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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곽 장대의 건축특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 Jang-Dae of Castle in the Joseon Dynasty)

  • 김기현;장헌덕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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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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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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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조선시대 성곽 축성의 기술적 변화 가운데 하나인 장대를 중심으로, 장대의 건축적 특성을 시론적으로 고찰한 연구이다. 장대는 장수의 지휘시설 및 장졸들의 훈련시설로 성내에 마련된 건물이다. 장대가 최초로 건립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18세기를 전후로 하여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는 왜란과 호란을 거치며, 장대의 실효성에 대한 인식이 대대적인 축성사업에 적용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장대는 조망의 기능이 최우선시 되었기 때문에 높은 지형에 개방적인 형태로 설치되었다. 또한 강변 경사지에 위치한 읍성 누각의 높고 개방적인 형태는 내부에서의 유관(遊觀)과 더불어 장대의 기능을 병행할 수 있었다. 또한 장대는 병사들의 교련과 사열이 이루어지는 장소였기 때문에 병사들을 소집하기 위한 넓은 대(臺)가 전면에 구성된다. 이러한 특징은 조선시대 장대의 공간구성에서 정형화된 형식으로 나타나며, 지형적인 제약으로 인해 넓은 공간이 확보될 수 없는 곳은 대의 형태만을 갖추었다. 한편, 장대에는 지휘관이 위치하는 장소로서의 위계성이 다양한 건축적 특성으로 나타난다. 높이차를 통해 지휘관의 공간에 위계성이 부여되고, 건물의 격을 높이고자 여러 장식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었다. 장대 건물의 평면은 크게 장방형과 정방형으로 구분되는데, 장방형 평면은 건물의 규모에 따라 $5{\times}4$칸과 $3{\times}2$칸이 일반적이다. 이 중 $5{\times}4$칸의 건물은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평지성이나 읍성에서 나타나며, 비교적 소규모인 $3{\times}2$칸은 주로 산성에서 나타난다. 정방형 평면의 건물은 모두 $3{\times}3$칸의 형태를 가지며, 어칸 길이는 협칸의 약 두 배가 되어, 내부 중앙칸이 넓게 마련된다. 이는 내부 중앙칸이 상층의 바닥 면적이 되기 때문에 상층의 내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로 파악된다. 장대의 일부는 내부에 층을 두어 상부공간을 구성한다. 하층이 개방되고 상하층에 처마를 달아낸 중층누각형식은 장대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건축특징 중 하나이다. 이러한 건물들은 하층의 내진주가 그대로 연장되어 상층의 변주가 되는 온칸물림방식을 보여주며, 내진주에 멍에창방을 끼우고, 귀틀을 결구하여 상층마루를 구성하였다. 또한 읍성에 위치한 누각은 상부에만 지붕이 구성되어 중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높은 누하주를 세우고 상부에 청방을 결구하여 상층마루를 구성하였다.

