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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전시가 될 때: '감화'로서의 전시공간 (When Attitudes Become Exhibition: Exhibitional Space as "Affects")

  • 유진상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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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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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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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What is an exhibition? Is it of the system which is designed to serve Art Works in their representation, or is it a place where the artistic presentation could be considered as art work itself? After modernist era, the role of exhibitional space might have been shifted from those two principle raison d'$\^{e}$tre of exhibitional space into another, a new one. What Deleuze would call it as he borrowed the term from Spinozian philosophy : the Affectional Space. This new type of exhibitional space has been announced since 1969 when a Harald Szeeman, young independent curator and art critic from Swiss, has organized his brilliant exhibition "When Attitudes become Form" in Bern. For sure, these intensities in curatorial practices have been existing before like some early 20th century exhibitional efforts by Marcel Duchamp, El Lissitzky, Yve Klein, etc. It has influenced much on many of, otherwise most of contemporary art exhibiting practices. And now it seems to be necessary to give it a conceptual idea which could enlighten better the new paradigm of exhibitional practices that we try to clarify. I would propose the idea of that new exhibitional space as "space of non-organic becoming". This idea is inspired by Deleuze's ever famous philosophical work Thousand Plateaus, which, with Folds by the same author, has contributed to many contemporary and aesthetical debating issues. What is "affect"? Explaining about Spinoza's principle concepts, Deleuze defines it as a kind of durations or variations which are constituted by different levels of perfection. One perfection is precedented or followed by certain perfection bigger or lesser through lived transitions or passages. So each time it actualizes and reflects the state of All as a cut of Reality while each state of affections, images or ideas can not be separated from the duration which binds it to the precedent state and extends it to following one. Affect is also a term of changes. One affects at the same time it is affected. Exhibitional space as affect (or affectional space) is distinguished from representational and presentational space in the way it attributes movement, produces arrangements and generates new factors of artistic creation including those which are outside of ever accepted artistic elements. The concepts of affectional space are used especially to enlighten contemporary situation of artistic and curatorial processes. Art is no more limited to be seen as mere objects of aesthetical admiration, nor as art vis-$\`{a}$-vis art relationship apart from the whole. It includes possibilities and virtuality that appear in the imperceptible and undescribable manners if delimited in given language. As once noticed by Kuhn, we might be living in a paradigmatically shifting world, not only in Art but also in Life. And we need to express it more with Art as moving and affectional nods than as just a clean window or a distinct manual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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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의 감성 표현에 관한 연구 (The Trends of Emotion Expression in Digital Times)

  • 호윤정
    • 조형예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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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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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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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Current information-oriented society is expanding rapidly with the huge change to our society from the information revolution emerged in mid '50s. Information technique such as computer, communication satellite and cable technology play their in this information-oriented society, and in 1980s, digital technique was adopted to media, inviting new phenomenon in communication of overall society. Expectations and hope for new trends and changes from digital era flourished when we entered into new Millenium, the 21st century. Since then we have gone through changes in years from analogue to digital. Now the word 'digital' is conceived in unified manner in almost every fields and influences overall society, changing our life pattern rapidly. Modern society had demanded some speedy and bidirectional communication tool in shifting digital era, and resulted from that was a new culture, Now the society changes more and more quickly under the speedy information sharing. From that perspective we need to establish the aspects of sensibility expression, which is one feature of the communication. The sensibility-oriented digital was originated from the human nature, which counts emotion and composure much. To satisfy the human nature a new cultural value which transcend a traditional one is needed. And the sensitivity expression to meet the need is one communication tendency in digital era. Digital era has totally different social qualities from that of analogue era. In digital era, prompt respond to rapid change and creativity combined with sensitivity are needed. Therefore a man with sensitivity would be more outstanding than a man of intelligence. The picture of digital and analogue in our society consists of two axis one is analogue axis like retrospective trend, admiration for nature , oriental thought etc. , and the other is the digital axis of internet and information technology. Sensibility can be widely interpreted as analogue thinking. It is surely different from the plain retrospective trend or nostalgia for past. It is a tendency that digital technology is used and cooperated with the emotion in human nature, In this paper we suggest the sensitivity expressions in detail through the study cases including both sides of digital and sensitivity expressions such as 'Bravo your life' advertising campaign of Samsung Insurance, MP3 advertising campaign, and 'Mini-homepage' of Cyworld. Under the circumstances the main direction of communication is oriented to human. This study's purpose is to think the true meaning of this digital era, to overcoming its weaknesses, such as over-dependency on technique and selfish individualism and to harmonize digital and sensitivity expression. The sensitivity-oriented expression than the reason-oriented one is expected to be put forth in whole media, and this is a more efficient tendency under the shifting digit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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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는가? (The Origin of Thinking Mind)

