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excavation sup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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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코로나 시대 비대면 고독사 예방정책 방안 모색 - 대구광역시 AI, IOT 고독사 예방 사례를 중심으로 (With Corona Era, exploring policy measures to prevent non-face-to-face lonely deaths - Focusing on Daegu Metropolitan City's AI and IOT cases of lonely death prevention)

  • 김하윤;하태현
    • 디지털융복합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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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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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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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사회문화적 변화와 고령화에 따른 독거노인 등의 증가로 고독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각 지자체마다 사회적 문제로 정의하기 시작하였으며, 정부에서도 고독사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등 고독사 예방을 위한 법적근거를 제정하기 시작하였다. 본 연구는 고독사 예방을 위한 정책방안 모색을 위하여 고독사 예방을 위한 비대면 정책 추진을 위해 대구광역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 디지털 정보기술(AI, IOT)을 활용한 고독사 예방정책 사례를 살펴보았다. 고독사 관련 정책은 고독사 예방사업과 발굴 후 지원사업의 두 가지 축으로 구분한다. 이들사업을 효율성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을 통한 비대면 서비스의 제공 등이 새로운 서비스 전달체계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으므로, 비대면 서비스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 국가 차원의 비대면 산업 확대를 위한 시스템 구축 등 다각적인 변화와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향후 또 다른 국가 재난 상황에서 대응할 수 있도록 고독사 예방 등 다양한 복지정책에서 비대면 스마트돌봄체계가 확대되고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경기도 향토민요 관련 무형문화재의 전승현황과 과제 (Current status and tasks of the transmission of Gyeonggi Province intangible cultural assets (folk songs))

  • 장희선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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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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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0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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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논의는 경기도 지역 향토민요 무형문화재의 지정 및 지정 후 재현, 전승 현황을 고찰하고, 전승의 과제와 개선방안을 제시한 글이다. 1998년 지정 후 2016년까지, 경기도 향토민요 관련 무형문화재로 최대 13종 지정이후 9종으로 감소하여, 문화재 관리, 운영의 문제가 예상된다. 우선 북서부 지역 위주의 분포와 농요, 의례요 등 유사한 민요의 지정현황은 발굴 복원과정에서 일정부분 상호 전이되거나 정형화 경향과, 일부의 원형 훼손 가능성, 지정 전승 과정상의 한계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화재 종목의 '(세시)놀이'와 '민속음악'의 유형분류와 민요구성의 관계가 모호하여, 재검토가 요구된다. 민요와 놀이 의례의 연계성 등은 원형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다. 지정문화재의 명칭과 종목 번호도 올바른 문화재 지정 여부에 대한 지표가 될 수 있다. 보존회의 전수교육은 정기적인 회원 강습과 일반인 대상교육으로 구분가능하고, 원형전승과 현대적 계승의 이원화된 공연양상을 띤다. 의례(일) 과정과 연계된 다양한 유형의 소리 발굴 및 지나친 양식화에 따른 원형훼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전승의 과제와 개선방안으로, 첫째, 문화유산의 가치와 보존에 대한 인식 재고, 둘째, 문화재 지정과 해제 과정의 지표화, 셋째, 문화재의 기록화와 기록물 보존의 체계화, 넷째, 지역사회와의 연계, 다섯째, 전문인력 구성과 지원관리의 체계적 정립 등을 주요 논점으로써, 제안하였다.

실내모형시험을 통한 흙막이벽체 버팀대 변형에 따른 흙막이벽체 및 인접터널의 거동 (Behavior of wall and nearby tunnel due to deformation of strut of braced wall using laboratory model test)