태봉 철원도성의 고지형과 구조 분석 연구 (A Study on the Paleotopographic and Structural Analyses of Cherwon Castle in Taebong)

  • 허의행;양정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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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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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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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태봉 철원도성은 현실적 접근의 어려움으로 인해 조사와 연구에 제약이 있다. 따라서 현재 고고학계에서 이용되고 있는 고지형분석 방법론의 적용과 해석을 통해 도성의 구조와 내부 공간 구획의 여러 모습을 파악하였다. 태봉 철원도성은 외성의 북쪽 구릉지성 지형에서 시작하여 남서방향으로 흘러 내려온 다섯 줄기의 평탄한 구릉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내·외성벽은 각 구릉의 능선 줄기를 중심으로, 궁성벽은 그러한 능선 줄기의 중심 구릉지에 축조하였다. 각 성벽에는 여러 방향의 성문과 문지 등이 확인되는데, 도성 내부 건물의 방향과 지형 형태에 맞추어 설치한 것으로 파악된다. 도성 내 궁성은 평면 사다리꼴의 형태이며, 그 내부에는 궁전지와 관련 건물지 그리고 배수관련 지형 등이 확인된다. 궁전의 동서방향으로는 추정 도로와 함께 성문의 위치도 확인되었다. 궁성과 내성의 공간은 각각의 구릉 지형에 맞추어 평탄대지를 조성하고 건물지를 배치하였다. 내성의 남쪽에는 연못지로 추정되는 저수지가 궁성에서 내성의 중심을 잇는 수직 선상에 자리하는 모습이다. 내성과 외성 사이에는 건물지 흔적은 잘 관찰되지 않지만 평탄한 대지 지형의 존재로 그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다. 태봉 철원도성의 전체적인 구조는 북동 방향으로 약 9도 치우쳐 평면 장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구릉성 지형의 형태를 따라 설계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남서벽의 꺽임 현상 또한 습지성 지형을 회피를 의도한 것으로 파악된다. 아직 도성 내부의 건물지 기능과 성격이 불명확하여 이를 바탕으로 한 공간 활용의 모습도 분명치 않다. 하지만 내성은 궁전과 함께 관아 건물지로서의 이용 공간으로서, 외성과 내성 사이 공간은 일반민의 생활 공간으로서 구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방리제로서의 구획 흔적도 구릉성 지형의 존재로 인해 그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일부 지형은 평탄한 지대가 넓게 확인되고 있어 정연한 공간 구획의 모습을 배제할 수는 없다. 각 성벽의 축조 선후 시기나 방식 등도 아직 명확치 않지만, 적어도 지형을 이용한 도성의 축조와 내부 공간 구조의 활용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선산학서에 나타난 원주율 및 원의 넓이 계산법 연구 (A study on the content related to pi and calculating the area of a circle in Joseon-Sanhak)

  • 최은아
    • 한국수학교육학회지시리즈A: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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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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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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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본 연구는 조선산학서에 나타난 원주율과 원의 넓이 계산법의 특징과 이를 해석하고 다루는 방식의 시대적 변화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를 대표하는 <묵사집산법>, <주서관견>, <구일집>, <고사십이집> 등 4종의 조선산학서를 선정하여 분석하였다. 구체적인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4종의 산학서는 다양한 원주율의 근삿값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선택하여 정밀도를 조정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고법 3이 고정된 원의 넓이 계산법을 사용하는 등 계산의 편의성 차원에서 여전히 고법을 중시하고 있었다. 