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poetry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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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Ancient Greek Physical Education Spirit

  • Han, Do Ryung
    • 한국컴퓨터정보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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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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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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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Plato and Aristotle examined what the true spirit of physical education is and what kind of relationship it is, from the perspective of dividing into two parts of the body and mind.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human body and mind, knowledge and behavior. Plato and Aristotle examined the harmonious combination of body and mind and what is the desirable relationship setting. In Plato's soul and body in philosophical centered ideological aspect, human education center emphasizes poetry education, but physical education is recognized as essential education for human education. Plato's body contour emphasizes the harmony of soul and body, not the superiority of the body to the mind. In Plato's education room, physical education should be preceded and then mental education should be done. I thought that there could be no independent souls without bodies. It is not an independent entity but a unified entity. Because there is a body, there is a soul. There is a soul, so a body exists. Aristotle thought that the body was more important than Plato, and that the body should be preceded by the soul.

1910~20년대 시인의 전통 한시 국역 양상과 의미 연구 - 최남선, 김소월, 김억, 이광수를 중심으로 - (A Study on Korean Language Translation of Chinese Traditional Hansi in the 1910s and 1920s)

  • 정소연
    • 고전문학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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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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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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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고는 20세기 전반기에 하나의 문학사적 현상으로 나타난 시인들의 한시 국역 현상에 주목하고, 이 중에서도 1910년대에 최남선의 한시 국역 7수, 1920년대에 김소월의 6수, 김억의 6수, 이광수의 3수에 주목하고 그 문학사적 의미를 탐색한 것이다. 그 국역의 구체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20세기에 한시 국역을 처음 한 1910년대의 최남선은 이백, 두보 등의 유명 당시(唐詩) 및 근체시, 특히 7언시를 국역하였다. 원시(原詩)는 노래의 성향을 적지 않게 띠고 있으나 최남선은 음보율에 더 나아가 음수율에 가까운 형식을 추구하고 행말이 명사나 부사어로 끝나게 국역한다거나 문장으로 기록된 문체로 바꾸는 등 읽고 보는 시(詩)를 지향하였다. 또한 원시보다 행수가 같거나 더 짧게 국역해서 축약함으로써 군더더기나 부연을 줄이고 독자가 시어들 간의 해석에 적극 개입하고 해석하는 여지가 마련한 점도 기록문학의 특성을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1920년대에 첫 한시 국역을 한 김소월도 이백, 두보 등 유명 당시(唐詩)를 대상으로 하였고, 노래의 성향을 적지 않게 띤 중국 한시를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최남선과 반대로 원시보다 더 행수나 정보량이 길어지게 국역하여 부연이나 첨가의 내용이 추가되게 하였고, 단연체 시를 다연체 시로 국역하였다. 특히 감탄구나 의성어, 동어 반복 등으로 일상 구어에 가까운 구술성을 강화하고, 보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화자 등의 시어를 바꾼 점은 노래로서의 성격을 지향하는 국역 방식을 보여준다. 셋째, 1920년대의 김억도 이백, 두보 등 유명 당시(唐詩) 및 절구를 대상으로 국역했다는 점에서 앞의 시인들과 같으나 고려 정지상의 <송인>이 한 편 들어갈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합쇼체의 경어체로 국역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김소월처럼 단연체의 한시를 다연체로 국역하였고, 또 특정 율격을 추구하지 않고 내용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일대일 대응이 되는 국역을 한 점이 이후 김억의 700여 수에 가까운 한시 국역과 다른 이 시대의 특징이다. 넷째, 1920년대의 이광수도 당대(唐代) 시인인 두보의 한시를 국역하면서 다연체로 바꾼 점이 다른 1920년대 시인들과 같다. 이 외에도 대화체 및 현장감을 높이는 방식으로의 국역은 다른 1920년대 시인들과 같이 기록문학으로서의 시보다는 구술성을 추구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 네 시인은 전통시대에 국어시가보다 위상이 높았던 중국의 옛 한시를 도리어 국어시가화하되, 1910년대의 최남선은 국문전용시대의 우리 근대시가 나아갈 방향이 기록성과 문자성을 추구하는 것이라 여겼다면 1920년대의 김소월, 김억, 이광수는 다수가 공감하며 보편성을 높일 수 있는 일상 구어 기반의 노래[歌]로서의 존재를 함께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시의식을 보여준다. 이는 당시 시인들이 생각한 근대 한국시의 지향점으로서 기록문학성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구술문학으로서의 특성도 포함한 시가(詩歌)를 근대시로서 인식한 것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한자로 되지 않았으나 근대 국어로 된 시에도 한시가 지속되고 있다는 시가사적 지속성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비록 22수에 불과하지만 1930년대나 40년대에 더 활발하게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다른 특성을 보이게 되는 전통 한시 국역 양상의 문학사적 흐름을 살펴보는 기반으로서의 의의도 가진다.

