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mo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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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가 사용한 명호 세 용정의 비교 분석 (Comparative Analysis of Three Dragon-man Nicknames Used by Kim Junghee)

  • 최준호
    • 융합정보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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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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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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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전후 쓴 명호 세 용정의 용도, 의미, 서법 등을 분석하여 그의 서법의 우수성을 제시했다. 세 용정의 기본구조를 바탕으로, 시대 정황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가 연구되었다. 그 변화 과정을 통해 다른 작품과의 예술공학적 차이가 비교 분석되었다. 김정희는 의도적으로 '용(龍)'이 들어가는 명호를 쓰며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갔다. 그는 주변 상황에 따라 명호 세 용정의 의미, 용도, 서체를 다르게 썼다. 결국, 김정희는 자신의 심정과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임금 헌종과 스님 초의에게 세 용정을 사용했다. 그의 필법은 예술공학적으로 뛰어났고 세계 유일무이했다. 모두 그의 금석학의 식견이 뒷받침되었음이 밝혀졌다. 본 연구 결과가 일반 예술가의 명호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는 데 새로운 연구방법론이 되길 기원한다.

『해린척소(海隣尺素)』 발신자(發信者) 61인(人) 인물(人物) 탐색(探索) (An Examination into the 61 Senders of Letters Contained in 『Haerincheokso(海隣尺素)』)

  • 정후수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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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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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47-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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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해린척소(海隣尺素)"는 1830년부터 1865년 공헌경(孔憲庚)이 이상적(李尙迪)에게 보내온 마지막 편지(便紙)까지 모두 61명 279통의 편지를 모은 편지 모음첩이다. 본고는 "해린척소(海隣尺素)" 발신자 61명에 대한 인적사항을 중심으로 그들 개개인의 이력과 활동모습을 정리하였다. 첫째, 이상적과 특별한 교유 관계를 가진 사실이 발견되었다. 예컨대 이상적의 시문집인 "은송당집(恩誦堂集)" 출판을 대행해준 인물도 있었다. 둘째, 그들은 강소성(江蘇省), 산서성(山西省), 절강성(浙江省) 출신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강소성(江蘇省) 중에서도 특히 소주(蘇州)와 양호(陽湖) 지역(地域) 인사(人士)가 가장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셋째, 밝혀진 인물만 대상으로 삼았을 때, 이상적이 교유한 인물들의 50% 이상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인 진사(進士)와 거인(擧人)이었다. 넷째, 그들 중 승려(僧侶) 1인과 인삼(人蔘)가게로 추측되는 1인을 제외하면, 모두가 당대 연경 지역에서 상당한 문화 활동을 하고 있었던 문화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정보를 토대로 "해린척소"를 읽는다면 다소 오독(誤讀)의 실수를 감소시키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 19세기 한중(韓中) 문명(文明) 교류(交流)의 실태(實態)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약간의 자료를 제공해준다고 하겠다.

사찰 '찰(刹)'의 어원 규명과 불교계 통용 오류 검증 (Investigation of Etymology of a Word 'Chal(刹)' from Temple and Verification of Fallacy, Circulated in the Buddhist Community)

