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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통천의의 혼천의 연구 (A STUDY ON THE ARMILLARY SPHERE OF TONGCHEON-UI DESCRIBED BY HONG DAE-YONG)

  • 민병희;윤용현;김상혁;기호철
    • 천문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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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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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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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This study aims to develop a restoration model of an armillary sphere of Tongcheon-ui (Pan-celestial Armillary Sphere) by referring to the records of Damheonseo (Hong Dae-Yong Anthology) and the artifact of an armillary sphere in the Korean Christian Museum of Soongsil University. Between 1760 and 1762, Hong, Dae-Yong (1731-1783) built Tongcheon-ui, with Na, Kyung-Jeok (1690-1762) designing the basic structure and Ann, Cheo-In (1710-1787) completing the assembly. The model in this study is a spherical body with a diameter of 510 mm. Tongcheon-ui operates the armillary sphere by transmitting the rotational power from the lantern clock. The armillary sphere is constructed in the fashion of a two-layer sphere: the outer one is Yukhab-ui that is fixed; and the inner one, Samsin-ui, is rotated around the polar axis. In the equatorial ring possessed by Samsin-ui, an ecliptic ring and a lunar-path ring are successively fixed and are tilted by 23.5° and 28.5° over the equatorial ring, respectively. A solar miniature attached to a 365-toothed inner gear on the ecliptic ring reproduces the annual motion of the Sun. A lunar miniature installed on a 114-toothed inner gear of the lunar-path ring can also replay the moon's orbital motion and phase change. By the set of 'a ratchet gear, a shaft and a spur gear' installed in the solstice-colure double-ring, the inner gears in the ecliptic ring and lunar-path ring can be rotated in the opposite direction to the rotation of Samsin-ui and then the solar and lunar miniatures can simulate their revolution over the period of a year and a month, respectively. In order to indicate the change of the moon phases, 27 pins were arranged in a uniform circle around the lunar-path ring, and the 29-toothed wheel is fixed under the solar miniature. At the center of the armillary sphere, an earth plate representing a world map is fixed horizontally. Tongcheon-ui is the armillary sphere clock developed by Confucian schola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he technical level at which astronomical clocks could be produced at the time is of a high standard.

한국무속의 신격 연구1 - 서울과 고성의 재수굿을 중심으로 - (The Study on the Divinity of Korean Shamanism 1)

  • 심상교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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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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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5-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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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한국무속에 나타난 신격의 유형과 성격을 연구하는 과정의 하나로 서울과 강원도 고성의 재수굿에 나타난 신격에 대해 연구하였다. 신격에 대한 연구란 무속신이 각 굿에서 의미하는 바, 무속신의 위계, 무속신 상호간의 관계, 무속신의 각 지역 간 대비점 등에 대한 고찰을 의미한다. 본고의 무속 신격 연구는 채록된 무가를 근간으로 하였다. 서울의 재수굿은 논자에 따라 10거리에서 18거리까지 다양하지만 대체로 10거리 내외다. 본고에서는 김태곤이 채록한 12거리 무가를 근간으로 한다. 12거리는 부정거리, 가망거리, 말명거리, 상산거리, 별상거리, 대감거리, 제석거리, 호구거리, 군웅거리, 성주거리, 창부거리, 뒷전거리 등이다. 강원도 고성의 재수굿은 8거리로 부정굿, 서낭굿, 조상굿, 성주굿, 지신굿, 칠성굿, 말명굿, 거리풀이로 구성되었다. 말명거리는 독립굿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지만 분석텍스트에 의거하여 본고에서는 독립된 거리로 본다. 그리고 상산 별상 신장 대감을 분리하기도 하고 묶어 대안주로 보기도 하지만 역시 김태곤무가집의 텍스트대로 분리하여 고찰한다. 재수굿의 핵심은 이성과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이용해서 개인의 평안을 기원한 측면이 강하다. 인간의 기억에 저장된 경험의 세계를 이성과 과학이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측면이 반영된 것이고 인간 삶의 넓고 다양한 측면에 대해 해명하고자하는 탐구와 정리가 재수굿에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서울의 재수굿 각 굿에는 그 굿의 근간이 되는 주신이 있고 주신의 의미를 분명히 하려는 종신, 속신이 있다. 한 굿의 주신은 다른 굿에서 종신이나 속신이 되기도 한다. 각 신격들은 상하관계로 존재하지 않고 평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재수기원의 신들은 기본적으로 나라안위${\rightarrow}$지역안위${\rightarrow}$가정안위 순으로 굿을 받게 된다. 국태민안${\rightarrow}$안과태평${\rightarrow}$부귀공명${\rightarrow}$재수소망의 순서가 되는 것이다.

