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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공연작품 의상을 위한 디지털 뮤지엄 아카이빙 구축 (A Study on Construction of Digital Museum Archiving Regarding Dance Costume)

  • 정유진;유지영;백현순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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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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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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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무용공연의상에 대해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류하여 저장할 수 있는 디지털 뮤지엄 형식의 아카이빙을 구축함으로써 무용공연의상에 대한 인물이나 작품주제를 파악하고, 또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 것이다. 먼저 이론적 배경으로 디지털 뮤지엄 아카이빙이 무엇인지를 서술하고, 연구내용으로 디지털 뮤지엄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 지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계해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아카이빙의 역할이나 효용성에 대해 가치를 논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아카이브란 텍스트 문서로 국한되어 있던 자료의 전반, 또는 자료의 저장 공간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용어로 컴퓨터라는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전시통합모델을 말한다. 따라서 무용공연작품의상을 디지털 뮤지엄으로 만든다면 무용공연작품의상이라는 웹상의 가상공간에 하우스를 만들고, 그 뮤지엄으로 들어가면 다시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로 카테고리 창을 구분하였다. 대분류에서는 무용공연작품의 장르를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로 구분하고, 중분류에서는 안무가, 의상디자이너를 구분하여 들어갈 수 있게 하였으며, 소분류에서는 안무가나 의상디자이너의 기타자료인 신문, 방송 인터뷰, 공연사진, 프로그램 등을 보는 것으로 아카이빙 해 보았다. 이러한 디지털 뮤지엄의 가치로는 공간활용의 가치, 창작의 가치, 역사 문화적 가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으로 활용 가치, 디지털 뮤지엄 콘텐츠의 제공 및 이해의 가치, 쌍방 소통의 가치, 그리고 새로운 전시형태 프로그램 개발의 가치를 지닌다.

아베 미츠이에(阿部充家)의 한(韓)·일(日) 불교(佛敎) 관련(關聯) 활동(活動) -신자료(新資料) 「중앙학림학생제군(中央學林學生諸君)」 (1915), 「조선불교(朝鮮佛敎)の금석(今昔)」(1918)의 공개(公開)와 더불어- (ABE MITUIE's Movements in Korean and Japanese Buddism)

  • 沈元燮
    • 한일민족문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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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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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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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This article introduces Abe Mituie's activities related to Korean and Japanese Buddhism and two newly discovered materials. He worked as a brain of Japanese cultural rule over Joseon Korea while holding various positions such as the president of KyeongSung Il Bo, the vice president of Kokmin Newspaper and the director of Central Joseon Association. Abe was responsible for Enkak Temple, the head temple of Japanese Rinzai section, and was one of the layman followers of Syak Soen who worked for the spread of modern Japanese Buddhism to Europe and America. He was a respectful Buddhist layman so as to teach Zen Buddhism for young Buddhist monks in Japan. After he started to assume charge in the Kyeong Sung Il Bo, he was also very active in movements in relation to Joseon Buddhism to the extent that he was found to be deeply involved in Joseon Buddhism sections. On the other hand, he concluded Joseon culture to be 'devastated.' He asserted that it was necessary to develop spiritual culture and revive Buddhism in order to resolve the devastation in the Joseon. In addition, he thought that Joseon Buddhism was ruined due to the misgovernment of the Joseon Dynasty, but had its own as great tradition as Japanese Buddhism. Therefore, in his opinion, there was a need to do research on Joseon Buddhism and find some way out of the contemporary difficulties. In order to save the situation, he made efforts to protect and revive Joseon Buddhism while paying continuous visits to Joseon Buddhist temples, supporting the publication of Buddhist canons and proposing to have a regular meeting of 'The Invitation of 30 Head Temples.' From his visit to Youngju Temple and his consistent relationship with Kang Daeryeon, it can be assumed that he was involved in reorganizing power structure in Joseon Buddhism and establishing various institutions. He emphasized the strict adherence of individuals and communities to rules in his lecture for students at Jung Ang Hak Rim. It was a way to revive Joseon Buddhism by creating a new social image of Joseon Buddhism. He continued to work for the restoration of Joseon Buddhism even after he retired from Kyeong Sung Il Bo and returned to Japan. He introduced the originality of Joseon Buddhism history to Japan and sent Japanese monks to Korea in order to do research and contribute to exchange between Korean and Japanese Buddhism. All things taken together, it is evident that Abe Mitzihe regarded Joseon as backward or stagnant from a perspective of evolutionist or orientalist, and was a Japanese elite to believe that it was just for Japan to control Korea. However, he was different from other Japanese elites in that he did not considered Joseon Buddhism merely as the object of propagation. He thought that Joseon Buddhism possessed its own great tradition and culture, but was ruined because of the misadministration of the Joseon Royal House. Therefore, in his opinion, Joseon Buddhism should be recovered by means of some supports, and its revival would lead to the restoration of Joseon culture as a whole, which would be realized by Japanese rule over Korea and Japanese elites' generous assistance.

