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mythological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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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의 자연재해 분석-신화적 사상을 중심으로 (Analysis of Natural Disasters in the Ancient Korea-Focusing on the Mythological Thoughts)

  • 강철성
    • 한국지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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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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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3-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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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에서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천재지변 중 자연재해 기록만을 발췌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 본기를 중심으로 그 내용을 분석하였다. 삼국의 자연재해 기록을 보면, 가뭄은 총 79회, 홍수는 33회, 우박은 24회, 메뚜기의 피해는 23회, 지진은 48회, 산사태는 9회, 대풍발목(大風拔木) 현상은 19회, 용사얼(龍蛇孼)현상은 24회가 발생하였다. 당시의 자연재해 원인으로는 군주가 종묘를 소홀히 하고 제사를 폐하며, 가혹한 정치와 지나친 토목공사 등 하늘에 반하는 정책을 시행할 때 나타나는 재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재해 대처방법으로 왕이 피정전(避政殿), 책기(責己), 감상선(感常善) 등으로 백성에 대해 책임을 느꼈으며, 뿐만 아니라 죄인을 풀어주고, 대사면을 행하였다. 이와 같이 자연재해에 대한 선정(善政) 정책은 군주의 덕치이며, 이로서 천견(天譴)에 보답하려는 것이 당시의 신화적 사상의 근본이 된다고 사료된다.

유가 사상과 신화적 사유의 상호 관계성 연구 - 성인 관념을 중심으로 - (Sagehood - An Interconnectivity of Confucianism and Mythology)

  • 김종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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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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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5-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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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는 유가 사상이 신화적 사유와의 상호 관계성 속에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고찰한다. 특히 원시 사유체계 및 신화적 사고와 연관성에 주목하여 유가의 이상적 인격체인 성인의 형성도 그 원류가 신화적 사유와 상호 관계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신화적 사유 속에서의 성의 의미를 검토하고, 이것이 유가의 성인으로 전환되는 의미 변화를 검토하였다. 고대 인류에서 부족장은 신들과 교류하여 종교적으로는 인간과 신들을 매개하여 신들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함과 동시에 인간의 염원도 신에게 전달하는 이중적이며 중간자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신을 대신하여 정치와 종교, 교육을 총 망라하여 수행하는 제정일치의 통치자는 점차 종교와 현세적 정치권력이 이원화되는데, 현세적 권능 대신 도덕적 정당성을 통한 권위를 부여받은 새로운 인격체가 유가의 성인이다. 유가에서는 공자에서부터 맹자, 순자에 이르기까지 현세에서 이룰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이상적 도덕군자에서 시작하여 누구나 노력에 의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상으로까지 규정한다. 따라서 초기 유가의 성인 개념은 상대적으로 신화적 성인의 이상적인 권위에 주안점을 두어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초절대적인 완성된 인간으로 상정되었다면, 이후의 유가에서는 점차 도덕적인 수양을 통해 누구나 다다를 수 있는 존재로 상정된다. 한편 문명을 전수하고 인간을 계도하는 역할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현세의 권위와 결합하여 도덕적 성인의 권위까지 부여한 새로운 존재자로 재탄생한다. 이상과 같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의 성인이라는 매개를 통해 유가 사상과 신화적 사유가 상호 관계성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의 신화적 분석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Mythological Analysis of Animation)

  • 김지홍
    • 한국콘텐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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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콘텐츠학회 2005년도 춘계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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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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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신화의 구조를 분석해 보면 애니메이션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이 언급하였듯이 신화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애니메이션과 신화의 연구는 관심 있는 분야가 되었지만 대부분 애니메이션의 내러티브 분석을 통한 단편적 관점의 연구가 수행되었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포괄적 관점에서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는 행위를 신화의 제의와 관련시키고 일정 형식을 통하여 의식 상태에서 무의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제의의 빈도는 빈번한 경험을 통해 과거로 여행하는 시간을 단축하고 거리감을 좁혀 집단 무의식상태로 손쉽게 접근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신화는 상상력의 산물이자 또 다른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므로 신화적 상상력은 이성적 합리성에는 반하지만 예술작품의 창작에 있어 중요한 질료이다. 이러한 세 가지 주제를 통한 연구는 새로운 연구방법을 제시하며 애니메이션과 신화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도출된 결과는 종교적 집회나 영화와 공연 관람, 스포츠 관전 등의 다양한 매체에 적용하여 연구의 범위를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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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1966년 중국 애니메이션에 나타난 '문이재도' 문예관의 특징 (The feature of the 'Mun-yi-jae-do' artistic attitude in Chinese Animation from 1949 to 1966)