영화 <도쿄!>에 나타난 도시적 삶의 양상 (Aspects of the Urban Life in Tokyo!)

  • 신정아;최용호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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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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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5-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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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2008년 개봉된 영화 <도쿄!>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인테리어 디자인>, 레오 카락스 감독의 <메르드>,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편의 단편은 모두 도시적 삶에서 비롯된 자기 소외의 경험을 다룬다. 도시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삶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삶의 자기 유지와 관련되어 있다. <도쿄!>에서 세 명의 감독이 펼쳐놓은 이야기는 이러한 도시적 삶이 자기-보존적이면서 동시에 자기-해체적인 양상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는 문을 열면서 닫고 닫으면서 여는 이중구속의 역설적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도시적 삶은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데리다가 무한하게 확장할 것을 제안했던 자가면역적 논리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삶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삶의 자기 유지와 관련된다. <도쿄!>를 구성하는 세 편의 단편에서 도시적 삶은 전유적, 탈전유적, 비전유적인 존재 양상을 통해 자기성을 드러낸다. 전유적 자기가 타자를 다시 제 소유로 삼음으로써 자기를 더욱 강화한다면 비전유적 자기는 순수하게 동일한 것으로 남고자 스스로를 방어한다. 이러한 도시적 삶의 양상은 필연적으로 자가면역적 반작용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오직 탈전유적 자기만이 자가면역적 반작용 속에서 약속 안의 위협을 감수하며 자기성의 움직임의 또 다른 양상의 가능성을 예표한다.

한국고전문학을 활용한 체험형 게임 관광프로그램 개발 사례 : 중인가객 김수장과 『해동가요』를 대상으로 (A Case of Development of Experiential Game Tourism Program Using Korean Classical Literature)

  • 박보연;김태웅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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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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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48-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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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이 논문에서는 한국고전문학을 활용한 체험형 게임 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하는 과정의 첫 번째 시도로써 중인가객 김수장과 그의 가집 『해동가요』를 대상으로 1차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를 위하여 관광콘텐츠로서 체험형 게임과 한국고전문학의 가치에 대한 이론적 검토를 먼저 진행하였다. 이후 프로그램의 수요층을 가족, MZ 세대 및 연인, 외국인의 세 분류로 설정하였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각 수요층의 성격 및 프로그램 선호도를 확인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가집 『해동가요』와 김수장이 창작한 7수의 시조 작품에서 분석틀에 따라 각각의 역사문화자원으로서의 주요 가치를 발굴하고, 대상과 관련된 수요층의 선호를 분석하였다. 이에 따라 가족 단위는 모험플롯으로, MZ세대 및 연인의 경우에는 사랑플롯으로, 외국인의 경우에는 모험과 사랑을 혼합한 플롯으로 구성하여 각 수요층에 맞게 서사구조를 차별적으로 조직하였다. 이 글은 스토리텔링적인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잘 활용되지 못한 한국고전문학, 그 중에서도 김수장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에서 스토리를 발굴하고, 이를 체험형 게임 관광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한국고전문학의 측면에서도, 관광학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하였다. 이후로도 다양한 조선의 문학인들을 발굴하여 지속적으로 스토리텔링을 진행한다면 고전 문학 기행 콘셉트의 여행상품군의 활성화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조경기사 필기시험 중 한국조경사 문제의 출제 경향 (The Tendency of the Written Test Questions for the History of Korean Landscape Architecture in National Qualification Test of a Landscape Engineer)