'칙어'와 '소칙'과 '반전 센류' (Imperial Rescript (Chokugo), Imperial Rescript (Shousho) and an Anti-war Senryu)

  • 구루미사와 겐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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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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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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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일본 근대의 '반전시'의 기원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일전쟁은 천황의 '선전소칙' 포고로 개시된 첫 전쟁이다. 전쟁은 천황의 명령이며, 국민에 대한 '말씀'이다. '반대'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소칙'에 따른 '전쟁'은 '성전'이고 정당성이 부여된다. 그 때문에 '반전(反戰)'은 천황의 명령과 '말씀'에 거역하는 사상, 표현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반전시'로 잘 알려진 요사노 아키코의 "그대여 죽지 말지어다"(1904)는 발표 당시부터 "국가의 이름으로 처벌하라"라는 맹렬한 비판을 받게 된다. '반전시'는 언론탄압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단시형 문학에 대한 탄압은 그 정도가 매우 극심하였다. 마이너 장르인 탓에 지금까지 간과되어 왔지만 다시금 '반전시' 계보로 자리매김하고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러일전쟁에 탄생한 근대 센류(신센류)는, 풍자와 반어법을 구사하며 정치와 사회 전반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집요한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교육칙어'를 풍자한 쓰루 아키라의 '반전 센류'는 그 최전선에 자리한다. 본 논문에서는 바로 이 풍자와 반어법에 주목하여 '소칙'과 '칙어'를 반전(反轉)시키는 '반전(反戰) 센류'를 고찰한 것이다.

이상(李箱)의 시 작품에 구사되는 프랑스어와 탈 지방성 (A study of the Implications of French vocabularies and the de-locality in LEE Sang's Poems)

  • 이병수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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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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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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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논고는 근대한국 문학의 전위인 이상(李箱)의 시작품에 구사되는 프랑스어와 탈 지방성에 대한 연구이다. 이상의 시편들 속에 쓰인 기호와 외래어는 한글로는 표현이 어려운 물리학, 건축학, 수학, 기하학, 이국의 문명과 같은 초감각적인 이미지들을 그려내고, 의미생성과 확장을 불러오는 파생의 시어로 작용한다. 이상의 시작품에서 프랑스어는 알파벳 철자와 한글식의 표기로 나누어지고, 문장들은 고딕 적이며, 병렬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프랑스어 단어들은 "${\Box}$, ${\triangle}$, ${\nabla}$" 등의 기호들과 조화를 이루어 상형적인 이미지로 기술된다. 문법의 규범을 이탈한 문장들은 해체와 재조합을 불러오고, 이때 프랑스어는 한글을 대체하고, 모국어가 갖는 한계를 초극하여 이국의 과학문명과 사상, 예술을 차용하는 포스트모던의 시어로 활용된다. 나아가 "ESQUISSE" 등의 프랑스어는 시인 자신의 열등의식을 초월하고, 자유와 상상력, 현대의 예술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전위적인 시어로써, "향토"(鄕土)의 조선 문단에 세계의 신경향을 이식하여 성숙시켜 놓은 탈 지방의 시어로 나타난다.

기묘사림(己卯士林) 송재(松齋) 한충(韓忠)의 삶과 시(詩) (Life and poetry of Gimyosalim Songjae Hanchung)

  • 권혁명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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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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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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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기묘사림의 대표적인 인물 한충(韓忠)의 삶과 시를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었다. 한충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한충이 뛰어난 사림파 인물임에도 아직까지 연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한충의 생애와 교유를 살펴보았다. 한충의 생애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가 문과 장원에서부터 호당(湖堂)을 거쳐 종계변무사의 서장관으로 가는 등 뛰어난 문재를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한충이 종계변무사로 중국에 갔을 때 항소(抗訴)하여 중국 각로(閣老)들에게 인정을 받은 사실은 한충의 이문화국(以文華國)의 문재를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충의 생애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강직한 성품이다. 한충은 훈구파의 핵심인물인 남곤을 간사한 인물로 규정하고 그에게 동조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강직함으로 인해 한충은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남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충의 교유는 대부분 기묘사림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특히, 조광조(趙光祖), 김정(金淨)과는 한 이불을 덮고 자거나 침식(寢食)을 잊고 학문을 토론하는 절친한 사이였다. 3장에서는 한충의 시를 검토하였다. 한충의 시는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관료로서 애민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충은 어려서부터 집안의 곡식을 궁한 친척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는데, 이러한 어진 성품이 관료생활과 맞물려 애민의식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절조의 삶에 대한 지향이다. 한충은 강직한 성품을 바탕으로 훈구파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절조를 지키며 살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신지향은 대나무, 소나무, 잣나무의 의상을 통해서 시화(詩化)되고 있었다. 셋째, 현실비판이다. 한충의 시에서는 쓸쓸함의 정서 속에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내용들이 포착된다. 이는 그 기저에 훈구파가 지배하는 부정(不正)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한충의 현실비판을 읽을 수 있다.

