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대에 간행된 "석씨원류"는 우리나라에서 불암사와 선운사에서 2회 간행되었다. 그런데 불암사판은 간기가 분명하여 판각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으나, 이에 비해 선운사판은 간기에 간행사찰만 명시되어 그 판각 시기에 문제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 연구에서는 선운사의 사적기와 국립도서관 소장본 등 관련 자료를 검토한 결과, 종래 통용되고 있는 1648년이 아니라 1710년에 판각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This paper aimed to identify a main-path remains in the Hwangnyongsa temple site based on studying published the excavation survey report and researching relics related to the path in the ancient temple site. Hwngnyongsa temple, there were three type's paved footway, straight path to the central axis line of the layout, outside path around the main buildings and the front square of the lecture hall. These remains were expected that installed for some purposes, such as marches, touring, sort of a Buddhist ceremony been performed at the time of Silla. Straight path shows there were two rows of the main access inside the roofed corridor. A row consisted of the 2~3 pieces processed stone(Jangdaeseok) altogether with 92cm width and combined with square stone and stepping stone on the end of the road. It is regarded as very characteristic form and one of the architectural elements of Hwangnyongsa temple in Unified Silla period.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characteristics of Zen Buddhist temple's building composition of the Northern Song dynasty, through the analysis of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 such as Seonwon chenggyu(禪苑淸規), Cham cheontae odaesan gi(參天台五臺山記) and so on. The building composition method of Zen Buddhist temple in Northern Song dynasty, which grasped from the Seonwon chenggyu, reflects the actual situation of the temples in that time. And it was ascertained that, the Zen Buddhist temple's building composition of the Northern Song dynasty was basically same to that of Southern Song dynasty. And the comparative analysis was attempted between Zen Buddhist temples and that of other Buddhism sect described in Cham cheontae odaesan gi. From this analysis, the common features as Buddhism temple and the characteristics of building composition as Zen Buddhist temple was clarified.
Recent research shows that since the early 2000s, the Chinese Communist Party has increasingly used various cultural heritage sites, including Buddhist sites, as soft power agents. Furthermore, in the context of the Belt and Road Initiative, launched by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Buddhist temples, representatives, and practices have been harnessed to play a role in the state's agenda. In this context, White Horse Temple, as a feature of cultural tourism in Henan Province, is facing new opportunities and challenges. The article examines the material particularities of reconstructing the temple in light of this trajectory, building on materials retrieved at the site, and online representations of the temple. The author explores how the temple's unique spatiality and characteristics stress the use of soft power which harnesses online and offline cultural and popular trends for state agenda.
낙산사는 익조(翼祖)인 이행리(李行里)가 관음굴에서 후사점지를 기원하여 도조(度祖)를 낳게 해준 사찰이었다. "태조실록" 등에 도조는 조선개창의 예언을 직접적으로 받은 인물로 기록된다. 낙산사는 창건 이래 관음신앙의 본산으로 그 명성이 꾸준히 이어져 왔으며, 도조의 잉태로 조선의 창업과 관련있는 사찰로 주목받았다. 도조의 낙산사 관음굴 기복잉태설은 조선후기까지 왕실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이성계(李成桂)도 낙산사에 관심을 보였고, 세조(世祖)가 강원도 순행(巡幸) 시 예종의 원찰로 중창하였다. 낙산사는 세조가 왕권강화 등을 위해 불교적 상서(祥瑞)와 이에 따른 사찰의 중창 등을 집중적으로 시행하던 시기에 중창되었다. 이러한 정책과 달리 낙산사 중창은 세조가 자식 예종의 무병장수 기원을 위한 신앙심의 발현으로 추진한 것이었다. 세조의 낙산사 중창의지는 매우 강했다. 그러므로 낙산사는 국가의 전폭적 후원을 받으며 중창되었다. 낙산사 중창비용은 국가에서 모두 충당하는 것으로 표면화하고 추진하였으나, 워낙 큰 공역이었으므로 중창에 필요한 물자와 비용조달에 따른 지역의 피해는 매우 컸다. 조선왕실에서는 낙산사 중창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감동승(監董僧) 학열(學悅) 또한 비호해 주었다. 낙산사는 중창직후 왕실의 지원으로 사세가 더욱 번창하였다. 