  • 소현수;임의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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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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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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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축적된 국가기술자격검정 조경기사 필기시험 중 조경사 과목의 문항을 대상으로 하여 한국조경사 문제의 출제 경향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제공한 출제기준은 조경사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최근 '서양의 조경'에 대한 문항의 출제 비율이 낮아진 반면에 '한국의 조경'에 대한 문항의 출제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둘째, '한국의 조경'에 대한 문항에서 약 30여 종의 전통수종과 11가지 유형의 전통조경 시설물이 포함되는 전통조경요소가 다루어졌다. 또한 역사서, 지리서, 실학서, 원예서, 문집 및 기타, 정원도 및 회화자료로 분류되는 전통조경 관련 기록물 25개가 제시되었다. 다음으로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궁원의 조영 시기와 관련된 왕, 별서의 조영자나 소유자, 기록물의 저자, 중국 문인으로 구성되는 인물들이 문항에 등장하였다. 셋째, '한국의 조경'에 대한 문항 중에서 선사시대와 발해시대에 해당하는 문제는 없었으며 조선시대에 집중 분포되었다. 이에 조선시대로 한정하여 고찰한 전통공간 사례지는 별서가 가장 많았고, 도성 궁궐, 주택, 누 정 대, 서원 순서였으며, 읍성과 사찰의 사례지는 낙안읍성과 용주사뿐이었다. 넷째, 조선시대 전통공간과 관련하여 사례지의 조성 시기, 조영자, 입지 특성, 건축 구조, 평면 형태, 정원 구성 요소에 대한 세부적 내용 파악이 요구되었다. 또한 한국조경사 교재 9권으로부터 문항에서 추출한 전통공간 사례지의 출현 여부를 검토한 결과 동춘당, 풍암정사, 십청정, 곡수대, 유상대, 심곡서원은 등장하지 않았다. 연구 결과를 통해서 보편성이 결여된 지엽적 사실에 대한 정보를 묻는 문제, 조경사 교재에서 파악하기 어려운 정보와 대상지가 포함된 문제 등과 같은 한국조경사 기출문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성종조의 문사양성과 문집편간 (A Study of the Training for the Literary Scholars and of the Compilation and the Publication of Anthologies during the Reign of the King Sungjong in Chosun Dynasty)

  • 신승운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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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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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1-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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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
  • In this paper, I intended to study the policy executed by the king Sungjong(성종), the ruler of the early Chosun(조선) Dynasty, for the purpose of the training for the literary scholars under the diplomatic necessity and from his own interest in literature, and the compilation and the publication of anthologies of the famous civil officials in those days under the influence of this policy. The overall findings of the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 1. Sungjong was comparable with the Sejong(세종) in his studiousness and especially, he was very interested in literature. He composed verses personally, showed them to his civil officials and demanded their poems in response to his own ones. Futhermore, he executed steadily the institutions of Eung-je(응제), Kaw-si(과식) and Weol-kwa(월과) that demanded creative writings from his civil officials. The purpose of these institutions which was propelled by the king Sungjong was the training for the literary scholars under the diplomatic necessity. 2. Chosun Dynasty exchanged envoys with Myeong(명) Dynasty during the time of the king Sungjong as many as 100 times. The training for the excellent literary scholars was nationally urgent problem because the competent literary scholars were needed whenever Myeong Dynasty dispatched the envoys to Chosun Dynasty. Eung-je, Kwa-si and Weol-kwa were executed from practical demand and 1 - 3 persons at the minimum, 60 - 70 persons at the maximum took part in this institution at a time. This means that 60 - 70 literary works were produced at a time. Therefore, the steady execution of Eung-je, Kwa-si and Weol-kwa inevitably resulted in mass production of literary works. 3. The king Sungjong instructed his civil officials to compile the anthologies of the then representative civil officials as a means to encourage literary compositions, read it himself and took actions to publish them at the expense of government. There were six anthologies compiled and published under this policy of the king Sungjong, Kang Heui­maeng's Sasukjejib(강희맹, 사숙제집), Shin Suk-ju's Bohanjaejib(신숙단, 보한제집), Kim Su-on's Shikujib (김수온, 식우집), Choe Hang's Taeheojeongjib(최항, 태허정집), Seo Keo-jeong's Sagajib (서거정, 사가집), Lee Seok-hyeong's Jeoheonjib(이석형, 저헌집). Yu Ho-in's Noekyejib(유호인, 뇌계집+CZ48), Lee Seung-so's Samtanjib(이승소, 삼탄집), Kim Jong-jik's Jeompiljaejib(김종직, 점필제집) of three were examined by the king Sungjong, but published later because of the death of the king. 4. jeompiljaejib was compiled by order of the king Sungjong and passed Eulram (을람 : king reads an anthology personally) which contained Joeuijemoon(조의제문) that criticized the king Sejo(세조) who had usurped a throne. The recording of Joeuijemoon became an issue in process of Muosahwa(무오사화), and it was ordered that the printing blocks should be broken and the published books should be collected and be burnt up. These procedures destroyed the social atmosphere that people considered it an honor writing literary compositions, compiling and publishing anthologies thanks to the steady efforts of the king Sungjong. 5. It had an important effect on the compilation and the publication of anthologies after that, breaking the printing blocks, collecting and burning up the pulished books of Jeompiljaejib because of recording of Joeuijemoon. Namely, it got universalized to delete compositions that can cause problems in the future as well as the parts related to political issue, from the objects of recording. Such tendency became one of the important principles of the anthological compilation after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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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석정원림에 담긴 조형언어의 의미론적 해석 - '취석'과 '칠성암'에 담긴 알레고리와 미메시스를 중심으로 - (A Semantic Interpretation of the Design Language in the ChwuiseokJeong Wonlim of Gochang - Focusing on the Alegory and Mimesis in 'Chwuiseok' and 'Chilseongam' -)