  • 리우단야;이동훈
    •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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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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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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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1949-66년, 신중국 성립 후, 새로운 정권의 기반을 다지고, 국가적 이미지를 수립하기 위해 "무산계급 혁명교육" 은 새로운 시대 속 문예창작의 주요 노선이 되었다. 이 시기 중국 애니메이션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교육을 강조하면서 그 주요한 내용들이 소련의 문예사상과 창작방식에 대한 교조적 수용의 결과라는 오해를 낳게 된다. 정치적 특징을 강하게 드러내는 이 시기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한편 창작자들의 주체적 수용과 중국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문화적 자각이 계속 작동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이 시기 애니메이션의 소재, 서사, 캐릭터 등이 중국의 '문이재도' 문예관의 사상적 특징과 전통적 표현방식을 계승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알수 있다. 따라서 소련 '교조주의'와는 구별되는 독자적 창작 스타일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할수 있다. "혁명 영웅 캐릭터", "혁명 사상의 신화적 표현", "독특한 나레이터 서술 방식" 이라는 1949-1966년 사이의 중국 애니메이션의 특징점은 곧 '문이재도'(文以?道) 문예관이 성립된 후 전통 예술창작의 중요한 표현수단이었던 '영웅 캐릭터', '신화 이야기', '설서 예술' 의 사상적 계승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东亚古代文化中的阴阳理论之嬗变 (The development of the theory of yin and yang in the ancient East Asian culture)

  • 刘萍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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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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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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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When people discuss the continental cultural elements in the ancient East Asian culture, people always attach great importance to the two major cultures of Confucianism and Taoism, but offer little explanation to the significant influence of the theory of yin and yang, the important philosophical base of the two major cultures. The theory of yin and yang, existing as the theoretical source at a profounder level, possesses philosophical connotations that are always embedded into the mainstream of thought, religions and customs, displaying its unique glamour in its unique way. Its influence is more than that, however. It has exerted far-reaching influence on and is of significant importance to the development of the ancient culture of East Asia. This article aims at exploring this field of study. After the erudite scholar of The Five Classics made a voyage to the east in the early sixth century, The Book of Changes, the most important Chinese ancient classic expounding the theory of yin and yang, started to circulate among the Japanese court, via Baiji in the Korea Peninsula. As a result, the theory of yin and yang found its way to Japan. Examining the spreading channels, we learn that the theory's dissemination was largely related to the activities of Buddhist monks. Shoutoku Prince, regent of Japan at the time, was himself an enthusiastic supporter of Buddhism and was excelled in the study of The Book of Changes and the theory of yin and yang. In the Twelve Ranks System and Seventeen-article Constitution promulgated by Shoutoku Prince, the influence of the theory of yin and yang and of the theory of the five elements can be visibly discerned. This obviously proves the sublime status of the Chinese theory of yin and yang in Japan, thanks to the victory of the political clique that adored Buddhism. In the shaping course of ancient Japanese culture, the theory of yin and yang served as an important philosophical source of its development. Mythology based on Kojiki and Nihon Shoki, two earliest Japanese books that exist today, record mythological stories about the emergence of the Japanese nation. The notion about the birth of heaven and earth and the forming of Japanese Shinto, expressed in the mythological stories, not only tell us the source and historical progress of the Japanese nation but also the nation's world outlook in the transition from barbarian period to civilized period, as well as the basis for its philosophical thinking. All these were marked with profound influence of the Chinese theory of yin and yang. The theory of yin and yang, as one of the ancient Chinese academic thoughts, was accepted asa political belief when it first spread to Japan. The emergence and establishment of both the Mikado system and the centralized regime in ancient Japan drew largely on the theory of yin and yang and adopted it as an important philosophical basis to deify and aggrandize the "imperial power" so as to protect the authority of the imperial ruling and consolidate the established regime. Following the continuous strengthening and expansion of the centralized state power, the theory of yin and yang was further employed, and gradually "hidden" in Japanese culture with the passage of time, finally becoming the edge tool of ancient Japanese Mikados in exercising political power and controlling the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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