  • 안성주;이상덕
    • 한국터널지하공간학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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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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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9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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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흙막이벽체 시공 중 버팀대에 문제가 발생하여 변형되거나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흙막이벽체에 과다한 변형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모형시험을 통해 시공 중 흙막이벽체의 버팀대 일부가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을 때 흙막이 벽체의 거동특성 및 배면에 인접한 터널의 거동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 흙막이벽체의 변형으로 인해 배면지반의 토압이 재배치되고 지표변위를 발생시켜 인접한 터널의 변형에 영향을 미쳤으며, 터널에서 가장 가까운 측벽에 위치한 버팀대를 제거하였을 때 흙막이벽체 변형 및 터널변형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터널의 위치에 따른 평균 전이토압은 터널 심도가 0.65D에서 2.65D로 깊어짐에 따라 평균 25.6% 증가하였으며, 흙막이벽체와 터널과의 이격거리가 0.5D에서 1.0D로 증가함에 따라 전이토압이 평균 16% 증가하였다. 버팀대 제거에 따른 흙막이벽체의 수평변위는 제거되는 버팀대 부근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버팀대 제거위치가 하부로 내려갈수록 수평변위는 비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터널 내공변위는 토피고 1.15D, 수평거리 0.5D일 때 최대 내공변위가 발생하였고, 토피고 2.65D, 수평거리 1.0D에서 최소 내공변위가 발생하였다. 가상파괴면이 터널의 중심부를 통과하는 범위인 토피고 1.15~1.65D, 수평거리 0.5D에서 터널의 내공변위가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검토되었으며, 최대 내공변위와 최소 내공변위의 차이는 약 2배 정도 발생하였다.

왕흥사 목탑의 복원 연구 (A Study on the Restoration of the Wangheungsa Temple's Wooden Pagoda)

  • 김경표;성상모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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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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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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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e form of the Wangheungsa Temple's wooden pagoda site is that of the traditional form of the wooden pagodas constructed during the Baekjae Period. Likewise, it is an important ruin for conducting research on the form and type of the wooden pagodas constructed during the Baekjae Period. In particular, the method used for the installation of the central pillar's cornerstone is a new technique.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restore the ruin of the Wangheungsa Temple's wooden pagoda of the Baekjae Period that remains at the Wangheungsa Temple's wooden pagoda site. Until now, research conducted on the wooden pagoda took place mostly centered on the Hwangryongsa Temple's wooden pagoda. Meanwhile, the reality concerning Baekjae's wooden pagoda is one in which there were not many parallel cases pertain to the design for restoration. This research paper wants to conduct academic examination of the Wangheungsa Temple's wooden pagoda to organize the intention of design and design process in a simple manner. This research included review of the Baekjae Period's wooden pagoda related ruins and the review of the existing wooden pagoda ruin to analyze the wooden pagoda construction technique of the era. Then, current status of the Wangheungsa Temple's wooden pagoda site is identified to define the characteristics of the wooden pagoda, and to set up the layout format and the measure to estimate the size of the wooden pagoda in order to design each part. Ultimately, techniques and formats used for the restoration of the wooden pagoda were aligned with the wooden pagoda of the Baekjae Period. Basically, conditions that can be traced from the current status of the Wangheungsa Temple site excavation using the primary standards as the standard. Wangheungsa Temple's wooden pagoda was designed into the wooden pagoda of the Baekjae's prosperity phase. The plane was formed into $3{\times}3$ compartments to design into three tier pagoda. The height was decided by factoring in the distance between the East-West corridors, size of the compartment in the middle, and the view that is visible from above the terrace when entering into the waterway. Basically, the origin of the wooden structure format is based on the Goguryeo style, but also the linkage with China's southern regional styles and Japan's ancient wooden pagoda methods was factored in. As for the format of the central pillar, it looks as if the column that was erected after digging the ground was used when setting up the columns in the beginning. During the actual construction work of the wooden pagoda, central pillar looks as if it was erected by setting up the cornerstone on the ground. The reason that the reclaimed part of pillar that use the underground central cornerstone as the support was not utilized, was because the Eccentric Load of the central pillar's cornerstone was factored in the state of the layers of soil piled up one layer at a time that is repeated with the yellow clay and sandy clay and the yellow clay that were formed separately with the $80cm{\times}80cm$ angle at the upper part of the central pillar's cornerstone was factored in as well. Thus, it was presumed that the central pillar was erected in the actual design using the ground style format. It is possible to presume the cases in which the reclaimed part of pillar were used when constructed for the first time, but in which central pillar was installed later on, after the supplementary materials of the underground column is corroded. In this case, however, technique in which soil is piled up one layer at a time to lay down the foundation of a building structure cannot be the method used in that period, and the reclamation cannot fill up using the $80cm{\times}80cm$ angle. Thus, it was presumed that the layers of soil for building structure's foundation was solidified properly on top of the central pillar's cornerstone when the first wooden pagoda construction work was taking place, and that the ground style central pillar was erected on its upper part by placing the cornerstone once again. Wangheungsa Temple's wooden pagoda is significant from the structure development aspect of the Korean wooden pagodas along with the Hwangryongsa Temple's wooden pagoda. Wangheungsa Temple's wooden pagoda construction technique which was developed during the prosperity phase of the Baekjae Period is presumed to have served as a role model for the construction of the Iksan Mireuksa Temple's wooden pagoda and Hwangryongsa Temple's wooden pagoda. With the plan to complement the work further by excavating more, the basic wooden pagoda model was set up for this research. Wangheungsa Temple's wooden pagoda was constructed as at the Baekjae Kingdom wide initiative, and it was the starting point for the construction of superb pagoda using state of the art construction techniques of the era during the Baekjae's prosperous years, amidst the utmost interest of all the Baekjae populace. Starting out from its inherent nature of enshrining Sakyamuni's ashes, it served as the model that represented the unity of all the Baekjae populace and the spirit of the Baekjae people. It interpreted these in the most mature manner on the Korean peninsula at the time.

