이 있어왔고[7], 특히 2014년 12월에 열린 ‘인터넷 공간의 잘못된 기사와 새로운 피해 구제방안’ 심포지엄에서는 잊힐 권리의 과도한 보장이 언론의 기능을 상실시킬 것을 우려하여, 사실과 다른 기사는 “정정보도청구”로, 사실에 부합하지만 상황이 바뀐 정보는 “정보갱신권”으로, 위법한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는 “명예훼손 삭제청구”로 해결하자는 의견이 주된 골자로 논의되기도 하였다7). 이처럼 B범위의 잊힐 권리는 섣불리 접근하였을 시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결되기에 앞으로 더욱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며 다양한 권리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다양한 실천 방안이 강구된다.
2009년 5월, 조지타운의 법대교수인 Franz Werro는 잊힐 권리를 “네티즌들이 웹에 남겨둔 자신의 정보를 통제하고 정보를 지우는 것이 가능한 권리”라고 정의하였다[8](이하 C범위). 또한 옥스퍼드 대학의 마이어 쇤베르거 교수는 디지털화, 저장의 저렴화, 손쉬운 검색, 글로벌 범위가 인터넷에서의 자신의 게시물에 대한 삭제가 불가능한 현실을 만들어내었으며, 이러한 망각이 불가능한 디지털 환경이 잊힐 권리를 탄생시켰다고 말했다[9]. 위 논거들로 미루어보면 잊힐 권리의 C범위는 자기 자신 혹은 타인에 의해 인터넷에 게시된 자신에 관한 게시물에 대해 삭제를 요구할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해당 범위의 잊힐 권리는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네티즌들에게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문제가 되는 범위이며 네티즌들이 가장 보장받고 싶어 하는 범위의 잊힐 권리이기도 하다.
C범위의 잊힐 권리는 글을 게시하는 게시 주체에 따라 잊힐 권리 보장 가능성과 적용 범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첫 번째로 자신에 대한 글을 게시한 게시 주체가 자기 자신인 경우가 있다(이하 C-1범위). 이는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이용하는 SNS, 블로그, 웹사이트들에 게시하는 대부분의 게시물에 해당하며 가장 보편적인 게시의 형태이다. 이렇게 정보주체가 자발적으로 게시한 게시물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ISP(Internet Service Provider)가 자사서비스 내 관리기능을 통하여 이용자가 스스로 해당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C-1범위에서는 ISP가 게시물 삭제 기능을 게시 주체에게 부여하기만 한다면, 잊힐 권리의 실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자신이 게시한 게시물을 제3자가 퍼나르기 한 경우이다(이하 C-2범위). ‘퍼 나르기’ 행위는 타인이 작성한 일부 또는 전체의 정보를 완벽하게 복사・복제하여 인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퍼나르기가 실제 서비스되는 예로는 Facebook의 공유하기 기능, Twitter의 RT 기능, 네이버 블로그의 퍼가기 기능 등이 있다. 퍼나르기된 게시물의 경우 게시물의 처음 생산자는 자신이지만 재게시자가 제3자가 되기 때문에 해당 게시물의 삭제 권한은 제3자와 ISP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이 경우, 자신이 생성한 게시물을 삭제하더라도 퍼나르기된 게시물은 삭제되지 않고 인터넷 상으로 끝없이 퍼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 실수로 올린 게시물이나 지우고 싶은 내용들에 대한 잊힐 권리 행사가 어려워지게 된다. 그러나 제3자가 삭제 권한을 가진 게시물에까지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고, 이를 실질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술적 실효성도 문제가 되어왔기에 현재까지도 상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범위 중 하나이다.
Table 1. This table presents the definition of ‘The right to be forgotten’ for each scopes.
