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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화설당(花雪堂) 지당(池塘)의 조형디자인적 해석(解釋) (Interpretation on the Formative Design for Garden Pond of Hwaseol-dang in Muan)

  • 노재현;이현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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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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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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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고는 무안 화설당(花雪堂) 정원의 핵심시설인 지당(池塘) 디자인의 전개과정을 조명한 것이다. 연구진행 상의 현황파악과 이해를 위해 '문헌조사 인터뷰 현장답사 항공사진 및 촬영 사진 분석 측량에 의한 배치평면 작도' 등의 방법으로 정원 및 지당의 조형성 분석 및 전개과정 상의 디자인 함의를 해석하였다. 지당을 중심으로 추출한 본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화설당의 입지는 정자의 입지로는 역량성이 낮은 구릉지에 조성됨으로써 내부 디자인적 함의가 더욱 주목된다. 지당 형태는 1 : 12 장방형 비율로, 화설당쪽 호안의 수심(水深)이 최대 25cm 높은 상태이며 남동측으로 편재(偏在)된 중도 상에는 배롱나무가 식재되어있다. 화설당을 중심으로 전정과 후정은 수직 수평적 음양운동을 도형화 시킨 천지(天地)의 표현이며 중도의 편재현상은 '화설당 누마루에서의 좌관(坐觀)을 통한 완상(玩賞)'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배려로 판단된다. 지당의 평면디자인은 '장방형 방지'로 해석되지만, 일부분이 가각전제(街角剪除)로 공제된 원만한 반월형이다. 방지3도(方池三島)는 협소한 부지로 인해 1개의 섬과 2개의 반도(半島)를 병치시킴으로써, 실제로 1개인 중도가 결과적으로는 증식된 3개의 중도로 배치된 존재효과를 거두고 있었고, 이는 디자인적 구성상 합병(合倂)과 첨가(添加)에 의해 중복을 최소화하는 대신 접합(接合)의 효과를 기도한 조영의도로 화설당 지당 디자인의 요체로 판단된다. 국내 민가정원 중 3도(三島)의 섬을 갖는 소수 사례마저 모두 곡지(曲池)임을 감안할 때, 방지일도(方池一島)의 변형 형태로 방지삼도(方池三島)의 정원효과를 구현한 화설당 방지의 디자인 특성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한편 지당 내 '영주(瀛州) 방장(方丈). 봉래(逢萊)'의 3개의 섬은 신선사상을 배태한 것으로 이는 전남지방 지당양식의 특징으로 간주되며 이른바 화설당 지당의 풍백나무와 용침(龍枕) 그리고 괴석 등은 화설당의 의미 상징성 요소로 응축된다.

편액을 통해 본 중국 졸정원의 의미와 공간 특성 (A Study on the Meaning and Spatial Characteristics of the Chinese Zhuozhengyuan from the Tablets)

  • 함광민;손용훈;이수화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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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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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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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졸정원의 편액에 함의된 사유의 특성을 인지하고 유형화(類型化)하여, 공간과의 접목을 시도한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졸정원의 편액은 세 그룹으로 유형화되었다. A그룹은 탑, 배, 삿갓 등을 포함하는 인공요소의 출현 빈도가 높았고 선비가 갖추어야 할 기품과 청렴한 정신을 강조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었다. 누와 정자 등 조망성이 좋은 건축물이 이에 속하고, 수변에 근접하여 건축물의 한 면이 수면과 일체화된 것이 특징이다. B그룹은 비, 바람, 눈 등을 포함하는 기후요소를 통해 일시적 경관을 묘사하거나 정경적 분위기를 운운한 것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풍경을 조망하기에 좋은 가산의 정상에 위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C그룹은 연꽃, 목련, 매화, 대나무 등 식물요소의 출현 빈도가 높았고 정자, 관, 각, 당 등 다양한 건축물이 이에 속하며, 건축물은 수면과 직접 혹은 평대를 사이에 두고 일체화되며 원림 전 영역에 산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편액의 유형 빈도가 높은 것을 토대로 영역의 특성을 도출할 수 있었다. 서부 영역은 A그룹이 다수 분포된 곳으로써, 편액에 함의된 유희와 관념이, 경물의 형태와 위치, 감상자의 시점, 풍경의 구도와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공간의 질서를 향상시켰고, 이는 사유의 범위를 영역 전체로 확장하는 특성으로 이어졌다. 반면 중부 영역은 C그룹의 편액이 다수 분포된 곳으로써, 편액명으로 이용된 수목의 고유한 성질과 형태가, 정자, 당, 관, 각 등의 다양한 건축물과 연계되어 공간 특유의 정체성을 형성시켰고, 결속과 독립의 방식으로 원림의 사유세계와 연결되었다.

설계도서를 중심으로 본 1910년대 탑골공원의 성립과정 (1910's Tap-gol Park Construction Process through Design Document Interpretation)

  • 김해경;김영수;윤혜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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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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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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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탑골공원의 조성 논의가 시작된 1897년부터 공원 형태가 완성된 1916년까지 약 20년 동안 작성된 설계도면을 1차 사료로 활용하여 공간 구성요소의 변화를 통한 공원 성격의 형성과정을 분석했다. 이에 도출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897년에서 1904년까지는 왕실 소유의 공원으로 탑골공원이 조성되는 시기이다. 고종의 근대 국가 건설을 위해서 1897년 조성 논의의 시작과 1899년 민가를 철거하여 거북이 모양의 공원 평면을 바탕으로 담장 남문 북문 조성하여 1902년 개원하였다. 1903년에는 이왕직 음악대의 연주 장소로 팔각정이 도입되었고, 연주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어 1904년 호자식 음악당이 축조되었다. 이 시기는 일요일에만 개방되는 이왕직 소유의 공원이었다. 둘째, 1910년에서 1913년까지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이용이 활발해지는 시기이다. 주변 시설로 인해 경계부가 변형되었으며, 이용자를 배려한 휴양시설과 편익시설이 보완되었다. 1913년 8월에는 야간 개방이 이루어 졌는데, 이는 1910년대 일제에 의해서 도시풍 오락의 장소로 탑골공원이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1914년에서 1916년까지 상업시설이 도입된 시기이다. 1914년 상업시설로 끽다점인 청목당이 들어섰으며, 주변에 연못과 등나무 그늘시렁이 조성되었다. 1916년 종로 야시의 시작으로 탑골공원 이용은 더욱 활발해졌으며, 휴양시설과 편익시설의 확충과 관리를 위한 경계울타리와 관리사무소가 설치되었다. 기존의 호자식 음악당이 철거되고 용산군주차사령부에서 가제보형 음악당이 이축되었다. 191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922년 개벽 에 등장하는 탑골공원의 이용 행태와 부합하는 공원형태가 완성되었다.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공원 설계도면의 발굴이라는 사료적 가치, 기존 연구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근거 제시, 근대 조경공간에 사용된 공간 구성요소와 재료에 대한 탐구로써 의의를 지닌다.