호남지역(湖南地域)의 왜계자료(倭系資料)와 전방후원형고분(前方後圓形古墳) (The Relics of Wae Lineage and the Keyhole-Shaped Mounds in the Honam Area)

  • 土田純子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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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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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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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호남지역은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한일 고고 고대사학 연구자 사이에서 항상 큰 관심을 받았던 지역이다. 근래 이 지역에서 왜계 고고자료 발견 사례가 양적 질적으로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선행 연구와 견해를 재검토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전방후원형 고분은 기존에 13기로 알려졌지만 최근 발견 사례가 17기까지 증가했다. 한 곳에서 3기가 조영된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으며, 또 일본의 고분시대(古墳時代)를 특징짓는 형상식윤(形象埴輪)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호남지역 출토 왜계 고고자료에 대한 선행연구는 특정 자료나 특정 유적 유구에 한정된 사례가 많았다. 본고에서는 호남의 모든 왜계 고고자료를 대상으로 수량 고고자료의 종류 출토 위치를 파악한 후 그 변천을 추적하였다. 시기별 특징이나 변화상 등을 바탕으로 왜와 마한세력의 관계 의도 동향을 문헌 자료 등과 관련시켜 검토하였다. 호남지역 출토 왜계 고고자료는 5세기 전엽부터 증가 및 광범위한 분포를 보여주며 7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4세기 말~5세기 전엽에는 왜계 무구와 왜계 매장주체부, 5세기 중엽~후엽에는 수혜기(須惠器)(계(系)), 5세기 말~6세기 전엽에는 전방후원형 고분과 왜계 횡혈식석실, 6세기 중엽~7세기 초에는 왜계 무구 석침이 중심을 이루어 시기마다 양상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4세기 말~5세기 전엽의 왜계 고고자료에 대해서는 이 시기에 집중된 백제와 왜의 왕래 기사를 근거로 외교 사절단을 수행했을 무인계층과의 관련성을 상정했다. 5세기 중엽~후엽에는 수혜기(須惠器)(계(系)) 토기가 호남 내륙부로 확산되었다. 물자의 집적에 유리한 지점에서 주로 출토되는 경향이 엿보인다. 전방후원형 고분의 피장자를 북구주(北九州) 제세력에 속한 왜인을 중심으로 한 교역자 집단으로 해석했다. 전방후원형 고분은 대체로 기본적으로 기존 수장묘가 조영되지 않던 지역에서 특별한 세력 기반 없이 돌연 출현했다. 그러나 재지인의 협조 없이 전방후원형 고분을 축조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일본 현지와 호남지역 전방후원형 고분의 구축 기술 차이를 보아도 알 수 있다. 한편 일부 전방후원형 고분은 재지 수장묘와 동시기 아니면 직후에 조영되었다는 점에서 재지 집단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5세기 초 금관가야가 몰락하자 왜 제국(諸國)은 새로운 교섭 상대로 호남지역을 선택하였다. 그 배경에는 왜에서 구하기 어려운 (지하)자원이나 물자를 확보해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약 200년에 걸쳐서 사용되고 매장된 호남지역의 왜계 고고자료는 왜인의 다양한 교섭 노력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