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upper body type

검색결과 384건 처리시간 0.031초

구약성서(舊約聖書)에 나타난 히브리인의 복식(服飾) - 두식(頭飾), 신발 및 장신구(裝身具) 중심(中心)으로 - ("A Study on Hebrews Clothing in the Old Testament" - Especially on Hair Styles, Headgears, Footwear and Personal Ornaments -)

  • 박찬부
    • 복식
    • /
    • 제10권
    • /
    • pp.63-80
    • /
    • 1986
  • The Old Testament cotains mention of the history of creation and clothing in ancient Hebrew. This study dealt with Hebrew dress customs especially aimed at the manners of their hair styles, headgears, footwear and personal ornaments. References are Korean Revised Version, English King James Version and Revised Standard Version. There is little mention of hair styles and headgears in the Old Testament. Some sort of turban was worn by priests, and soldiers protected themselves with helmets, but most Israelitish men went bareheaded except on special occasions and often wear simple headbands. It was more common for women to use headwear of some type-turbans, scarves, and veils concealing the face. The veil was the distinctive female wearing apparel. All females, with the exception of maidservants and women in a low condition of life, wore a veil. It was the custom for women to wear a veil entirely covering their head in the public. Through most of the Old Testament periods long and thick hair was admired on men and women alike. The Hebrews were proud to have thick and abundant long hair, and they gave much attention to the care of their hair. The caring of hair was deeply related to their rituals. Nazirites never took a razor to their hair during his vow-days, but instead let it grow long, as an offering to God. Men would not cut their beards, but allow them to grow long. The Israelites' standard footwear was a pair of simple leather sandals. This was one of the items of clothing not highly prized. In a colloquial saying of the time, a pair of shoes signified something of small value, and to be barefoot except in times of mourning or on holy place, was a sign either of extreme poverty or humiliation, as in the case of war prisoners. Because precious stones were not mined in the Palestine-Syria region, Hebrews imported them from foreign country. They were consumer-to a large degree limited by their very modest standard of living-but not producers. Hebrews liked the precious stones and were motivated to acquire and wear jewels. Besides their use for adornment and as gifts, the precious or semiprecious stones were regarded by Jews of property. The Hebrews were not innovators in the field of decorative arts. The prohibition of the Law against making any "graven image" precluded the development of painting, sculpture, and other forms of representational art. Jewish men did not indulge in extravagances of dress, and there was little ornamentation among them. Men wore a signet ring on their right hand or sometimes suspended by a cord or chain around the neck. The necklaces, when worn by a male, also bore any symbol of his authority. Bracelets were extremely popular with both men and women, men usually preferring to wear them on their upper arms. The girdle was a very useful part of a man's clothing. It was used as a waist belt, or used to fasten a man's sword to his body, or served as a pouch in which to keep money and other things. Men often carried a cane or staff, which would be ornamented at the top. Among the women there was more apt to be ornamentation than among the men. Hebrew women liked to deck themselves with jewels, and ornamentation of the bride were specially luxurious and numerous. They wore rings on their fingers or On toes, ankle rings, earrings, nosering, necklace, bracelets. Their shapes were of cresent, waterdrops, scarab, insect, animal or plant. Sometimes those were used as amulets. They were made of ceramics, gold, silver, bronze, iron, and various precious stones which were mostly imported from Egypt and Sinai peninsular. Hebrews were given many religious regulations by Moses Law on their hair, headgears, sandals and ornamentation. Their clothing were deeply related with their customs especially with their religions and rituals. Hebrew religion was of monotheism and of revealed religion. Their religious leaders, the prophets who was inspired by God might need such many religious regulations to lead the idol oriented people to God through them.

  • PDF

중재적 방사선 분야 방호용구 차폐효과 (Shielding Effect of Radiation Protector for Interventional Procedure)