  • 박만준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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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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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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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우리의 정체성을 묻는 이 물음에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물론 '사회적 동물' 혹은 '이성적 동물' 같은 전형적인 정의들이 있지만 이들 역시 매우 허약한 규정들이다. 우리가 왜 사회적 동물이 되고 이성적 동물이 되었는지에 대한 해명조차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적은 이 물음의 해답을 찾아가는 단서를 발견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좀 더 명확히 하는데 있다. 실마리는 진화론적으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혈족으로 불리는 침팬지에게서 출발한다. 우리와 침팬지는 무엇이 다른가? 침팬지에게도 '자아'가 있을까? 이런 물음들을 통해 우리가 찾아낸 답은 이렇다. 즉 인간이 침팬지와 다른 존재가 된 것은 뇌의 발달과 함께 정밀하게 움직이는 운동 시스템을 갖게 되었고, 나아가 이러한 운동 시스템이 내면화되어 마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의 생각하는 능력도 바로 이러한 내면화 메커니즘이 진화 발전한 것이다.

18세기 주자학적 천인관계론의 향방 - 이재(?齋) 황윤석(黃胤錫)의 경우를 중심으로 - (he Trends of Heaven-Human Relation of Zhuxi Learning in 18C - Focused on the Discourse of Huang, Yun Seok)

  • 김문용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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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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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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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이 글은 황윤석(1729-1791)을 사례로 삼아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에게서 천인관계 문제가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었는가를 검토하는 데 목표를 둔다. 천인관계 문제는 유학의 변화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서, 전통적으로 유학사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아왔다. 황윤석은 주자학의 바탕 위에서 서학(Western Learning)을 수용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한 좋은 사례의 하나이다. 황윤석의 학문은 주자학의 범위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고학(古學)에 심취했고, 이를 바탕으로 서학(西學)에 관심을 가졌다. 이수(理數)는 고학과 서학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으로서, 종래의 선험적이고 신비적인 진리에서 부분적이나마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을 함축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황윤석은 천문 현상에 대한 이해에서 사실중심적 접근법과 가치중심적 접근법을 병행하였다. 서양 천문학은 그로 하여금 사실중심적 접근법의 측면에서 많은 진전을 이루도록 해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치중심적 접근법을 통해 일 월식을 비롯한 천문의 변리(變異)에 대해 재리논적(災異論的) 관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 가치의 이분법은 당시 주자학이 새로운 지식의 유입에 맞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수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천도(자연) 인사(인간)' 방향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일 뿐, '인사(인간) 천도(자연)' 방향의 관심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연의 감계적 기능을 긍정적으로 강조하는 그가 보기에 천인관계론은 여전히 중요한 논제였다.

괴물과 영웅 사이 -판타지 드라마의 초능력 인물 (Between Monster and Hero -Characters with Supernatural Powers of Fantasy Dramas)

  • 김경민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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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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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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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한국 판타지 드라마의 여러 모티프 중 초능력을 가진 영웅 인물이 등장하는 드라마(<너의 목소리가 들려>, <당신이 잠든 사이에>, <힘쎈여자 도봉순>)를 대상으로,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는지 또한 이들의 탄생은 대중의 어떤 결핍과 욕망에서 비롯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세 편의 드라마에서 재현된 초능력 인물들의 공통점은 찬사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전형적인 영웅이 아니라 경계와 소외의 상징인 괴물로 재현된다는 것이었다. 세 편의 드라마는 모두 사법부와 검찰, 경찰과 같은 공적 권력의 한계와 부정을 비판하고 있는데, 초능력 인물들은 자신의 초능력을 활용해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고 약자와 피해자들을 돕는 영웅적 면모를 보인다. 동시에 그들은 우리가 불편해하는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숨기고 싶어 하는 진실을 드러내는가 하면 '정상성'과 '당연의 세계'를 향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점 때문에 이들은 괴물로 취급되고 소외된 것이다. 현실의 문제와 욕망을 해결하고자 영웅을 소환했지만 그들로 인해 우리 사회의 결핍과 모순을 확인하게 되는 이러한 모습은 현실의 억압된 욕망을 표출하지만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현실을 비판하고 전복하는 판타지의 속성과 닮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해 판타지의 전복적인 특징과 함께, 그러한 속성이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매체의 특성과 결합되었을 때의 한계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간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소원했던 장르이자 최근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장르인 판타지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으며, 이후 더 세분화되고 다양화된 판타지 드라마를 연구하는데 있어 많은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 또한 본 연구의 의의라 할 것이다.

