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time-resolved time-resolved

검색결과 904건 처리시간 0.023초

권우(卷宇) 홍찬유(洪贊裕) 시문학(詩文學) 연구(硏究) 시론(試論) - 『권우집(卷宇集)』 소재(所載) 한시(漢詩)를 중심(中心)으로 - (An Essay in a Research on Gwonwu Hong Chan-yu's Poetic Literature - Focussing on Classical Chinese Poems in Gwonwujip)

  • 윤재환
    • 동양고전연구
    • /
    • 제50호
    • /
    • pp.55-88
    • /
    • 2013
  • 권우(卷宇) 홍찬유(洪贊裕)(1915~2005)는 대한민국 근 현대 시기 대표적 한학자(漢學者)의 한 사람이자 시대의 지성인(知性人)으로, 학계의 후예들에 의해 사표(師表)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권우(卷宇)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와 민주화의 투쟁기라는 한국 사회의 지난한 혼란기를 몸소 겪으며 당대의 젊은 학자들을 교육하고 이끌었던 시대의 스승이었지만, 운명 이후 지금까지 그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학계의 조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글은 아직까지 학계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근 현대의 대표적 한학자 권우(卷宇) 홍찬유(洪贊裕)의 시문학 세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 글이다. 그간 학계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권우(卷宇) 홍찬유(洪贊裕)의 문집에 근거한 최초의 작업이고, 그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의 시작으로 최소한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이 글은 그의 문집 속 시문학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점검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는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부족한 지식과 학문적 역량, 자료의 불비(不備)로 인해 이 글의 곳곳에서 한계가 노정될 수밖에 없다. 권우(卷宇)의 문집을 통해 본 권우(卷宇)의 시세계는 그의 시가 자신의 내적 정서의 표출을 시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특징은 권우(卷宇)가 지니고 있었던 시 의식이 시의 대사회적 효용보다 개인적 정서의 표출이라는 개인화에 보다 주목하는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와 같은 권우(卷宇)의 시 의식은 그의 시문학 세계 전반에서 고르게 확인이 된다. 이에 따라 권우(卷宇)는 고시보다 근체시를, 연작시보다 단형시를 중심으로 하였으며, 송별시나 증여시 만시와 같은 대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의 창작을 꺼렸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권우(卷宇)의 시문학 세계가 지니는 특성을 이렇게 정리하였을 때 몇 가지 의문점이 남게 된다. 우선적으로 지닐 수 있는 의문은 그의 문집 속 시문학 작품들이 그의 시세계 전부인가 하는 것이다. 현재 필자가 확인한 권우(卷宇)의 시문학 작품은 모두 문집 속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지만, 권유의 시문학 세계가 이 작품들만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크다. 다음으로 지니게 되는 의문은 권우(卷宇)의 시문학 작품들이 내적 정서의 표출을 시의 중심에 두고 있으며, 흥(興)의 정서를 표출한 시와 감회(感懷)와 감개(感慨)의 정서를 표출한 시가 각기 다른 시문학 작품의 창작 공간과 상황에서도 동일한 모습으로 드러난다면, 각기 다른 성격의 흥취(興趣)와 감회(感懷) 감개(感慨)라는 정서를 시문학 작품 속으로 옮겨간 구체적인 창작 방법은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마지막 의문점은 만약 지금까지 문집을 통해 확인한 권우(卷宇)의 시문학 세계가 그의 시가 지니는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혹은 그의 생애 중 한 시기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의문점은 권우(卷宇) 개인에 대한 탐색과 아울러 시대에 대한 탐색이 입체적으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권우(卷宇)의 시문학 세계에 대해 던지는 새로운 방향의 심화 연구 촉구는 근 현대 한문학사의 온전한 구성과 한문학사 한문학 연구의 연속성 확보를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앞으로 더 많은 연구자의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사용자 리뷰를 통한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의 이용경험 비교분석 (A Comparative Analysis of Social Commerce and Open Market Using User Reviews in Korean Mobile Commerce)