원주율의 속성과 관련해서는 지름과 원주의 관계를 드러내는 비율 속성과 무한에 기인한 근사적 속성이 비교적 잘 드러나고 있었으나, 나머지 속성은 제한적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분석 대상 산학서는 다양한 원의 넓이 계산법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모든 원의 넓이 계산법에는 지름과 원주로 직사각형을 만든 다음 정사각형의 넓이와 비례해서 구한다는 일관된 논리가 내포되어 있었다. 한편,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동안 원과 관련된 개념과 계산법을 다루는 방식에서 점차 엄밀한 수학적 논리로 전환하는 사례를 확인하였다. <주서관견>의 구장문답은 모든 원의 넓이 계산법이 정사각형을 기준으로 하는 이유를 논증하고 있으며, 원주율의 정밀도를 비교하기 위해 수치적 계산 결과를 그 근거로 제시하고, 보다 정밀한 원주율을 구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서의 할원술의 원리를 논리적으로 전개하였다. 이 사례들은 기존의 산학서와 차별화되는 엄밀하게 논리적으로 추론하고 정당화하고자 하는 변화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조선 산학이 단순히 계산법을 적용하는 실용적인 목적을 넘어 수학적 정밀성을 중시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캔버스 카이트의 유체역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 - 2. 삼각형 캔버스 카이트의 특성 - (The hydrodynamic characteristics of the canvas kite - 2. The characteristics of the triangular canvas kite -)

  • 배봉성;배재현;안희춘;이주희;신정욱
    • 수산해양기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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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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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6-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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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종횡비, 다각형 모양에 따른 평판과 범포의 유체역학적 특성을 규명하고자 직사각형, 사다리꼴 모양으로 모형 평판과 범포를 제작하고 회류수조에서 양 ${\cdot}$ 항력 실험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삼각형 평판의 경우, 종횡비가 1 이하인 모형에서는 38${\sim}$42$^{\circ}$에서 최대 $C_L$이 1.23${\sim}$1.32, 1.5 이상인 모형에서는 20${\sim}$50$^{\circ}$에서 $C_L$이 약 0.85 전후였다. 역삼각형 평판의 경우, 종횡비가 1 이하인 모형에서는 영가가 36${\sim}$38$^{\circ}$에서 최대 $C_L$이 1.46${\sim}$1.56, 1.5 이상인 모형에서는 22${\sim}$26$^{\circ}$에서 1.05${\sim}$1.21 정도였다. 같은 삼각형 평판 모형에서는 전자의 모형이 후자보다 $C_L$이 작게, 양항비도 작게 나타났다. 2. 삼각형 범포의 경우, 종횡비가 1 이하인 모형에서는 영각 46${\sim}$48$^{\circ}$에서 최대 $C_L$이 1.67${\sim}$1.77, 1.5 이상인 모형에서는 20${\sim}$50$^{\circ}$에서 $C_L$이 약 1.1 전후였다. 역삼각형 범포의 경우, 종횡비가 1 이하인 모형에서는 영각 28${\sim}$32$^{\circ}$에서 최대 $C_L$이 1.44${\sim}$1.68, 1.5 이상인 모형에서는 18${\sim}$24$^{\circ}$에서 10.3${\sim}$1.18 정도였다. 같은 삼각형 범포 모형에서는 전자의 모형이 후자보다 $C_L$은 크게, 양항비는 작게 나타났다. 3. 모형에서 물의 유체력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에서 만곡꼭지점이 만들어지며, 삼각형 모형에서는 종횡비가 클수록, 역삼각형 모형에서는 작을수록 만곡꼭지점의 위치도 컸다. 4. 만곡도는 전 모형에서 종횡비가 클수록 컸으며, 삼각형 모형에서는 영각이 클수록 컸고 역삼각형 모형에서는 작을수록 컸다.

리기다소나무 (Pinus rigida Miller) 지재(枝材)의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 대응재(對應材) 및 측면재(側面材) 특성(特性)에 관한 주사전자현미경적(走査電子顯微鏡的)인 연구(硏究) (Scanning Electron Microscopic Studies on the Features of Compression Wood, Opposite Wood, and Side Wood in Branch of Pitch Pine(Pinus rigida Miller))

  • 엄영근;이필우
