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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함허정(涵虛亭)의 경관짜임과 의미경관 (The Landscape Configuration and Semantic Landscape of Hamheo-pavilion in Gokseong)

  • 이현우;심우경;노재현;신상섭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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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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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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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곡성 함허정(전남유형문화재 제160호)을 중심으로 '현장조사 문헌조사 인터뷰' 등의 연구방법을 토대로 연구대상 일원의 풍수형국과 경관짜임 및 조영의도 그리고 의미경관의 특성을 추적한 것이다. 함허정 일원의 입지 및 조망적 조영특성의 분석과 해석의 일환으로, 함허정 일원의 경관상에 드러난 호혜적 자연관과 경관짜임이 어떠한 형태 및 방식으로 표출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힌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이 축약된다. 첫째, 함허정은 심광형(沈光亨, 1510~1550)이 중종30년(1535)에 군촌(현(現). 전남 곡성군 입면 제월리)에 처소 및 강학을 위한 군지촌정사를 창건한 이후, 지근거리에 1543년 학문연구와 유식(遊息)을 위해 지은 누정이다. 함허정과 군지촌정사가 자리한 군촌마을은 순자강(섬진강)을 마주한 전형적인 배산임수 국면인데, 진산인 동악산은 소가 강가에 누워 한가로이 되새김질 하는 와우형(臥牛形)으로 해석되며, 함허정 일원은 목동(牧童)이 강가에서 피리를 부는 형국으로 와우(臥牛)가 적초(積草案, 풀더미)를 구비하여 평안과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길처로 회자된다. 특히, 함허정 뒷동산은 거북이 용궁으로 입수하는 혈맥으로 거북(또는 자라)의 등 위에 앉은 건물[구형(龜形)]이 함허정이며, 절벽 아래 남측의 하중암도(河中巖島)인 구암조대(龜巖釣臺)와 용암(龍巖)은 거북이 지향한 해중 신선경(海中 神仙景)으로 해석된다. 둘째, 함허정은 곡성8경의 제3경 순강청풍과 제9경 설산낙조(雪山落照)의 풍광시점장이면서, 곡성 입면8경의 제2경 함허순자와 제3경 천마귀암(天馬歸岩)의 풍광시점이기도 하다. 한편 음양접합과 같은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으로 배열된 순자강5곡의 제4곡 경물로서 도학 및 성리학적 토포스로 본 초월적 풍경이자 감각적 투시를 통한 굽음의 미학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특히 비변사인방안지도(18C 중엽)와 옥과현지(1788년) 등에 순자강5곡 중 제2곡 합강정과 제4곡 호연정(함허정), 그리고 제3곡 무진정이 묘사되었음을 볼 때 순자강5곡 경물은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의 세계를 넘나들며 선경세계로 귀의하는 장소정체성은 물론 조선후기 명소적 연계경관으로서의 지명도를 엿볼 수 있다. 셋째, 비워둠의 미학이 절묘하게 드러난 함허정은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소나무 등 노거수 수림경관, 구암조대와 용암, 첩석(疊石) 등 바위경관, 군촌마을 문화경관 등이 지근경(至近景)으로 펼쳐지고, 중경요소로 순자강 평호(平湖)와 마산봉, 고리봉 등이 산악경관으로 조망되며, 동쪽에서 서쪽으로 고리봉 마산봉 무등산 설산 등이 개방성 강한 $180^{\circ}$ 조망범위로 펼쳐진다. 특히 군지촌정사의 사랑채인 망서재(望瑞齋)의 당호는 "서석산(瑞石山)을 전망하는 집"이라는 뜻을 갖는데, 조산인 무등산과 설산을 앙경(仰景)하는 등 다채로운 차경(읍경(揖景), 환경(環景), 원근(遠近), 앙부경관(仰俯景觀))에 대한 조망지향적 의도가 중층적(中層的) 경관짜임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넷째, 실존[주거(住居) 강학처(講學處)]과 이상향[누정(樓亭) 재실(齋室)]이 접합된 군지촌 정주환경의 살림집[제월당], 강학처[군지촌정사], 누정[함허정], 재실[구암사, 청송심씨 4현 배향] 및 묘역 등은 '생성-풍요-초월-회귀'로 이어지는 사대부들의 생애주기와 관련한 의미론적 연계경관으로 인식된다. 특히 함허정 관련 시문은 순자강 일대의 가경 예찬과 유유자적한 삶에 대한 호혜적 자연관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음을 주지할 때, 함허정은 자연귀의와 안분지족의 요체이자 거점처이며, 수심양성(修心養性)하는 은일지소로서의 현학성이 형이상학적 의미경관으로 표출된다.

