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transnational global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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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부문, 사적권위, 그리고 글로벌 미디어 거버넌스 (The Private Sector, Private Authority and Global Media Governance)

  • 문상현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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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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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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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본 연구는 정치, 경제, 문화의 영역에서 급속도로 진행되어 온 지구화가 결과한 국제정치의 탈중심화 현상과 이를 상징하는 국제정치경제에서의 민간부문의 영향력 증대 현상을 글로벌 미디어 거버넌스와 관련하여 논의하는데 그 주요한 목적이 있다. 먼저 본 논문은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민간부문의 영향력 강화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일군의 국제정치학자들이 제기한 사적권위라는 개념의 소개를 통해 어떻게 민간부문의 거버넌스 기능이 국가에 의해 행사되는 공적권위와 같이 정당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사적권위 개념의 등장은 국제정치에서 민간부문이 국가에 종속된 것으로서의 부차적 지위에서 벗어나 국가에 버금가는 거버넌스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이론적 논의에 기반하여 본 논문은 민간부문의 영향력 강화로 특징져지는 국제정치의 탈중심화가 글로벌 미디어 거버넌스의 영역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의 함의는 무엇인지에 대해 시론적으로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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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국주의의 비판적 고찰 - 단선적 문화제국주의에서 역동적인 국제적 문화 유동으로 (Critical Analysis of Cultural Imperialism - From Simplistic Imperialism to Dynamic Cultural Fluid)

  • 임동욱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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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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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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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는 지난 몇 십 년 동안의 문화제국주의 논쟁에서 가장 큰 쟁점들을 정리하고 평가 분석 해석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들 쟁점의 하나는 국제적 문화 유동(교류)의 성격에 관한 것이었다. 이 교류에 대한 해석을 두고 문화제국주의가 끝났느냐 아니면 계속되고 있느냐 하는 이른바 ‘문화제국주의의 역전 현상’으로 이어졌다. 또 하나의 논쟁은 이러한 유동이 세계화의 연속이냐 아니면 지역화의 일환이냐, 또는 이 유동이 동질화를 불러일으키느냐 아니면 혼성으로 이어지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대체적인 견해는 예전의 문화제국주의, 주로 1960년대와 1970${\sim}$1980년대식의 일방적인 문화제국주의는 존재하지 않지만, 여전히 초국적 미디어 기업에 의한 세계적 지배는 형태를 달리할 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미디어) 제국주의 논쟁에서는 국가 간의 문화교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문화제국주의는 존재하고 있는가? 세계화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세계화는 또 다른 이름의 제국주의인가? 결론적으로 국제적 문화 유동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자연 현상이나 인류의 진보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느 한 현상은 하나의 요소나 관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유동도 다양한 여러 현상과 관계 등이 관계하여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것이다. 이는 외부와 내부의 모순, 문화 유동과 관계된 국가와 사회의 내부 외부 관계, 계급, 사회적 문화적 상황 등과 관련이 있다. 최근의 문화(미디어)제국주의 논쟁에서도 특정한 나라의 편성과 장르에서 지역화와 세계화가 맞물려 복합적으로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특정 프로그램과 문화에 대한 문화 해석이 그 나라의 문화와 양식에 맞게 변형되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문화의 유동은 양면성이 있다. 어떤 시기나 어느 국가에서는 그것이 이롭거나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해롭거나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국제적 문화 유동에서는 제국주의적인 요소와 세계화, 지역화, 동질화, 혼성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문화제국주의론이나 문화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양측 모두 동전의 한 면만을 보고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시점에서 문화제국주의 현상이 끝났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국제적 문화 유동에서 미국과 초국적 미디어 기업의 지배(영향력)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원인을 외부의 적으로만 돌려버리는 단선적인 문화제국주의가 아니라 복잡한 국제적 문화 유동의 과정을 밝혀 지배적 관계들(또는 과단한 영향력)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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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사회운동의 과점에서 본 유럽과 동북아시아의 핵에너지 갈등의 국제적 비교: 모험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International Comparison of Nuclear Energy Conflict in Europe and Northeast Asia from the Viewpoint of New Social Movement: With an Emphasis on the Risk Communication)

  • 김성재
    • 한국언론정보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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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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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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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오늘날 핵에너지 갈등은 방사능 물질의 위험성에서 비롯된다. 이 갈등의 주체는 핵에너지를 결정한 정치 및 경제체계와 이를 반대하는 해당 주민들 및 반핵 환경단체들이다. 그러나 핵폐기물의 국가간 이동 시 다국적 반핵단체가 갈등 주체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러한 국내적 초국가적 모험 커뮤니케이션을 신 사회운동이라고 부른다. 체계이론적인 관점에서 신 사회운동은 모험사회에서 돈과 권력과 같은 "상징적으로 일반화된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기술화"에 저항하는 집단적 공세적 자기관계의 전개라고 할 수 있다. 핵에너지 갈등은 동북아시아와 유럽을 비교했을 때 핵폐기장 입지선정과 관련해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동북아시아에서 대만이 북한에 핵폐기물을 수출하려고 했을 때 국제적 갈등이 일어났다. 유럽에서 독일은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폐연료봉 재처리장 건설과 핵폐기물의 국가간 이동의 문제로 큰 갈등을 겪었다. 신 사회운동이 지향하고 있는 패러다임은 상태학적 지속기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전지구적 세계상이다. '세계모험사회'에서 핵에너지 갈등은 계급, 민족국가, 체계의 경계를 초월한 "담론의 동맹"을 통한 '하위정치'를 통해 해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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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문화적 순환과 한국 지역발전 정책의 진화: 새로운 관리주의 거버넌스 형태의 등장? (The Cultural Circuit of Capital and the Evolution of Regional Development Policy in Korea: A New Form of Managerialist Governance in Action?)

  • 이재열
    • 한국경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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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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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7-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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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 지역발전 정책의 진화에서 자본의 문화적 순환에 관계된 행위자-네트워크의 영향력을 검토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벌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글로벌 컨설팅 기업과 국내 경제언론 간에 맺어진 초국적 행위자-네트워크의 역할에 주목한다. 이 시기 동안 우리나라의 지역발전 정책은 지역 간 균형을 추구하는 공간적 케인스주의가 쇠퇴하며 지역 경쟁력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는데, 이는 국토종합(개발)계획, 수도권정비계획,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의 변화를 통해서 확인했다. 이때 등장했던 혁신성 및 창의성 주도형 지역발전 정책의 형성 과정에서 자본의 문화적 순환에 관여하는 행위자-네트워크, 구체적으로 매일경제와 글로벌 컨설팅 기업이 공동 생산하여 확산시키는 처방적 경영지식과 마이클 포터나 리처드 플로리다와 같은 지역정책 구루의 역할이 중요했다. 이러한 경험적 발견은 구조주의에 기반한 지배적인 설명 양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지역발전 정책 연구에서 행위자 중심적 접근의 적합성과 타당성을 적시한다. 아울러, 관리주의 거버넌스와 기업가주의 거버넌스 간 이분법적 개념화의 현실적 문제도 발견했다. 문화적 순환의 행위자들은 관리주의적 담론과 실천의 지식을 생산해 유포하는 경향이 현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가주의 거버넌스가 관리주의의 새로운 형태는 아닌지에 대하여 보다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