    • Journal of the Korean Wood Science and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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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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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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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
  • 한국(韓國)에서는 리기다소나무 (Pinus rigida Miller, pitch pine) 지재(枝材)의 해부학적(解剖學的)인 특성(特性)에 관한 연구(硏究)가 광학현미경적(光學顯微鏡的)인 방법(方法)을 통하여 이(李)에 의하여 1972년(年) 발표(發表)되었다. 본 연구(硏究)에서는 리기다소나무 지재(枝材)의 해부학적(解剖學的)인 특성(特性)에 관한 이(李)의 연구(硏究) 속보(續報)로써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 (compression wood), 대응재(對應材) (opposite wood) 및 측면재(側面材) (side wood)의 횡단면(橫斷面)과 방사단면(放射斷面)상의 조직학적(組織學的) 특성(特性)을 주사전자현미경(走査電子顯微鏡)을 통하여 비교(比較) 연구(硏究)한 바 얻어진 결과(結果)를 요약(要約)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에 있어서 춘재(春材)로부터 추재(秋材)로의 가도관(假導管) 이행(移行)은 극점(極漸)이며 가도관(假導管)의 배열(排列) 및 크기 역시 거의 균일(均一)한 상태(狀態)를 나타내지만 대응재(對應材) 및 측면재(側面材)에 있어서는 가도관(假導管)의 이행(移行)이 급(急)하며 가도관(假導管)의 배열(排列) 및 크기도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의 가도관(假導管)보다 불균일(不均一)하다. 또한 대응재(對應材)의 연륜폭(年輪幅)은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나 측면재(側面材)의 연륜폭(年輪幅)보다 좁으며 측면재(側面材)의 횡단면(橫斷面)상 방사조직(放射組織)은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 및 대응재(對應材)의 방사조직(放射組織)보다 더 명확(明確)하다. 2.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의 가도관(假導管) 특히 춘재(春材) 가도관(假導管)이 둥근 경향(傾向)을 나타내는데 반하여 대응재(對應材) 및 측면재(側面材)의 가도관(假導管)은 다소 모난 모양을 나타낸다. 그리고 세포간극(細胞間隙) (intercellular space), 나선강(螺旋腔) (helical cavity) 및 나선형(螺旋型) (spiral check)이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의 춘재(春材) 및 추재(秋材)에 모두 존재하는데 반하여 대응재(對應材)에 있어서는 춘재(春材) 및 추재(秋材) 모두에 존재(存在)하지 않는다. 3. 대응재(對應材) 및 측면재(側面材)에 있어서 추재(秋材) 가도관(假導管)의 막(膜) 두께가 춘재(春材) 가도관(假導管)의 것보다는 더욱 크지만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의 추재(秋材) 가도관(假導管)은 그 막(膜)의 두께가 춘재(春材) 가도관(假導管)의 것과 비슷하여 대응재(對應材) 및 측면재(側面材)의 가도관(假導管)과는 달리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의 가도관(假導管)에는 2차막(次膜)의 $S_3$ 층(層)이 존재(存在)하지 않는다. 4. 대응재(對應材) 및 측면재(側面材)의 가도관(假導管)과는 달리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의 가도관(假導管)은 종종 그 선단부(先端部)가 굴곡(屈曲)되어 있으며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의 가도관(假導管)에 존재(存在)하는 유연막공(有緣膜孔)은 대응재(對應材) 및 측면재(側面材)의 것과는 달리 세포막(細胞膜) 내표면(內表面)의 나선상(螺旋狀) (groove)에 존재(存在)한다. 5. 대응재(對應材) 및 측면재(側面材)의 가도관(假導管)의 방사막(放射膜)에 존재(存在)하는 유연막공(有緣膜孔)은 난형(卵形)이지만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의 가도관(假導管)의 유연막공(有緣膜孔)은 약간 변형(變形)된 난형(卵形)을 나타낸다. 6. 측면재(側面材)의 춘재(春材)에 있어서 소형(小形) 분야막공구(分野膜孔口)는 둥근 삼각형(三角形)을 나타내며 대형(大形) 분야막공구(分野膜孔口)는 2개의 소형(小形) 분야막공구(分野膜孔口)가 합병(合倂)되어 창상(窓狀)을 나타낸다. 그러나, 대응재(對應材)의 춘재(春材)에 있어서 소형(小形) 분야막공구(分野膜孔口)는 직립(直立)의 난형(卵形)을 그리고 대형(大形) 분야막공구(分野膜孔口)는 평복(平伏)의 난형(卵形)을 나타내며 압축이상재(壓縮異常材)의 분야막공구(分野膜孔口)는 가도관측(假導管側)의 막공연(膜孔緣)으로 인하여 춘재(春材)의 것이 양편 볼록렌즈형(形)을, 추재(秋材)의 것이 슬릿 (slit)형(形)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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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카이트의 유체역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 - 1. 사각형 캔버스 카이트의 특성 - (The hydrodynamic characteristics of the canvas kite - 1.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ctangular, trapezoid canvas kite -)