편액과 시문으로 본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의 입지 및 조영 해석 (The Location and Landscape Composition of Yowol-pavilion Garden Interpreted from Tablet & Poetry)

  • 이현우;김상욱;임근홍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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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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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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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편액과 시문이 과거 누정원림의 고유한 입지 및 조영 특성 추론의 중요한 준거(準據)가 된다는 전제 하에, 요월정원림(邀月亭園林)을 대상으로 과거 시점의 입지 및 조영 해석을 고구(考究)하기 위해 시도되었다. 요월정원림이 갖는 의미와 문화재적 위상과 가치의 진정성 제고 및 보존의 당위성을 논의할 목적으로 시도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요월정원림은 정원주 김경우(金景遇)를 비롯한 당대 거유들이 교유한 시율풍류의 현장이었다. "조선환여승람 호남읍지(湖南邑誌) 장성읍지(長城邑誌)" 등 고문헌을 통해 사화(士禍)를 피해 머문 은신처로서의 성격과 함께 지역정체성을 형성한 교두보로서의 장소성이 확인되었다. 또한 "요월정원운(邀月亭原韻)"을 통해 누정원림 작정(作庭) 의도 및 조영 동기를 확인한 바, 요월정원림은 세속과 탈속 그리고 현실과 이상이 뒤섞여 길항(拮抗)한 공간으로 해석된다. 둘째, 당호 요월(邀月)은 누정에서 조망했을 때의 승경적 요인 및 자연현상과 관련된 명칭으로, 마주한 '월봉산에 뜨는 달을 맞이함'을 함의하는 어휘로, 이는 자연의 섭리이자 풍류로서 탈속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즉 요월정은 세속의 희비를 벗어나 자연의 섭리를 따르려한 조영 의도를 반영한 당호로 해석된다. 셋째, 요월정원림의 입지는 "영광속수여지승람(靈光續修輿地勝覽)"을 통해 조영자가 퇴관 후 휴식을 위해 마련한 처소였으며, 월봉산을 마주하여 황룡강(黃龍江)이 굽이쳐 흐르던 승경지였음을 고문헌과 다수의 시문을 통해 확인하였다. 특히, 수호인 인터뷰에 따르면 요월정원림에서 야경의 시지각 빈도(頻度)는 수호인 거처인 고직사에서 요월정을 향해 황룡강 방향인 동쪽을 숙시각(熟視角)으로 조망했을 때가 가장 높다고 한다. 또한 시지각 강도(强度)가 가장 높고 아름다운 풍경은 요월정 좌측 배후면에서 달이 부상하여 요월정 전면(前面)의 배롱나무동산을 가로질러 요월정과 마주한 월봉산 사이에 남중한 때로 증언한 바 있다. 현재 요월정원림의 좌향은 $SE\;141.2^{\circ}$로서 거의 남동향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요월정 좌향 설정은 지형조건뿐 아니라 달의 궤적을 유상(遊賞)하기에 최적화된 방향과 시계(視界)를 확보하기 위한 기도(企圖)가 담겼다고 판단된다. 나아가 전면의 황룡강 수면 위로 남중한 달빛이 투영됨으로써, 하늘의 달과 황룡강 강물에 투영된 달이 동시에 감지되게끔 고려된 것으로 추론된다. 넷째, 현재 요월정원림은 요월정과 광산김씨문숙공파종회각(光山金氏文肅公派宗會閣) 및 고직사(庫直舍)로 구성된 '내원 권역'과 진입부를 아우른 배롱나무동산 및 소나무 배후림이 포함된 '외원 권역'으로 구분된다. 나아가 '용소 및 수생식물원 권역' 및 최근 조성된 '황룡정과 공원 권역'으로 외연(外緣)이 확산되면서 교란되고 변용되었다. 다섯째, 조영 당시 요월정원림은 누정에서 조망한 풍경을 안아 들여 누정을 중심으로 지근거리의 일정한 자연을 점유한 방식인 '경계 없는 산수원림'이었으나, 현재 복합경관은 과거 원형경관과는 괴리된 '이질화 분절화 파편화된' 경관으로 파악된다. 마지막으로, 요월정원림이 문화재지정보호구역임을 감안할 때, 편액과 기문에 묘사된 완전한 원형경관으로의 복원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원림권역에서의 경관적 악영향과 시각적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수립이 요망된다.

유ㆍ무한형대두품종의 재배조건에 따른 건물생산 및 형질변이에 관한 연구 (Studies on Dry Matter Production and Variation of Agronomic Characteristics of Determinate and Indeterminate Types of Soybean Cultivars (Glycine max L.) Under Different Growing Condition)

  • 박근용
    • 한국작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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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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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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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
  • 본 시험은 유ㆍ무한형대두품종에 대한다수성품종의 유종 및 재배기술개선의 기초자료로서 건물생산 및 제 형질간의 상호관계를 밝힐 목적으로 파종기, 재식밀도 및 시비수준이 다른 조건에서 광교, 동북태 및 수계5001를 유한형품종으로 그리고 Shelby, SRF-300 및 Harosoy를 무한형품종으로 하여 1972년부터 2개년에 걸쳐 작물시험장(수원)에서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개화기에 있어서의 건물중, CGR 및 LAI는 품종, 파종기, 시비수준을 막론하고 밀식할수록 증가하였고 개화기가 빠른 무한형품종들은 유한형품종보다 현저히 떨어졌으나 정엽전개기에는 오히려 유한형보다 무한형이 더 높거나 거의 같은 수준을 나타냈다. 2. 파종기별로 본 개화기의 건물중은 유ㆍ무한형 모두 5월 21일구와 6월 15일구가 거의 비슷하나 7월 10일구의 건물중은 낮았으며 시비수준이 높을수록 개화기에는 CGR을 비롯하여 건물중과 LAI도 높았다. 3. 