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abyeonrok

검색결과 2건 처리시간 0.015초

박세당의 주희 이해 (Park, Se-dang's understanding of Zhuxi)

  • 허종은
    • 한국철학논집
    • /
    • 제43호
    • /
    • pp.55-80
    • /
    • 2014
  • 박세당의 경학사상에 대한 평가는 '반주자학' 혹은 '탈성리학'적인 요소라는 경우와 그렇지 않다는 경우로 나누어진다. 그렇지 않다는 경우에는 박세당이 주자의 성리학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다는 주장, 박세당의 경학사상은 경학사적인 의미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글에서는 박세당의 학문을 주자학 혹은 성리학이라는 틀을 통한 이해보다는 박세당 자신의 관점이 무엇이었으며, 그 관점에서 주자가 어떻게 이해되었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박세당은 경문의 새로운 이해에 있어서 필요한 경우에만 주희의 주석을 비판 또는 수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박세당이 "사변록"을 저술하게 된 동기와 그 속에 나타나 있는 그의 경전 해석의 기본 관점을 통하여 그의 주희 이해 방식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박세당은 학문에서 멀고 깊은 것은 가깝고 얕은 것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이 도달하기 쉽고, 헤아리거나 얻거나 알기 쉬운 것으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버려두고 멀고 깊은 것을 탐구하게 되면 본령에서 어긋난 공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것이 박세당의 경전 해석의 기본 관점인 '하학상달'의 방법이다. 박세당은 한당대(漢唐代)의 잘못된 학문 경향을 바로잡은 공로는 바로 정주학(程朱學)이며, 정자(程子) 주자(朱子) 두 선생에 의해 육경(六經)의 뜻이 다시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다고 극찬하였다. 그리고 박세당은 육경의 이치는 하나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길은 여러 가지이므로 주자학(朱子學)도 그 중에 하나라고 인정하였다. 물론 자신의 방법도 그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변록"을 짓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견해와 하학상달의 방법론이 박세당 경학의 기본 입장이며, 이 관점에서 박세당은 주희의 경전 주석을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박세당은 경전에 대한 기본 입장과 하학이라는 방법론을 통하여 유교 경전을 새롭게 해석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주희의 주석을 비판 혹은 수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상소(上疏)를 통해 본 조선후기 지식인의 재편 - 이경석·박세당 평가와 관련한 노론계의 상소를 중심으로 - (Memorials to the King and the Intellectual history in the Late Joseon Dynasty)

  • 송혁기
    • 동양고전연구
    • /
    • 제59호
    • /
    • pp.121-156
    • /
    • 2015
  • 본고는 지식권력과 정치권력이 만나는 장(場)의 하나인 상소를 대상으로 삼아서 특정 정파가 지식 논쟁을 주도하고 지식인 집단을 재편하는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이를 위한 사례 연구의 대상으로 택한 사안은 이경석과 박세당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노론과 소론의 공방(攻防)이다. 이 사안의 발단은 이경석의 차자(箚子)에 반박하여 올린 송시열의 상소문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송시열에 대한 평가로 점차 논란이 확대되어 노론과 소론의 전면적인 대립으로 치달았고, 결국 박세당의 저술인 "사변록"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 검열로까지 이어졌다. 본고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노론계 인사들의 상소 행위이고, 그 중에서도 이 사안의 핵심에 놓이는 안동(安東) 김문(金門)의 역할이다. 소론 측의 계속되는 송시열 비판에도 불구하고, 안동 김문은 송시열에 대한 노론계의 요지부동한 지지를 대변하였다. 이 사안의 직접적 계기가 바로 김창흡의 서신이었고, 이후의 상소 과정에서 안동 김문과 그의 문도들이 막후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추적하였다. 이 사안을 중심으로 연이어 올라간 양측의 상소들은 대체로 특정 인물 및 저작에 대한 날선 논평들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이 상이한 내용의 상소들은 기존의 정파(政派)가 낳은 결과이기도 했지만 새롭게 진행된 지식인 재편(再編)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상소 행위 자체만이 아니라 상소에 동원된 표현과 논법들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노론계에서 올린 일련의 상소문들에서 구사한 표현과 논법들은 주희(朱熹)를 기준으로 삼아 당대의 인물과 저작들을 양단간(兩端間)에 재단(裁斷)해 버리는 것이었다. 소론계 상소들의 다양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이 논법의 칼날은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지고 당시 지식인들을 재편하였으며, 이로 인해 학술적 판도 역시 새롭게 만들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