병리적 나르시시즘에 대한 상담자의 자기대상 역할 연구 (A Study on Counselor's Selfobject Role for Pathological Narcissism)

  • 윤석민
    • 산업진흥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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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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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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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코헛의 이론을 중심으로 병리적 나르시시즘에 대한 상담자의 자기대상 역할 연구를 하였다. 이론적 이해에서는 나르시시즘과 병리, 자기대상을 논하였다. 나르시시즘과 병리는 응집된 자기의 형성에 실패라 할 수 있다. 초기 유아의 자아는 양육자로부터 적절한 공감과 사랑을 받을 때 통합된 응집적 자기를 형성할 수 있다. 환언하면 자기애적 성격은 취약한 환경에서 공감과 수용을 받지 못하여 무력하고 취약한 자기 또는 분노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자기애적 사람들은 세상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무력하고 공허한 자기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대자기 환상을 유지한다. 한편으로 자기대상이 제공하는 수용과 경탄의 반응을 경험할 때 과대적 자기는 강화되고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 유아는 자기대상과의 관계 경험이 손상이 될 경우에 자기는 파편화된 자기(fragmented self)로 남게 된다. 따라서 결과에 따른 결론은 다음과 같다. 병리적인 나르시시즘에 대한 상담자의 자기대상 역할은 공감적 자기대상이 되어 내담자로 하여금 건강한 응집적 자기를 형성하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자기대상이 유아의 욕구에 자상하게 안내하며 이상적 모델로 역할을 할 때 유아는 건강한 이상을 추구하며 초기의 자기애적 평형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서거정의 '경주십이영(慶州十二詠)'의 의미와 폐허미학적 소통방식 (Landscape Meanings and Communication Methods Based on the Aesthetics of Ruins in the Poem 'Kyungjusipiyung' written by Seo Geojeong)

  • 노재현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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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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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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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팔경시 '경주십이영'을 통해 서거정은 고도 경주의 폐허화된 역사문화경관에 대한 감회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경주십이영'은 신라문화의 대표적 성지인 계림, 반월성, 나정, 오릉 그리고 장소성 깊은 승경인 금오산(남산), 포석정, 문천, 첨성대, 분황사, 영묘사, 김유신묘 등을 중심으로 거기에 깃든 신화와 설화는 물론 관련된 사건과 인물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기존 '팔경'과는 다른 폐허미학적 메타포가 강하게 전달되고 있다. '경주십이영'은 서거정의 팔경시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팔경시와 비교할 때, 제영 구조와 형식은 물론 내용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특히 의미와 행위를 부각시킨 인문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경주십이영'의 제영 순서를 추적할 때 2일 이상의 유람시간을 통해 2개 이상의 시각회랑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봄철에 지어진 시임에도 불구하고 시 속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활의 풍류' 그리고 '번성과 풍요'는 배제되고 대부분 오래 되고, 부서져 허물어지고, 늙고, 슬프고 등의 아쉬움과 슬픔의 정조가 지배적이다. 서거정은 '경주십이영'을 통해 경주의 다양한 경승과 경물 등 가시 영역의 문명적 폐허 뿐만 아니라 신화와 전설 등 비가시 영역의 문화적 폐허를 반복, 병렬, 병치 그리고 대조의 수사학적 표현으로 회고와 영탄의 폐허미를 읊고 있다. 이는 서거정이 '경주'를 바라보는 사유방식이자 표현방식이며 기존 회고시의 전형적 특성으로 서거정이 '경주십이영'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 폐허 경험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전하는 아우라, 즉 12가지 역사문화경관에 담긴 총체적 신라문화에 편재한 질에 대한 정성적 경험이었다는데 그 특징이 읽혀진다. 기문 등을 근거로 '고도 경주'에 대한 서거정의 긍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경주십이영'에 담긴 신라와 경주의 이미지는 폐허로 점철되고 있다. 그러나 폐허가 소멸과 몰락의 길을 가리키는 비관주의적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그 폐허의 양상은 조선 전기의 문풍을 좌우했던 인물로서 조선 왕조를 통해 경주를 다시 상승 부흥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포괄하는 양가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서거정의 '경주십이영'에서 발견되는 풍경의 미학은 가장 은유적이면서도 문화적 상징성이 강한 것으로 폐허성을 반성적 경험의 가치로 전환하기 위한 역설적 폐허미학의 소통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가을철 선유도공원의 주제공간이 대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에 미치는 영향 (The Psychological Relaxation Effects of College Students in Location Targeting Seonyudo Park in Autumn)