엽면적지수(LAI)는 동일군내에서 품종간차이도 상당히 컸으나 무한형품종은 파종기, 재식밀도 및 시비수준을 막론하고 유한형품종보다 떨어지는데도 종실수량은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4. 조식 및 증비의 경우에는 밀식을 하면 정엽전개기 이후에 엽과 엽병부분의 낙하가 많으나 소식인 경우 또는 만파(7월 10일)에서는 엽과 엽병의 낙하가 적은 경향이 뚜렷하였다. 5. 식물체부분별로 보면 경중비율은 밀식할수록 높아지고 반면 엽중비율은 소식할수록 높아졌으며 만파할수록 경중과 엽병비율은 떨어지고 엽중비율은 높아지는 경향이었다. 6. 정엽전개기에 있어서 유한형품종은 맥중비율이 5월 21일구에서 25내외, 6월 15일구에서 8%내외, 7월 10일구에서는 9%내외이어서 매우 적은 반면 무한형품종은 5월 21일구에서 6%내외, 6월 15일구에서 14%내외, 그리고 7월 10일구에서는 21%내외로 매우 컸다. 7. 광교는 다비조건에서 도복된 후에도 황화낙엽이 적고 생육이 회복되나 SRF-300은 생육이 회복되지 않았다. 8. 종실수량은 5월 21일구가 가장 높았으나 6월 15일구와 별로 차이가 없고 7월 10일구는 감소가 컸는데 유한형품종들은 만파에 의한 감소정도가 비교적 적고 무한형품종은 그 정도가 컸었다. 9. 재식밀도의 적정수준은 수량면으로 보았을 때 5월 21일구에서는 a당 1,250∼2500개체, 6월 15일구에서는 2,500개체, 그리고 7월 10일구에서는 3,333개체수준이었다. 10. 전품종에 있어서 정엽전개기의 건물중과 LAI 그리고 맥비만기의 건물중은 수량과 높은 상관을 나타냈고 유한형품종에 있어서 최고의 수량을 기대할 수 있는 건물중의 적정선은 개화기때에 a당 25kg, 정엽전개기때에 50kg내외였으며 무한형품종에 있어서는 맥비만기의 LAI는 4∼5, 그리고 맥비만기의 건물중은 a당 80kg내외이었다. 11. 밀식을 하면 경장은 커지고 경태와 분지 및 절수는 적어져서 주경비율이 높아지고 절간장이 길어졌다. 경중, 절수, 맥수 및 종실수량의 주경비율은 밀식할수록 그리고 만파한 것이 높았으며 무한형이 유한형보다 높았다. 12. 밀식 또는 만파의 경우에는 맥수나 종실수량의 주경비율이 높아서 주경의존도가 높은 품종이 유리한 것으로 보였다. 13. 개화기와 정엽전개기의 LAI는 유ㆍ무한형 모두 단위면적당 총절수, 건물중 및 건경중과 높은 상관을 보였고 개화기의 LAI는 유한형의 경장 및 a당 맥수와의 상관에는 유의차가 없었으나 무한형의 경장 및 a당맥수와는 고도의 유의상관을 보였다. 14. 건물중은 LAI외에 CGR, 경장 그리고 a당 절수, 맥수 및 건경중과 높은 상관을 보였으나 경태와는 유의적인 상관이 없었다. 15. 도복지수는 LAI, 건물중, 경장 및 건경중과 높은 유의상관이 있었고 경태와는 무한형품조에 있어서 고도의 부의 상관을 보였으나 유한형품종에서는 유의상관이 없었으며 유한형품종에서는 수량과 고도의 정의 상관을 보였다. 또한 도복지수는 주경의 평균절간장과 고도의 정의 상관이 있었다. 16. 100립중은 밀식 및 만파 그리고 무비조건에서 떨어지는 경향이었고 주경보다 분지의 100립중이 낮았다. 17. 단백질함량은 어떤 재배조건에서도 변화가 거의 없으나 지방함량은 만파할 때 감소하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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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저위생산력(水稻低位生産力)의 원인구명(原因究明)에 관(關)한 영양생리적연구(營養生理的硏究) (Studies on Nutrio-physiology of Low Productive Rice Plants)

  • 박준규
    • Applied Biological Chem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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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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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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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4
  • 수도저위(水稻低位) 생산력(生産力)의 원인구명(原因究明)에 관(關)한 영양생리학적연구(營養生理적硏究)로 여러 가지 생육조건하(生育條件下)에서 품종별(品種別) 양분흡수(養分吸收) 및 동화기능(同化機能)과 양분(養分)의 체내(體內)에서의 이행양상(移行樣相)을 추구(追究)하는 한편 고수량지(高收量地) 벼와 저수량지(低收量地) 벼에 대(對)한 생육시기별(生育時期別)로 양분(養分)의 흡수(吸收) 체내무기양분(體內無機養分)과 수량(收量) 및 수량구성요소(收量構成要素)와의 관계(關係) 등(等)을 추구(追究)하여 저수량지(低收量地) 벼의 영양생리적(營養生理的) 저수요인(低收要因)을 밝히고저 본연구(本硏究)를 수행(遂行)하였던 바 그 결과(結果)를 요약(要約)하면 다음과같다. 1. 양분(養分)의 흡수력(吸收力)은 품종(品種)에 따라 차이(差異)가 있으며 인산(燐酸) 및 가리(加里)의 흡수력(吸收力)이 강(强)한 품종(品種)은 구사부에, 진흥(振興)이며 낮은 품종(品種)은 팔달(八達)이었다. 2. 근(根)의 ${\alpha}-naphthylamine$의 산화력(酸化力)과 인산(燐酸)의 흡수력(吸收力)과는 유의적(有意的)인 상관관계(相關關係)가 있으며 산화력(酸化力)이 높으면 인산(燐酸)의 흡수(吸收)가 증대(增大)되었바. 3, 탄소동화력( 炭素同化力)은 품종(品種)에 따라 차이(差異)가 있으며 노인도(老人稻), 구대내조욱(九大耐潮組) 3호(號), 수원(水原)82호(號), 진흥(振興) 등은 강(强)하고 대구조(大脚租), 관옥(關玉), 육우(陸羽) 132호(號)가 약(弱)하였다. 4, 질소(窒素)의 증시(增施)는 소비(少肥)에 비(比)하여 동화량(同化量)은 증가(增加) 되나 등화산물(同化産物)의 이삭으로의 이전(移轉)은 적었다5. 정상(正常) 생육(生育)한 벼에 비(比)하여 인산(燐酸), 가리(加里) 및 마그네슘이 결핍(缺達)된 벼는 전탄소동화량이(全炭素同化量)이 정상(正常) 벼 100에 비(比)하여 40이하(以下)로 현저(顯著)히 낮으며 그 순서(順序)는 Mg>P>K이고, 동화물(同化物)의 이전(移轉)에 장해(障害)가 큰 것은 K>Mg>P의 순(順)이었다. 6. 고수량지(高收量地) 벼는 저수량지(低收量地) 벼에 비(比)하여 총건물(總乾物) 생산량(生産量)이 현저(顯著)하게 많고 특(特)히 유수형성기(幼穗形成期) 이후(以後)에 증가량(增加量)이 더욱 현저(顯著)하였다. 7. 고수량지(高收量地) 벼는 출수기(出穗期)에 옆면적(葉面積)이 최고(最高)에 달(達)하였다가 그 이후(以後) 완만(緩慢)하게 줄어지나 저수량지(低收量地) 벼는 출수이전(出穗以前)에 엽면적(葉面積)이 최고(最高)에 달(達)하였다가 출수이후(出穗以後)에 급격(急激)히 감소(減少)되며 그 원인(原因)은 하엽(下葉)의 조기고사(早期枯死)에 기인(起因)되었다. 8. 