세 번째는 제3자가 나에 대한 정보를 포함한 게시물을 게시하는 경우이다(이하 C-3범위). 해당 범위는 제3자가 나에 대한 개인신상정보가 포함된 글을 올리거나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 등에 해당되는 글을 올리는 경우, 이에 대한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 경우 게시물 내용의 대상, 즉 정보주체가 피해를 입고 있을지라도 게시물에 대한 삭제 권한은 게시물 생성자에게 있기 때문에 정보주체가 해당 게시물에 대해 삭제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명예 훼손, 사생활의 심각한 침해 등 게시자의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여도 확실히 비교법상 우위를 지닐 수 있는 조건 요소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III. 잊힐 권리 영역 별 ISP의 지위와 책임
잊힐 권리의 권리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자신에 관한 게시물에 대한 삭제 권한이 자기 자신에게 있어 게시물을 직접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삭제 권한이 제3자 혹은 ISP(Internet Service Provider)에게 있어 정보 주체가 삭제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실제 인터넷 공간에서의 잊힐 권리의 보장 범위에 대해 주된 논쟁이 되는 부분은 후자이고, 후자의 경우에 현실적으로 게시물 생성자는 대부분 불특정의 자, 혹은 익명의 사람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삭제요구권자가 자신의 잊힐 권리를 행사할 상대는 ISP가 된다[10]. 이러한 이유로 인해 잊힐 권리에 대한 규제에 있어서 각각의 게시물 생성자에 대한 직접 규제보다는 해당 서비스를 운영하는 ISP에게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방식으로 잊힐 권리의 보장 영역을 넓히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 판단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제시한 잊힐 권리의 범위 영역에 해당하는 ISP의 영역별 법적 책임과 그에 따른 잊힐 권리 보장 현황에 대해 검토해보려 한다.
3.1 개인정보처리자로서의 ISP
정보주체가 제공한 개인정보의 삭제에 관한 영역인 잊힐 권리의 A범위에 대한 국내법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이 해당될 수 있다.
우선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모든 자를 적용 대상으로 하는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잊힐 권리의 책임 대상이 되는 ISP는 “개인정보처리자8)”의 지위를 가진다. 개인정보보호법 제36조(개인정보의 정정·삭제)에 따라 개인정보처리자의 지위를 가진 자는 정보주체의 개인정보의 정정 또는 삭제 요구에 응해야하며 다른 법령에 특별한 절차가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체 없이 개인정보의 정정·삭제 조치를 한 후 그 결과를 정보주체에게 알려야한다. 또한, 제37조(개인정보의 처리정지 등)에 따라 정보주체의 요구 시 지체 없이 개인정보 처리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해야 하는 의무도 포함하고 있다.
다음으로,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와 방송사업자를 적용 대상으로 하는 정보통신망법에서의 ISP는 “정보 통신서비스제공자9)”의 지위를 가진다. 개인정보처리자보다는 조금 더 넓은 의미를 내포하지만 개인정보 삭제와 관련한 조항에서의 역할로 한정하여 본다면 개인정보처리자의 지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정보보호법 못지않게 정보통신망법 또한 정보주체의 잊힐 권리를 강력히 보장하고 있는데, 제30조(이용자의 권리 등)에 따르면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 등은 이용자가 동의 철회 시 수집된 개인정보를 지체 없이 파기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종합적으로 살펴보자면 정보주체가 제공한 개인정보에 대한 삭제 요구권에 대하여 국내법상 ISP는 개인정보처리자 등의 지위를 가지며, 각 조항이 가지는 특별한 예외 사항을 제외하고는 잊힐 권리의 A범위는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2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로서의 ISP
자신에게 과도한 피해 혹은 침해를 야기하는 뉴스 및 기사의 삭제에 관한 영역인 잊힐 권리의 B범위에 대한 국내법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이해 언론중재법)과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신문법)이 해당될 수 있다.
언론중재법 제2조 제18호 및 제19호에 따르면 “인터넷뉴스서비스”란 언론의 기사를 인터넷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제공하거나 매개하는 전자간행물을 말하며,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란 위에 따른 전자간행물을 경영하는 자를 말한다. 또한 신문법 제2조 제5 호 및 제6호에서 “인터넷뉴스서비스”란 신문, 인터넷 신문,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른 뉴스통신, 『방송법』에 따른 방송 및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른 잡지 등의 기사를 인터넷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제공하거나 매개하는 전자간행물을 말하며,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란 위의 전자간행물을 경영하는 자를 말한다. 결국 B범위의 잊힐 권리 규제의 대상은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의 지위를 가지는 ISP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위의 조항들과 세부 시행령들을 종합 검토한 관련 선행 연구에 따르면 사실상 언론중재법과 신문법에서 정의하는 “인터넷뉴스 서비스사업자”의 실질적 대상은 네이버, 다음 등 언론사와 제휴를 맺어 뉴스를 링크하고 배치, 재편집하는 포털 사업자가 유일한 규율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11].