  • 윤용한;오득균;김정호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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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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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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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대표적 재활용 환경공원이면서 경관감상과 주제체험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는 선유도공원 공원을 대상으로 내부 장소별 경관이 이용객의 기분상태 및 개선효과를 밝혀, 공원의 조성 그리고 주제공간이 건강에 미치는 정도를 조사하여, 향후 공원설계 및 조성의 근거자료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의미분별법(SD) 결과, 대부분의 항목에서 선유도 경관을 감상하였을 때 거의 모든 형용사 문구에서 유의하게 점수가 낮아지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각각 공원의 내부 경관요소에 따라 피험자가 느끼는 감정 또한 다른 것으로 분석되었다. 기분상태검사(POMS) 결과, 긴장점수는 도심지(7.78) > 수질정화원(3.33) > 습생식물원(2.11) > 녹색기둥의 정원(2.00) > 시간의 정원(0.89)의 순, 우울점수는 도심지(4.94) > 수질정화원(3.50) > 녹색기둥의 정원(2.94) > 시간의 정원(1.61) > 습생식물원(1.38)의 순, 분노점수는 도심지(4.22) > 수질정화원(3.33) > 녹색기둥의 정원(2.22) > 시간의 정원(1.39) > 습생식물원(1.11)의 순, 피로점수는 도심지(6.5) > 수질정화원(3.39) > 녹색기둥의 정원(2.78) > 시간의 정원(2.28) > 습생식물원(2.06)의 순, 활력점수는 습생식물원(11.39) > 시간의 정원(11.00) > 녹색기둥의 정원(8.39) > 수질정화원 (7.77) > 도심지(5.28)의 순, 활력점수는 습생식물원(11.39) > 시간의 정원(11.00) > 녹색기둥의 정원(8.39) > 수질정화원 (7.77) > 도심지(5.28)의 순으로 분석되었다. 또한, 통계분석 결과, 대부분의 항목에서 경관유형의 차이에 따른 점수의 차이가 유의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에 따른 종합정서장애(TMD) 분석 결과, 도심지(24.5) > 수질정화원(9.5) > 녹색기둥의 정원(4.67) > 시간의 정원(-1.39) > 습생식물원(-1.22)의 순으로 분석되었다.

에셀나무(Tamarix aphylla)의 명칭문제에 대한 고찰 (An Investigation of Local Naming Issue of Tamarix aphylla)