  • 배봉성;배재현;안희춘;이주희;신정욱
    • 수산해양기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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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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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6-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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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종횡비, 다각형 모양에 따른 평판과 범포의 유체역학적 특성을 규명하고자 직사각형, 사다리꼴 모양으로 모형 평판과 범포를 제작하고 회류수조에서 양 ${\cdot}$ 항력 실험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직사각형 평판의 경우, 종횡비가 1 이하인 모형에서는 영각 40${\sim}$42$^{\circ}$에서 최대 $C_L$이 1.46${\sim}$1.54, 1.5 이상인 모형에서는 20${\sim}$22$^{\circ}$에서 10.7${\sim}$1.11 정도였다. 직사각형 범포의 경우, 종횡비가 1 이하인 모형에서는 영각 32${\sim}$40$^{\circ}$에서 최대 $C_L$이 1.75${\sim}$1.91, 1.5 이상인 모형에서는 18${\sim}$22$^{\circ}$에서 1.248${\sim}$1.40 정도였다. 같은 직사각형 모형에서는 범포가 평판보다 $C_L$은 크게, 양항비는 작게 나타났다. 2. 사다리꼴 범포의 경우, 종횡비가 1.5 이하인 모형에서는 영각 34${\sim}$44$^{\circ}$에서 최대 $C_L$이 1.65${\sim}$1.89, 2인 모형에서는 14${\sim}$48$^{\circ}$에서 $C_L$이 약 1.00 전후였다. 역사다리꼴 범포의 경우, 종횡비가 1.5 이하인 모형에서는 영각 24${\sim}$36$^{\circ}$에서 최대 $C_L$이 1.57${\sim}$1.74, 2인 모형에서는 18$^{\circ}$에서 1.21이었다. 같은 사다리꼴 범포 모형에서는 전자의 모형이 후자보다 $C_L$은 조금 크게, 양항비는 작게 나타났다. 3. 모형에서 물의 유체력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에서 만곡꼭지점이 만들어지며, 직사각형, 사다리꼴 모형에서는 종횡비가 클수록, 역사다리꼴 모형에서는 종횡비가 클수록, 역사다리꼴 모형에서는 작을수록 만곡꼭지점의 위치도 컸다. 4. 만곡도는 전 모형에서 종횡비가 클수록 컸으며, 직사각형, 사다리꼴 모형에서 영각의 클수록 컸고 직사각형 모형이 사다리꼴 모형보다 컸다.

조선시대 회격·회곽묘 출토 삽(翣)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Excavated Sab(a funeral fan) from Lime-filled Tomb and Lime-layered Tomb during the Joseon Dynasty)

  • 이승해;안보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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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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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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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삽(?)은 유교 예법에 따른 상장례(喪葬禮) 도구로 나무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백포(白布)나 두꺼운 종이를 붙여 그림을 그린 후, 자루를 달아 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례기(禮記)"에 따르면 삽은 주대(周代)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나타난 삽의 용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본고에서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회격 회곽묘에서 발견되는 삽의 발굴 사례 및 문헌 기록을 통해 그 용례와 제작방식, 시기에 따른 유물의 특징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삽은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개수와 그리는 문양이 다른데, 사대부가에서는 주로 '아(亞)'형의 불삽 1쌍과 구름 문양을 그린 화삽 1쌍을 사용하였다. 