기념 뮤지컬과 독립운동의 기억 -<신흥무관학교>, <구>, <워치>를 중심으로 (Musicals and Memories of the March 1 Independence Movement - Centered on the musical Shingheung Military School, Ku: Songs of the Goblin, Watch)

  • 정명문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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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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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9-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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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에는 기억 주체와 당대의 권력 관계 즉 기억의 정치학이 반영된다. 본고는 2019년에 공연된 기념 뮤지컬 <신흥무관학교>, <구: 도깨비들의 노래>, <워치>를 통해 변화된 지점들을 분석하였다. 위 작품들은 만주 독립운동, 홍코우 공원의거를 배경으로 하되 기록되지 않은 것을 채우면서 독립 운동에서 기념해야 할 것들을 조정하였다. <신흥무관학교>의 경우, 공식 기록 속 인물을 배경으로 하되 이름 없는 이들을 전면에 내세워 기념 대상을 확대하였다. <구 : 도깨비들의 노래>는 타임 슬립을 통해 망각된 대상을 재현하고 사죄하면서 기억을 수정한다. <워치>는 사진, 뉴스 릴, 신문기사 등 다큐멘터리 기법을 통해 팩션의 스펙터클을 강화하였지만, 기록에 한정되는 한계도 드러난다.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뮤지컬에서는 '민중의 움직임'이 현재와 연결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들이 발견된다. 이를 위해 공식적 기록에 새로 생산된 가치와 기억을 반영하였고, 군중의 일상과 감정에 공을 쏟았다. 또한 실증적 고찰과 호명하기를 동시에 활용하여 신뢰성을 높였다. "100주년 기념"으로 호출된 뮤지컬에서는 독립운동가와 함께 움직인 군중의 일상과 감정 즉 미시문화사적 접근이 담겨 있다. 기념해야 할 목표와 목적의 이동이 나타난 것이다. 이 시도들은 동시대적 공감대 형성이란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전적지 공원으로서 서울 보라매공원의 변화와 의미 (A Study on Changes and Meanings of Seoul Boramae Park as a Park Created in Relocated Sites)

  • 서영애;박희성;길지혜;김정화;이상민;최혜영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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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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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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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서울 보라매공원은 1985년 공군사관학교가 청주시로 이전한 후 1986년 5월 5일에 개원하였다. 공군사관학교 이전적지에서 출발한 서울 보라매공원의 태동과 변화를 조망하고 공원의 가치를 진단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서울시 공공기록물을 중심으로 정책 보고서와 신문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전적지 공원으로서 서울 보라매공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울 보라매공원은 이전적지 공원 정책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조성된 대규모 이전적지 공원으로 분류된다. 둘째, 서울 보라매공원은 다방면에서 공군사관학교의 기억과 흔적이 중첩하여 운영한 공원이라는 점에서 공원사적 가치를 가진다. 셋째, 이전적지 공원을 도시계획적으로 활용하여 공공적 가치를 도모함으로써 지역의 변화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선도적이다. 서울 보라매공원은 도심에 대규모 공원녹지 면적을 확보한 전례 없는 사례이자 이전적지 공원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국 조경사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미술품 거래 빅데이터를 이용한 작가 분석 시스템 구현 (Art transaction using big data Artist analysis system implementation)

  • 이승경;임종태
    • 서비스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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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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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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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으로 최근 5년간 매년 21.9%씩 증가하는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미술품 유통 플랫폼은 화랑과 오프라인 경매 방식, 그리고 온라인 경매로 다양해지고 있다. 미술시장은 작품의 제작(창작), 유통(무역), 소비(매수) 등 3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제적 가치는 물론 예술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투자 수단으로써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작품을 재테크 수단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는 작품의 객관적 정보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지만, 예술시장 유통 분야의 정보 제공이 폐쇄적이고 불균형해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통계를 수집·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본 연구는 예술시장 유통 분야에 대한 빅데이터 수집과 정형·비구조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미술품 유통 현황을 파악한다. 이를 통해 현재 시장에서 저자의 분석을 객관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미술품 유통 사이트에서 저자 정보를 수집하고 일간지 매일경제에서 저자의 기사를 수집·분석해 작가별 연관 단어의 빈도를 산출했다. 이를 통해 본 연구에서는 소비자에게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내용분석을 통한 언론의 비브리오 보도사례 분석 (Content Analysis on the News Report Cases of Vibrio)

