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Wooden Seated Bodhisatt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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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관음사 목조보살좌상의 제작 방법 (Production Method of Wooden Seated Bodhisattva from Gwaneumsa Temple, Wando)

  • 곽은경;이혜진;유소현;손종민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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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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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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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연구는 전남대학교박물관 소장 완도 관음사 목조보살좌상의 제작 방법에 대해 과학적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고찰한 것이다. 전체 형태를 이루는 목부재의 X선 투과 촬영과 표면층 시편의 성분 분석 및 미세 관찰을 통하여 제작 방법 상의 특징을 연구하였다. 관음사 목조보살좌상은 발원문을 통해 조선 전기인 16세기에 제작된 것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이 유물을 X선 투과 촬영한 결과, 오른손을 제외한 부분을 하나의 나무로 제작한 '일목조'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박락된 표면층 시편을 분석한 결과, 제작 당시의 개금층을 후대에 황동 재질로 보수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특징을 통하여 관련 연구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를 추가할 수 있었고, 해당 유물의 학술적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공주 마곡사 명부전 불상 연구 (Buddhist Images in Myeongbujeon at Magoksa Temple in Gongju)

  • 최선일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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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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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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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논문은 공주 마곡사 명부전에 봉안된 불상에 관한 문헌 검토와 양식적인 접근을 통하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석조시왕상의 제작 시기 및 조각승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 연구이다. 명부전 내에는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석조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서 있고, 벽면을 따라 시왕상 및 권속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 불상들은 1930년대 후반에 목조지장보살좌상은 청양 정혜사에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및 시왕상 등은 임실 신흥사에서, 시왕도는 논산 정토사에서 옮겨온 것이다. 이제까지 마곡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좌상은 석조시왕상 조성 시기인 1677년에 함께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목구비에서 풍기는 인상, 신체 비례, 착의법 등을 살펴보면,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수연(守衍)이나 그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이 1620~30년대 만든 불상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의 두 번째 주름이 수직으로 늘어지고 끝자락이 하트 모양으로 마무리된 점과 그 옷주름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며 낮게 펼쳐진 옷주름 처리 방식은 수연이 제작한 서천 봉서사불상(1619년)이나 익산 숭림사 불상(1634년, 옥구 보천사 조성)과 유사하다. 석조시왕상과 권속 등은 1677년에 조각승 성일(性日)이 수화승으로 제작한 것을 조성발원문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성일이 수화승으로 만든 유일한 불상이고, 같이 제작에 참여한 작가들의 활동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새로운 자료가 공개되어야 구체적인 조각승의 계보가 밝혀질 것이다. 기존 연구에서 성일이 불상 제작과 중수에 참여한 활동을 살펴보면, 혜희(慧熙) 계보 또는 운혜(雲惠)(운혜(雲慧))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여 두 조각승 집단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곡사 시왕상은 호남이나 영서 지역에서 주로 제작되는 흙이나 나무가 아니라 돌로 제작되었으며, 영남에서 유행한 시왕상의 형태나 착의법 등과 유사하여 호남보다 영남에서 주로 활동한 조각승들의 작품으로 보인다. 앞으로 충남 지역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석조시왕상의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조성 시기와 작가에 관한 심층적인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들에 대한 분석이 진행된다면, 17세기 후반 영남 지역 석조불상과의 비교를 통해 호남에서 제작된 석조불상을 주도적으로 만든 조각승과 활동 내용이 밝혀질 것이다.