기존의 언론중재법 내에서는 과도하게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여 잊히고자 하는 기사 및 뉴스에 대하여 정정 보도10), 반론 보도11), 추후 보도12)를 요구할 수 있는 피해 구제수단이 존재해왔다. 하지만 이 구제 수단의 의무 대상이 되는 범위에는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가 포함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가 뉴스 및 기사의 배포와 영향력 증대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매체가 되면서 2009년에 언론중재법의 제1조(목적)13)의 “언론사의 언론보도로 인하여”라는 어구가 “언론사 등의 언론보도 또는 그 매개(媒介)로 인하여”로 변경되었고 이로써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가 언론중재법의 규율대상으로 새롭게 포함되게 되었다. 또한, 이로써 자연히 언론중재법 제17조의2(인터넷뉴스서비스에 대한 특칙)에 따라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에게도 정정보도, 반론보도, 추후보도를 청구할 수 있는 규정이 포함되었다. 잊힐 권리의 B범위에 대한 잊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범위가 더욱 넓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구제 수단은 뉴스 및 기사의 영구적 삭제가 아닌 잘못된 정보에 대한 바로잡기의 의미가 강하다. 정정 보도, 반론 보도, 추후 보도 이전에 이미 피해자가 피해를 받은 뉴스 및 기사는 여전히 삭제되지 않을 수 있고, 기사의 대상에게 계속적인 피해를 줄 수 있기에 해당 원본 기사가 삭제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구제 수단들이 진정한 의미의 잊힐 권리 행사를 보장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환경의 언론이라는 특수성과 표현의 자유의 양립을 생각하면, 현재 국내법이 보장하고 있는 피해구제의 범위는 잊힐 권리 보장 수준의 최대치에 근접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뉴스 및 기사를 통해 주로 피해를 입고, 관련법과 제도를 통해 구제를 받는 주 대상이 정치인, 연예인, 대기업 등 비교적 좁은 대상이며, 해당 제도를 악용할 수 있는 여지까지 고려한다면 뉴스 및 기사의 삭제에 대한 추가적 제도로의 섣부른 입법은 언론의 자유를 심각히 훼손할 우려가 있다.
3.3 컨텐츠 관리자로서의 ISP
웹에 올려진 자신과 관련된 게시물의 삭제와 관련한 영역인 잊힐 권리의 C범위에 주된 책임을 가지는 ISP는 ISP의 넓은 범위 중 컨텐츠 관리자로 한정할 수 있다. 컨텐츠 관리자는 인터넷 게시판 등에 게시된 글, 댓글, 사진, 영상 등의 다양한 종류의 컨텐츠를 관리하는 사업자로 정의하며 실질적 대상은 블로그, 카페, 게시판 등을 관리하는 포털서비스 사업자, SNS 사업자 등이 속하게 된다.
잊힐 권리의 C영역을 다루고 있는 국내법은 정보 통신망법이며 법률 내에서 컨텐츠 관리자는 제2조 제 3항에 따라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법적 지위를 가진다.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는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정보의 삭제요청 등)14)에 따라 잊힐 권리에 대한 책임을 규정받고 있으며, 이 법률은 추가적으로 인터넷 사용자가 인터넷에 올려진 자신과 관련한 게시물에 의해 인격권의 침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면 특정 게시물이 30일 동안 차단될 수 있도록 하는 임시차단 조치를 규정해놓고 있다. 30일의 임시조치 기간 동안 게시자의 이의신청이 없다면 해당 게시물은 삭제된다. 또한 정통망법은 제4항에서 컨텐츠 관리자도 주관적 판단에 따라 게시물에 대한 임시조치를 할 수 있도록 관련된 조항을 차별적으로 명시하고 있다[12]. 이에 따라 우리나라 대표적인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와 다음 등은 권리자의 개별 요청이 없더라도 컨텐츠 관리자의 판단에 따라 각 게시물에 임시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별도의 회사 내규15)를 명시해두고 있다.
