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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지향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과 디자인 패턴을 적용한 출입 보안 시스템 개발 (Development of Secure Entrance System using AOP and Design Pattern)

  • 김태호;천현재;이홍철
    •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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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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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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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출입 보안 시스템은 감시, 로깅, 추적, 인증, 권한부여, 직원 위치 파악, 직원 출입관리, 출입문 관리 등 수많은 기능을 해야 하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본 논문에서는 관점지향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Aspect Oriented Programming: AOP)과 디자인 패턴을 적용해 국내 원자력 발전소의 출입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AOP를 이용하면 시스템의 비즈니스 로직과 보안 로직을 완전히 독립적으로 분리해서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므로, 출입 보안 시스템의 각 기능별 모듈에 대하여 명확하게 그 역할을 구분해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는 잦은 외부환경의 변화에 의한 시스템 변경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하며 AOP의 본래의 장점인 코드 재사용성의 확대, 효율적인 기능 구현 등 이 가능해 진다. 이와 함께 디자인 패턴을 활용하면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문제를 구조화 하여 설계 할 수 있어, 시스템의 안전성 또한 보장 받을 수 있다. 두 방법론의 장점을 활용하여, 그 기능이 복잡한 출입보안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설계 구현 할 수 있다.

FPGA를 이용한 시퀀스 제어용 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 (The Design of 32 Bit Microprocessor for Sequence Control Using FPGA)

  • 양오
    • 대한전자공학회논문지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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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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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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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본 논문은 FPGA를 이용하여 시퀀스 제어용 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설계하였다. 이를 위해 VHDL을 이용하여 톱-다운 방식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설계하였으며, 고속처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프로그램 메모리부와 데이터 메모리부를 분리하여 설계함으로써 인스트럭션을 페치 하는 도중에 시퀀스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Harvard 구조로 설계하였다. 또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명령어들을 시퀀스제어에 적합하도록 RISC형태의 32 비트 명령어로 고정하여 명령어의 디코딩 시간과 데이터 메모리의 인터페이스 시간을 줄였다. 특히 설계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실시간 디버깅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싱글 스텝 런, 일정 프로그램 카운터 브레이크, 데이터 메모리와 일치시 정지 기능 등을 구현함으로써 구현된 프로세서의 디버깅을 쉽게 하였다. 또한, 시퀀스제어에 적합한 펄스명령, 스텝 콘트롤 명령, 마스터 콘트롤 명령 등과 같은 비트 조작 명령과, BIN형과 BCD형 산술명령, 배럴 쉬프트명령 등을 구현하였다. 이와 같은 기능들을 FPGA로 구현하기 위하여 자이링스(Xilinx)사의 V600EHQ240(60만 게이트)과 Foundation 4.2i를 사용하여 로직을 합성하였다. Foundation 합성툴 환경에서 시뮬레이션과 실험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본 논문에서 구현된 시퀀스 제어용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우수성을 보이기 위해 시퀀스제어용 명령어를 많이 가지고 있는 Hitachi사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인 H8S/2148과 성능을 비교하여 본 논문에서 설계된 시퀀스 제어용 프로세서가 우수함을 확인하였다.

스캔 환경에서 간접 유추 알고리즘을 이용한 경로 지연 고장 검사 입력 생성기 (Delay Fault Test Pattern Generator Using Indirect Implication Algorithms in Scan Environment)

  • 김원기;김명균;강성호
    • 한국정보처리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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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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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56-1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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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
  • 회로가 복잡해지고, 고속화되면서 회로의 동작에 대한 검사 뿐 아니라, 회로가 원하는 시간 내에 동작함을 보장하는 지연 검사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주사환경을 사용하는 순차회로에서의 경로 지연 고장을 위한 테스트 패턴 생성 과정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빠른 시간에 간접 유추를 수행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제안한다. 구조적으로 발생 가능한 정적 학습 과정은 테스트 패턴 생성 과정 중의 선행 처리 단계에서 각각의 게이트에 정적 학습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를 분석하여 그 정보를 각각의 게이트에 대해 저장하고 있다가 알고리즘을 이용한 테스트 패턴 생성 과정 중 조건에 만족하는 경우에 유추될 수 있는 값을 바로 할당하게 된다. 본 논문에서는 이를 지연고장 검출에 맞도록 수정하여 이용하였다. 회로 내에 몇몇 주입력에서 나온 신호선을 모두 포괄하는 분할지점이 존재하면, 이 지점을 지나는 경로들 중에 그 이전, 혹은 이후의 경로가 동일한 경로들은 분할지점에 의해 분할된 입력의 부분들이 같은 입력값을 필요로 함을 예상할 쑤 있다. 본 논문에서는 경로 지연 고장 검출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이러한 회로분할을 사용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테스트 입력을 생성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두 가지 알고리즘을 적용한 효율적인 경로 지연 고장 테스트 입력 생성기를 개발하였으며, 알고리즘의 효용성을 실험을 통하여 입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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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방 옥(獄) 구조에 관한 고찰 - 발굴 유적과 고지도 비교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tructure of a Local Prison in the Joseon Dynasty Based on the comparison of excavation sites and antique maps)