고수량지(高收量地) 벼는 저수량지(低收量地) 벼에 비(比)하여 생육초기(生育初期)에는 투과광율(透過光率)이 높고 생육후기(生育後期)에 낮았으나 투과광율대(透過光率對) 엽면적비(葉面積比)는 고수량지(高收量地) 벼에서 높았다. 9. 순동화량(純同化量)은 저수량지(低收量地) 벼에 비(比)하여 고수량지(高收量地)벼에서 많았으며 이는 또한 엽면적(葉面積)이 증가(增加)됨에 따라 감소(減少)되었다. .10. 고수량지(高收量地) 벼는 저수량지(低收量地) 벼에 비(比)하여 유수형성기(幼穗形成期) 이후(以後) 체내질소(體內窒素), 가리(加里) 및 규산(珪酸)의 함유율(含有率)이 높으면서 $K_2O/N$, $SiO_2/N$ 비(比)가 높았다.11. 저수량지(低收量地) 벼는 고수량지(高收量地) 벼에 비(比)하여 출수기(出穗期)에 보유(保有)된 질소(窒素), 인산(燐酸), 가리(加里) 및 마그네슘등이 출수이후(出穗以後) 이삭으로의 이행율(移行率)이 높았다. 이는 저수량지(低收量地) 벼가 생육후기(生育後期)에 양분(養分)의 흡술량(吸收量)이 부족(不足)하여 체내(體內) 저장양분(貯藏養分)이 재이동(再移動)되기 때문이며 따라서 하엽(下葉)은 양분부족(養分不足)으로 조길고사(早期桔死)가 많아지는 것으로추정(推定)되었다. 12. 고수량지(高收量地) 벼는 질소흡수(窒素吸收)가 전생육기간(全生育期間)을 통(通)하여 완만(緩慢)하며 출수이후(出穗以後)에도 흡수량(吸收量)이 많으나 저수량지(低收量總) 벼는 출수이전(出穗以前)에 많고 출수이후(出濾以後)는 거의 흡수(吸收)되지 않았다. 13. 출수기(出穗期)의 체내(體內) 질소(窒素), 가리(加里) 함유율(含有率)과 수량(收豊)과는 현저(顯著)한 정(正)의 상관(相關)이 성립(成立)되였으며 수확기(收獲期)의 가리(加里), 규산함유율(珪酸含有率) 그리고 $K_2O/N$, $SiO_2/N$과 수량(收量)과도 현저(顯著)한 정(正)의 상관관계(相關關係)가 성립(成立)되었다. 14. 출수기(出穗期)에 보유(保有)된 전분(澱粉)이 이삭으로의 이전(移轉)은 고수량지(高收量地) 벼가 약(約) 10%인데 반(反)하여 저수량지(低收量地) 벼는 약(約) 40%로 많았다. 따라서 저수량지(高收量地) 벼는 출수(出穗) 이후(以後) 동화의존도(同化依存度)가 높았다. 15. 고수량지(高收量地) 벼는 저수량지(低收量地) 벼에 비(比)하여 질소(窒素), 인산(燐酸), 가리(加里), 규산(珪酸) 및 망간의 흡수량(吸收量)이 현저(顯著)하게 많았고 생육시기별(生育時期別) 흡수량(吸收量)의 차이(差異)는 유수형성기(幼穗形成期) 전후(前後)에 현저(顯著)하였다. 16. 수확기(收穫期)의 질소(窒素), 인산(燐酸), 가리(加里), 석탄(石炭), 마그네슘, 규산(珪酸) 및 망간의 총흡수량(總吸收量)과 수량(收量)과는 고도(高度)의 정(正)의 상관관계(相關關係)가 인정(認定)되었다. 17. 수확기(收穫期)에 질소(窒素), 인산(燐酸), 가리(加里), 석탄(石炭), 마그네슘 및 규산(珪酸)의 흡수량(吸收量)과 수당입수간(穗當粒熱間)에, 질소(窒素) 및 가리(加里)의 흡수량(吸收量)과 수수(穗數)와는 유의적(有意的)인 정(正)의 상관관계(相關關係)가 성립(成立)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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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主要) 고농서(古農書)를 통(通)한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도작기술(稻作技術) 전개(展開) 과정(過程) 연구(硏究) - IX. 도작기술(稻作技術)에 대(對)한 종합고찰(綜合考察) (A Study on Transition of Rice Culture Practices During Chosun Dynasty Through Old References IX. Intergrated Discussion on Rice)

  • 구자옥;이숭겸;이은웅;이홍석
    • 한국잡초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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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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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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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
  • 조선왕조초기(朝鮮王朝初期)부터 농업초기정책(農業初期政策)은 지역농업(地域農業)의 현실적(現實的) 조건(條件)과 결부(結付)된 농사직설(農事直說)과 같은 농서(農書) 발간(發刊)에 의해 부여(附與)되었다. 그 책(冊)들은 새롭고, 집약적(集約的)인 농업기술(農業技術)을 제공(提供)하였다. 이 농서(農書)는 그 당시(當時)에 농촌지역(農村地域)에서 경험(經驗)된 우수한 농업기술(農業技術)을 수집(蒐集)하여 만든 것이다. 농사직설(農事直說)에 따르면 벼 재배(栽培)는 무삶이(담수직파법(湛水直播法)), 건삶이(건답직파법(乾畓直播法)), 이앙법(移秧法) 그리고 산도법(山稻法)(육도법(陸稻法))으로 분화(分化)되었다. 이들 농법(農法)에 구비된 고도기술적특성(高度技術的特性)은 과학적제초기술(科學的除草技術)과 적극적인 시비법(施肥法), 축력(畜力)과 인력용(人力用)의 농기(農機)로 일관되게 체계화(體系化)시킨 농작업방법(農作業方法)에 근거(根據)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해안(海岸)의 습지(濕地)와 황지(荒地)의 개간(開墾)은 화경(火耕)와 윤목(輪木)이라 칭하는 제초장비(除草裝備)로 인하여 가능케 되었다. 또한 벼의 묘령단계(苗令段階)에서 토양(土壤)의 간인(間引), 토기작업(土寄作業)과 동시에 섬세한 제초작업(除草作業)을 할 수 있도록 분화(分化), 발달(發達)된 호미가 있었다. 직파(直播)벼재배(栽培)는 저류지(貯溜地)와 소택(沼澤)을 만들어 평야수전(平野水田)의 직파재배(直播栽培)를 가능케 하였으며, 곡간지답(谷間地畓)은 보(洑)를 만들어 개간했다. 이들은 관수(灌水)에 의해 제초를 쉽게 하는 동시에 관수중(灌水中) 무기영양(無機營養)을 통(通)한 토양비옥도(土壞肥沃度) 유지 및 벼의 생리적(生理的) 호조건(好條件)을 부여하여 논의 생산성(生産性)을 증대시킬 수 있었다. 또한 이앙(移秧)을 하면 더욱 성력재배(省力栽培)가 가능하였을 것이지만 전국적인 물의 사용제약성(使用制約性)때문에 이앙법(移秧法)을 원칙적으로 금해 오지 않을 수 없었다. 