  • 노재현;이현우;이정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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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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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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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고창 취석정원림 조영에 깊은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되는 핵심적 조영언어에 대한 의미론적 해석이다. 은일(隱逸) 취석(醉石) 그리고 칠성암(七星巖)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그 속에 깃는 은유와 상징성 등 조영자 및 관련자들의 송 수신의미를 통해 파악함으로써, 16세기 은일의 정신문화가 원림 조영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유추하고자 하였다. 먼저 원림 내부에 의도적으로 '칠성(七星)'을 상징하기 위한 '담두르기'가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일종의 평면적 '선두르기'이며 적극적 의미경관 연출의 결과이다. 의도적으로 모여진 칠성암을 통해 조영자 노계 김경희 자신이 둔세한 취석정원림이 바로 우주 운행의 중심이라는 유학자로서의 천문학적 사고와 인식을 새겼을 것으로 추론된다. 노계집에 나타난 어휘소 분석 결과, 노계와 취석정 관련자들의 기문에서는 술 또는 취석, 도연명 그리고 그의 은일처인 율리(栗里)가 주로 언급되고 있음을 볼 때, 은일의 심정으로 자연에 귀의해 술을 마시며 한가로운 생활을 한 노계를 도연명에 비견하고 있다. '술취함'은 도연명과 같은 자유를 갈구하며 산수상영지락(山水觴詠之樂)을 취했던 노계의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도연명과 마찬가지로 노계 스스로에게 술은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자유의 표상으로 해석된다. 이는 도연명에 대한 흠모를 기반으로 한 행동 재현과 의미 모방이기도 하다. '다른 것으로 말하기'라는 알레고리가 함축하듯이, 도연명의 고사에서 유래된 '취석(醉石)'은 여러 겹의 의미읽기가 가능한데, 표면적으로는 원림 내 존재하는 '술 취해 잘만한 바위'와 개인적 근심을 해소시켜주는 '망우물(忘憂物)'이다. 더불어 내면적으로는 '취(醉)'의 정신적 일탈을 통해 욕심 없는 마음을 지키는 자유의지'이자, 은일을 택한 노계가 도연명의 자족의 심정을 빌어 '자연지도(自然之道)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라는 은유적 확대적 해석의 알레고리가 가능하다. '취석'은 유가적(儒家的) 가치관을 투영, 본인의 상황을 고결한 도연명의 심정에 감정이입하여 표현한 원림 조형언어로, 도연명에 대한 흠모를 바탕으로 한 알레고리이자 행동적 미메시스(mimesis)이며, '객관적 현실의 미적 반영'으로 볼 수 있다. '도연명'에 대한 표현적 행태적 미메시스가 중국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취석 각자(刻字)와 동명이정(同名異亭)의 취석정 건립을 통해 반복 재현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옥소선 이야기> 속 소시민적 욕망의 성취와 한계 (The Achievements and Limitations of Petit Bourgeois Desires in "Oksosun Story")