  • 채승훈;임재익;강주영
    • 지능정보연구
    • /
    • 제21권4호
    • /
    • pp.53-77
    • /
    • 2015
  • 국내 모바일 커머스 시장은 현재 소셜커머스가 이용자 수 측면에서 오픈마켓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계에서는 모바일 시장에서 소셜커머스의 성장에 대해 빠른 모바일 시장진입, 큐레이션 모델 등을 주요 성공요인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학계의 실증적인 연구 및 분석은 아직 미미한 상황이다. 본 연구에서는 사용자 리뷰를 바탕으로 모바일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의 사용자 이용경험을 비교 분석하는 탐험적인 연구를 수행하였다. 먼저 본 연구는 구글 플레이에 등록된 국내 소셜커머스 주요 3개 업체와 오픈마켓 주요 3개 업체의 모바일 앱 리뷰를 수집하였다. 본 연구는 LDA 토픽모델링을 통해 1만여건에 달하는 모바일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 사용자 리뷰를 지각된 유용성과 지각된 편리성 토픽으로 분류한 뒤 감정분석과 동시출현단어분석을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국내 모바일 커머스 상에서 오픈마켓 이용자들에 비해 소셜커머스 이용자들이 서비스와 이용편리성 측면에서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소셜커머스는 '배송', '쿠폰', '할인'을 중심으로 서비스 측면에서 이용자들에게 긍정적인 이용경험을 이끌어내고 있는 반면, 오픈마켓의 경우 '로그인 안됨', '상세보기 불편', '멈춤'과 같은 기술적 문제 및 불편으로 인한 이용자 불만이 높았다. 이와 같이 본 연구는 사용자 리뷰를 통해 서비스 이용경험을 효과적으로 비교 분석할 수 있는 탐험적인 실증연구법을 제시하였다. 구체적으로 본 연구는 LDA 토픽모델링과 기술수용모형을 통해 사용자 리뷰를 서비스와 기술 토픽으로 분류하여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본 연구의 결과는 향후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의 경쟁 및 벤치마킹 전략에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수막종에 대한 선형가속기형 정위방사선수술 (LINAC-based Stereotactic Radiosurgery for Meningiomas)

  • 신성수;김대용;안용찬;이정일;남도현;임도훈;허승재;여인환;신형진;박관;김보경;김종현
    • Radiation Oncology Journal
    • /
    • 제19권2호
    • /
    • pp.87-94
    • /
    • 2001
  • 목적 : 수막종 환자에 대한 선형가속기를 이용한 정위방사선수술의 임상 경과, 영상의학적 반응, 그리고 신경학적 후유증을 분석하여 수막종에서 정위방사선수술의 역할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대상 및 방법 : 1995년 2월부터 1999년 12월까지 26명의 수막종 환자에 대해 선형가속기를 이용한 정위방사선수술을 시행하였다. 9명은 외과적 절제술이 선행되었으며 나머지 17명은 정위방사선수술만 시행되었다. 대상환자들의 남녀 비는 7:19이었고, 연령 분포는 $14\~67$세(중앙값 51세)이었다. 정위방사선수술 당시 17명에서 병변으로 인한 신경학적 증상을 보였다. 종양 용적의 범위는 $0.7\~16.5\;cm^3$ (중앙값 $4.7\;cm^3$)이었고, 정위방사선수술 시 처방선량은 최대선량 기준으로 $46\~90\%$ (중앙값 $80\%$) 등선량곡면에 $10\~20\;Gy$ (중앙값 15 Gy)이었다. 임상 추적관찰 기간은 $1\~71$개월(중앙값 27개월)이었고 영상 추적관찰 기간은 $1\~52$개월(중앙값 25개월)이었다. 결과 : 정위방사선수술 당시 임상 증상이 있었고 임상 추적관찰 기간이 1년 이상인 14명 중 13명$(93\%)$에서 증상의 소멸 및 완화를 보였으며, 나머지 1명은 치료 후 4개월부터 종괴효과로 증상이 악화되어 7개월 후에 외과적 절제술을 시행 받았다. 영상 추적관찰 기간이 1년 이상인 14명의 환자들 중 7명$(50\%)$은 정위방사선수술 후 $6\~25$개월 (중앙값 11개월)에 종양 크기의 감소를 보였고, 6명$(43\%)$은 종양 크기의 변화가 없었다. 종양 크기의 증가를 보인 1명$(7\%)$은 외과적 절제술을 시행 받았다. 6명$(23\%)$의 환자에서 정위방사선수술 후 새로운 신경학적 후유증이 발생하였으며, 이 중 5명은 일시적 후유증으로 스테로이드 투여 등의 보존적 치료 후에 증상이 소멸되었고, 1명은 정위방사선수술로 인한 조직 괴사로 외과적 절제술을 시행 받았다. 결론 : 정위방사선수술을 이용한 수막종의 치료는 외과적 절제술이 불가능한 경우, 불완전한 절제술을 시행한 경우, 그리고 수술 후 재발한 경우에 안전하고 매우 효과적인 치료 방법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더 오랜 기간의 추적관찰이 필요하며 종양용적이 크고 주위에 결정장기가 있는 경우에는 신경학적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 좀 더 신중한 치료 계획 및 선량 결정이 필요하다.