건전재배(乾田栽培)에서 직파재배(直播栽培)가 수립되었으며, 수도(水稻)가 직파(直播)되고 유묘기까지 건토(乾土)에 재배(栽培)되었으며 농사직설(農事直說)에서처럼 비올때 관수토양(灌水土壤)에 재배(栽培)되었다. 조선중기(朝鮮中期)(AD 1495-1725)에는 벼 농사(農事)에서의 제초효율(除草效率)과 편리성(便利性) 때문에 정조식(正條式) 이앙법(移秧法)을 포함한 탁월한 성력농법(省力農法)(한정록(閑情錄))과 벼 이앙에 근거(根據)(농사직설(農事直說))하여 못자리(묘대) 기술(벼의 조기이앙(早期移秧)이 강조(强調)되었다. 비료분(肥料分)을 다량투입(多量投入)하고 우력(牛力)을 이용(利用)하여 심경(深耕)해야 한다는 일련(一連)의 기술(技術)들은 토지(土地)와 노동생산성(勞動生産性)을 향상 시키는 것이었다. 농가집성(農家集成)때보다 산림경제(山林經濟)때에 발전된 사항은 오늘날의 육묘대법(陸苗垈法)과 마찬가지인 건앙법(乾秧法)을 개발하여 이앙재배(移秧栽培)하게 만든 것이며, 답이모작(畓二毛作)을 확립(確立)시켜서 답작(畓作)의 노동(勞動) 및 토지생산성(土地生産性)을 높이게 된 것이다. 이결과 소경영생산양식(小經營生産樣式)을 경영형(經營型) 부농적(富農的) 생산양식(生産樣式)으로 변화시켜 광작농법사회(廣作農法社會)를 태동(胎動)시켰다. 우하영(禹夏永)(1741-1812) 은 천일록(千一錄)을 통하여 당시의 광작농(廣作農)이 갖는 폐단을 집약적(集約的) 농법(農法)으로 개혁하고자 하였고, 그가운데 탁월한 견해로서 농지(農地)를 토질(土質)에 따라 이앙법(移秧法)과 grooving 파종법(播種法)(전(田))으로 땅(토지(土地))의 이용을 구분한 것이다. 특히 서유가(徐有架)(산림경제(山林經濟))가 주장한바 이앙(移秧)의 유리성(有利性)은 제초노력이 절감되고 묘대(苗垈)와 본답(本畓)의 토지기력(土地氣力)을 얻기 때문에 벼의 좋은 생육(生育)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는 벼를 뽑았다가 다시 심기 때문에 새롭게 기력이 얻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앙법(移秧法)에 앞선 재평가(再評價), 이모작(二毛作)의 한계성(限界性), 반답법(反畓法)의 제약론(制約論), 광작(廣作)의 폐단에 처한 금지론(禁止論)이 있었다. 그당시 이지연(李止淵)에 의해서 벼의 수도수분생이(水稻水分生理), 토지(土地) 및 제초(除草)의 편리성(便利性)을 고려한 수도직파재배법(水稻直播栽培法)이 쓰여 졌는데 그것은 가장 안정한 농가소득을 확보하는 창조적인 작부체계(作付體系)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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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강유역의 개간과정과 취락형성발달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ultivation Processes and Settlement Developments on the Mangyoung River Valley)

  • 남궁봉
    • 한국지역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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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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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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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만경강유역을 하나의 연장선상에 놓고 연구한 결과, 그 공간상에서 역사와 더불어 형성발달해온 시공연속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만경강상류에서 하류 하구연안에 이르는 면장공간상에서의 개간과정은 여말에서 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원지-지향지] 지향가설에서 본 개간과정에서 개간의 기원지는 만경강상류 산간계곡의 지류곡지 개간을 효시로 하여 기원지가 이루어지고, 조선조 중기까지는 수방대책의 발달과 더불어 하천 중류까지 진출하고, 하천 본류에 대한 하류지역의 계간은 하천의 규모와 유수량의 증가로 인한 하안의 홍수와 범람을 극복할 수 있는 인공제방을 축조할 수 있는 기술수준에 이른 192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화되고, 그후 연이어 하구연안의 간석지 개간도 시행되어 개간의 개척첨단이 이들 지향지인 해안간석지일대에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각 시기마다 공간의 변화도 수반되어 시공연속체가 발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취락의 경우 개간과정에 따라 산간계곡 산록일대에서는 주변입지적 집촌, 하천중류와 하류에서는 중앙입지적 집촌, 하천하구 간석지에서는 중앙입지적 열촌형태가 우세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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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원교학생대가배점중요성적감지화타문광고가배점지후적만의도지간적차거대타문구매행위적영향(大专院校学生对咖啡店重要性的感知和他们光顾咖啡店之后的满意度之间的差距对他们购买行为的影响) (The Effect of the Gap between College Students' Perception of the Importance of Coffee Shops and Their Satisfaction after Patronizing Coffee Shops on Their Purchasing Behavior)

  • Lee, Won-Ok