  • 이희봉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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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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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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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Due to a mistranslation of Sanskrit to Chinese, East Asian Buddhist community misunderstands the original meaning of the fundamental word, 'sachal(寺刹)'. Sanskrit chattra, a parasol on top of a venerated Indian stupa buried with Buddha's sarira, became the symbol of majesty. The Indian stupa was transformed into a pagoda in China, and the highlighted parasol on the summit was transliterated into chaldara(刹多羅), an abbreviation for chal (刹), and finally designated the whole pagoda(塔). Sachal consists with lying low monastery and high-rise pagoda. Tapsa(塔寺), an archaic word of temple, is exactly the same as sachal, because chal means tap, pagoda. However, during the 7th century a Buddhist monk erroneously double-transliterated the Sanskrit 'kshetra,' meaning of land, into the same word as chal, even despite phonetic disaccord. Thereafter, sutra translators followed and copied the error for long centuries. It was the Japanese pioneer scholars that worsen the situation 100 years ago, to publish Sanskrit dictionaries with the errors insisting on phonetic transliteration, though pronunciation of 'kshe-' which is quite different from 'cha-.' Thereafter, upcoming scholars followed their fallacy without any verification. Fallacy of chal, meaning of land, dominates Buddhist community broadly, falling into conviction of collective fixed dogma in East Asia up to now. In the Buddhist community, it is the most important matter to recognize that the same language has become to refer completely different objects due to translation errors. As a research method, searching for corresponding Sanskrit words in translated sutras and dictionaries of Buddhism is predominant. Then, after analyzing the authenticity, the fallacy toward the truth will be corrected.

큰글자책 제작 및 보급 현황과 서지적 특성 분석 - 2009년부터 2022년까지를 중심으로 - (Analysis of the Production and Distribution Status and Bibliographic Characteristics of Large Print Books from 2009 to 2022)

  • 임성관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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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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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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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연구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큰글자책 보급 지원 사업에 보조 사업자로 참여하고 있는 한국도서관협회가 제작 및 보급하고 있는 큰글자책의 현황과 서지적 특성을 분석하는데 목적이 있다. 연구 목적 달성을 위해 2009년부터 2022년까지의 제작도서 목록을 분석한 결과 평균 종수는 20.5권이고 책수는 21.7권이었다. 선정된 도서의 주제 분야는 '문학(39.5%)'이 가장 많았고, 번역서의 비중은 19.9%였으며, 가장 많은 책이 선정된 저자는 총 6권의 법륜 스님이었다. 또한 큰글자책이 보급된 공공도서관은 매년 평균 454곳이었는데, 향후 이 사업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면서 더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적 측면, 선정의 측면, 제작을 위한 측면, 안내의 측면에서 각각 적정 방안을 모색해 제언하였다.

Phase Behavior of the Ternary NaCl-PuCl3-Pu Molten Salt

  • Toni Karlsson;Cynthia Adkins;Ruchi Gakhar;James Newman;Steven Monk;Stephen Warmann
    • 방사성폐기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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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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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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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There is a gap in our understanding of the behavior of fused and molten fuel salts containing unavoidable contamination, such as those due to fabrication, handling, or storage. Therefore, this work used calorimetry to investigate the change in liquidus temperature of PuCl3, having an unknown purity and that had been in storage for several decades. Further research was performed by additions of NaCl, making several compositions within the binary system, and summarizing the resulting changes, if any, to the phase diagram. The melting temperature of the PuCl3 was determined to be 746.5℃, approximately 20℃ lower than literature reported values, most likely due to an excess of Pu metal in the PuCl3 either due to the presence of metallic plutonium remaining from incomplete chlorination or due to the solubility of Pu in PuCl3. From the melting temperature, it was determined that the PuCl3 contained between 5.9 to 6.2mol% Pu metal. Analysis of the NaCl-PuCl3 samples showed that using the Pu rich PuCl3 resulted in significant changes to the NaCl-PuCl3 phase diagram. Most notably an unreported phase transition occurring at approximately 406℃ and a new eutectic composition of 52.7mol% NaCl-38.7mol% PuCl3-2.5mol% Pu which melted at 449.3℃. Additionally, an increase in the liquidus temperatures was seen for NaCl rich compositions while lower liquidus temperatures were seen for PuCl3 rich compositions. It can therefore be concluded that changes will occur in the NaCl-PuCl3 binary system when using PuCl3 with excess Pu metal. However, melting temperature analysis can provide valuable insight into the composition of the PuCl3 and therefore the NaCl-PuCl3 system.