삽의 크기는 너비가 2자[척(尺)], 높이 2자[척(尺] 4치[촌(寸)]로 만들었는데 초주지나, 저주지로 두 번 싸고, 세 번째는 연창지로 쌌다. 그리고 나서 백저포, 마포, 무명, 공단 등으로 덮었다. 그 양면에 보불을 그리고 구름 변아(邊兒)에 운기를 그리는데 대개 주사 또는 진사를 사용하였다. 사대부가 회격 회곽묘에서 출토되는 삽은 광중에 부장된 것으로, 삽자루와 분리된 형태이다. 즉, 출토되는 삽은 발인행렬시 삽을 매달았던 5자 길이의 삽자루는 태워 없애고, 관의 좌우에 세워 넣은 것이다. 출토 유물의 검토를 통해서도 제작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은 각(角)의 개수에 따라 각이 3개 달린 것과 2개 달린 것으로 대별된다. 먼저 각이 3개 달린 것(유형 I) 중에는 나무 통판을 사용하거나 대나무를 납작하게 갈라, 바구니처럼 엮은 것도 있다. 각이 3개인 삽은 비교적 조선 전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형태에 비해 그 제작방식이 다양한 편으로 생각된다. 반면 각이 2개 달린 삽의 경우에는 비교적 정형화된 제작방식이 보인다. 직사각형이나 역사다리꼴로 몸통부분을 만든 후, 2개의 각이 달린 삽의 윗부분을 연결한 형태이다. 다만 상단면을 곡선(유형 II) 또는 직선(유형 III)으로 처리하는 것이 다르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각이 3개 달린 것에 비해 간단하며, 제작기법 상의 차이는 크지 않다. 특히 상단면을 직선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분석에 사용된 30건 중 묘주의 몰년, 즉 삽의 제작 연대가 명확한 것만 선택하여 분석한 결과, 유형 I은 16세기 전반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유형 II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후반, 유형 III은 17세기 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요컨대 삽의 형태는 유형 I에서 유형 II로, 다시 유형 II에서 유형 III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17세기는 변화의 시기로 유형 II III이 혼재되어 있다. 유형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하였으나 유형 II III은 각이 2개인 측면에서 그 형태가 유사하다고 볼 때 주목할 만한 전환기는 16세기 중반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유형 I은 유형 II III에 비해 제작 과정상 공이 더 많이 들어갈 것으로 생각되며, 후대로 내려올수록 경제성의 원리에 따라 삽의 형태 및 제작방법도 간소해진 것으로 보인다. 상장례의 간소화 경향은 "선조실록(宣祖實錄)"에 예장(禮葬)이 몇 차례 중지되는 사건들을 통해 임진왜란 이후에 가속화된 변화로 볼 수 있다. 삽의 경우 이미 16세기 후반부터 간소화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18세기에는 삽을 따로 제작하지 않고 구의(柩衣) 및 관(棺)에 직접 그리는 현상까지 초래하였다. 그러나 형태적으로 단순화 되는 과정에도 "례기(禮記)"의 삽 사용 규정은 지켜지고 있어, 그 의례의 형식은 합리적으로 간소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주오소경과 명주(하서주) - 그 도시구조를 중심으로 - (9 Provinces and 5 Secondary Capitals, Myeong-ju(Haseo-ju) - Revolve Around Urban Structure -)

  • 야마다 타카후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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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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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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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신라는 문무왕 18년(678) 당나라군이 철수함에 따라 명실공히 한반도를 통일한 뒤, 그 판도를 중국 지방행정구획 제도를 모방하여 아홉 개의 주로 구분하고, 거기에 소경 군 현을 배치한 지방행정 조직을 정비하였다. 이른바 9주5소경(九州五小京)이라 불리는 지방행정제도이다. 주는 현재의 대한민국(이하 한국)의 도(道)에 해당하며, 소경은 광역시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수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덕왕 16년(757) 겨울 12월조에 의하면 5소경, 117군, 293현에 이른다 통일신라시대의 지방도시인 9주5소경(九州五小京)의 연구는 문헌사학 중심으로 이루어져, 주성(州城)과 소경성(小京城)의 위치와 그 도시구조에 대해서는 지금껏 크게 논의되었던 적이 없어 명확치 않은 점이 많다. 