  • PDF

16세기(十六世紀)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畫) 이해의 확장 : <경포대도(鏡浦臺圖)>, <총석정도(叢石亭圖)>를 중심으로 (Broadening the Understanding of Sixteenth-century Real Scenery Landscape Painting: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 이수미
    • 미술자료
    • /
    • 제96권
    • /
    • pp.18-53
    • /
    • 2019
  •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증을 받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특별전(2019년)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작품인 <경포대도>와 <총석정도>는 조선시대 회화사 이해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지대하다. 두 작품이 1557년의 관동 유람을 계기로 그려진 병풍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어서 16세기 산수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획기적인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성을 밝히기 위해서 본고에서는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에 담긴 경물의 내용을 살펴보고 제작시기와 양식상의 특징을 분석한 후,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 작품에 담긴 회화사적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작품의 제작 배경은 <총석정도>의 발문으로 알 수 있다. 본고에서 박충간(朴忠侃)(?~1601)으로 비정한 정상일로(商山逸老)가 1557년 봄에 홍연(洪淵)(?~?)과 함께 금강산(풍악산)과 관동 지역을 유람하고 유산록(遊山錄)을 작성하였으며 시간이 흐른 뒤 그중 몇몇 명승지를 그려 병풍을 만든 것을 알 수 있었다. 홍연은 자가 덕원(德遠)으로 1551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1584년까지는 생존했던 인물이다. 박충간은 호가 남애(南崖)로서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을 고변하여, 그 공으로 형조참판으로 승진되고 평난공신(平難功臣) 1등에 책록된 후 상산군(商山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 글로 작품의 제작 시기를 1557년의 유람 후이자, 발문을 쓴 박충간이 50대 이상이 되는, 1571년 이후 곧 16세기 후반경으로 보았다. 산수나 나무 표현 등의 화풍을 기준으로도 16세기 후반의 시대 양식과 부합한다. 전술한 발문의 내용으로 <경포대도>와 <총석정도>가 병풍의 일부였던 것을 알수 있으며, 발문이 써 있는 <총석정도>가 마지막 폭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포대도>를 보면 구도면에서 조선 초기 안견파(安堅派) 산수화에서 볼 수 있는 편파(偏頗) 3단 구도의 요소를 찾을 수 있으나 실경(實景)을 대상으로 하여 그 배치와 화법이 현실화된 양상을 볼 수 있다. 시점(視點)에 있어서도 여러 경물간의 관계나 경관의 특징이 효과적으로 표현되도록 사선각(斜線角)의 부감시(俯瞰視), 정면시(正面視) 등을 활용하여 경포대의 넓은 영역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다각적(多角的)인 관점(觀點)을 보여준다. 산의 형태나 태점(苔點)의 사용은 1557년작 <의순관영조도(義順館迎詔圖)>(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와 매우 유사하다. 16세기 안견파의 특징인 짧은 선이나 점으로 질감을 내는 단선점준(短線點皴)과 구름 모양 운두준(雲頭皴)은 현장감 있게 변모되었다. 조선 초기 산수화의 전통적인 구도와 연결성을 찾을 수 있는 <경포대도>와 달리 <총석정도>는 그 구도가 매우 파격적이다. 화면에 중심축을 두고 돌기둥들이 첩첩이 도열하여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데 근경(近景)의 돌기둥, 중앙의 사선봉(四仙峯), 절벽 위의 사선정(四仙亭)을 삼단계 정도의 깊이감으로 배치하여 화면에 공간감을 조성하였다. 