웰빙 차원에서 역기능적 종교성에 관한 질적 탐구 (The Qualitative Exploration of Dysfunctional Religiosity for Well-being)

  • 서경현
    • 한국심리학회지 : 문화 및 사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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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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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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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연구는 웰빙 차원에서 역기능적인 종교성을 질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질적 분석을 위한 대상자는 종교인(성직자) 6명과 신앙인 6명이었다. 종교인의 경우 개신교 목회자 3명, 불교 종교인 2명, 원불교 종교인 1명이었고, 신앙인의 경우는 개신교 신앙인 2명, 천주교 신앙인 2인, 불교 신앙인 2인이었다. 종교인 6명 중에 한 명이 여성(불교)이었으며, 신앙인 6명 중에는 3명이 여성이었다. 본 연구에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이야기식 인터뷰 방식과 Giorgi가 제시한 현상학적 분석방법을 이용하였다. 참여자들의 진술을 분석한 결과 22개의 주제가 도출되었고, 그 주제를 바탕으로 중심의미를 파악한 결과 9개로 구분할 수 있었다. 중심의미로는 보상추구적 종교성, 권력지향적 종교성, 이기적 종교성, 맹목적 종교성, 비사회적 종교성, 비실천적 종교성, 무체험적 종교성, 정서문제성 종교성 및 인지문제성 종교성이 도출되었다. 도출된 주제와 중심의미를 바탕으로 척도개발과 같은 추후 연구와 신앙인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전략을 논의하고 제언하였다.

새로운 불교학 연구의 지평을 위하여

  • 조성택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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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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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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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Contemporary Buddhist scholarship in Korea has been strongly affected by its origins in the Victorian era, when Western religious scholars sought to rationalize and historicize the study of religion. Modern Korean scholars, trained within the Western scholarly paradigm, share this prejudice which tends toward the rational. The result is a skewed understanding of Buddhism, emphasizing its philosophical and theoretical aspects at the expense of seemingly "irrational" religious elements based on the direct experience of meditation practice. This paper seeks to look at the historical context in which modern Korean Buddhist scholarship had been shaped during the colonial period of Japan. Two case studies will be examined particularly in the light of post-colonial perspectives of Buddhist studies: the case of Jonghong Bak(1903-1976) and the case of Donghwa Gim(1902-1980), two pioneering scholars in the field of Buddhist studies. They share similarities as well as differences. Both were born and active at almost the same period, during which Korean peninsula experienced modernization forced upon by Japanese colonialism. And thus, the experience of colonialism and modernization brought them into conflict between tradition and modernity. Their responses, however, were different. Pak, originally trained in Western philosophy, especially German philosophy, wanted to study Korean Buddhism in the context of the so-called Korean Philosophy per se. He was motivated to seek for the national and cultural identity of Korea. And thus his scholarship on Korean Buddhism naturally led him to look for an original Korean Buddhism distinct from the Buddhism of India, China and Japan. On the other hand, Gim, who became a monk in his youth, later went to Japan for college where he was exposed to modern Buddhist scholarship. He was the first to introduce modern Buddhist scholarship to Korea, and since then, contemporary Korean Buddhist scholarship owes much to his contributions. Despite his contributions to contemporary Korean Buddhist scholarship, if we look at his efforts in the light of post-colonial perspective, his ideas need to be reevalu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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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화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 연구 (A Study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Rock-Carved Seated Avalokiteśvara Statue at Ganghwa Bomunsa Temple)

