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Qi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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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verland and Maritime Silk Routes in the Post-Mongol World

  • Joo-Yup LEE
    • Acta Via S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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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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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5-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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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Trade along the Silk Routes reached its zenith during the Pax Mongolica, a period of relative stability in Eurasia that was created by the Mongol empire in the 13th and 14th centuries. It is generally believed that the Silk Routes declined after the disintegration of the Mongol empire in the second half of the 14th century and that they fell into disuse after the 1453 Ottoman conquest of Constantinople as the Europeans sought alternative maritime routes to Asia. This paper examines the aftermath of the Mongol-era overland and maritime Silk Routes from a non-Eurocentric perspective. Seen from the standpoint of various successors to the Mongol empire, such as the Timurid empire, the Mughal empire, the Uzbek khanate, the Ottoman empire, Manchu Qing, and Russia, the overland and maritime Silk Routes did not really collapse or sharply decline during the post-Mongol period. These Mongol successor states maintained close and thriving overland trade relations with each other or some important maritime trade relations with Southeast Asia. It may be argued that the Silk Routes in the post-Mongol world functioned rather independently of European seaborne commerce.

비백웅(費伯雄) 『식감본초(食鑑本草)』의 편제와 내용에 관한 연구(硏究) (A Study on the Organization and the Contents of Sikgamboncho(食鑑本草))

  • 홍진임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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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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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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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Objectives : There exists a number of books that deal with curing diseases with foods. This includes Shennongbencaojing from Han Dynasty era, Zanyin's Shiloaoxingan and Mengxi's Shilaobencao from Tang Dynasty era, Husihui's Yinshanzhengyao from Won Dynasty era, and Feiboxiong's Sikgamboncho from Qing Dynasty era. This paper aims to delve into the food treatment revealed in Sikgamboncho, which is the latest book in the preceeding list, and studied its differences when compared to other medical books that deal with food treatment methods. Methods : The format and contents of Feiboxiong's Sikgamboncho were studied. For its format, Shilaoaoxingan, Yinshanzhengyao, Shikryochanyo, and Donguibogam were used to compare their formats with that of Sikgamboncho in order to discern the unique characteristics found in the book. For its contents, the paper studied food ingredients and food treatment separately, and then studied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Feiboxiong's Sikgamboncho. Results : Sikgamboncho categorizes 12 types of grain, 22 types of vegetables, 7 types of cucumis calyx, 27 types of fruit, 9 types of flavor, 4 types of bird, 4 types of animal, 10 types of fish with scales, 4 types of carapace, and 2 types of worm. The book explains each ingredient's harvest period, its nature, potency, and taboos. The food treatment section explains 74 types of treatments that are divided between the wind, cold, summer heat, dampness, dryness category and the qi, blood phlegm, deficiency, and excess category. Each treatment contains its potency and recipe. Conclusions : Feiboxiong underlined the importance of ingredient through placing significance even to the order of ingredients. Out of the total 74 food treatments, 25 treatments were dedicated to deal with weakness. Feiboxiong attempted to prevent human body from becoming weak, which reflects his emphasis on the importance of food and wellness.

오장변증(五臟辨證)을 활용한 조선(朝鮮) 침법(鍼法) 연구(硏究) (A Study on the Acupuncture Methods of Joseon Dynasty Using Five Viscera Diagnosis)

  • 오준호;김남일
    • 한국한의학연구원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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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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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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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Objective : The objective of this study is to verify the characteristics of acupuncture methods of Joseon Dynasty by looking into the relationship between five viscera diagnosis and acupuncture methods. Material & Method : In the process, I've reviewed the relationship between meridian/exterior and viscera/bowels, along with a thorough comparison of the academic tendency in acupuncture of Ming-China, Qing-China and Joseon. Result & Conclusion : The two fields of meridian and exterior, and viscera and bowels had been theoretically merged, and based upon that, foundation methods applying the five viscera diagnosis were designed. Joseon acupuncture exceeded the existing concept of viscera which simply related itself to the exterior meridian and exterior by integrating the concepts from the visceral manifestation theory. With this, large proportions of medicine related to the visceral manifestation theory were invited into acupuncture, expanding therapeutic boundaries for acupuncture treatment. A historical review on medical texts starts from the Hyangyakjipseongbang("鄕藥集成方") which familiarized the public with mainstream acupuncture knowledge up until the Song dynasty, followed by Uibangyuchwi("醫方類聚"), which sparked up interest on the acupuncture methods based on viscera and bowels. Donguibogam("東醫寶鑑") organized the medical theories up until then, building a foundation upon which viscera/bowel-based acupuncture was able to develop further. In Chimgugyeongheombang("鍼灸經驗方"), viscera/bowel-based acupuncture methods started to blossom, integrating the meridian and exterior theory with the viscera manifestation theory, which in turn provided various methods through five viscera diagnosis. In the Saamdoin acupuncture method(舍岩道人鍼法), diagnostic criteria moved on to the five viscera diagnosis, and new methods resulting from the inter-complimentary and inter-prohibiting relationships between the five phases were introduced, opening a new world of acupuncture.