비파괴 분석법을 통한 안성 청룡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내부구조 및 금박층 조사 (Investigation of the Internal Structure and Gold-thin Layer of the Gilt-bronze Seated Avalokitesvara Bodhisattva at Anseong Cheonryong Temple through the Non-destructive Analysis)

  • 최정은;최학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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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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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0-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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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안성 청룡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봉안하고 있는 청룡사(靑龍寺)는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서운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안성 청룡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의 바닥면 XRF 분석 결과는 Cu-27.2 wt%, Sn-12.6 wt%, Pb-48 wt%이며, 과거 여러 전란으로 인해 소지금속 성분과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불상의 내부를 확인하기 위해 감마선(γ-ray, Ir-192)으로 촬영하였으며, 파손된 배면 부분과 후대에 나무로 덧대어 수리한 위치를 확인하였다. γ-ray 촬영 결과와 XRF 분석을 이용하여 확인한 좌, 우의 수리 경계면은 허벅지 중간부터 목 아랫부분까지로 청동과 나무로 분리된다. 안성 청룡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의 금박 두께를 추정하기 위해 표준시료를 이용해 계산한 결과 얼굴과 가슴과 같은 육신 부분의 금박 두께가 20.7 ㎛와 21 ㎛로 가장 두꺼웠으며, 나무를 소지 재료로 한 부분이 평균 11.9 ㎛, 마지막으로 소지금속이 청동인 부분이 평균 7.4 ㎛로 금박 두께가 가장 얇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엄사 대웅전 목조비로자나삼신 불좌상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Wooden Seated Vairocana Tri-kaya Buddha Images in the Daeungjeon Hall of Hwaeomsa Temple)

  • 최성은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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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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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0-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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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정유재란을 겪으며 전소(全燒)된 화엄사는 벽암각성(碧巖覺性)(1575~1660)의 주도 아래 재건이 이루어졌다. 대웅전에는 목조비로자나삼신불상이 봉안되었는데, 1634년에 완성하여 1635년에 점안·봉안되었다. 2015년에 석가불상 복장 <시주질>과 노사나불상 대좌 내부 판재(板材)에 적힌 <묵서명>이 조사되고, 2020년에 노사나불상의 복장 <시주질>이 조사되어 비로자나삼신불상의 조성에 참여한 청헌, 응원, 인균을 포함한 열여덟 명의 조각승들이 밝혀졌고 선조(宣祖)의 아들 의창군 이광(李珖)을 비롯한 왕실과 종친, 천명이 넘는 승속(僧俗)의 시주자들이 동참한 대규모 불사였음이 알려졌다. 비로자나삼신불상의 본존은 높이 2.76m의 장육불상으로 당시 불교조각에서 널리 유행하던 장신형의 비례감이 아닌 두부가 크고 어깨가 좁은 고식(古式)의 단구형(短軀形) 비례감을 보인다. 주먹 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비로자나불의 지권인(智拳印)과 보관을 쓴 보살형의 노사나불상은 북송대에 고려로 전해진 전통적인 도상(圖像)이며, 석가불상이 결한 독특한 항마촉지인의 형식은 명(明)에서 전래된 경(經) 변상도에 나타난 도상이 불교조각에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화엄사 비로자나삼신불상에서 나타나는 신구(新舊) 양식과 도상의 혼재는 화엄사 불사(佛事)를 맡았던 조각승들이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귀족적 전통을 계승한 조선초기 불교미술에서 화엄사 삼신불상의 범본을 구하려했던데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전란으로 소실된 고려시대 비로자나삼신불상의 원(原) 모습에 가깝게 복원되기를 바라는 화엄사 산중대덕(山中大德)들의 기대가 불상조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화엄사 삼신불상의 노사나불상은 고려시대 비로자나삼신불상과 도상적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고려시대의 화엄사에 이와 유사한 도상과 양식의 비로자나삼신불상이 봉안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만우 휘헌의 『화엄사지』(1924)에 따르면, 화엄사는 고려 왕실의 축성의례를 거행해온 사찰로 여겨지는데, 이 전통이 조선후기까지 이어져 화엄사 재건 불사에서 새로 조성된 대웅전 비로자나삼신불상 역시 조선왕실의 축성의례를 위한 예배대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화엄사 재건에 왕실과 종친이 시주자로 참여한 점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