독석(獨石) 황혁(黃赫)의 생애(生涯)와 시세계(詩世界) - '소무(蘇武)'와 '굴원(屈原)'의 이미지 - (Hwang Hyok's life and poetry)

  • 권혁명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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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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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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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독석(獨石) 황혁(黃赫)의 생애와 시세계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었다. 본고가 황혁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황혁이 문학적으로 상당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우리 문학사에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황혁의 시세계를 탐색하는 일은 유배시의 외연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2장에서 황혁의 생애를 검토하였다. 황혁의 생애에서 주목되는 점은 황혁이 해동강서시파로 평가받는 부친 황정욱의 문재를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그가 문과에 장원급제를 한 후 10년간 빠르게 진급하여 통정대부까지 오른 사실은 황혁의 뛰어난 문재를 방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황혁의 생애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임진왜란 때 작성한 항복권유문으로 인해서 20여 년의 긴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유배의 배경으로서 기존의 그것과 변별되는 지점이고, 이는 황혁의 독특한 시세계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3장에서는 2장을 바탕으로 황혁의 시세계를 살펴보았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호(豺虎)의 현실(現實), 소무(蘇武)의 이미지'이다. 임진왜란은 황혁의 뇌리 속에 강하게 자리 잡은 나쁜 기억이었다. 왜냐하면 황혁이 긴 유배에 처하게 된 발단이 임진왜란 때 항복권유문을 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황혁은 임진왜란 때의 현실을 '시호(豺虎)가 우글거리는 혐오스런 현실로 인식했으며, 결백한 자기 자신을 흉노에게 사신 갔다가 억류된 소무(蘇武)로 비유하였다. 둘째, '장사(長沙)의 현실(現實), 굴원(屈原)의 이미지'이다. 황혁은 암담한 유배지에 놓인 자신을 굴원으로 비유하였다. 이는 항복권유문을 모함한 북인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된 자신을,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배척된 굴원(屈原)과 동일시하려 했기 때문이다. 독특한 점은, 황혁이 굴원의 이미지를 가져오되, 장사(長沙)라는 공간으로 한정했다는 것이다. 장사(長沙)는 굴원이 투신자살한 멱라수가 있는 곳이다. 황혁은 굴원이 최후를 맞이한 장사를 통해 항복권유문이라는 치명적인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의 암담한 처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교육을 위한 노래, <도산십이곡> '언지(言志)'의 뜻 (Meaning and Structure of 'Eonji(言志)' as Educational Poetry)

  • 서명희
    • 고전문학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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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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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5-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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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논문은 <도산십이곡>이 교육을 위한 노래라는 성격을 인지하고 이에 입각하여 해석할 때 <도산십이곡>의 의미와 구조가 명확히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이와 같은 관점에서 시가에 대한 논쟁적 구절의 해석을 확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언지(言志)' 육곡(6曲)의 의미와 구조를 밝히고자 하였다. 발문과 후대의 여러 기록을 근거로 볼 때 <도산십이곡>은 제자와 후학들에게 체득하여 내면화하게 하려는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창작된 노래로, 이황이 생각한 학자적 삶과 학문의 요체를 담아낸 교육적 노래이다. 따라서 '언지(言志)'에 표현된 뜻은 구체적 개인으로서의 이황의 뜻인 동시에 유학의 학문적 논리로서 정당화되는 유자적(儒子的) 삶의 목적과 의미를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언지(言志)' 제4수 '피미일인(彼美一人)' 구는 학문하는 가운데 군주를 잊지 못하는 심정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마음을 노래하여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길과 임금을 섬기는 길이 상충되거나 모순되지 않는 것임을 보이고 있다. '언지(言志)' 제5수는 "시경" <백구>편에서 언급된 떠나가 은거하고자하는 현자에 대한 군주의 염려를 차용하였으며, 노장의 허무한 학문을 추구하는 데 빠지지 않고 겸선(兼善)하는 사회적 실천의 길을 외면하지 않는 삶을 촉구하고 있다. 자연과 학문, 교육과 실천이라는 항목을 중심으로 파악한 '언지(言志)'의 구조는 "자연 은거의 뜻(제1수) - 자연+학문적 실천(제2수) - 학문+교육적 실천(제3수) - 자연+학문의 자세(제4수) - 자연+교육적 자세(제5수) - 자연의 아름다움=학문과 교육의 최종점(제6수)"으로 요약된다.