  • 고신관;강병삼;임청환
    • 대한방사선기술학회지:방사선기술과학
    • /
    • 제30권3호
    • /
    • pp.213-219
    • /
    • 2007
  • 중재적 시술의 시술자를 대상으로 방사선 방호용구의 안과 밖의 실제 방사선량을 측정하여 이를 바탕으로 방사선 방호용구의 방사선 차폐율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다. 2005년 5월부터 9월까지 중재적 시술 중에서 시행 빈도가 높은 TACE, PTBD를 시행하는 중재적 시술자 4인에게 방사선 방호용구의 착용 시 피폭선량 감쇄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각 신체부위별 방호용구 안과 밖에 TLD를 부착하여 피폭선량을 측정하였다. TLD 부착부위는 Goggle inside, Goggle outside, Thyroid protector inside, Thyroid protector outside, Apron inside(waist level), Apron outside(upper chest level), Hand 4th finger(ring type TLD)와 환경방사선을 측정하기 위해 TLD 10개를 Control room 여러 곳에 위치시켰다. TACE 검사시 0.07 mmPb Goggle의 사용으로 연속투시방식에서는 평균 53.8%의 선량율감쇄를 보였으며 펄스투시방식에서는 77.6%의 감쇄효과를 보였고, 0.5 mmPb Thyroid protector의 사용에서는 연속투시방식에서는 평균 88.9%의 선량율감쇄를 보였으며 펄스투시방식에서는 92.8%로 선량율감쇄에서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PTBD 검사시 0.07 mmPb Goggle의 사용으로 평균 62.7%의 선량율감쇄를 보였으며, 0.5 mmPb Thyroid protector의 사용에서는 평균 89.1% 선량율이 감쇄 되었고 0.5 mmPb Apron의 사용에서도 평균 87.9%의 감쇄효과가 있었다. PTBD 시술은 TACE 시술에 비해 평균 투시시간은 6.14 min이나 적었으나 피폭선량은 체부에서 약 3배, 손에서는 40배 이상 피폭되었다. 납당량이 두꺼운 방호용구를 착용하거나 최소한 권고되어지는 0.5 mmPb 이상의 것을 착용하여야 하며, 시술시 눈을 보호하는 Goggle의 착용을 생활화해야 한다. 테이블 아래쪽에 납커튼을 장착하면 복부의 피폭선량율은 평균 38.4% 감쇄하므로 납커튼을 장착하여 산란선을 차폐하여야 한다. 펄스투시방식을 이용하면 연속투시에 비해 피폭선량율이 평균 59.0% 감쇄되므로 연속투시보다 펄스투시방식을 선택하여 피폭선량을 감소시켜야 한다.

  • PDF

융합영상(Fusion image)에서 움직임을 줄이기 위한 보정기구의 개발 (Development of Supplemental Equipment to Reduce Movement During Fusion Image Acquisition)

  • 조용귀;표성재;김봉수;신채호;조진우;김창호
    • 핵의학기술
    • /
    • 제17권2호
    • /
    • pp.84-89
    • /
    • 2013
  • PET-CT (Positron Emission Tomography-Computed Tomography)의 융합영상(Fusion image)에서 긴 영상 획득 시간에 의한 환자의 움직임은 융합영상에서 부적합한 결과로 나타나 영상의 질과 진단에 큰 영향을 준다. 의료장비 회사에서 제공하는 팔 지지대는 환자 자세에서의 편의성과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아 PET/CT를 검사하는 동안 팔과 머리의 움직임 때문에 뇌기저부의 영상 결손이 생기고 머리의 좌우, 상하 움직임으로 인하여 재촬영이 빈번하다. 이에 우리는 두경부와 팔의 움직임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환자보정기구를 개발하여 PET/CT 촬영 시 환자에게 편의성과 안전성을 제공하고 환자의 움직임으로 인한 재촬영을 줄이고자 한다. 2012년 6월부터 7월까지 PET Torso 검사를 위해 핵의학과에 내원하는 환자들 중 움직임에 불편함이 전혀 없는 환자 20명과 어깨 통증으로 팔을 올리기가 불편한 환자 20명을 대상으로 Patient Holding System (PHS)와 팔의 경사도($25^{\circ}$, $27^{\circ}$, $29^{\circ}$, $31^{\circ}$, $33^{\circ}$, $35^{\circ}$)를 변화시켜 가장 편안한 자세와 경사도를 선정 하였다. 또한 지지대 재질의 투과성에 대하여 유관업체의 검증을 하였고, 환자의 머리와 팔을 밴드(벨크로 형태)로 고정하여 이에 대한 편의성을 질의하였다. 그리고 움직임에 의한 재촬영 빈도를 알아보기 위해 2012년 1월부터 12월까지 PET Torso를 시행한 환자들 중 환자보정기구 사용 전/후 재촬영 여부를 분석하였다. 움직임에 불편이 전혀 없는 환자에서는 18명이 PHS와 팔의 각도가 $29^{\circ}$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고 답하였으며, 2명은 각각 $27^{\circ}$, $31^{\circ}$이라고 답하였다. 어깨 통증을 느끼는 환자에서는 15명이 $31^{\circ}$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고 답하였고, $33^{\circ}$에서 2명, $35^{\circ}$에서 3명이었다. 이를 위해 손잡이 부분이 상, 하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제작하였다. 환자보정기구 재질의 투과성은 검증된 상태이며, 환자보정기구 자체의 움직임을 방지하기 위하여 PHS와 보정기구를 밴드(벨크로 형태)로 고정시켰다. 두경부의 움직임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홈을 만들고 머리를 고정할 수 있게 고정밴드를 부착 하였고, 손목 및 전완과 상완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는 고정밴드를 부착하여 팔의 흔들림으로 인한 움직임을 최소화 하였다. PET Torso 촬영 시 움직임에 의한 재촬영 빈도는 환자고정기구 사용 전 10.56% (191건/1,808명), 사용 후 2.77% (48 건/1,732명)로 7.79%의 발생 빈도를 줄일 수 있었다. 최근 의료 환경의 변화와 혁신으로 고가의 영상검사가 늘어남에 따라 고객이 요구하는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PET/CT를 검사하는 동안 환자의 편안함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체공학적인 환자보정기구를 제공하여야 한다. 따라서 본 연구를 통해 PET Torso 검사 시 환자의 체형과 상황에 따라 인체공학적 경사도를 상, 하 조절할 수 있는 환자보정기구를 제작하였으며, 팔의 움직임에 의한 뇌기저부의 영상결손을 줄이고 머리의 움직임으로 인한 재촬영을 줄일 수 있었다.