예종과 성종은 전지(田地)와 노비 등을 낙산사에 하사하고, 강원도에서 공납하던 소금을 사급(賜給)하는 등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낙산사 경내를 보호하기 위해 낙산사 인근 양양대로를 폐지하고, 새 길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낙산사 해안 십리의 구역에 포어(捕漁)를 금지하는 금표를 세워 민간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낙산사는 조선후기에 들어 크게 쇠락했으나 왕실의 원당보호정책 속에서 후원이 지속되었고, 원당으로서의 명맥과 사세를 유지해 나갔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 사찰림의 생태문화적 가치를 평가하는 평가지표를 개발하고, 개발된 사찰림의 평가지표를 삼보사찰의 한 곳인 송광사(승보사찰)에 적용하였다. 브레인스토밍(숲치유 전문가 2인, 불교계 산림전문가 스님 1인, 산림1인, 연구자 포함 6인)을 통하여 문헌연구와 평가지표 초안을 도출하였고, 이후 전문가그룹(1차:32명, 2차:30명) 심층인터뷰(FGI)를 5점 리커트 설문조사방법으로 도출한 최종평가지표 4개 영역 20개 항목을 기초로 실행한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사찰림의 생태문화적 평가지표에 대해 4개 영역 20개 평가항목으로 각각 5점으로 하였으며 역사문화적 가치는 5개 항목으로 총 25점을, 생태적 가치는 5개 항목으로 총 25점, 휴양 관광적 가치는 6개 항목 총 30점, 교육 이용적 가치는4개 항목 총 20점으로 각각 배점하여 총점을 100점으로 하였다. 개발된 평가지표를 연구대상지인 조계산 송광사를 대상으로 적용한 결과, 사찰림의 역사 문화적 가치가 25점 만점에 23점, 생태적 가치는 25점 만점에 21점, 휴양 관광적 가치는 30점 만점에 22점, 교육 이용적 가치는 20점 만점에 16점을 차지하여 총 82점의 결과치가 도출되었다. 이번 연구에 대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최초로 사찰림의 생태문화적 지표를 개발했다는 것에 의미를 가지고, 사찰림의 생태문화적가치에 대한 활용자료가 될 수 있음에 의미를 가진다. 둘째, 사찰림의 생태문화적 평가지표를 가지고 송광사 사찰림을 평가한 결과, 사찰림의 휴양 관광적 가치와 교육 이용적 가치가 매우 낮았다. 이러한 이유에서 사찰림을 국내 최고의 고객으로 인정하는 산림청과 환경부, 문화재청 등은 사찰림의 관광, 휴양, 교육, 이용을 위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사찰림의 생태문화적 가치에 대한 우수성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하여 사찰림만이 가지는 템플스테이와 치유를 접목한 가칭 "사찰림에서의 치유"와 같은 국가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적인 관광산업이 되기를 바란다. 넷째, 사찰림에 대한 법적정의가 없는 현 상황에서 사찰림에 대한 법적정의의 필요성에 대하여 법적정의를 제안하였다. 이러한 사찰림의 정의가 법률적으로 마련되면 사찰림의 생태문화적 가치에 대한 보호 및 활용적 측면에서 국가기관에 전담부서를 조직하고 더 나아가 사찰림을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도 등재하는데 기초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다섯째, 이번 연구의 결과로 나온 사찰림에 대한 생태문화적 평가지표를 바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에 적용해서 각 사찰마다의 특징을 도출하여 사찰의 관리 또는 활용에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본고는 원각사탑에 대한 지난 백 년간의 근대 학설사를 층수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적으로 성찰하였다. 먼저 제II장에서는 근대 개항기에 조선을 여행한 서양인들이 종래 한성의 '비미(非美)'내지는 흉물로 간주되던 원각사탑을 한성의 '기관(奇觀)'내지 '위관(偉觀)'으로 재발견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추적하였다. 이들은 불탑에 관한 예비지식이 거의 없는 서양 출신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원각사탑에 대하여 객관적인 견문기를 남길 수 있었는바, 그들이 접촉한 조선 지식인들을 통하여 대체로 13층설을 받아들였다. 이어서 제III장에서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일인 관변학자들이 원각사탑을 본격적으로 학술 조사하고, 일제식민기 동안 조선총독부가 원각사탑을 문화재로서 관리하는 과정 및 그 문제점을 언급하였다. 특히 지난 100여 년 동안 원각사탑 층수 문제에 관하여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키노 타다시(關野 貞)의 학설이 10층설에서 13층설로, 다시 다층설로 변하는 문제를 집중 조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제IV장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1962년까지 원각사탑에 대한 인식이 다층설에서 10층설로 바뀐 경과를 정리하되, 선행하는 일제식민기 조선 지식인들의 인식이 13층설 일변도였음을 특기해두었다. 다만 1962년 이후 지금까지 원각사탑에 관련하여 중요한 연구성과가 적지않이 발표되었지만, 층수에 관한 한 대부분 1962년에 확정된 10층설을 전제로 하였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따로 정리하지 않았다. 학설사 검토의 결과, 원각사탑이 13층탑으로서 건립되었다는 근거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일제시기는 물론 해방 이후 지금까지 백 년이 넘도록 13층설은 단 한 번도 공인받지 못하였으며, 학계에서 층수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도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각사탑과 경천사탑이 10층탑이라는 현재의 통설은, 백 년 전에 세키노 타다시(關野 貞)가 최초로 주창하였다. 세키노는 원각사에 남아있는 「원각사비」가 글자를 거의 판독할 수 없을 정도로 마멸이 심하였기 때문에 원각사탑의 현상만 건축학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10층탑이라고 주장하였다. 공교롭게도 그 직후에 발견된 『속동문선』에 실린 「원각사비」에서 '탑 13층을 세웠다.'라는 구절이 확인되었다. 또한 15세기 후반 왕명으로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편찬자들도 원각사탑의 모범인 경천사탑 또한 '13층탑'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원각사탑 건립 직후 왕명으로 건립된 「원각사비」는 세키노의 10층설이 전제에 오류가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세키노는, '3층의 기단 위에 탑신 10층이 올려져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13층탑이라고 불렀다.'라고 하였는데, 「원각사비」는 세조가 처음부터 13층탑으로서 원각사탑을 건립하였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다만 이례적이게도 13층탑을 3층의 기단 위에 탑신 10층을 올린 형태로 조성하였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세조는 왜 13층탑을 세웠으며, 왜 그것을 3층의 기단 위에 탑신 10층이라는 이례적인 형태로 구현하였는가? 세조가 원각사13층탑을 건립한 의도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먼저 원각사탑의 정체를 파악해야 하는바, 그 첫 단추는 원래의 명칭을 회복하는 데 있다. 필자는 전제의 오류 위에 구축된 세키노의 10층설-나아가 절충적인 다층설-은 이제 폐기하고, 「원각사비」에서 말하는 13층설을 복원할 것을 촉구한다.