  • 이원영
    • 고전문학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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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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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7-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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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연구에서는 천예록 소재 <옥소선 이야기>를 통해 작중 인물의 소시민적 욕망의 면모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소시민적 인물의 욕망과 그 지향성은 다분히 세속적이며 이기적이다. 이러한 인물상은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시기에 대두하기 시작한 중립적 존재로서의 소시민적 특성과 많이 닮아있다. 이 소시민이란 개념은 현대의 대중 및 서민의 한 특성을 가리키는 데에도 자주 사용된다. 소시민적 태도에 대한 지금의 이해와 작품 속 인물들의 특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시민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에 대한 원대한 지배이념이나 현실개혁 의지가 아니라, 무엇보다 자기 삶의 만족을 이루고자 하는 현실적이고도 일상적인 욕망의 성취와 안정이다. 이에 주체가 어떠한 욕망을 가지는 지에 따라 충족의 태도와 과정에서 반사회적이거나 이기적인 경계적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행동의 반경은 거대한 현실의 지배체제 속에 국한되어 있고, 자신의 소유와 만족을 충족하는 것에 개인적인 삶의 목표가 그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생이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 가족과 사회를 저버리고 자란과의 결연을 충족하지만, 반사회적 태도로 끝까지 사회와 대립하기 보다는 과거급제를 통해 가정과 사회 속의 재진입하여 안정을 획득하는 것과 통한다. 또한 본 작품이 현재적으로 유의미한 이유는 사랑이라는 인간 본연의 자기 욕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긍정하여 충족하고자 반봉건적 행위-불효, 불충, 불열-마저 감행하며 움직인 생의 주체적 행보에 있다. 이러한 생의 욕망 추구에 힘입어 옥소선도 관기라는 자신의 신분적 굴레를 벗어나 사랑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자기욕망을 긍정하게 되어 사회제도로부터 일탈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자기 행적의 사회적 한계점을 인식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구적 방식으로 노력한다. 이에 과거급제라는 개인의 지적능력 실현으로 사회에 재진입하는 점에서 소시민적 욕망의 성취와 한계의 일면을 찾을 수 있다. 조선 후기 근대로의 이행기 때에는 개인적 욕망과 자유의지에 목마른 근대적 인간형과 함께 주체적 삶에 대해 아직 이질적 몰이해 상태인 봉건적인 인간형이 혼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는 지금, 여기의 현재적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은 현실의 거대한 장벽 안에서 왜소한 '자기'의 존재적 각성과 미진하게나마 발현되는 주체적 욕망에 큰 가치를 부여하며 이를 조명하고 있다. 나아가 현실논리 속에 실패를 경험한 개인의 경험과 각고의 노력을 소소한 성취로서 긍정한다. 이렇듯 스스로의 만족을 향한 행복을 능동적으로 추구하며 인간답게 사는 삶을 권면한다는 점에서 본 작품은 현대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문학적 의미를 발한다.

조선 중기 경주 서출지(書出池) 일원의 정원 조영과 경관 특성 (Garden Construction and Landscape Characteristics of the Seochulji Pond Area in Gyeongju during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 김형석;심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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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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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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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등장하는 유서 깊은 연못인 경주 서출지(세계유산, 사적 제138호)가 조선 중기 풍천 임씨(豊川 任氏) 가문의 정원으로 기능하게 된 배경과 정원의 형성, 당시 경관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이를 위해 기문 시문 개인문집 등의 문헌조사와 현지조사를 수행하였으며, 조선시대 문헌에 나타난 경관과 과거 사진 등을 비교하여 경관 변화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집약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라 이후 조선 초기까지는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해 당시의 기능과 경관에 대해 추측할 수 없지만 조선 중기 풍천 임씨가 동남산 일원에 세거하면서부터 별서정원으로 경영되었다. 당시에도 서출지를 유서 깊은 장소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임적(任勣, 1612~1672)이 이요당(二樂堂)을 건립하면서부터 풍천 임씨의 정원으로 기능하였다. 둘째, 문헌 기록상 이요당은 객당 정사 별각 별서 등으로도 불렸는데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 누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능 때문에 평소에 빙허루(憑虛樓)라는 명칭이 통용되었다. 셋째, 서출지는 뒤로는 경주 남산(금오산), 앞으로는 넓은 들판과 남천이 흐르는 풍경이 수려한 곳에 입지하였으며, 인문환경과 자연환경을 갖춘 전형적인 조선시대 별서정원이었다. 넷째, 현재 풍천 임씨 종가가 사찰로 변하여 별서정원과의 관계성은 사라졌지만 현재의 주요 경관 요소인 연꽃과 소나무 대나무 숲이 옛 시문에도 나타나며, 현재 서출지 일원은 개발이 거의 진행되지 않아 경관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 서출지를 상징하는 배롱나무는 옛 시문과 과거 사진에 확인되지 않고 수령이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배롱나무가 두드러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 본 연구를 통해 서출지 일원을 전설 속의 장소로만 부각할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정원으로서 공간적 의미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경주 남산 일원의 문화 콘텐츠이자 조경사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겠다.