게시 주체별로 해당 법률을 적용시켜보자면, 우선 자기 자신이 자발적으로 게시한 범위인 C-1범위에서는 위 법률을 통한 잊힐 권리의 행사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통망법은 모든 게시물이 아니라 정보주체의 개인정보를 게시한 경우와,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된 경우에만 인터넷이용자가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에게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도록 범위를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대부분의 ISP들이 게시물 관리 기능의 일부로써 삭제 기능을 제공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해 주고 있다.
C-2, C-3 범위에서의 게시물 삭제권한은 게시물에 포함된 정보 주체가 아닌 게시물을 작성하거나 배포한 제3자와 그 게시물을 관리하는 ISP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따라서 정보 주체가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기 위해서는 ISP에게 정보 삭제요청을 해야 하고, ISP는 우선적으로 해당 게시물에 임시조치를 취해야 한다. 임시조치 제도는 게시물로 인한 피해자의 권리 침해 주장만으로 그 정보의 권리 침해성을 일일이 따져보지 않고 우선적으로 신속하게 블락(Block)조치를 취하도록 해줌으로써 무분별한 게시물의 유통으로 인한 정보주체의 피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주고 있으며 잊힐 권리 측면에서도 보완재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임시조치의 대상이 되는 대부분의 게시물은 권리침해가 불확실한 면이 있고 임시조치 기간 중 이의가 없다면 그대로 삭제되기에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침해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IV. 디지털 소멸 기술을 통한 잊힐 권리 보장 확대 가능성
위와 같이 디지털 시대에서의 망각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잊힐 권리’라는 구체적인 권리 요구로 논의되어 왔지만, 여러 가지 난관들로 인해 오직 법・제도만을 통한 잊힐 권리의 온전한 실현은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다. 2011년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인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로 데이터의 ‘정보 만료일(expiration date for information)’의 설정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고안했다. 쇤베르거 교수는 디지털 영역에서 인간의 기억을 우리가 모방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디지털 메모리에 저장하는 정보에 사용자가 설정하는 정보 만료일을 담아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해당 개념을 통해 인간의 망각 기능을 일상생활에 다시 도입할 수 있고 ‘지속되는 기억’에서 인간이 ‘통제하는 망각’으로 기본 값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하였다[9].
최근 이러한 ‘정보 만료일’의 설정 개념에 부합하는 소위 ‘디지털 소멸 기술’과 관련된 서비스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장에서는 실제 연구되고 있거나 상용화된 서비스 및 기술을 알아보고 잊힐 권리에 있어서의 해당 기술의 가치에 대하여 분석해본다.
4.1 휘발성 SNS
각종 스마트 기기의 확산과 디지털 사회 내에서 다양한 정보를 소통하고자하는 욕구가 만나 최근 몇 년 사이에 SNS(Social Network Service)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16)17). SNS가 인기를 얻기 시작한 1세대 SNS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개성이었다. 사용자들은 자신을 공개하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정보를 나누고 싶어 했고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하여 거리낌 없이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고 공개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에게 나의 정보가 노출되고 사생활 침해 등의 피해를 겪은 SNS 이용자들은 폐쇄성을 특징으로 하는 2세대 SNS에 관심을 돌리게 된다. 2세대 SNS는 연인, 가족, 가까운 친구 등 보다 좁은 관계 내에서 소규모의 인원끼리의 소통이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1세대 공개성 SNS의 다양한 사람과의 소통과 피드백이라는 장점과 2세대 폐쇄성 SNS의 나의 신상을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3세대 휘발성 SNS가 인기를 얻고 있다. 휘발성 SNS는 개인이 게시물이나 채팅 글을 올리게 되면 일정 시간 뒤에 해당 내용이 삭제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당 방식을 통하면 많은 사람과 소통을 하면서도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게시한 내용이 삭제되기 때문에 나에 대한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 상당 부분 계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휘발성 SNS는 디지털 소멸 기술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는 서비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휘발성 SNS 서비스와 주요 특징은 Table. 2와 같다.