The Tongdo temple have been transformed continuously since its first establishment about 1300 years ago. Nevertheless three critical elements specified by 'Jajangyulsa', founder of the temple have not varied over the times but rather strengthened and strongly combined. All elements and doctrines of the religion coexist and form a harmony within the whole of the temple. This researcher examined what changes, or combinations, in spatial formation were sought for such unique structures of the Tongue temple by focusing mainly on the Sangrojun area of the temple to obtain the following findings. First. unlike a work by a Japanese researcher 'Sekino Tadashi', the east yard of the main building was found located on the section line which corresponded to the separation line of Yungkuncheokdo(營建尺度=measure running) from the edge of the Keumkangkyedan(金剛戒壇 =Buddhist platform) embankment to the corner column of the Kamrodang. This was confirmed as a result of the review of photos shown in [Chosun Kojukdobo]. Second, the number of stairs used for the Keumkangkyedan was thought to become three when the temple was firstly restored in 1379 as a result that this researcher reviewed Chinese literature 'DoSun' and [Kyedandokyung(戒壇圖經)], records by 'Lee saek' and 'Jung Shihan', studies of Yungkun measure and actual changes in the temple. Then the temple was forth restored in 1705 when the second of the stairs was changed in area and height and at the same time grounded hard for a space for a Buddhist service. Third, the roof of the main building was probably changed in shape during the Koryo period when the plane structure, furnish arrangement, emphasized front, stone lanterns of the building and political factors of that time were all considered. Fourth, the main building was Initially designed to provide a Buddhist sermon service which was assumedly followed by a similar service at a Keumkangkyedan. Thus the main building had a small window on the northern side which might be opened up to look out or otherwise go outside like a door. However, the window was probably locked up like a surrounding wall since the main building was entirely repaired after the end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Mixed construction of platform" means the platform which was constructed by mixing heterogeneous materials such as roof tiles or bricks with divided stone of trimmed stone. This kind of construction technique was not known or found from the building sites of Goguryo or Silla so far and therefore it used to be understood as a unique platform construction technique or the product of technology and creativeness of Baikje's craftsman. The mixed construction of platform of Baikje came to position itself as one of the patterns of platform mainly used over Sabi period and we found the pattern from the sites including Imryugak site in Gongju, temple for royal tomb in Gwanbuk-ri, Wangheungsa Temple site, building site in Keumseong Mountain, Ohapsa Temple site in Byryeong. From the fact that they used a variety of materials which they could easily get around them such as roof tiles or bricks in addition to stones for the construction of platforms, we can see the feasibility and decoration characteristics of their material supply at that time. On the other hand, this mixed construction of platform was not popular in Goguryo and Silla, the major reason for which is judged to be non-existence of platforms to construct using bricks or roof tiles which could be constructed together with platform using divided stones. This is supported by the results of excavation of Hwangryongsa Temple site, Bunhwangsa Temple site, Heungryunsa Temple site of Silla which gave us comparatively abundant excavation data, and Jeongreungsa Temple site, Cheongamsa Temple site, Toseongrisa Temple site and building site in Daeseong Mountain castle and Anhak Palace site of Goguryo. For further progressive study on the mixed construction of platform of Baikje in the future, we will have to review more on the social background and technical background with the linkage with archeology and architecture at that time which led to the creation of such platform.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the characteristics of the temple wastes and suggest the waste management guidelines for temples in natural parks. Study results revealed four important findings. First, it was found that the average quantity of the total temple wastes was 85,786g/day which was composed of general wastes(44,617g/day), food wastes(20,292g/day), recycling wastes(20.825g/day), and buddhist service wastes(60g/day). The average generation per capita of the temple wastes was 1,511g/capita day and the average bulk density was 0.102kg/l. Second, the food scrap was of small quantity(72.5g/day) because the traditional buddhist eating method, "Baru meal(鉢盂供養)" prohibits food abuse. This amount is very little compared to that produced in the general household in Korea. Third, the average quantity of the buddhist service wastes was 300-1,650g/one time. This wastes occupied 0.07% of the total temple wastes. Fourth, the average waste generated by visitors was 182.8g/person, which occupied 87.1% of the total temple wastes and costed 52,100,000 Wons to t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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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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