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enter back sl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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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랙스의 신체 적합성을 위한 원형 연구 - 20대 초반의 여성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Basic Block of Slacks for Bodily Fitness - for Women in Their Early 20s′ -)

  • 김옥경
    • 복식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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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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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7-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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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The objectives of this study were to develope slacks basic block to be used for improving the attactive silhouette and bodily fitness in ready-to-wear and educational patterns. The subjects were from 20 to 24 years old and twenty six body measurements were taken on the National Anthropometric Survey of Korea in 1977. The women in 20's think ideal body shapes are high stature, long legs, slander waist, hip, abdomen, thigh, ankle and light weight. And so it needs to be studied to studied to make slacks pattern which show slander girth and long length. The study was carried out by the following procedures. 1. Through the comparative investigation on the conventional slacks patterns of System M. Muller & Sohn, Secolli, 文化's in Japan, and Won-ja Rim's and the clothing experiment, the characteristics of every four patterns were found. 2. According to the center back slant, reflecting the change of waist circumference, thigh circumference, back crotch length, and the new suitable slacks pattern was achieved. 3. The sensory evaluation for appearance and comfort was applied to evaluate the new slacks pattern by comparing with the conventional slacks pattern. From the result of the sensory evaluation, it was found that the new slacks pattern was more suitable for appearance. 4. The new slacks pattern for women in their 20's were developed as follows ; The waist line came down 2 ㎝, the waist circumference was plus 2㎝ than originally, and the back hip circumference was larger 1 ㎝ than the front hip, the slacks length was created stature/8×4.9, the knee length was stature/8×2.7. The center back crotch length was interspaced 1∼1.5㎝ at the center front, and was at right angle the point which was raised 5㎝ at the side front. This size is not the absolute size but it helps to make the surplus on any other ready-made slacks for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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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위치가 볼링투구동작에 미치는 영향 (The Effects of Target Position on the Bowling Motion)

  • 김민수;백진호;곽창수;이기청;박종철
    • 한국운동역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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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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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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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이 연구는 목표위치가 볼링투구동작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서 볼링경력이 4년이상의 여자 고교선수 4명을 대상으로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한 3차원영상을 통해 볼링투구동작을 분석하였다. 이 결과를 보면, 1번 핀을 처리할 때는 목표위치를 향하여 고관절회전각은 다운스윙에서 백스윙정점까지 크게 유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7번 핀을 처리할 때는 투구하는 오른쪽 어깨측에 대하여 7번 핀은 좌측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연구대상자의 볼중심위치의 좌우이동이 가장 낮게 나타났고, 릴리즈구간에서 소요시간과 수평속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어깨기울기각은 백스윙정점에서 릴리즈구간으로 갈수록 크게 증가하였으며, 좌측방향으로 투구동작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어깨회전각이 작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0번 핀을 처리할 때는 릴리즈구간에서 어깨회전각과 동체뒤틀림각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목표위치는 볼링투구동작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구주오소경과 명주(하서주) - 그 도시구조를 중심으로 - (9 Provinces and 5 Secondary Capitals, Myeong-ju(Haseo-ju) - Revolve Around Urban Structure -)