Table 2. This table presents the features of popular volatile social network services.
대표적으로 스냅챗이나 브라이니클의 돈톡과 같은 휘발성 SNS는 자신이 남긴 게시물이 일정 시간 뒤에 자동으로 삭제될 수 있도록 해준다(C-1범위). 또한 페이스북의 버니버닛 앱 같은 경우, 자신이 남긴 게시물을 다른 사람이 공유했을 때에서 그 게시물까지 삭제해줄 수 있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18)(C-2범위).
이처럼 휘발성 SNS는 게시물을 작성한 시점에 게시물 내에 잊히고자하는 기한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기술적인 관점의 잊힐 권리 보장 확대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4.2 디지털에이징 시스템 (Digital Aging System)
디지털에이징 시스템(Digital Aging System)은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발명 및 고안한 소위 ‘잊힐 권리 관리기’라고 불리는 기술 사업으로, 인간의 DNA에 달려 있는 노화와 수명을 결정하는 텔로메어(Telomere)처럼 디지털 데이터에도 노화와 소멸 기한을 설정하는 일종의 ‘에이징 타이머’를 장착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기술이다. DAS의 작동 방법은 글을 게시하는 데이터 생성자가 글을 게시할 때 해당 글의 소멸 기한을 설정하면, 그 시간동안 데이터가 서서히 병들고 소멸하여 해당 시점에서 Data가 소멸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19).
DAS 기술은 휘발성 SNS와 마찬가지로 잊힐 권리 C범위의 C-1범위, C-2범위 보장에 초점이 맞춰져있지만, 2014년 2월 포털사 등 서비스 사업자의 기술공조 없이도 사용자가 원하면 해당 사용자의 게시물을 자동적으로 삭제해 줄 수 있는 기술 특허인 ‘이미지인식 기반 로그인 서비스 제공방법’ 특허를 출원20)함으로써 일부 플랫폼에 한정될 수 있었던 디지털 소멸 기술의 적용 범위를 포털사이트까지 확장시켰다. 이는 인터넷서비스 사업자의 비협조로 인하여 기술의 실제적인 적용에 있어서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없애고 앞으로의 시장파괴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현재 DAS에 대한 연구와 상용화 방향은 웹과 모바일에 걸친 인터넷 서비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OS, 디바이스,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디지털 소멸로 나아갈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13], 2015년에 실제로 페이스북에 적용할 수 있는 ‘잊힐 권리 관리기’ 프로토타입 테스트가 가능한 계정을 공개하는 등 DAS 기술의 상용화 및 활성화도 눈앞에 와있는 상황이다.
4.3 잊힐 권리 분야에서의 디지털 소멸 기술의 가치
4.3.1 자신이 게시한 게시물에 대한 관리 효율 증대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네티즌 1인당 불필요한 아이디가 평균 49.68개에 달한다고 한다 21).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네티즌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아이디 계정은 무수히 많고, 이를 통해 다양한 경로로 인터넷 상에 올리는 글, 댓글, 사진, 동영상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더욱 많다. 때문에 정작 과거 자신이 올린 어떠한 글을 삭제하고 싶어진 시점에 자신이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떻게 게시물을 올렸는지 모두 일일이 확인하고 삭제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이렇게 자신이 올린 게시물에 대한 삭제 및 관리가 어렵다는 점이 잊힐 권리의 C-1 범위를 온전히 보장하는 데 있어 문제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대부분의 ISP가 게시물 게시자에게 삭제 기능을 제공해주고 있으므로, 추가적인 권한의 부여나 제도적 개선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해당 범위에서는 오히려 디지털 소멸 기술을 통한 기술적인 해결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소멸 기술을 적용하게 되면 자신이 게시물을 올릴 때 게시물의 소멸 기한을 설정해놓기 때문에 자신이 언제 어느 곳에 어떠한 경로를 통해 글을 올렸는지 일일이 기억하지 않아도 해당 게시물이 설정한 기간 뒤에 자동적으로 삭제되게 된다. 또한 일부 디지털 소멸 서비스의 경우 타인에 의해 공유된 게시물까지 삭제시켜주기 때문에 해당 게시물이 계속 유통되고 있을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정보가 한번 유통되면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가고 글쓴이도 자신이 쓴 글들의 존재에 대해 잊기 쉬운 인터넷 매체의 특성을 고려하여 이제는 게시물을 생성하는 단계에서 정보의 소멸 기한을 설정하고 해당 정보들을 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소멸 기술 시스템의 구축을 고려해야할 시점이다. 디지털 소멸 기술을 적용하여 시스템화 시킨다면 게시물 삭제 및 관리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높여줄 수 있다. 또한 해당 기술을 통한 게시물 관리 효율의 증대는 네티즌의 정보자기결정권을 강화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4.3.2 퍼나르기된 게시물에 대한 삭제 권한 부여 가능성 제공