  • PDF

한국인 중이강후벽에 관한 형태해부학적 고찰 (An Anatomical Study of the Posterior Tympanum)

  • 양오규;윤강묵;심상열;김영명
    • 대한기관식도과학회:학술대회논문집
    • /
    • 대한기관식도과학회 1982년도 제16차 학술대회연제순서 및 초록
    • /
    • pp.17.2-19
    • /
    • 1982
  • 중이 병변에 관한 수술적 처치는 그 병소 부위가 고막에 국한되어 있거나 중이 강 전벽부 및 내면부의 경우 수술시야가 좋아서 그 처치가 용이하며 술후 청력개선 및 치유경과도 만족할만하며 다양한 수술적 처치방법이 연구되어 널리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중이강 후벽이나 상고실에 있는 병소의 처리방법에 대하여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으며 그 이유로서는 첫째 수술 시야의 장애, 둘째 안면신경 손상의 위험, 셋째 등골 주변부 병소 조작에 의한 외임프의 유출 및 미로 손상의 위험, 넷째 상고실 부위가 너무 협소하여 수술시 병변 확인이 힘든 경우등을 들수 있다. 특히 Staged operation (단계수술)과 Intact Canal Wall Typanoplasty(외청도 보존형 유양동 삭개술)이 소개된 이후로는 더욱더 중이강후벽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이 더욱 절실하게 되었으며, 두개골의 인종적 차이를 감안 할때 한국인에 대한 중이강 후벽의 구조적 연구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중이강의 후벽(유돌벽)은 Reichert's 연골에서 기원되며 제 2새궁(Second branchial arch)에서 발생되며 이 후벽의 구조물중 Sinus tympani는 이관의 내피와(endothelial pouch) 중 후낭 (Saccus posticus) 에서 함기화 (pneumatization)된 중이봉소로서 이부위 병변의 제거가 중이수술시 중요한 의의를 갖는 이유는 만성중이염에 의해 염증성반응이 오래 지속되면 비 후된 점막에 의해 Sinus tympani가 밀폐되고, 지속되는 자극에 의해 주로 안면신경관의 골성부와 등골 및 후반규관(Posterior Semicircular Canal)의 골성부에 육아조직을 형성하기 쉬울뿐더러 진주종에 의해 이 부위의 침식성 파괴를 이르켜 각각의 조직을 노출시킴으로 인해 중요한 합병증을 초래하기 쉬우며 수술로 인한 중대한 후유증이 병발하기 쉬운 곳이므로 임상면에서 중요하다. 그러므로 오래 전부터 이곳 병변의 안전한 제거를 위해 여러사람의 끊임없는 연구가 있었다. Amjad (1968), Donaldson (1970)등은 각각 24개, 20개의 측두골 계측을 실시하여 Sinus tympani의 형태 해부하적 구조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 Sinus tympani의 크기와 모양은 여러형태로 변형이 많으며, 특히 주위 중요한 조직과 연관성이 많은 Sinus tympani의 가장 은밀한 심부 (Deepest portion)는 거의 대부분 후부로 신전되는 경우의 변형이 많아 주위조직의 손상없이 Sinus tympani의 병변을 제거하기 힘든 형태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곳의 수술적 처리에서 발생 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Jako (1965) 등은 Sinus tympani병소의 안전한 제거를 위해 Sinus tympani를 확인할 수 있는 광학거울 (Fine-grade optical mirror)을 이 부위에 넣고 반사시야에서 수술적 처치를 시행할 것을 주장했으나, 수술시의 출혈등에 의한 명료시야의 확보에 문제점이 있어 널리 시행되지 않았다. Saito(1971)등은 Sinus tympani의 접근방법으로서 종래의 중이강내에서 접근방식 (Tympani approach) 보다 유양동을 통한 접근(mastoid approach)이 보다 편리하고 확실한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42개의 측두골에 대한 미세해부학적 계측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연구결과에서 그는 Sinus tympani의 상부는 안면신경과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 있어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고 후부는 이낭(Otic capsule)에서 발생한 중치밀골(Hard compact bone)로 