  • 우하중;김영규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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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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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2-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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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본 연구는 2000에서 2004년까지 5년 동안 방송 3사와 신문 3사에서 비브리오에 관한 보도기사를 내용분석 하여 언론의 비브리오 관련 보도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자 하였다. 기존 비브리오에 관련된 연구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균의 특성이나 방지 시스템 또는 예방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므로 비브리오에 관한 언론의 보도를 좀 더 객관적ㆍ체계적으로 조명하고 이러한 보도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방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본 연구의 주요 분석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비브리오 관련보도기사는 방송이 신문보다 많았고, 여름철 5월에서 9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보도되었다. 기사유형은 뉴스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지면은 사회면이 가장 많았다. 대부분의 기사는 40줄 이하로 짧았고, 전체기사 중에 23.6%는 유사보도였다. 유사보도를 긍정적인 면에서 해석을 한다면 비브리오에 국한된 보도 보다는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은 정보를 전해 준다고 볼 수 있다. 기사제목에 비브리오라는 단어가 대부분 포함 되어 있고 주의보 발령, 감염자 입원치료, 감염자 사망 등을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반면에 퇴치노력이나 예방조치 사항은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비브리오는 혐오스러운 전염병으로 인식이 되어 외식업에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용의 강도에서는 저강도와 고강도가 비슷했고, 방향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이었다. 정보원은 지자체 보건당국, 국립보건원과 감염자의 진료병원 등의 비중이 컸다. 보도의 중심은 상대적으로 생산과 유통 및 외식관련업계의 입장을 고려하는 보도기사가 미흡했다. 기사의 표현방식은 사실적이고, 자극적인 기사가 많았고, 전문적이고, 분석적이며, 심층적인 기사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기사의 성격은 사실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에 기획이나 분석기사는 적었다. 감염자의 연령은 40대에서 60세 사이의 중장년층이 가장 많았고, 감염자의 성별은 남녀가 비슷했다. 그러나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기사의 비중이 많았다. 매체별 기사의 특성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매체별 기사강도는 전반적으로 방송보도가 신문기사 보다 고강도로 나타났으며, 기사의 방향에 있어서도 방송이 신문보다 부정적인 면이 높게 분석되었다. 매체별 기사의 중심은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방송보다 신문이 높게 나타났으며,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방송이 신문보다 훨씬 높았다. 방송과 신문 모두 지자체 보건당국과 국립보건원, 감염자를 진료한 병원에서 정보를 얻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기사의 표현방식은 방송이 신문보다 더 자극적이고 혐오적인 표현이 많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기사의 성격에서는 신문과 방송 모두 사실기사가 91.5%로서 대부분을 차지했다. 유사보도에 있어서는 방송이 23.0%이고, 신문은 77.0%로서 신문이 훨씬 많았다. 유사보도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보다 폭넓은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면이 있고, 방송보다는 신문이 더 많이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뇌파, 시선추적 및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한 디지털 도서관 인터페이스 연구: 암묵적 적합성 피드백 활용을 중심으로 (Digital Library Interface Research Based on EEG, Eye-Tracking, and Artificial Intelligence Technologies: Focusing on the Utilization of Implicit Relevance Feedback)

  • 김현희;김용호
    • 정보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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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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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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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본 연구는 디지털 도서관의 콘텐츠를 탐색하는 동안 이용자의 암묵적 적합성 피드백을 활용하여 적합성을 판단하기 위해 뇌파 기반 및 시선추적 기반 방법들을 제안하고 평가해 보았다. 이를 위해서 32명을 대상으로 하여 동영상, 이미지, 텍스트 데이터를 활용하여 뇌파/시선추적 실험들을 수행하였다. 제안된 방법들의 유용성을 평가하기 위해서,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 방법들을 경쟁 기준으로 사용하였다. 평가 결과, 주제에 적합한 동영상과 이미지(얼굴/감정)를 선택하는 데에는 뇌파 컴포넌트 기반 방법들(av_P600, f_P3b)이 높은 분류 정확도를 나타냈고, 이미지(객체)와 텍스트(신문 기사)를 선택하는 데에는 인공지능 기반 방법 즉, 객체 인식 기반 방법과 자연언어 처리 방법이 각각 높은 분류 정확도를 나타냈다. 끝으로, 뇌파, 시선추적 및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한 디지털 도서관 인터페이스를 구현하기 위한 지침 즉, 암묵적 적합성 피드백에 기반한 시스템 모형을 제안하고, 분류 정확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미디어별로 적합한 뇌파 기반, 시선추적 기반 및 인공지능 기반 방법들을 제시하였다.