    • 마케팅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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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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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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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本研究的目的是对咖啡店的 "重要性"(顾客在光顾咖啡店以前的感知)和积极或消极的 "满意度"(顾客在光顾咖啡店以后的感受)之间的差距进行分类, 并分析这些差距对对购买行为的影响. 为此, 我使用重要性和满意度之间的差距作为选择咖啡店的解释变量, 并通过使用有序Probit模型(OPM)来实证分析差距对购买行为(整体满意度和愿意到再次光顾)的影响方向和大小. 先前使用IPA的研究评估了差距影响的方向和大小的象限, 但是在分析差距对顾客的影响方面却失败了. 在本研究中, 我评估了积极和消极的差距对顾客满意度和愿意去再光顾的影响. 通过使用OPM,我量化了积极和消极的差距对顾客整体满意度和愿意去再光顾的影响. 每个人的支出, 光顾的频率和购买咖啡的地方对顾客整体满意度有最积极的影响. 光顾的频率, 在每人的支出之后, 然后是购买咖啡的地方对顾客整体满意度有最积极的影响. 因此每个人的支出和光顾的频率对顾客整体满意度有最积极的影响. 这一发现意味着一个在咖啡店每次或每周花费5000韩元的顾客的实际的满意度越高(差距), 其整体满意度和愿意去再光顾就越高. 虽然经济效益对总体满意度和愿意去再光顾有显著影响, 但是大专和大学的学生仍然愿意去咖啡馆并愿意消费5000韩元, 因为他们不只是购买咖啡本身而且将咖啡店作为其他活动的场所, 例如工作, 和朋友见面或是放松的地方. 学院和大学的学生还可以在咖啡店通过个人电脑上网, 看电影, 学习, 因此, 咖啡馆应对顾客提供适当的设施和服务. 咖啡店品牌的积极差距对愿意去再光顾有积极的影响表明顾客满意度越高, 顾客越愿意去再光顾. 另一方面, 这一因素的消极差距意味着顾客满意度越低, 顾客再光顾的意愿也越低. 因此, 在本研究中, 与其他评估的因素相比, 品牌因素对满意度有较大的影响. 鉴于国内咖啡文化变得越来越高级, 大专院校的学生对这一趋势也很敏感, 所以学生有很多可选择的品牌. 在韩国最高级的咖啡店, 外墙是玻璃建造的并可以打开, 内部是充满异国情调的开放式厨房. 这些高级咖啡店作为标志的功能复合大专院校学生的品味. 韩国咖啡店已成为一个文化品牌. 从品牌因素来看, 为了让顾客觉得这些咖啡店是高级的, 高质量的设备和提供更好服务的措施应当建立起来. 韩国咖啡馆作为蓬勃发展的行业品牌竞争加剧的结果表明, 提供与竞争对手不同的额外服务是有必要的. 顾客可以免费使用扫描仪. 另一个可以用来提高品牌的战略是提供和经营为集体学习而准备的讨论会议室. 如果咖啡馆采取这些类型的策略, 学院/大学的学生将更有可能认为他们承担的费用是值得的, 随后, 他们将可能更满足这些咖啡馆的品牌, 并更愿意再次光顾. 性别和学习年数对总体满意度和再光顾的意愿有最消极的营销. 女学生比男学生更容易满足和再光顾. 三, 四年级的学生比一, 二年级的学生更容易满足和再光顾. 喝咖啡的学生, 单独在咖啡店看书, 用笔记本电脑是很容易被注意到的. 高年级学生为了有效地利用时间用于自我发展和寻找工作往往独自光顾咖啡店. 从积极的差距来看, 经济效率这一因素对总体满意度和愿意再光顾有最大的影响. 与咖啡价格一起, 学生实际满意度(差距)越高, 总体满意度和再光顾的意愿也越高. 有消极差距的经济效率队再光顾有消极营销的结果表明较小的消极差距可以让再光顾的意愿更高. 在持续恶化的市场环境中, 坐落在大专院校附近的咖啡店采取诸如积分或会员卡, 和信用卡 公司的战略联盟, 发展套餐菜单或季节菜单和免费咖啡服务这些战略来提高竞争力. 就消极差距而言产品功率也有消极的影响, 这表明较高的负差距会导致较低的再光顾的意愿. 因为还有更多的客户比前几十年, 在这十年里更喜欢咖啡, 新一代的客户, 即学院/大学的学生, 希望除了咖啡还有更重菜单项目. 因此, 咖啡店应当增加配菜项目, 如华夫饼, 糕, 蛋糕, 三明治和沙拉. 例如, 星巴克韩国正在努力加强卖草莓糕, 艾草香味, 南瓜产品, 并提供免费的咖啡或奶油. 总而言之, 咖啡馆应注重提高其经济效率, 品牌和产品功率, 以加强大专院校学生的满意度. 由于店铺毗邻学大专院校可享受地缘优势, 就经济效率, 品牌和产品功率而言提供不同的服务, 很可能会提高客户满意度和回访. 咖啡厅的品牌, 因此, 应不断创新和变化, 以满足顾客的愿望. 由于这项研究只是针对在首尔的大专院校的学生, 需要针对不同地区和年龄组的比较研究来概括本研究的结果和建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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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놀로지 미학으로서의 사진 (The Photography as Technological Aesthetics)

  • 진동선
    • 조형예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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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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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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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오늘날 사진은 새로운 테크놀로지 형태인 디지털 이미지 프로세싱 앞에 심각한 정체성 위기와 존재론적 딜레마에 봉착했다. 사진은 그동안 우리에게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법을 제공하고, 또 우리 스스로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자각을 주었으며, 나아가 삶의 리얼리티의 본질을 재인식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 사진의 기능이 오늘날 무력화되고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출현으로 사진은 더 이상 사실의 기록, 결백의 증거, 그리고 리얼리티의 거울로서 간주되지 않는다. 오히려 유희의 도구 혹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환영과 기쁨을 창조하는 수단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출현은 이제 비로소 사진의 존재론적 당위성과 정체성의 문제를 냉정히 돌아보게 한다. 본 논고는 전자시뮬레이션 시대 새로운 이미지 생산의 첨병으로 등장한 디지털 이미지의 존재론적 측면을 규명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인류의 첫 번째 프로그램 미학으로 말해지는 사진과 첨단테크놀로지 미학으로 말해지는 디지털 이미지와의 관계를 기계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려 한다. 특히 올드미디어(사진)와 뉴미디어(디지털) 사이에 갈등 구조를 자본주의 역사관과 물질적 관점에서 살펴보려 한다. 