빅데이터 시대가 개막하면서 거대 정보기술 기업들은 마케팅을 위해 인터넷 이용자들의 모든 정보를 모으고 저장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보의 공유와 유통이 기업 이윤 창출의 주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정보기술 기업들이 퍼나르기된 개인의 게시물 삭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어왔고, 자연스럽게 잊힐 권리의 C-2 범위에 해당하는 퍼나르기된 게시물을 삭제해주는 서비스도 전무하였다. 하지만 자신이 게시한 게시물이 전 세계 인터넷망에 무분별하게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이 타인에게 노출되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이 증대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위험을 감소시키고 관리할 수 있는 게시물 삭제에 대한 권한을 최초의 게시물 게시자에게 부여하자는 의견은 충분히 논의될만한 가치가 있다.
디지털 소멸기술을 통하면 내가 올린 게시물을 타인이 '좋아요'나 '공유' 등을 통해 퍼 나르기를 하더라도 소멸시기가 지나면 자동 삭제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다. 퍼나르기 되었을 때 제3자나 ISP에게 넘어갔던 내 게시물에 대한 삭제 권한을 최초의 게시물 생성자 자신에게로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내가 생성한 데이터가 나에게 피해를 줬을 때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범위의 소극적 잊힐 권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개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신이 생성한 데이터들에 대해 데이터 생성자 스스로가 데이터의 존속 기한과 유통 과정에 관여할 수 있어야한다는 잊힐 권리의 본질을 실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데이터 생성자의 디지털 주권을 더욱 확대시켜줄 수 있다.
그러나 최초의 게시물 게시자에게 퍼나르기된 게시물에 대한 삭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법적 의무가 아니기에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되어야 한다.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은 퍼나르기된 게시물에 대한 삭제 권한 부여가 이용 약관으로 합의된 플랫폼 서비스를 개발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해당 플랫폼은 최초 게시물 생성자와 게시물을 퍼나르기하여 게시물에 대한 소유권한을 가지고 있는 제3자가 플랫폼 내 약관으로 삭제에 대한 합의를 하여 운영되기 때문에 삭제에 따른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사라지게 된다. 해당 서비스 플랫폼의 목적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타 플랫폼과의 합의 및 연동도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퍼나르기 기능은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 다양한 플랫폼과 연동이 되어 이루어지기에, 타플랫폼과의 합의 및 연동이 없다면 퍼나르기 된 게시물 삭제 기능은 플랫폼 내 서비스로 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퍼나르기된 게시물에 대한 삭제 권한을 게시물 생성자에게 주었을 때 피해나 불이익을 입을 수 있는 기존 기업들에게는 정부가 인센티브 정책, 조세감면 정책 등을 추진함을 통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아가 잊힐 권리 확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된다면 법 개정을 통해 디지털 소멸 기술의 적용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V. 결론
최근 첨단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 문화의 발달로 인해 앞으로 인터넷상에서 나에 대한 정보의 확산으로 인한 피해 위험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개인의 인격권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욕구들이 잊힐 권리에 대한 보장 확대 요구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 된다. 