서경덕(徐敬德)을 통해 본 조선 중기 근기(近畿) 문학 사상의 변화 (A Study on the Changes of Literary Thought in the Middle of the Yi Dynasty through Seo Kyung Duk)

  • 김성룡
    • 고전문학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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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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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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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논문은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이 남긴 음성학 논문인 <성음해>라는 글을 풀이하면서 서경덕의 사유에 담긴 특징을 추론하고 이것이 16세기 당시풍의 흥성과 여하한 관련이 있는지를 추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경덕은 주기론을 전개한 학자로서 한국의 유학이 심화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학자이다. 서경덕은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많은 학자들을 길러낸 훌륭한 교육자였다. 그들 대부분은 서울부터 개성 사이 근기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이 무렵 조선에서는 당시풍의 시풍이 유행했다. 이러한 문학 풍조를 이끈 이들은 대부분 서경덕의 제자들이다. 이것은 서경덕의 학문이 갖고 있는 특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서경덕은 세계는 기의 운동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운동은 정확한 수의 질서를 따른다고 보았다. 기는 수의 질서를 따라 능동적이며 자동적이고 필연적으로 우주 만물을 만들어낸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저마다 타고난 기의 운동에 따라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현존재는 저마다 존재의 이유가 분명하여 모두가 서로 어울리고 총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룬다. 현세의 차별을 넘어선 본체는 맑고 깨끗한 하나로 돌아간다. 이처럼 현세의 차이를 조화와 어울림으로 받아들이는 정치적 입장과, 맑고 깨끗한 본체에 대한 진리 체험을 미적 체험으로써 체험하고자 하는 문학적 입장이 나타나게 되는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가 16세기 문학의 변화를 이끌었다.

회와(悔窩) 안중관(安重觀)의 시(詩)에 나타난 자아(自我)와 세계(世界) (The self-consciousness and the world-recognition in Huewa Anjung-gwan's poetry)

  • 강혜규
    • 고전문학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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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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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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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This study considers Huewa悔窩 Anjung-gwan安重觀's self-consciousness and the recognition of the world. Anjung-gwan resents that fact that Qing淸 rules over China. He insists that Chosun朝鮮 must remain faithful to Ming明. But Chosun served Qing in those days. He holds strongly to his belief until his death. So he chooses living in retirement in his life. In Anjung-gwan's poems, we can see that a certain circle of Chosun Confucianists believe in Sojunghwa小中華, which is small-Sinocentrism. In the first half of the eighteenth-century, some Chosun Confucianists feel sad about the situation that stops them from realizing their ideals. But they take pride in natural beauty and configuration of Chosun. And they pay attention to the life of Chosun masses. They recognize Chosun, which is Hwa華, has to keep self-respect to the last.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을 활용한 한국어 문화 교육 방안 연구 (The Study on Korean Culture Education through The Musical )

  • 강주영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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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5권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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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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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문화 수업에서 뮤지컬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그 의의를 밝히는 데에 목적이 있다. 한국어 교육은 의사 소통 능력 신장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언어 지식뿐 아니라 사회적 배경 및 맥락의 이해를 돕는 문화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에 연구자는 그동안 한국어 교육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뮤지컬 콘텐츠를 활용하여 한국어 문화 수업을 구성하였다. 뮤지컬은 뚜렷한 서사 구조와 음악을 중심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여 한국어 학습자들에게 매력적인 문화콘텐츠이다. 특히 본 연구에서 다루는 뮤지컬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은 현재 사회에서도 유효한 문제의식을 지녔으며 작품의 주인공들이 부르는 '시조(時調)'는 한국 문학 수업 자료로도 활용가능하여 다양한 문화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교육적 자료라 여겨진다. 연구자는 위와 같은 특성을 바탕으로 한국 뮤지컬<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을 활용하여 '시조'를 교수하는 문화 수업 방안을 제시하였다. 수업은 중급 이상의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4차시 과정으로 이루어지며 각 차시는 '뮤지컬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 이해하기(1차시)', '한국 시조에 대해 학습하기(2차시)', '자신의 이야기를 시조로 쓰기(3차시)', '창작한 시조 작품 발표하기(4차시)'로 진행된다. 본 문화 수업은 시조를 소극적으로 학습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시조의 의미를 내재화하고 창작하며 적극적인 향유로까지 영역이 확장된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더불어 그동안 한국어 문화 수업에서 주로 다루어졌던 영화, 드라마, 연극, 대중가요 등을 넘어 뮤지컬이라는 공연 장르를 더함으로써 한국어 학습자들에게 교육은 물론 폭넓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소개하고 경험하게 하는 고무적인 수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