명대 원림서에 기술된 죽병(竹屏)의 활용과 그 의미 (Studies on the Utilization of Bamboo Screen(Zhuping: 竹屏) and the Meaning in Gardening Books of Ming Dynasty)

  • 정우진;권오만;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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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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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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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중국 명대 원림서인 원야, 장물지, 한정우기를 통해 중국 죽병의 용도와 식물소재를 분석한 것으로, 요약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위 세 서적은 거의 동일한 시기에 저술되었지만 작자가 바라보는 죽병의 시각은 부정적이기도 했고 적극 지지하는 의견이 피력되기도 한다. 이는 명초에 시은(市隱)을 조성할 때 죽병을 사용했던 양상이 퇴색되는 과정을, 나아가 명말 사회경제적 변화에 의해 죽병의 의미가 사치적 성향으로 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죽병은 덩굴성 식물의 가지가 등반 부착하게 하는 보조재(補助材) 또는 유도재(誘導材)의 성격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이는 한편 여름 내내 많은 꽃이 연이어 피는 장미과 식물의 관상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였으며, 또한 중국 특유의 문화적 향유와 관련되었다. 죽병에는 주로 꽃이 아름다운 장미과 식물이 사용되었으며, 이 식물들을 부식하여 만든 죽병은 평소에 담장의 역할을 하다가 개화기에는 아름다운 화벽을 볼 수 있는 다목적 시설로 설치되었다.

정치적 관점에서 본 관우(關羽) 신격화(神格化)의 역사적(歷史的) 변모 양상 고찰 (A Study on the Historical Transformation of Guanyu' Deification from Political Perspective)

  • 배규범;민관동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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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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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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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고는 촉한(蜀漢)의 무장(武將)에서 출발하여 신(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관우의 생명력을 역대 왕조의 정치적 측면에서 찾았다. 관우는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에는 일개 장군으로 묘사되었지만, 수당(隋唐) 시대를 거치며 무성왕묘(武成王廟) 종사(從祀)를 통해 국가 사전(祀典)에 편입되었고, 다시 송원(宋元)시대에는 '후(侯)'에서 '공(公)'으로, 다시 '공(公)'에서 '왕(王)'으로 신분의 급상승을 이루었다. 관우 신격화가 절정에 이른 명청(明淸) 시대에 이르면, '왕(王)'을 넘어 '제(帝)'로 등극하면서 삼계(三界)를 통섭하는 최고의 권능을 부여받게 된다. 그는 백성에서부터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생활신앙과 도덕 정신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은 정신적 수호신(守護神)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역사상 통치자가 관우(關羽)에게 내린 봉호(封號)는 다양했지만, 그 속에는 국가의 재난 해소와 봉건통치의 유지와 보호라는 정치적 필요성이 깔려 있었다.

동관왕묘(東關王廟)의 조각상 연구 (A Study on the Sculptures from Donggwanwangmyo [East Shrine of King Guan Yu])