중앙의 사선봉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비중을 점하고 있으나 수직적인 돌기둥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분질적(分節的), 평면적(平面的)인 양상으로 그려져 아직 입체적이고 자연스러운 공간감을 조성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기둥의 아랫부분은 희게 하고 윗부분은 어둡게 하여 고원(高遠)의 상승감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각 기둥을 묘사하는 준법을 보면 기둥으로 설정된 면에 담묵을 바르고 그 위에 농묵의 가는 선들을 그어 총석의 질감과 쪼개짐을 묘사하였다. 붓끝을 사선으로 누르며 수직으로 내려 긋고 있어서 부벽준(斧劈皴)의 초기적 양상을 보인다. 일관되게 보이는 이러한 흑백의 대조, 수직적 준법의 구사는 앞으로 전개될 절파계(浙派係) 화풍의 유행을 예시해준다. 한편 기둥의 윤곽 및 균열문이 각각 다 달라서 실제의 특징을 살리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기둥 위에 올라앉은 새들의 묘사, 파도와 흰 거품의 표현 등에서 반복적인 붓질을 찾을 수가 없고 매우 생생한 묘사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의 경물 배치는 이후 변화를 보인다. <경포대도>는 아래쪽에 죽도(竹島)를 두고 경포호를 넘어 위쪽에 위치한 경포대 건물과 오대산 일대를 올려보는 구도였다. 이러한 배치는 경포대를 화면 아래쪽에 두고 위쪽의 바다를 향하는 18세기 이래의 전형적인 구성과 차이를 보인다. 바다 쪽에서 총석을 바라보며 그린 <총석정도> 역시 이후의 작품에서는 내륙에서 바다를 향하는 것으로 관점의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정선(鄭敾)(1676~1759)과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의 작품이 제작된 이후, 두 사람의 구도를 따라 관동도의 유형이 정착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사라진 듯 했던 16세기 <경포대도>의 구도가 조선 말기 <강릉 경포대도>에서와 같이 민간 회화에서 전승된 것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관동 지역의 명승도는 이른 시기부터 그려져 고려 김생(金生)(711~?)의 관동도(關東圖), 조선 초 안견(安堅)(15세기 활동)의 낙산사도(洛山寺圖) 등 여러 화가가 단폭이거나 여러 폭의 관동도를 병풍이나 첩 형태로 그렸던 것을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기록은 많으나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작품이 없었는데 본고에서 고찰하는 이 두 점은 현존하는 관동도 중 연대가 가장 올라가는 예로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관동도(關東圖) 병풍(屛風)의 제작 양상을 알게 해주어 회화사적인 의미가 크다. 특히 발문의 내용에 따라 8폭 병풍일 것으로 생각되어 16세기 후반에 이미 관동팔경도(關東八景圖) 형식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성격에 있어서 현존하는 16세기 실경산수화의 예로 거론되는 작품들이 모두 실용적, 공적인 목적의 계회도나 기록화로 제작되어 실경산수화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나타난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실제 경관을 대상으로 자연의 변화무쌍함과 아름다움을 담고자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발문을 쓴 박충간은 유람할 때 지었던 감상시를 곁들여 자연의 진면목을 반추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점은 기존에 알려진 실경산수화의 성격과 그 양상을 달리하는 것으로 순수 감상을 목적으로 한 본격적인 실경산수화의 예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높다. 이처럼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의 두 작품은 유람의 결과를 시화(詩畫)로 제작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현존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지대하다. 또한 그간 확인할 수 없었던 16세기 실경 산수화의 다양한 형태와 구도 및 시점의 면모를 보여주어 한국 실경산수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한 점에서도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