  • 야마다 타카후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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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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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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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신라는 문무왕 18년(678) 당나라군이 철수함에 따라 명실공히 한반도를 통일한 뒤, 그 판도를 중국 지방행정구획 제도를 모방하여 아홉 개의 주로 구분하고, 거기에 소경 군 현을 배치한 지방행정 조직을 정비하였다. 이른바 9주5소경(九州五小京)이라 불리는 지방행정제도이다. 주는 현재의 대한민국(이하 한국)의 도(道)에 해당하며, 소경은 광역시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수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덕왕 16년(757) 겨울 12월조에 의하면 5소경, 117군, 293현에 이른다 통일신라시대의 지방도시인 9주5소경(九州五小京)의 연구는 문헌사학 중심으로 이루어져, 주성(州城)과 소경성(小京城)의 위치와 그 도시구조에 대해서는 지금껏 크게 논의되었던 적이 없어 명확치 않은 점이 많다. 고고학적 도시구조의 복원연구는 박태우의 논고("통일신라시대의 지방도시에 대한 연구" 1987년)와 필자의 논고("新の九州五小京城郭の構造と實態について-統一新による計畵都市の復元硏究-"2009년) 정도이다. 강원도 강릉시는 원래 예(濊)의 고국(古國)으로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선덕왕 8년(639)에 북소경 하서양주(北小京; 河西良州))으로 되었는데, 무열왕 5년(658)에 하서주(河西州)로 소경에서 주로 바뀌었다. 이후 경덕왕 16년(757)에는 명주로 개칭되었고 그 뒤, 고려시대 이후로도 명칭은 여러 가지로 변하였다. 박태우는 나성 흔적이 남은 도시로 분류하여 명주동에 있었던 성지로 비정하고 있는데, 현재는 시가지화로 인하여 확인할 수가 없다고 한다. 또한 관동대학교에서는 강릉시 중심부로부터 서남서 약 3km에 위치하는 명주산성을 주치(州治)로 보는 설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일제시대의 측량도에서 볼 수 있는 유존(遺存) 토지구획로 보아 경주시의 신라금경이나 다른 많은 도시와 같이 방격의 가구, 즉 방리(坊里)를 갖춘 도시로 복원하였다. 다음은 그 구조에 대해 서술하였다. 강릉의 시가지는 시내를 남서에서 북동으로 흐르는 남대천의 왼쪽 기슭 평탄지에 위치하고 있다. 부근에 그다지 높은 산은 없으나 시가지의 북측에는 산이 동서로 이어져 있으며, 남대천으로부터의 평지부분 너비는 최대가 1km 정도로 그다지 넓지는 않다. 현재는 강릉시의 중심부로 시가지화가 진행되어 강릉역을 중심으로 한 방사상의 구획정리 등도 이루어져 옛 토지구획이 거의 소멸된 상태이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지형도 등을 보면 시가지 중심부인 옥천동, 임당동, 금학동, 명주동 등의 일대에 한 변 약 190m를 기본으로 하는 방격의 토지구획이 북서-남동에 약 0. 8km, 북동-남서에 약 1. 7km의 범위로 잔존하고 있는 것이 확인 가능하다. 방격의 유존 토지구획은 다른 9주5소경(九州五小京)의 사례를 통해 보면 통일신라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단, 방격 한 변의 길이가 190m로 신라의 금경이나 다른 도시유적에서 볼 수 있는 한 변 160m나 140m의 규격과는 다르다는 점이 앞으로의 검토과제이다. 토지구획의 방위는 지형에 준하여 북서-남동 축에서 북쪽으로부터 약 $37.5^{\circ}$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는 남대천의 방위와 북측의 산지에 제약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여 진다. 방격의 유존 토지구획이 잔존하는 범위로부터, 최소로 보더라도 북서-남동 4방${\times}$북동-남서 7방 크기라는 장방형으로 복원하였다. 단, 방격의 유존 토지구획이 퍼지는 정도로 보아, 남서측과 북서측에 각각 1방 씩 늘어난 북서-남동 5방${\times}$북동-남서 8방(북서-남동 약 $950m{\times}$북동-남서 약 1520m)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전체의 형상은 장방형으로, 당의 장안성(長安城)이나 일본의 평성경(平城城)과 같은 중축대로(주작대로)가 상정 가능한 토지구획은 확인되지 않는다. 명주의 도시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이제껏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도시유적 추정지 내부에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강릉읍성이나 관아지의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기와류, 토기류 중에는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만한 것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또한, 관아지에서 검출된 조선시대의 건물지는 모두 정방위가 아닌 크게 기울어진 방위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강릉에서 볼 수 있는 방격 유존 토지구획이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명주성"의 명문 막새기와가 출토된 명주산성의 역할로, 이것이 주치였던 것을 필자는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의 고대도성은 평지성과 산성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통일신라가 되어도 방리제 도성인 금경 주위로 명활산성, 남산산성, 서형산성의 산성군이 계속되어 유지되고 있었다. 구주오소경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도 도시유적 부근에 산성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명주도 평지의 도시와 산성이 세트가 되어 주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