농업경영체의 온라인 직거래 마케팅 수용에 관한 실증적 연구 (An Empirical Study on the Adoption of Online Direct Marketing in Agricultural Firms)

  • 윤철호;박창희
    • 경영정보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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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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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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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농업경영체에서 온라인 직거래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제시하고 이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1989년 Davis가 제시한 개인의 기술수용모형(TAM)과 조직에서의 정보기술 수용모형들을 근간으로 1) 기술특성 차원의 지각된 유용성과 지각된 사용용이성, 2) 경영자 특성 차원의 경영자 혁신성과 경영자 IT 역량, 3) 조직 준비성 차원의 재정적 능력, 기술적 역량, 인적자원 역량, 그리고 4) 환경 및 외부압력 차원의 정부의 지원 및 인터넷 환경변화가 농업경영체의 온라인 직거래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연구모형을 제시하고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다. 총 209부의 유효한 자료가 설문조사를 통하여 수집되었고, 이를 구조방정식모델링을 이용한 확인적 요인분석과 경로분석을 실시하여 연구모형을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기술특성 차원의 지각된 유용성, 경영자 특성 차원의 경영자 IT 역량, 그리고 환경 및 외부압력 차원의 인터넷 환경변화가 농업경영체의 온라인 직거래 수용의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각된 사용용이성, 경영자 혁신성, 정부의 지원과 조직 준비성 차원의 변수들은 온라인 직거래 수용의도에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에서는 결과들을 바탕으로 농업경영체의 온라인 직거래 마케팅 수용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제시하였다.

서울대도시권역의 설정과 지역구조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and regional strunture of Seoul metropolitan region)

  • 이희연;송종홍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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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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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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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
  • 본 논문은 지속적인 서울시의 성장이 그 주변지역의 성장을 수반하면서 서울대도시 권화되어가는 과정을 밝히고 서울대도시권역을 설정한 후, 서울대도시권역 내에서 기능적 특성에 따라 지역을 분류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1990년 시점에서의 서울대도시권역의 경계가 어느 정도 확대되었는가를 측정하기 위하여 도시화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와 서울과 의 기능적 연계성을 측정하는 지표를 토대로 하여 그 권역을 설정하였다. 그 결과 서울대도 시권역은 수도권의 거의 전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서울대도시권역에 포함된 지역들은 서울이 갖고 있는 기능을 일부 분담하면서 기능적인 면에서 특화되거나 전 문화되어 기능적 특성에 따라서 신종주거기능 탁월지역, 제조업기능 탁월지역, 서비스기능 탁월지역, 잠재적 개발가능지역의 4개 그룹으로 지역을 분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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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의 일본에서의 작품 활동 연구 : 1930~40년대 삽화를 중심으로 (A Study on Kim, Yong-Hwan's Works of Art in Japan: Focusing on the Illustrations between 1930s and 1940s)

  • 김소원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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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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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7-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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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김용환은 1940~60년대에 활동한 한국의 주요 만화가의 한명이다. 김용환은 어린이 만화에서 시사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그렸다. 뿐만 아니라 김용환은 해방 후 한국의 만화잡지와 만화신문의 발행을 주도 했고 한국만화의 선구자로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김용환은 만화뿐만 아니라 잡지와 신문, 소설의 삽화, 동양화, 역사화, 캐리커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미술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던 것이 계기가 되어 김용환은 일본에서 기타 코우지(북굉이(北宏二)) 라는 이름의 삽화가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 김용환은 일본의 유명 출판사의 잡지와 소설의 삽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나 국내에는 김용환의 일본 활동에 대한 간단한 이력과 몇 장의 삽화만이 소개 되어 있을뿐 구체적인 작품이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본 논문에서는 그동안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던 김용환의 일본 활동과 작품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한다. 김용환이 삽화가 기타 코우지로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잡지에 어떠한 작품들을 실었는지, 그리고 삽화가로서 기타 코우지의 평가에 대해서도 서술해 보겠다. 본 논문은 일본의 국회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기타 코우지의 이름으로 남겨진 잡지와 단행본의 삽화들에 대해 고찰 했다. 본 연구를 통해 김용환은 일본에서 다양한 출판사와 잡지에서 활발하게 활동 했으며 김용환이 삽화를 그린 많은 잡지들이 유명 출판사에서 간행된 인기 잡지였던 점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김용환이 일본에서도 그 실력을 크게 인정받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김용환의 삽화 상당수가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에 그려졌다. 이 시기는 일본이 국가 총동원법을 내세워 전쟁을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결 시키던 시기로 출판물도 엄격한 검열을 받았다. 이 시기 출판물의 대부분은 군국주의를 옹호하고 전쟁을 미화하는 내용이었고 김용환의 삽화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김용환의 일본 활동에 있어 큰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김용환의 일본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의 발굴이라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향후 김용환의 작품에 대한 평가와 김용환의 다양한 이력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