  • 장경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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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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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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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동관왕묘(東關王廟)는 중국 촉(蜀)나라의 장수 관우(關羽)를 모신 사당이다. 이러한 사당이 우리나라에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598년 정유재란 때부터이다. 당시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수들은 관우의 힘으로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길 염원하면서 그들의 주둔지마다 관왕묘를 세웠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중국 명나라 황제와 조선의 국왕은 외세를 물리치려는 의지로 관왕묘를 세우고자 하였다. 1599년 8월 조선 정부는 '동관왕묘조성청' 이라는 관청을 임시로 설치하고 인력과 물력을 총동원하였다. 명나라 기술자의 감독 아래 연 2,400명의 조선 장인과 역군(役軍)들이 중국 제저우(解州) 관제묘(關帝廟)를 본으로 삼아 영건하여 3년 뒤인 1602년 봄에 동관왕묘를 완공하였다. 한 중 기술자가 협력하여 세웠기 때문에 관왕묘의 정전 건축과 내부 구조 및 조각상에는 양국의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동관왕묘 내부에는 7기의 조각상이 서 있다. 관우상 1기는 금동상이며, 나머지 6기는 소조상 위에 채색한 것이다. 이들 조각상들은 1602년에 만들어졌고, 관우와 그를 배위하는 관평(關平) 주창(周倉) 조루(趙累) 왕보(王甫)는 삼국시대에 실존했던 인물들의 초상조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복식은 관우를 추숭하던 당송대에 확립된 도상을 따르고 있었으며, 세부적으로는 명대적 요소와 조선적 배치가 절충되어 있었다. 이로 미루어 송대 이후 확산된 <의용무안왕(義勇武安王)> 판화의 도상이나 명나라 만력황제가 1593년 조영한 제저우 관제묘의 명대 관우 도상이 동관왕묘를 제작할 때 직접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현재 동관왕묘와 비교되는 중국 제저우 관제묘의 경우 건축과 조각상이 모두 청대 18~19세기에 중건된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동관왕묘의 조각상은 17세기 초 한 중 관왕묘 중에서 제작시기가 가장 이른 예로서 당시의 원형을 지니고 있다는 점, 한 중 기술자의 합작으로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 금동으로 만든 관우상은 유일하다는 점, 문무 배위상을 각 1쌍씩 마주 배열하여 조선왕릉의 석인 배치와 친연성이 있다는 점 등 여러 면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전란의 기억과 문학적 극복 - 정묘·병자호란 이후 17세기 후반에 나타난 문학적 현상에 주목하여 - (The Remembrance of War and Overcoming its Aftermath through Literature: Focusing on the post Manchu's Invasion Period)

  • 백진우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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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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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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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는 조선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경험한 직후 창작된 문학작품들을 검토하여, 전란이 남긴 좌절과 상처의 기억을 문학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사례들을 살피고 그 의미에 대해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이 시기에 제출된 일련의 문학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분모를 확인하여, 당시 지식인들이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전쟁에 대한 기억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고 재구하였는지를 살피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명(明)나라에 대한 의리와 청(淸)나라에 대한 적대감이 팽배했던 당시 조선의 국가적 담론이 문학적으로 구현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은 외침(外侵)이었지만 임진왜란 이후의 문학 작품들이 전쟁으로 인한 참상 애상 비분 통분의 감정을 위주로 드러낸 데 비해, 정묘 병자호란 이후의 문학 작품들은 국가적 담론의 문제를 문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구체화하는 양상이 확인된다. 본 논문에서는 특히 그 가운데 당대에 국가 차원에서 담론으로 제기되었던 복수설치와 대명의리 의식이 문학의 장(場) 위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으며, 그 의의는 무엇인지에 주목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역사 인물들을 제재로 한 문학 작품들을 통해 그 양상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본 논문에서는 문인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당시의 국가적 담론이 문학 작품에서는 어떤 양상으로 반영되었는지 살피고 그 의미에 대해 검토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당시에 자주 언급되었던 역사 인물들은 정묘 병자호란이 남긴 정신적 상처를 당시의 지식인들의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하기 위해서였음을 확인하였다.

서지학적 고증을 통한 인삼 승열작용의 정체성 - 한의학적 해석을 중심으로 (Identity of thermogenic reaction to Korean ginseng through bibliography - Focusing on oriental medicine interpretation)

  • 고성권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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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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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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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본 연구는 서지학적 고증을 통하여 고려인삼 승열작용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해소방안을 모색함을 목적으로 한다. 인삼의 승열작용과 관련하여 고문헌은 음(陰)이 부족하고, 폐가 열(火)이 있어서 가슴이 답답하고 기침 가래가 있는 사람, 맥(脈)이 강하고 빠른 사람, 비위(脾胃)가 실열(實熱)하여 변비가 있는 사람은 인삼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청(淸)나라의 『본초정의』(本草正義)는 산양삼은 미한(微寒)의 보음(補陰) 작용이 있고, 밭 재배인삼은 미온(微溫)의 보기(補氣) 작용이 있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청나라의 『본경봉원』(本經逢源), 『본초편독』(本草便讀), 『본초정의』는 미삼(尾蔘)은 쓴맛(苦味)으로 보음하고, 기미(氣味)가 차가운 성질(寒)로 하행(下行)하는 성질이 있다고 하였다. 한편, 명(明)나라의 『월지인삼전』(月池人蔘傳)과 청나라의 『본초비요』(本草備要)에서는 생인삼(生人蔘, 수삼)은 맛이 달고 쓰며, 약간 냉(凉)하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고문헌의 기록을 고려해보면, 고려인삼의 승열의 부작용은 약간 냉하여 허화(虛火)를 걷어주고, 보음, 하행하는 한방생리작용을 나타내는 미삼, 생삼(수삼) 그리고 산양삼을 이용한 제품 개발을 통하여 극복할 수 있다고 사료된다.