본 논고는 이를 위해 우선 사진의 정체성 위기와 존재론적 위협이 어디로부터 발현된 것인지를 살피고, 또 지금까지 생산된 매체 미학적 담론들이 어떤 비평적 쟁점 속에 놓였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특히 사진이 강점으로 여긴 존재론적 인덱스와 생성론적 텍스트에 주목하여 사진 재현의 기반인 사실적 기록, 명료한 증거, 그리고 기술적 정교성이 어떤 기계미학의 층위에 있는지를 디지털 이미지를 대척에 두고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최근 일고 있는 사진의 죽음, 사진의 종말에 관한 담론들이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올드 테크놀로지로서 사진이 당면한 위기, 즉 현재 사진이 안고 있는 존재론적 위기(컴퓨터화 된 디지털 이미지 출현) 그리고 인식론적 위기(윤리, 지식, 가치관 등 급격한 문화 변동)는 매체미학의 본질상 당연한 위기임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이 같은 주장을 위하여 역사적으로 사진술이 어떤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거쳤으며, 또 어떻게 지금의 디지털 이미지에 이르게 되었는지 테크놀로지 미학 안에서 자동생성주의로서 색인 이미지, 디지털 코드로서 수치 이미지의 생성, 기원, 본질 그리고 정체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특히 본 논고는 논지의 정당성을 위해 다양한 매체미학자들의 주의주장 및 이론적 쟁점을 분석하고자 한다. 또 분석틀을 통해서 테크놀로지 미학의 근간인 기계, 기술성을 바탕으로 한 사진의 생성적 측면과 문화 안에서 변형된 프로그램에 의해 창조되는 디지털 이미지의 변형적 측면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렇게 사진과 디지털 이미지의 양자의 비교를 통해서 테크놀로지 미학 안에서 올드 미디어(사진)와 뉴 미디어(디지털 이미지)의 자리바꿈은 정당한 것이라는 사실과, 이런 역설적인 구조야말로 기계, 기술을 바탕으로 삼는 테크놀로지 매체의 숙명성이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논문의 정당성을 강화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본 논고는 하나의 얼굴,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로서 확증하고, 또 사진에서 부동의 존재론과 인식론의 모습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사진의 죽음,' '사진의 종말'은 쟁점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매체미학의 역사를 간과하는 오도된 비평이라는 사실을 결론으로 도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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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기록화를 위한 도큐멘테이션 전략의 적용 (Directions of Implementing Documentation Strategies for Local Regions)

  • 설문원
    • 기록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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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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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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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자치시대에 지방의 기록관리는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여 독립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된 지방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 한 곳도 설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데 지방기록관리의 방향을 '시설' 중심에서 '기록'과 '전문적 관리(사람)'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다. 특히 중앙의 기록관리 프로세스라는 보편성에 매몰되었던 개별 지역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역 기록화 전략을 적극 탐구할 필요가 있다. 도큐멘테이션 전략은 특정 지역, 주제, 사건 등에 관한 적절한 정보를 기록 생산자, 보존 기록관, 기록 이용자의 상호 협력을 통해 선별하여 수집하는 방법론으로서 8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제안되고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되어온바 있다. 이 연구에서는 도큐멘테이션 전략이 지역 기록화를 위한 방법론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고 우리의 지역 환경에 적용하기 위해서 고려해야할 점과 추진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하였다. 서구에서 개발된 도큐멘테이션 전략이 현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카이브즈 및 아키비스트의 능동적 역할을 추구하며 특히 지역사회에서 기록전문직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전략은 지방기록관리기관들은 행정사를 넘어서 지역사를 포괄적으로 기록화 하는 주체가 될 것을 촉구한다. 이에 따라 지방의 기록전문직들은 공공기록을 수동적으로 이관 받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지역의 기록을 수집하고 이를 서비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 지역 내 기록 수집기관들의 협력을 통해 단일 조직의 기능 재현에서 폭넓은 사회적 재현을 성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구에서 이러한 협력 모델은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실패한 경우가 많았지만 디지털 환경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기록 생산 및 소장기관들과 협력을 통해 지역의 지식역량은 물론 지역정보서비스의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도큐멘테이션 전략은 다양한 집단들과의 연대를 추구한다. 