  • 이주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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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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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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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강화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은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에 조성된 거대한 규모의 마애불상으로 한국 근대 불교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년명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근대 불교 조각에 대한 연구 부진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본고에서는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이 근대기 불상으로서 갖는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기 위해 마애불 주변에 있는 명문을 판독하여 조성 연대와 제작자 및 후원자를 확인하였으며, 바위의 형태와 지형이 불상의 조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제작자와 참배객의 시점(視點)을 비교 분석하였다. 또한 제작자 후손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불상 조성 당시의 구체적 정황을 파악해 보았다.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의 제작에는 금강산 승려 이화응(李華應)이 화주(化主)겸 화사(畫師)를 맡았고, 불상 조성이 시작되는 1928년에는 100여 명이 넘는 시주자가 공동으로 후원하였으며, 1937년 참배공간을 확장할 때는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이 단독 후원하였다. 이 마애불 조성을 계기로 강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관음 도량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불상의 제작 기간은 약 3개월이 소요되었으며 초(草)는 화주를 맡았던 이화응이 그리고 조각은 운송학(雲松學) 등 다섯 명의 강화 지역 석수가 참여하였는데, 화승이 그린 초를 바탕으로 조각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마애불 곳곳에서 선묘적 기법이 발견된다. 화사로서 이화응의 면모가 밝혀짐에 따라 석옹철유(石翁喆有)-화응형진(華應亨眞)-일옹혜각(一翁慧覺)으로 이어지는 화맥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은 보관을 쓰고 정병을 든 전형적인 관음보살로 방형의 큰 얼굴에 목이 짧고 전체적으로 투박하여 경직된 인상을 준다. 제작자는 높이 10m에 40°가량 기울어져 있는 바위에 마애불을 왜곡 없이 보이기 위해 최대한 동작을 절제하고 대칭성을 강조하여 세부 표현을 생략하였고, 머리와 신체 비례는 1:1에 가깝게 조정하여 시각적 왜곡 문제를 해결하였다. 특히, 본고에서는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처럼 별도의 불단을 만들지 않는 '불상과 불단의 일체화'된 형식을 근대기 불교 조각의 특징으로 상정하였다. 그 외에 광배에 새겨진 6글자의 범자(梵字)를 그동안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으로 해석했으나,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과 사방진언(四方眞言)이 조합된 것임을 새롭게 밝혔다. 아울러 처마 바위에 박혀 있는 3개의 쇠고리는 제작 과정에서 다림추를 달아 초를 그릴 때 기준점으로 활용하였고, 이후에는 고리에 풍탁을 달아 보살상을 장엄하는 용도로 사용한 것을 확인하였다.

『삼국유사』를 통해 본 분황사(芬皇寺)의 중대신라 불교미술 (Mid-Silla Buddhist Art of Bunhwangsa Temple Seen through the Record of Samgukyusa)

  • 최성은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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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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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6-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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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고에서는 선덕여왕대에 창건되어 신라 왕실불교의 중심사찰이었던 분황사에 봉안되었던 중대신라기 불교조각과 벽화의 성격을 "삼국유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유추해 보았다. "삼국유사"에는 분황사 관련하여 원효의 소조초상조각, 좌전 북벽의 천수대비상 벽화, 금동약사여래상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 가운데 아들인 설총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고 전하는 원효의 '고상(顧像)'은 설총이 만들었다는 초상조각으로 중국 남북조시대 이래 유행했던 유마거사상의 이미지를 모델로 하여 조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문수보살을 향해 고개를 옆으로 돌린 자세로 앉은 초당기 유마거사상의 모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나아가 석굴암 감실 유마거사상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유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분황사 좌전 북벽에 그려져 있던 천수대비상은 솔거(率去)의 작품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경덕왕대에 한기리에 사는 여인 희명의 눈먼 아이의 눈을 뜨게 했다는 영험함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불렀다는 "도천수대비가"의 내용을 보면, 이 그림 속의 천수대비상은 눈이 그려져 있는 손을 천 개 가지고 있는 천수천안관음보살상이었다. 이 분황사 천수관음상을 '천수대비'로 불렀던 점에서 볼 때, 이 상은 당초(唐初)에 가범달마(伽梵達摩)가 번역한 "천수경"의 경궤에 따른 것으로 생각되며, 마찬가지로 '천수대비'로 불렸던 중생사와 백률사의 천수관음상 역시 같은 경궤에 의거한 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경덕왕대에 조성된 분황사 약사여래상의 주조에는 30만 6700근의 동(銅)이 사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많은 동이 사용된 것은 약사여래상 뿐 아니라 "약사경"에 언급된 약사여래의 권속 및 상징물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본이역(同本異譯)의 여러 "약사경"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약사신앙의 행법(行法)에는 7구의 약사불상을 조성하고 등명대를 설치하여 등(燈)을 밝히는 내용이 보인다. 또한 수대(隋代) 이래 나타났던 <약사여래변상>에 등장하는 약사여래의 협시(脇侍)로서는 일광 월광보살을 비롯해서 8대보살, 십이신장이 배치될 수 있다. 나라(奈良)시대에 창건된 신야쿠시지(新藥師寺)에는 7불 약사상과 그 권속의 여러 상들이 조성되었는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신라에서 이루어진 분황사의 불사(佛事)에서도 본존 약사불상 외에 관련된 여러 도상이 함께 조형화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음반 창극 <사명대사>(1971)의 형식적·내용적 특징과 자료의 의미 (The formal and intrinsic characteristics of the Changgeuk album (1971) and the meaning of the material)