  • 김영숙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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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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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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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성경에 쓰인 에셀나무(Tamarix aphylla)의 올바른 명칭문제를 고찰하기 위해서 식물의 형태분류학적인 특성 분석, Tamarix속에 대한 상징성 고찰, 한국고전과 중국고전에서의 용례 분석, 그리고 한중일 성경에 나타난 에셀나무 번역상에 나타난 문제점에 대한 고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식물분류학적으로 Tamarix속 유사종의 구별은 잎과 꽃의 형태로 구분하지만, 그 크기가 2-4mm 정도로 매우 작기 때문에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스라엘 광야에 분포하는 T. aphylla와 중국과 한국의 T. chinensis는 가지가 처지는 모양이나 개화기간에서 확연한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 Tamarix속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한(漢)나라에서는 궁궐 안뜰에 심을 정도로 귀한 나무였고,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나무로 여겼다. 또한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드러내는 계약의 표지로, 예언자 사무엘을 상징하기도 하고 사무엘의 법정을 상징하였다. 한국고전 용례를 통해서 볼 때 Tamarix속은 이미 조선시대에 일반화된 용어로 쓰였는데 '정류(檉柳)'는 의학적인 용어로 많이 쓰인 반면에, '위성류(渭城柳)'는 문학적 용어로 쓰였다. 중국의 본초서 가운데 정류(檉柳)와 관련된 문헌들의 연대와 명칭을 고증한 결과에 의하면 모두 16개 용어가 쓰였는데, 이 용어들 가운데 중국 성경에 쓰였던 '수사류(垂絲柳)'라는 단어는 없었다. 또한 당나라 왕유(王維 699-759)의 시 때문에 생겨난 '위성류(渭城柳)'라는 단어도 없었고, 오히려 주나라와 관계있는 '하류(河柳)'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중국의 학술용어를 조사해 보면 '수사류(垂絲柳)'와 '정류(檉柳)'가 대등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중국성경에서 에셀에 관한 번역은 '수사류(垂絲柳)'로 하던지 '정류(檉柳)'로 하던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일본성경은 명치역 "구신약전서(舊新約全書)(1887)"에서 'やなぎ(버드나무)'로 번역하는 오류가 있었는데, "구어역(口語譯) 성서(聖書)(1955)"부터 'ぎょりゅう(정류(檉柳))'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ぎょりゅう(정류(檉柳))'는 야생종이 아니라 에도시대 도입종이라는 주장이 있기 때문에 용어 설정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고전 용례분석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한국의 T. chinensis는 약용 및 관상용으로 일찍부터 한반도에서 생육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한국 성경에서 의약학 용어인 '정류(檉柳)' 사용하거나 혹은 문학적인 용어인 '위성류'를 사용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성류'라는 용어는 중국에서 조차 사용빈도가 극히 낮은 용어이고, 조선시대 문학하던 분들의 모화사상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므로 이 용어 사용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논란이 있는 용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히브리어로 음역하여 '에셀나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16세기(十六世紀)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畫) 이해의 확장 : <경포대도(鏡浦臺圖)>, <총석정도(叢石亭圖)>를 중심으로 (Broadening the Understanding of Sixteenth-century Real Scenery Landscape Painting: Gyeongpodae Pavilion and Chongseokjeong Pavilion)

