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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워>, 매혹의 영화 (, the Cinema of Attractions)

  • 류재형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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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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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9-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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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디 워>는 실패한 블록버스터인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이 영화의 가치에 대해 재고의 여지는 남아 있지 않은가? 이 연구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07년 심형래 감독의 <디 워>는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영화를 둘러싼 민족주의 담론으로 평단과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나, 이야기와 형식 모두에서 분명 기존의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차이를 보이면서 850만이라는 투입 대비 다소 실망스러운 박스오피스 성공과 민족주의에 경도된 일부 관객들의 열광적인 지지, 그리고 영화의 예술성과 완성도에 대한 평단의 비판적 시각이라고 하는 부조화스러우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를 낳았다. 결국 <디 워>는 문화적으로 논쟁거리를 제공했을 뿐 산업계와 비평계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영화로 남겨졌다. 그러나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디 워>를 지지하는 관객들과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평론가들 사이에 한 가지 공통된 시각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디 워>의 스펙터클이 한국 관객의 기대 이상으로, 그리고 스토리 전개와 불균형을 이룰 정도로 불거졌다는 것을 양자 모두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러티브를 압도하는 <디 워>의 스펙터클은 일면 팬들을 열광시키는 동시에 평론가들로 하여금 이 영화를 외면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연구는 <디 워>의 예술적/이론적/비평적 가치에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러한 측면, 즉 '내러티브를 압도하는 스펙터클' 내지는 '스펙터클을 보여주기 위한 구실로서 존재하는 내러티브'라는 영화의 미학적 특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작품성의 측면에서 실패작으로 치부되어 온 <디 워>에 일말의 비평적 가치를 제고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또한 <디 워>는 "기존의 영화비평 방식을 통해 접근해갈 수 없는 새로운 범주에 속하는 영상물"임을 제시하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개념적 틀을 통해 비평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 이 연구의 의의가 있다 하겠다. <디 워>의 서사미학을 밝히기 위해 스펙터클 중심적인 서사성(narrativity)의 미학, 내지는 내러티브보다 스펙터클을 더 중시하는 제작 양식을 일컫는 앙드레 고드로(Andre Gaudreault)의 '기교성(trickality)'이라는 개념과 이러한 미학이 지배하는 영화를 가리키는 톰 거닝(Tom Gunning)의 '매혹의 영화(the cinema of attractions)'라는 개념을 살펴볼 것이다.

행정수도 건설안의 타당성과 시의성 (Validity and Pertinence of Administrative Capital City Proposal)

  • 김형국
    • 대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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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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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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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행정부 이전이란 비상카드를 꺼낼 정도로 국토불균형이 심각하다고 보는 참여정부의 인식에는 절대 공감한다. 하지만 수도 이전은 단지 균형개발 이유만으로 추진하기에는 구실이 약하다. 경제 사회적 상황 못지 않게. 아니 훨씬 더 중요하게 국내외 정치상황과 직결된 것이 수도의 입지요 이전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 3공이 수립했던 '임시' 행정수도안은 안보가 절대 이유였다. 그때 김대중 야당지도자는 휴전선에서 멀리 안전거리를 확보하려함은 군사적 고려일 뿐, 백성들의 호국의지를 더 무게 있게 감안한다면 대치 현장에 바싹 붙여 수도를 유지함이 옳다 했다. 실제로 독립 파키스탄은 수도를 카라치에서 인도와 영토분쟁중인 카슈미르 인근 이슬라마바드로 옮겼다. 이번 행정수도발상에서 핵구름이 짙게 드리워진 급박한 한반도 정세에 대한 고려가 일체 없음은 유감이다. 개인도 건강이 있고 나서야 꿈을 들을 수 있듯이. 나라 또한 안보가 확실해야만 비로소 국토균형개발도 추진할 수 있다. 현대도시이론에 따르면 국가운명은 대도시가 변수라 했다. 방위가 소홀한 수도는 나라를 결딴내는 인질이 될 염려가 있다는 말이다. 이 말대로 북한이 아직 버리지 않은 무력 적화통일전략의 주 공격대상은 단연 서울이다. 때문에 우리 국체를 지키자면 서울을 북한의 인질이 되는 상황을 막는 방패로 삼아야 마땅하다. 주한미군 주력이 서울 북방에 자리잡은 것도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서는 서울 사수가 절대적이란 판단에 근거한다. 그 사이. 입장은 다를지언정 같은 민족이 두 국가로 나눠져 있음이 '비정상'임을 남북한이 다함께 인정한다. 예측 불가사항인 통일은 뜻밖에 빠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통일의 그 날이 수도이전의 적기일 것이다. 제대로 만들자면 최소한 20년은 걸릴 일인데 졸속으로 수도를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닐 수 없지 않은가. 자유민주가 확보되는 통일의 그 날이면 브라질이나 호주처럼 새 국운의 장소 상징을 만들자는 국민적 합의는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다. 안보가 문제될 게 없다해도 정부발상은 국토균형발전에 별로 기여할 것 같지 않다. 새 입지로 점찍은 충청권은 수도권 인접효과를 가장 많이 누려온 선택된 곳이지 격차해소 대상인 푸대접 또는 무대접 지역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안보와 균형개발을 동시에 지향하면서 멀리 통일이후도 고려한 후보지를 굳이 찾는다면 한반도의 중심성도 있는 휴전선 근접 철원 일대가 그럴싸하다. 남북대치의 현 상황을 깊이 유념한 끝에 통일의 그 날까지 천도를 미룬다해도 균형발전 실현의 지름길은 분명 있다. 그건 중앙부처의 지리적 분산이 아니라 중앙권력의 지방분권이다. 아니할 말로 수도란 상징 장소를 새로 만들 여유 돈이 있다면, 이를테면 그냥 마시기를 기피하는 전국 수돗물 수질을 높이고. 적자에 허덕인 끝에 대형 참사도 낳았던 지방 대도시 지하철을 돕는 것이 옳다. 그리고 천도는 통일의 천기(天機)에 맞추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