고고학적 도시구조의 복원연구는 박태우의 논고("통일신라시대의 지방도시에 대한 연구" 1987년)와 필자의 논고("新の九州五小京城郭の構造と實態について-統一新による計畵都市の復元硏究-"2009년) 정도이다. 강원도 강릉시는 원래 예(濊)의 고국(古國)으로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선덕왕 8년(639)에 북소경 하서양주(北小京; 河西良州))으로 되었는데, 무열왕 5년(658)에 하서주(河西州)로 소경에서 주로 바뀌었다. 이후 경덕왕 16년(757)에는 명주로 개칭되었고 그 뒤, 고려시대 이후로도 명칭은 여러 가지로 변하였다. 박태우는 나성 흔적이 남은 도시로 분류하여 명주동에 있었던 성지로 비정하고 있는데, 현재는 시가지화로 인하여 확인할 수가 없다고 한다. 또한 관동대학교에서는 강릉시 중심부로부터 서남서 약 3km에 위치하는 명주산성을 주치(州治)로 보는 설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일제시대의 측량도에서 볼 수 있는 유존(遺存) 토지구획로 보아 경주시의 신라금경이나 다른 많은 도시와 같이 방격의 가구, 즉 방리(坊里)를 갖춘 도시로 복원하였다. 다음은 그 구조에 대해 서술하였다. 강릉의 시가지는 시내를 남서에서 북동으로 흐르는 남대천의 왼쪽 기슭 평탄지에 위치하고 있다. 부근에 그다지 높은 산은 없으나 시가지의 북측에는 산이 동서로 이어져 있으며, 남대천으로부터의 평지부분 너비는 최대가 1km 정도로 그다지 넓지는 않다. 현재는 강릉시의 중심부로 시가지화가 진행되어 강릉역을 중심으로 한 방사상의 구획정리 등도 이루어져 옛 토지구획이 거의 소멸된 상태이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지형도 등을 보면 시가지 중심부인 옥천동, 임당동, 금학동, 명주동 등의 일대에 한 변 약 190m를 기본으로 하는 방격의 토지구획이 북서-남동에 약 0. 8km, 북동-남서에 약 1. 7km의 범위로 잔존하고 있는 것이 확인 가능하다. 방격의 유존 토지구획은 다른 9주5소경(九州五小京)의 사례를 통해 보면 통일신라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단, 방격 한 변의 길이가 190m로 신라의 금경이나 다른 도시유적에서 볼 수 있는 한 변 160m나 140m의 규격과는 다르다는 점이 앞으로의 검토과제이다. 토지구획의 방위는 지형에 준하여 북서-남동 축에서 북쪽으로부터 약 $37.5^{\circ}$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는 남대천의 방위와 북측의 산지에 제약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여 진다. 방격의 유존 토지구획이 잔존하는 범위로부터, 최소로 보더라도 북서-남동 4방${\times}$북동-남서 7방 크기라는 장방형으로 복원하였다. 단, 방격의 유존 토지구획이 퍼지는 정도로 보아, 남서측과 북서측에 각각 1방 씩 늘어난 북서-남동 5방${\times}$북동-남서 8방(북서-남동 약 $950m{\times}$북동-남서 약 1520m)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전체의 형상은 장방형으로, 당의 장안성(長安城)이나 일본의 평성경(平城城)과 같은 중축대로(주작대로)가 상정 가능한 토지구획은 확인되지 않는다. 명주의 도시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이제껏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도시유적 추정지 내부에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강릉읍성이나 관아지의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기와류, 토기류 중에는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만한 것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또한, 관아지에서 검출된 조선시대의 건물지는 모두 정방위가 아닌 크게 기울어진 방위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강릉에서 볼 수 있는 방격 유존 토지구획이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명주성"의 명문 막새기와가 출토된 명주산성의 역할로, 이것이 주치였던 것을 필자는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의 고대도성은 평지성과 산성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통일신라가 되어도 방리제 도성인 금경 주위로 명활산성, 남산산성, 서형산성의 산성군이 계속되어 유지되고 있었다. 구주오소경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도 도시유적 부근에 산성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명주도 평지의 도시와 산성이 세트가 되어 주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