  • 이은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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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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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6-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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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조선시대 지방 읍성에 대한 연구는 다방면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으나, 그 내부 관청 건물의 하나인 옥(獄)에 대해서는 고고학적인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죄인들이 머무는 옥사의 배치나 구조, 옥리(관헌)들이 사무를 보거나 숙직 근무를 서는 집무소, 탈출을 방지하는 담장의 구조 등에 대해서는 1997년 경주에서 옥이 처음 발굴된 이후 연구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어 왔으나 비교 대상이 없어 답보 상태였다. 그러나 그 후 발굴된 연일옥 자료와 공주옥 등의 사진을 비교 분석해 본 결과 조선 전기부터 말기까지 축조된 옥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종은 전국의 죄수들을 잘 관리하도록 1426년 표준적인 설계도인 안옥도(犴獄圖)를 배포하였고, 동·하절기 처우 개선 등을 위해 1439년 한 차례 수정하기도 하였다. 1421년부터 1743년까지 운영된 연일옥은 조선 전기부터 중기까지의 옥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데, 조선 후기까지 운영된 경주옥과 비교할 때 원형 담장, 동서 옥사의 배치와 구조 등 그 형식이 매우 유사하며 규모만 작을 뿐이다. 이러한 구조는 조선 말기 사진으로 남아 있는 공주옥까지 계속 그 형식이 유지되고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 조선시대 옥은 타원형의 담장과 남녀를 구분하여 수용하는 건물이 나누어져 있었고, 담장의 높이는 약 3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옥사는 동쪽이 남자, 서쪽이 여자 옥사로 구분되며 지붕으로 탈출이 어려운 기와집 구조였다. 원형 담장 앞에는 옥리(押牢)들이 근무하는 초가 지붕의 집무소가 있었는데, 2중의 옥문을 통해야만 옥의 출입이 가능하였다. 조선시대 왕들은 인본주의 유교 사상을 구현하고자 미결수들이 머무는 옥의 환경을 개선하고 남녀를 구분하여 수감토록 한 것이 건축물의 배치에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과시된 효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 연구 (Showing Filial Piety: Ancestral Burial Ground on the Inwangsan Mountain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이재호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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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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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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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왕선영도(仁旺先塋圖)>(덕수5520)는 그림과 발문(跋文) 열 폭으로 이루어진 병풍으로, 작가는 조중묵(趙重黙)(1820~1894 이후), 주문자는 박경빈(朴景彬)(생몰년 미상), 발문을 쓴 사람은 홍선주(洪善疇)(생몰년 미상), 제작연대는 1868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낱장으로 보관되어 온 <인왕선영도>를 병풍으로 복원하고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에서 최초로 공개하였다. <인왕선영도>에는 오늘날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과 홍은동을 아우르는 인왕산 서쪽 실경이 묘사되어있고 원경에는 북한산 연봉이 그려져 있다. 화면 속에는 인왕산(仁旺山), 추모현(追慕峴), 홍재원(弘濟院), 삼각산(三角山), 대남문(大南門), 미륵당(彌勒堂)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있다. 이 지역을 나타낸 조선후기 지도와 비교해보면 지형 표현과 지명 표기에 유사성이 있다. 조중묵은 넓은 공간을 포착하기 위해 지도의 지리정보를 숙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경의 현장을 답사한 결과, 조중묵은 각각의 경물을 과장하거나 생략하였고 수평의 화면에 나열식으로 조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조중묵은 남종화풍 정형산수에 뛰어났던 화가로, <인왕선영도>의 세부 표현에서 사왕파(四王派) 화풍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19세기 도화서 화원들이 화보를 활용하여 가옥을 그리거나 토파에 호초점을 찍고 당분법(撞粉法)으로 꽃을 나타내는 등 장식적인 화풍을 구사한 경향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인왕선영도>에는 바위를 짙은 먹으로 쓸어내리듯 붓질한 기법, 산세의 괴량감, 가로로 붓을 대어 단순하게 그린 소나무 등 18세기 정선(鄭敾)(1676~1759)의 개성적 양식도 가미되어있다. 조중묵은 인왕산 실경산수로 유명한 정선의 양식과 권위를 차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유기적 공간감과 현장의 인상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연폭 화면이라는 매체도 조중묵의 개인 양식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인왕선영도>는 발문의 텍스트와 화면의 이미지가 잘 조응하는 작품이다. 