  • 송소라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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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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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7-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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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고는 1971년에 음반으로 제작, 발표되었던 음반 창극 <사명대사>를 대상으로 자료가 갖는 형식적·내용적 특징을 살피고, 그 의미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음반 <사명대사>는 '창극'을 표제어로 제작, 발표되었지만 해설과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고 판소리 창은 부분적으로만 쓰였다는 점에서 무대극으로 다루어지는 창극의 양식과는 차이를 갖는다. 1930년대 무대극으로서 창극의 양식, 이른바 '판소리 음악을 중심으로 하여 판소리 창자가 중심이 되어 꾸민 연극'이 성립되기 이전, 그리고 이후 유성기 음반과 라디오 방송, 텔레비전 방송, 나아가 현대의 창극에 이르기까지 창극의 양식은 매우 다채로웠다. 판소리 음악만이 중심이 아니었고, 등장인물로서 전통연희자가 주요 구성원이지만도 않았다. 음반 창극 <사명대사>의 형식적 특징은 1950~60년대 낭독극, 라디오 드라마의 성행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나타난 새로운 시도이다. 본고는 20세기 중·후반 음반과 라디오를 통해 다루어진 '창극'의 실질적 형태를 추측할 수 있는 자료로서 <사명대사>가 갖는 의미를 조망하였다. 더불어 새롭게 유입되는 문화와 매체 속에서 창극이 행한 다양한 양식적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사명대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말하였다. 음반 창극 <사명대사>의 내용적 특징을 살펴보면 이 작품은 이종익의 장편소설 사명대사(1957)를 수용하되, '사명대사'의 일대기적 삶에 중심을 두고 서사를 전개했다. 그리고 원작이 추구한 사명대사의 구도자적 삶과 구국 충신으로서의 삶을 80분의 음반에 담아내려 노력했다. 이러한 내용적 구성은 이 음반을 제작한 소리꾼 이용배의 창작 의지와 당대 구국의 역사 영웅을 무대로 소환하는 역사극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소리꾼 이용배는 사명대사의 구도자적 삶을 통해 탐욕과 자만심이 가득했던 창극 배우로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대사의 인격적, 사상적 면모에 큰 감화를 받았다. 1971년에 음반을 발표하고 약 30년이 지나서는 사명대사를 창작 판소리로 만들어 공연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다음으로 창극 <사명대사>는 1970년대 민족과 국가, 민중의 담론 아래에서 국란의 민족영웅을 소설과 극, 영화, 등의 매체로 소환하는 과정에서 음반과 전통극도 이에 함께 응한 자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민중' 영웅을 강조하는 역사극이 대두되는 흐름을 볼 때, <사명대사>는 좀 더 이른 시기에 '민중' 영웅으로서 사명대사를 극으로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그리고 전통의 소리와 음악으로 이를 구현하여 전통음악의 가치 역시 드높이고자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사회문화적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