되어 있으며 안면신경 과 후반규관 사이가 협소하여 수술시 micro-drill burr로서 제거하기가 용이치 않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mastoid approach로는 Sinus tympani 접근이 힘들다는 결론을 지었다. Goodhill (1973)등은 술자의 위치에서 수술의 전 과정을 시행하는 보편적인 방법에서는 Sinus tympani의 병변제거가 힘들므로 술자의 위치의 반대방향에서 현미경적 시야를 확보함으로써 은밀한 부위의 병변제거가 용이하다는 Circumferential approach 방법을 주장하였으나 수술부위의 감염성이 높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한편 Sinus tympani와 함께 수술시 문제점이 될 수 있는 후벽구조의 일부인 facial recess는 내피와(Endothelial pouch)중 상낭(Saccus superior)과 내낭(Saccus medius)에서 발생한다. 최근 Intact Canal Wall Tympanoplasty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이에 따라 단계수술을 시행하는 빈도가 증가함에 따라 이 수술의 성공여부에 관건이 되는 중이강과 유양동의 통기(Ventilation)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facial recess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다. Sheehy(1967)등은 facial recess를 개방하는 이유로서는 첫째 facial recess의 병변이 제거되고 둘째 골성고실륜(bony annulus)을 손상시키지 않고 난원창과 중이강 후부를 노출시킬 수 있으며 셋째 atticotomy를 시행치 않고도 안면신경의 일부와 상고실 (epitympsnum) 을 노출시키는 것이 용이하며 넷째 수술후 유양동의 통기를 유지시키는 Posterior tympanotony를 주장하였다. 중이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하려면 중이강후벽의 정확한 형태해부학적 구조를 이해하고 이 부위 병변을 제거하는 용이한 접근방법에 대한 술자의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므로 이에 저자는 다양한 해부학적 변형에 대하여 연구할 필요성을 느껴 Sinus tympani와 facial recess를 중심으로 한국인 정상성인의 중이강후벽의 크기와 모양을 계측하였다. 연구대상은 측두골 35개 대상으로 능형융기 (pyramidal eminence) 안면신경, 등골 및 반규관등을 중심으로 주변부 구조의 계측을 시도하였다. 계측의 정확성과 정밀성을 높이기 위해 각각의 은밀한 부위에 Elastic impression material 인 PERMLASTIC$^{(R)}$ (type 1 Polysul_fide base class 2 Regular body)을 삽입한뒤 1 시간 경과 후 그 주위에 복잡한 구조가 양각된 주형물을 분리하여 계측을 실시하였다. 각부위와의 거리는 1/20mm까지 측정가능한 부척이 있는 척도계인 Matui$^{(R)}$ caliper를 사용하여 수술현미경하에서 시행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1) 능형융기의 전부에서 Sinus tympani의 후부 및 Sinus tympani의 후부와 상부의 최대 신전 거리는 각각 2.54(1.05~5.40)mm, 3.22(1.25~7.45)mm, 0.67(0.40~l.75)mm 였다. 2) Sinus tympani는 상하경계가 난원창하부에서 정원창상부인 경우가 29예 (82.9 %)로 가장 많았다. 3 ) Sinus tympani의 후부는 심부(Deepest portion)가 ponticulus와 subiculum 사이인 경우가 22예(62.9 %)로 가장 많았다. 4) Facial recess의 침골와(Fossa incudis)로부터 하고실(hypotympanum)까지의 사선거리와 난원창과 정원창사이 중앙부에서의 횡선거리 및 침골와에서의 횡선거리는 각각 8.13 (7.90~9.55)mm 3.00 (2.85~3.45)mm 1,81 (1.40~2.15)mm 였다. 5) 안면신경관의 골결손 (bony dehiscence)은 5예 (14.3 %)에서 있었다. 6) 등골족판(footplate)의 전후거리 및 시상돌기(Cochleariform process)와 정원창까지의 거리는 각각 2.98(2.85~3.05)mm, 1.42 (1.35~l.55)mm, 1.85(1.45~2.10)mm 였다.

  • 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