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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텔레비전 음악버라이어티쇼의 성쇠 -TBC-TV의 '쇼쇼쇼'를 중심으로- (The Rise and Fall of Television Musical Variety Show in Korea : Focusing on the 'Show Show Show' on TBC-TV)

  • 박용규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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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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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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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이 논문은 TBC-TV의 '쇼쇼쇼'를 중심으로 한국의 음악버라이어티쇼가 어떻게 성장하고, 쇠퇴했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KBS-TV로 통폐합되기 전까지 토요일 저녁 8시 경에 방송을 했던 '쇼쇼쇼'는 온 가족이 주말 저녁 한 때를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쇼쇼쇼'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다루었고, 음악외에 무용, 코미디는 물론 각종 마술이나 묘기들도 선보였다. '쇼쇼쇼'는 1970년대 말까지 모든 세대에게 인기를 누린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쇼쇼쇼'는 점차로 음악버라이어티쇼다운 특성을 잃으며 음악 위주의 프로그램이 되었다. 또한 갈수록 성인 취향의 음악이 상대적으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쇼쇼쇼'는 통폐합의 영향으로 위축되기 시작하다가, 결국 시청행태 변화와 음악적 취향 분화의 영향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쇼쇼쇼'의 종영은 가족이 함께 보는 음악버라이어티쇼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국제가요제와 세계 감각 -냉전 시기 대중음악사 연구의 인터아시아적 관점과 유라시아적 상상력 (International Song Festivals and Musicians' Sense of the World -Inter-Asian Perspective and Eurasian Imagination in the Study of Korean Popular Song during the Cold War)

  • 김성희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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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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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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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이 연구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국제가요제가 어떻게 한국 대중음악가들의 세계 감각을 형성하게 했는가에 대해 살펴본다. 1970년 이봉조가 일본 야마하 세계가요제에서 입상한 이후, 한국의 작곡가와 가수들은 일본의 국제가요제에 참가하였다. 일본 국제가요제는 한국과 일본 간의 대중음악 교류를 활발하게 하였다. 단순히 교류에 그치지 않고, 일본 국제가요제의 자극을 받아, 1978년에는 문화방송이 MBC 서울국제가요제를 1979년에는 동양방송이 TBC 세계가요제를 개최하였다. MBC는 1978년과 1979년 가요제를 아시아 국가 중심으로 치렀다. 반면, TBC는 국제가요제연맹(FIDOF)의 도움으로 미주와 유럽, 특히 유고슬라비아의 가수들까지 참여시켰다. 이에 MBC도 1980년부터는 국제가요제연맹의 협력을 얻어 유럽의 유명 작곡가들을 유치했다. 이 논문은 한국 대중음악 연구의 공백이었던 국제가요제를 중심으로 냉전 시대 한국 대중음악과 세계 대중음악의 연결망을 재발견한다.

TV 방송이 식초의 인지도에 미치는 영향 (Effects of Television Programs on Viewers' Perception of Vinegar)

  • 장수복
    •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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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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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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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TV방송이 식초의 인지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였다. 조사대상은 남자 $31.1\%$, 여자 $68.9\%$였으며 식품관련학과 재학생이 $13.3\%$, 비전공 재학생 $86.7\%$였다. TV프로그램 시청전 식초에 관하여 '잘 알고 있음'이 $3.3\%$, '조금 알고 있음'이 $80.0\%$, '전혀 모름'이 $16.7\%$였다. 방송 시청 후 식초에 대한 인식 변화가 '매우 큼'이 $80.0\%$, '보통'이 $20.0\%$, '전혀 영향 없음'이 $0.0\%$였다 성별, 전공에 따른 유의적인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방송시청이 식초의 인지도 변화에 매우 큰 영향을 나타내었다. 이상과 같이 TV프로그램은 식초에 대한인지도 뿐 아니라 구매의지, 식초음료 등의 활용도 등에 전반적인 변화에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생각된다.

산업화시대 한국 하청애니메이션에 대한 연구 - 1970-80년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 (A Study on Subcontract Animation in Korea during the Industrialization Era - Centered around Animations in 1970-80s -)

  • 김종옥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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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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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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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 연구는 1966년 TBC 동화부의 황금박쥐로 시작된 한국 하청애니메이션의 역사를 1980년대 시기까지 분석하여, 한국애니메이션에서 30년 넘게 진행되어 온 하청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재조명하였다. 이를 위해 하청애니메이션 제작사 제작현황 산업의 규모 등 하청애니메이션 개괄적인 상황을 통해 당시 OEM산업의 실태를 점검하였고, 애니메이션이 하청제작산업으로 고착화된 배경을 시대상황과 연계하여 분석하였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하청애니메이션산업이 발생시킨 문제점과 한계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창작애니메이션을 활성화하기 위한 새로운 모색에 대한 분석을 통해 애니메이션 역사 연구의 지평을 넓혀보고자 하였다. 1970년대는 중화학공업 육성과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이 국가적 목표였던 시기였다. 70년대 후반부터 애니메이션도 해외애니메이션 하청 수주를 통해 수출 주력산업으로 주목받았다. 하청 해니메이션 제작의 확대는 당시 대중문화에 대한 국가의 정책과 칼라TV보급, 비디오 제작 시장 활성화 등의 매체 변화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관객이 축소된 점에도 영향을 받았으며 경제적 논리로 자체 애니메이션 제작을 기피했던 방송사 등 플랫폼 부재도 그 원인이었다. 하청애니메이션산업은 애니메이션 인프라의 구축과 신진 인력 양성 등 애니메이션 환경을 확장시켰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집약적인 '프로덕션' 단계 중심의 발전은 기획력 등 '프리 프로덕션'의 부재와 '포스트 프로덕션(후반작업)'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전문인력 양성에 왜곡된 구조를 만들었고, OEM산업으로 축적된 자본을 창작애니메이션 제작에 재투자하여 내수시장을 형성하지 못한 점은 부정적 측면으로 평가된다. 애니메이션은 한 나라의 문화적, 정신적 산물이다. 따라서 전문인력의 양성과 우수한 작품의 창작,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시장의 형성 등 창작애니메이션 활성화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 정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산업이지만 하드웨어 중심의 제조업이 아닌 창의력에 기반한 문화산업이라는 인식은 없었다. 이러한 인식의 부재로 이 시기 한국 애니메이션은 독자적인 작품 제작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과 투자를 통해 시장을 만들고, 창작애니메이션을 활성화하는 어떠한 정책 방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이러한 시도는 1990년대 이후 한국도 창작 애니메이션 보호 육성을 위한 다각적인 모색을 통해 새롭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