  • 이수미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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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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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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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증을 받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 특별전(2019년)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작품인 <경포대도>와 <총석정도>는 조선시대 회화사 이해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지대하다. 두 작품이 1557년의 관동 유람을 계기로 그려진 병풍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어서 16세기 산수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획기적인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성을 밝히기 위해서 본고에서는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에 담긴 경물의 내용을 살펴보고 제작시기와 양식상의 특징을 분석한 후,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 작품에 담긴 회화사적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작품의 제작 배경은 <총석정도>의 발문으로 알 수 있다. 본고에서 박충간(朴忠侃)(?~1601)으로 비정한 정상일로(商山逸老)가 1557년 봄에 홍연(洪淵)(?~?)과 함께 금강산(풍악산)과 관동 지역을 유람하고 유산록(遊山錄)을 작성하였으며 시간이 흐른 뒤 그중 몇몇 명승지를 그려 병풍을 만든 것을 알 수 있었다. 홍연은 자가 덕원(德遠)으로 1551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1584년까지는 생존했던 인물이다. 박충간은 호가 남애(南崖)로서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을 고변하여, 그 공으로 형조참판으로 승진되고 평난공신(平難功臣) 1등에 책록된 후 상산군(商山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이 글로 작품의 제작 시기를 1557년의 유람 후이자, 발문을 쓴 박충간이 50대 이상이 되는, 1571년 이후 곧 16세기 후반경으로 보았다. 산수나 나무 표현 등의 화풍을 기준으로도 16세기 후반의 시대 양식과 부합한다. 전술한 발문의 내용으로 <경포대도>와 <총석정도>가 병풍의 일부였던 것을 알수 있으며, 발문이 써 있는 <총석정도>가 마지막 폭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포대도>를 보면 구도면에서 조선 초기 안견파(安堅派) 산수화에서 볼 수 있는 편파(偏頗) 3단 구도의 요소를 찾을 수 있으나 실경(實景)을 대상으로 하여 그 배치와 화법이 현실화된 양상을 볼 수 있다. 시점(視點)에 있어서도 여러 경물간의 관계나 경관의 특징이 효과적으로 표현되도록 사선각(斜線角)의 부감시(俯瞰視), 정면시(正面視) 등을 활용하여 경포대의 넓은 영역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다각적(多角的)인 관점(觀點)을 보여준다. 산의 형태나 태점(苔點)의 사용은 1557년작 <의순관영조도(義順館迎詔圖)>(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와 매우 유사하다. 16세기 안견파의 특징인 짧은 선이나 점으로 질감을 내는 단선점준(短線點皴)과 구름 모양 운두준(雲頭皴)은 현장감 있게 변모되었다. 조선 초기 산수화의 전통적인 구도와 연결성을 찾을 수 있는 <경포대도>와 달리 <총석정도>는 그 구도가 매우 파격적이다. 화면에 중심축을 두고 돌기둥들이 첩첩이 도열하여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데 근경(近景)의 돌기둥, 중앙의 사선봉(四仙峯), 절벽 위의 사선정(四仙亭)을 삼단계 정도의 깊이감으로 배치하여 화면에 공간감을 조성하였다. 중앙의 사선봉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비중을 점하고 있으나 수직적인 돌기둥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분질적(分節的), 평면적(平面的)인 양상으로 그려져 아직 입체적이고 자연스러운 공간감을 조성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기둥의 아랫부분은 희게 하고 윗부분은 어둡게 하여 고원(高遠)의 상승감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각 기둥을 묘사하는 준법을 보면 기둥으로 설정된 면에 담묵을 바르고 그 위에 농묵의 가는 선들을 그어 총석의 질감과 쪼개짐을 묘사하였다. 붓끝을 사선으로 누르며 수직으로 내려 긋고 있어서 부벽준(斧劈皴)의 초기적 양상을 보인다. 일관되게 보이는 이러한 흑백의 대조, 수직적 준법의 구사는 앞으로 전개될 절파계(浙派係) 화풍의 유행을 예시해준다. 한편 기둥의 윤곽 및 균열문이 각각 다 달라서 실제의 특징을 살리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기둥 위에 올라앉은 새들의 묘사, 파도와 흰 거품의 표현 등에서 반복적인 붓질을 찾을 수가 없고 매우 생생한 묘사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의 경물 배치는 이후 변화를 보인다. <경포대도>는 아래쪽에 죽도(竹島)를 두고 경포호를 넘어 위쪽에 위치한 경포대 건물과 오대산 일대를 올려보는 구도였다. 이러한 배치는 경포대를 화면 아래쪽에 두고 위쪽의 바다를 향하는 18세기 이래의 전형적인 구성과 차이를 보인다. 바다 쪽에서 총석을 바라보며 그린 <총석정도> 역시 이후의 작품에서는 내륙에서 바다를 향하는 것으로 관점의 변화를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정선(鄭敾)(1676~1759)과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의 작품이 제작된 이후, 두 사람의 구도를 따라 관동도의 유형이 정착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사라진 듯 했던 16세기 <경포대도>의 구도가 조선 말기 <강릉 경포대도>에서와 같이 민간 회화에서 전승된 것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관동 지역의 명승도는 이른 시기부터 그려져 고려 김생(金生)(711~?)의 관동도(關東圖), 조선 초 안견(安堅)(15세기 활동)의 낙산사도(洛山寺圖) 등 여러 화가가 단폭이거나 여러 폭의 관동도를 병풍이나 첩 형태로 그렸던 것을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기록은 많으나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작품이 없었는데 본고에서 고찰하는 이 두 점은 현존하는 관동도 중 연대가 가장 올라가는 예로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관동도(關東圖) 병풍(屛風)의 제작 양상을 알게 해주어 회화사적인 의미가 크다. 특히 발문의 내용에 따라 8폭 병풍일 것으로 생각되어 16세기 후반에 이미 관동팔경도(關東八景圖) 형식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성격에 있어서 현존하는 16세기 실경산수화의 예로 거론되는 작품들이 모두 실용적, 공적인 목적의 계회도나 기록화로 제작되어 실경산수화적 요소가 부분적으로 나타난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실제 경관을 대상으로 자연의 변화무쌍함과 아름다움을 담고자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발문을 쓴 박충간은 유람할 때 지었던 감상시를 곁들여 자연의 진면목을 반추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점은 기존에 알려진 실경산수화의 성격과 그 양상을 달리하는 것으로 순수 감상을 목적으로 한 본격적인 실경산수화의 예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높다. 이처럼 <경포대도>와 <총석정도>의 두 작품은 유람의 결과를 시화(詩畫)로 제작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현존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지대하다. 또한 그간 확인할 수 없었던 16세기 실경 산수화의 다양한 형태와 구도 및 시점의 면모를 보여주어 한국 실경산수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한 점에서도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