이 전략은 도큐멘테이션 주제와 관련된 집단이나 공동체로부터 열정과 에너지, 전문지식을 가져올 수 있는 장점을 가지며, 도큐멘테이션 전략은 기억을 남기고자 하는 주체들이 실천적 기록문화운동을 추진하는 하나의 방법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우리의 지역 현실에 적합한 기록화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첫째, 선택적이고 집중적인 기록화를 지향한다. 지역에 관한 모든 영역에 관한 포괄적 기록화를 추진하기 보다는 지역의 로컬리티를 가장 잘 반영하는 영역과 대상을 선정하여 기록화를 추진한다. 지역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인 사람, 사회 문화, 조직과 제도, 건조(建造) 환경, 공간 등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실체인 로컬리티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과 지역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둘째, 분산 보존과 통합적 재현을 지향한다. 기록화 주관기관은 다양한 기록 소장기관들과 소장자들을 연결하는 협력체계를 구축하여 분산 소장된 기록들을 통합적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한다. 즉, 한 지역의 역사 기록을 집중 보존할 기관을 정하기보다는 연계를 통한 기록화를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이를 위한 도구로서 지역 게이트웨이 구축을 제안하였다. 셋째, 열린 구조의 디지털 기록화를 지향한다. 지역 기록화는 맥락 재구성을 바탕으로 기록을 수집하는 방법론을 적용하게 되므로 선별된 기록에는 이미 수집자나 맥락 해석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특히 맥락 분석에 의거하여 스토리를 구성하고 이에 따라 기록을 수집하거나 연계할 경우,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선별이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기록 맥락의 해석과 기록화 영역의 선정 등의 과정에 지역 내 다양한 집단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집단 및 개인의 참여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넷째, 지역 내 협력기관들의 영역별 기록화 수준을 정한다. 기록화에 참여하는 기관들이 디지털 기록화에 맞는 역할을 분담 받아야 하고, 각 기관은 협력적 기록화에 참여함으로써 자관 이용자들에게는 더 나은 포괄적인 기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도서관의 디지털 장서개발에 활용하는 컨스펙터스 모형을 응용하여 디지털 기록화 방법론을 새롭게 설계할 것을 제안하였다.

경희궁 별원(別苑) 함춘원의 실지(實地) 경역 고찰 (A Study of the Impractical Area and Boundary of an Outer Royal Garden "Hamchunwon" Attached to Gyeonghuigung Palace)

  • 정우진;홍현도;소현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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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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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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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러시아공사관 부지 이전에 존재하던 경희궁 별원 함춘원의 경역과 본래의 외곽 경계를 고찰한 것이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러시아공사관 부지확보 및 신관 건립을 위해 작성된 3종의 도면을 살펴보면, 부지 내부에 함춘원의 원지형으로 보이는 2개의 낮은 봉우리가 남북 방향으로 존재했음이 확인된다. 공사관의 초기 계획안에는 출입문이 북서쪽 새문안로와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러시아 임시공사 베베르가 공사관 부지를 매입할 당시의 보고서에는 이미 좁은 출입구와 흙길이 있어 새문안로와 통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공사관의 출입문으로 계획한 부지 북서쪽에 함춘원으로 진입할 수 있는 관리 동선과 원문(苑門)이 위치했음을 알게 해준다. 둘째, 공사관의 건립 당시 높은 언덕 상부를 절토하여 대지가 조성되었고 그 결과 2단의 계단식 지형이 만들어졌다. 본관 및 서기관동 등이 세워진 지반은 가장 높은 봉우리를 깎아 평평하게 다짐하여 만들어졌고 이때 다량의 토량이 정지작업에 사용되었다. 본관 북쪽 영역의 경우도, 산지를 깎아 평평하게 지형을 고른 흔적이 역력하고, 조망이 수월한 물리적 환경을 활용하여 산책로와 정자가 있는 전망형 정원이 조성되었다. 이는 궁궐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지형에 민간의 조망을 막기 위해 별원을 조성했던 지형 조건과 상통한 이용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미국, 영국, 러시아공사관 주변의 공간 변화를 보여주는 1880~1890년대의 사진에 함춘원 담장이 부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사진분석 결과 함춘원은 러시아공사관 부지 북측 영역을 차지하고 있으며, 공사관의 북쪽, 서쪽, 동쪽 담장이 함춘원의 담장과 근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공사관 남쪽 영역은 본래 민간의 가옥이 있던 곳으로서, 여러 자료에서 수십 채의 민가와 농경지를 매입한 정황을 살필 수 있었다. 넷째, 광해군 연간 경덕궁의 별원으로 조성된 함춘원은 경복궁 중건 때 경희궁의 전각을 뜯어서 공사 부재로 사용하면서 별원으로서의 장소성을 상실했으며, 1885년경 러시아에 매각됨으로써 멸실되었다. 함춘원이 있던 경역은 신관의 건립 뒤로 주요 건물과 정원이 있는 러시아공사관의 핵심적 공간으로 변용되었다. 따라서 러시아공사관 북측 영역에 한정된 함춘원은 1897년 이후 조영된 경운궁 및 선원전과 시간적, 공간적 맥락이 닿아 있지 않으며, 선원전의 배후림 또는 배경림으로 보는 시각도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