연행록의 계보적 독해 - 18세기 전반 노론 사대신 전주이씨 집안 연행 기록의 개관과 관심지향 분석 - (Genealogical reading on YeonHangrok : A general survey on a series of YeonHang documents of 18th Century No-Ron Jeon-Ju Lee's Family(老論 全州李氏) and an analysis on their points of concern)

  • 김현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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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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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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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고는 개인적으로 지어진 한문 산문 연행록(燕行錄)이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한 18세기 전반의 구체적인 창작층과 창작된 산문 연행록의 관심지향 양상을 살피기 위하여 쓰여졌다. 실지적인 작품을 다수 남겼으나, 문헌군 형성 전에 주목받지 못하였던 작자층 중에 '서인 노론 사대신' 중 소재 이이명, 그 아들 일암 이기지, 한포재 이건명의 사적(私的) 한문 산문 연행기록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우선 현전하는 문집에 수록되어 있는 그들의 연행 관련 글을 살핀 결과, 소재와 일암, 한포재의 연행 의식은 '연행의 중요성'을 의식하며 연행의 임무를 경험 대상에 대한 '관찰과 주목'이라는 태도로 실행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연행 의식이 구체적으로 그들의 한문 산문 연행기록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가를 살핀 결과는 다음과 같다. 소재 이이명과 일암 이기지 부자의 1720년 사행 결과로 나온 "연행잡지"와 "일암연기"는, 공통적으로 노가재 김창업과 그의 저작 "노가재연행일기"(1712)가 창작의 원인이 되었지만 서술 방법에 있어 화소의 편성을 보면 일암은 천주당을 중심한 서양 문화, 길에서 본 문물의 번성 관찰, 역관 등에게서 들은 현재의 정세 등 자신의 관심사에 따른 직접 체험들의 영역을 편성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노가재의 교유 인물과 견문을 구비하는 방식을 띤다. 한편 아버지 소재는 자신이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현상과 일들을 통하여 그의 연행 기록을 작성하는 원칙으로 조선에 영향을 준 청(淸)의 정세, 세법(稅法) 등 제도에 대한 관심지향성을 보인다. 1721년 세제 책봉을 위한 주청사로 간 한포재 이건명의 "한포재 사행일기"에서는, 앞선 두 개의 연행록처럼 자신의 연행 기록을 촉발시킨 사람이나 작품을 거론하지 않지만 서술의 곳곳에서 소재와 일암의 기록, 혹은 전해 들었을 그들의 경험 견문이 반영되어있다. "한포재사행일기"는 등장화소의 성격상 '공무' 와 '사신의 사명'을 중시하고 그 과정을 충실히 소개하고 분석한다는 점에서 소재의 연행기록인 "연행잡지"와 가깝다. 그러나, 자신의 심정 술회를 하기 위해 "일암연기"의 점술 화소를 유입하기도 하고, 공무 외의 견문과 체험에 대해서도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간략하게 기록한다. 결국 18세기 전기 한문 산문 연행록의 주 작자층인 서인 노론계 전주 이씨의 작자들은 경험으로서 '사행의 중요성'을 공통적으로 인지한 채로,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영역을 주목하고 관찰하면서 연행록의 내용을 제시하였다. 소재와 한포재는 '공무'와 '사명'의 범주로 특화되며, 일암 이기지는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타문화의 일상 문물과 교유로까지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