이 같은 흐름에 따라 최근 유럽 사법재판소가 구글 검색 엔진에 대한 정보 삭제 요청 권한의 적법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EU 회원국뿐만 아니라 미국, 호주 등 국내외에서 잊힐 권리 논의가 다시금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에서도 다양한 범위에서의 법과 제도를 통하여 잊힐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나 많은 인터넷사용자들이 공감하고 만족할 만한 수준의 추가적인 잊힐 권리 보장으로 확대되기엔 법리적 접근의 한계점이 존재함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휘발성 SNS, 디지털 에이징 시스템 등의 디지털 소멸 기술이 잊힐 권리 보장에 있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디지털 소멸 기술은 여러 범위의 잊힐 권리 중 특히 인터넷에 자신이 올린 게시물에 대한 잊힐 권리(C-1 범위), 개인이 게시한 게시물을 제3자가 공유하였을 때의 잊힐 권리(C-2 범위)에 대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ISP와 제3자에게 넘어갔던 삭제 권리를 자기 자신에게 찾아 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 이는 기술 발전과 서비스 형태의 전환을 통해 기존에 법리적 관점으로 해결할 수 없던 부분에 대하여 다른 기본권과 이해당사자들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 시키면서도, 잊힐 권리 보장 영역을 넓힐 수 있는 혁명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으로 디지털 소멸 기술이 보편화되고 잊힐 권리 보장의 새로운 수단으로 자리 잡으려면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다. 쇤베르거는 현재 디지털 소멸 패러다임을 처음으로 제시했다고 평가되는 ‘정보 만료일 제도’를 주장함에 있어 해당 제도의 성공적 달성을 위해서는 사람들의 높아진 의식, 기술적 도구, 이를 보조하는 입법(立法) 조처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9]. 우리는 이 주장을 디지털 소멸 기술을 잊힐 권리 보장 확대의 실질적 대안으로 모색해 가는데 있어 심도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 디지털 소멸 기술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디지털 소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으려면, 사용자들이 따로 설명을 보지 않고도 간편히 디지털 소멸 시효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사용자 편의성을 기술 개발 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인터넷 플랫폼의 다양한 환경과 사용 방식, 다양한 사용자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디지털 소멸 기술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법과 제도의 관점에서는, 디지털 소멸 기술이 제한적인 영역에서 사용되는 하나의 영역이 아니라 인터넷 서비스 전 영역에서 적용될 수 있는 선택적 수단이 될 수 있도록 기술 보편화를 도와줄 수 있는 입법 및 제도화가 필요 하다. 2014년 열린 제3기 방송통신위원회 7대 정책과제에 디지털 에이징 시스템(DAS)이 온라인 보안 분야에서 정책방안으로 제시되었고, DAS를 도입하는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논의가 주요 골자로 나왔다22). 2015년 8월에는 강원도와 DAS 기술의 특허 권리사인 마커그룹이 잊힐 권리 사업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 23) 하는 등 잊힐 권리 보장 확대를 위한 디지털 소멸 기술의 정부와 연구소의 협업 연구의 좋은 선례가 될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이처럼 잊힐 권리 보장을 위한 정부와 민간의 투자는 디지털 소멸 기술 발전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소멸 기술이 다양한 범위에서 발생하는 잊힐 권리 요구의 모든 범위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디지털 소멸 기술이 새로운 개념의 잊힐 권리 보장 수단으로 발전되어가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잊히고자 하는 개인들의 요구와 기억하고자 하는 인터넷서비스사업자, 언론사 등과의 충돌은 계속될 것이며 캡쳐, 가공 등으로 인한 2차적 저작물에 대한 기술적 한계점 역시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소멸 기술은 더욱 넓은 영역의 잊힐 권리 보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접근 방식과 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며 정보 주체들의 권리 신장과 동시에 새로운 디지털 소멸이라는 신 시장 개척을 가능케 한다. 또한, 디지털 소멸 기술은 최근 젊은이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인 디지털 금욕주의(Digital abstinence)24) 와는 달리, 개인에 대한 정보의 전략적 소멸과 개인의 강화된 정보 통제권을 계기로 인터넷 이용자들이 다시금 디지털 문화와 글로벌 네트워크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앞으로 디지털 소멸 기술에 대한 철학적, 법·제도적, 기술적인 종합적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디지털 소멸 기술이 보다 넓은 범위의 잊힐 권리 보장을 이끌고, 표현의 자유와 잊힐 권리 간 균형을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 본 논문은 2015년도 하계학술대회에 발표한 우수논문을 개선 및 확장한 논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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