City Festival in Tainan during the Colonial Period: Focusing on the Restoration of Mazu

  • Sunagawa, Haruhiko
    • Journal of East-Asian Urb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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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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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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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Tainan was the capital of Taiwan and was the largest commercial city in Taiwan with a significant number of ports. However, after the end of the Qing era, the functions of the capital and major ports were shifted to Taipei and Kaohsiung, thus leading Tainan to lose its position. This article focuses on festivals in the city. The Qing dynasty administrative agency set up a local government that grouped multiple villages based on the religious beliefs which were closely related to the concept of the urban space as the primary temple. Mazu is an object of worship that attracted the attention of city residents from the Taisho era to the colonial era. At the Mazu temple in Tainan, which has acquired a new mystery, a Mazu festival was conducted with Mazu patrols. This festival was conducted from 1915 to 1937, when it was canceled due to the temple reorganization movement. At the festival, multiple participating groups used to compete to earn the luxury of running the pavilions. The procession ran through the north side of the city on the first day and the south side of the city on the second day. During this festival, in addition to going around the villages of the old city, a touring route was planned for the procession to pass through major landmarks related to the colonial administration and the Ginza-dori Shopping Street, which was newly created during the Taisho era. Therefore, this procession was unique because it ensured that people could explore the old and new streets that were transformed through urban remodeli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Moreover, passing through the licensed quarters called Shin-machi, which was relocated through urban remodeling by the administrative agency, allowed people to visualize the urban structure of colonial Taiwan. Tainan city was renewed through remodeling during the colonial period, thus leading to the formation of a new commercial area. The spirit of the people in Tainan city can be gauged based on the fact that the festival was financially and religiously supported by the merchants who promoted it. The restoration of Mazu during the colonial period indicates the restoration of urban commerce in Tainan, which had fallen from its position as the primary port city in Taiwan since the end of the Qing period. Therefore, it can be considered to represent the restoration of the city.

한정우기(閑情偶寄)를 통해 본 이어(李漁)의 조원(造園) 이론 (A Study on Gardening Theories of Li, Yu in 'Xian Qing Ou Ji')

  • 장림;정우진;성종상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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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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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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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어(李漁)의 "한정우기"는 명말청초(明末淸初) 상업경제의 발달로 물질문화가 성행했던 시기에 저술된 작품으로, 당대의 사회풍조를 반영하여 물질문화의 향유방법을 자세히 풀이한 저작이다. 본 연구는 "한정우기" 거실부(居室部) 와 종식부(種植部) 를 텍스트로 하여 이어의 원림조영 이론을 고찰한 것으로, 도출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이어는 인지제의(因地制宜) 이론을 통해 지세에 따른 원림의 배치를 설명하였다. 그가 강조한 것은 땅의 지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모든 조영이론의 출발점이라는 점이다. 그는 전저후고(前低後高)의 이상적 형태를 만들기 위해 지형의 고저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가옥, 누대, 가산, 물길 등의 성공적 배치가 지세의 정확한 판독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음을 설명하였다. 둘째, 취경재차(取景在借)는 바깥 경치를 잡아두는 장치로 창을 이용한 기법을 말한다. 이것은 동관(動觀)과 정관(靜觀)이라는 색다른 이론으로 전개된다. 동관은 배의 움직임에 따라 창을 통해 바라보는 경치도 바뀌게 되며, 하루에도 수천 폭의 산수화를 창문을 통해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적극적 경관향유의 방법론으로 규정된다. 정관의 경우, 원림 또는 실내에서 외부의 경관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창문을 이용할 때의 경관으로 설명된다. 셋째, 이어는 제체의견(制體宜堅)의 논설에서 재료와 디자인을 통해 견고함을 유지하는 것이 정교함에 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째, 창이표신(創異標新)은 다름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형식적 측면을 중시하는 말로서, 이어의 조원이론을 성격을 잘 나타낸 말이다. 본 연구는 한정우기에서 '청벽(廳壁)', '활첨(活?)', '대련 편액(聯?)', '죽병부식법(竹屛扶植法)'의 네 가지를 선별하여 창이표신의 이론과 실제를 고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