발문의 내용을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 보면 ①무덤의 주인공과 이장 경위, ②무덤의 입지와 풍수, ③묘제(墓祭)와 신이(神異)한 응답, ④무덤 관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협력, ⑤병풍 제작의 동기인 박경빈의 효성과 수묘(守墓), ⑥발문을 쓴 의의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화면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용이한 ②의 내용은 화면에 충실하게 재현되었다. <인왕선영도> 제작의 직접적 동기인 ⑤를 보면 주문자 박경빈이 "무덤이 마치 새롭게 단장한 것 같이 눈에 완연하다."라 하여 <인왕선영도>에 만족했음을 알 수 있다. 경물 하나하나를 설명하듯 나열한 구도는 회화미는 떨어지더라도 무덤의 풍수지리를 전달하는 데는 더 적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상당수의 산도(山圖)는 18세기 이후 제작된 목판본 선영도로서, 족보와 문집에 수록된 경우가 많다. 16~17세기의 기록에서는 족자 선영도를 첨배(瞻拜)의 대상으로 삼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선영도 첨배는 현실적으로 수묘(守墓)가 곤란할 때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의례로 인정되었다. 한효원(韓效元)(1468~1534), 조실구(曺實久)(1591~1658) 등이 선영도를 제작한 후 당대의 명사에게 서문을 요청하고 효심을 과시한 사례는 <인왕선영도>의 선구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정처사유거도(石亭處士幽居圖)>(개인 소장),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국립중앙박물관) 등은 선영도는 아니지만 계회도 형식의 족자이고 풍수를 도해했다는 점에서 17세기 선영도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인왕선영도>는 첨배라는 측면에서 초상화와도 의미가 비슷했다. 발문의 "부친의 기침소리를 직접 접하는 듯하고, 그 태도와 몸가짐을 눈으로 보는 듯하다."는 표현과 부친의 초상에 조석 문안을 올린 서효숙 고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박경빈이 일반적인 선영도 형식이었던 족자나 목판화 대신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를 주문한 의도는 분명히 알기 어렵다. 19세기에는 민간에서도 사례(四禮) 의식에 다수의 병풍을 배설(排設)하였는데, 의례의 성격에 따라 그림의 주제를 반드시 구분하여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인왕선영도> 또한 여러 의례에 두루 배설하거나 장식 병풍으로도 사용하기 위해서 선영 그림이라는 주제를 실경산수화 이미지 아래에 가렸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인왕선영도>의 핵심 소재인 무덤 봉분이 모호하게 처리된 것은 사산금표(四山禁標)의 금제 위반을 숨기기 위함일 가능성이 있다. <인왕선영도>에 묘사된 인왕산 서쪽 산기슭은 분묘 조성 금지구역이었다. 1832년에 금표 내에 몰래 쓴 묘를 적발하여 즉시 파내고 관련자를 엄히 처벌한 사례로 볼 때, 19세기 중엽까지도 사산금표 내의 분묘 금제는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장지를 얻기 위해 쏟은 정성이 상세하게 쓰여 있다. 장지조성에 마을사람들의 협조와 묵인이 필요했던 것은 금표 구역 내에 묘지를 조성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인왕선영도>와 비교 가능한 동시대 연폭 병풍의 실경산수화로 이한철(李漢喆)(1808~1880)이 그린 <석파정도(石坡亭圖)>(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를 들 수 있다. <석파정도> 제작시기를 전후한 1861년에 이한철과 조중묵은 철종어진도사에 함께 참여하였으므로 조중묵이 이한철의 <석파정도> 제작 과정을 보았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조중묵이 몇 년 후 <인왕선영도>를 주문받았을 때 <석파정도>의 인상적인 연폭 실경산수를 본 경험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작품의 화풍 차이는 주문자의 취향과 제작 목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왕선영도>는 실경산수화와 선영도의 중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관람자의 지식수준과 주문자와의 친분, 관람에 들이는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의 의미로 수용되었을 것이다. <인왕선영도>의 발문에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자호, 본관이 일체 작성되지 않은 채 '박공(朴公)'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주문자인 박경빈의 인적 사항도 파악할 수 없었으나 다만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가계를 미루어 볼 때 재력이 있음에도 지배계층으로 올라설 수 없는 신분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음은 짐작할 수 있다. 발문을 쓴 홍선주 또한 사대부로 보기 어려우며, 『승정원일기』 기록에 나타나는 경아전 서리일 가능성이 있다. 박경빈은 상류 계층에 진입하고 싶은 욕망으로 보수적인 가치인 효(孝)를 강조하여 부친의 무덤을 명당으로 이전하고 <인왕선영도>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왕선영도>는 금제위반 적발에 대한 우려, 병풍의 다목적성 등의 이유로 본래의 제작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모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병풍이 제작된 지 47년 만에 각 폭이 분리된 채 미술상을 통해 이왕가미술관 소장품이 된 상황을 보더라도, 박경빈이 <인왕선영도>에서 꿈꾸었던 명당 발복과 가문의 신분상승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